엄마의 쪽잠 / 최미숙
운동하러 나가면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보호자로 보이는 젊은 여자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른에게 바람이라도 쐬게 하려고 나온 모양이다. 다정한 두 사람을 보니 자꾸만 엄마가 생각났다. 목련이 고고한 자태로 꽃망울을 터뜨리고 벚꽃도 개화를 서두른다. 그런 몸으로라도 봄기운 가득한 공기와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어르신이 부럽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라고 하지 않던가.
3년 전 이맘때 육종암으로 투병 중이던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꽃이라도 마음껏 보게 하려고 땀 뻘뻘 흘리며 동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병이 깊어질수록 말을 안 해 애를 태웠다. 조금이라도 웃게하려고 별 짓을 다해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좋아하던 꽃 한 송이를 꺾어 귓등에 꽂아주며 예쁘다고 해줘도 그저 멍하게 쳐다볼 뿐이다. 그런 엄마가 휠체어 미느라 힘드니 쉬면서 하라며 날 걱정하며 한마디 던진다. 그 말이 지금껏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가슴을 후빈다. 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다 좋은 시절은 살아보지도 못하고 결국 병만 얻은 엄마에 비하면 그까짓 게 뭐라고, 생각하면 울컥한다.
엄마는 한복 바느질을 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쫄딱 망한 집으로 시집와 살길이 막막해 시작한 바느질이 생계 수단이 됐다. 아기를 낳고도 허구헌날 굶는 새댁(엄마)이 안돼 보였는지 이웃 아주머니 한 분이 쌀을 주면서 한복이라도 지어보라는 말을 하더란다. 그 말을 헛듣지 않고 한복 한 벌을 구해다 뜯어 이리저리 맞춰보고 노력한 끝에 스스로 요령을 터득했다. 다행히 칠팔십년대에는 지금과 달리 결혼할 때 한복을 여러 벌 하는 것이 대세였다. 신랑, 신부, 양가 어른 한복은 물론 두루마기까지 합하면 보통 열 벌까지 주문한 집도 있다. 부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진 덕에 금방 입소문이 나면서 우리 집은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결혼 손님, 여름에는 삼베와 모시 그리고 깨끼 한복을 하려는 사람으로 붐볐다.
엄마는 밥하는 시간을 빼고는 날마다 일에 매달리느라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손님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고, 약속을 지키려고 날마다 밤을 꼬박 새웠다. 결혼 철이 되면 엄마가 이불 덮고 편히 잠자리에 드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밤새 가위질과 재봉틀 페달 밟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애처롭게 들릴 뿐이다. 그러다 지치면 옷감 뭉치를 한쪽으로 제쳐놓고 그 자리에서 쪽잠을 잤고, 한두 시간 후 다시 일어났다. 그런 엄마가 가여워 나와 언니는 옆에 앉아 시침질(두 장의 옷감이 서로 밀리지 않도록 일시적으로 꿰매는 방법)을 했고, 재봉질해 놓은 옷고름을 뒤집어 다리미판을 깔고 다림질도 맡아 했다. 그런 잔손가는 일이라도 도와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쪽잠은 아버지가 목뼈를 다치는 큰 사고를 당해 2년여 동안 병원 생활을 하면서 끝이 났다. 그 뒤로도 11년 동안 전신 마비(전신 마비 환자는 움직일 수 없어 새벽에도 몇 번씩 몸을 이쪽저쪽으로 돌려 줘야 한다.)가 된 아버지 병 간호로 잠 못 자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런 희생으로 우리 가족이 살았고 6남매가 공부했다. 억척스러운 생활력과 교육열 덕분에 얻게 된 ‘교사자격증’으로 예순이 넘도록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어 엄마께 항상 고마웠다. 우리 6남매 키울 때는 잠이 부족해서, 병이 한창 진행되고는 약기운 때문에 잠에 취해 있는 시간이 많아 안타까웠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여섯 시 50분, 다시 이불을 목까지 올리고 눈을 감는다.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아침 시간이 느긋하고 여유롭다. 특히 비라도 오는 날이면 뜨끈뜨끈한 침대에 계속 누워 있고 싶다. 독박 육아로 잠 좀 원 없이 자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의 쪽잠에 비하면 그것조차도 과분한 바람이다.
거리에는 온통 봄꽃이 만발했고,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엄마의 힘들고 고달픈 삶을 지켜보는 것은 끝났지만 봄만 되면 되살아나 마음 한쪽이 아린다. 함께 사진 찍었던 나무 아래에 도착해 말을 걸었다.
엄마, 이곳은 천지가 꽃이야. 그곳은 어때? 건강한 몸으로 아버지 언니랑 좋아하는 꽃구경 하고 있지?
첫댓글 뭉클합니다. 코가 시큰하다, 못해 아픕니다.
한복 바느질 하신 어머니는 고우셨을 것 같습니다. 가슴 한켠이 뭉클해집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어머니를 닮아 선생님 손끝도 매시러운가 봅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잔함이 가득한 감동적인 글 읽으며, 힘들게 6남매 키우신 저희 친정엄마도 떠올려 봅니다.
동천에 벚꽃이 그렇게 예쁘다면서요.
고운 꽃처럼 천상에서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실 겁니다.
애처롭고 애틋하네요. 좋은 글 잘 읽어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이 마음이 아픕니다. 강인하고 숭고한 삶이네요.
그래요. 어머니 생각! 늘 아픈 일만 기억됩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안부가 문득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다들 잘 지내실 거예요. 잘 읽었습니다.
참 인생이란! 좀 살만하면 몸이 아파서 제대로 거동도 못 하다 가야한다는 게! 엄마만 생각하면 두고두고 가슴 아릴 듯합니다.
익히 사연을 알고 있었는 데도 눈물이 나는 건 선배님이 그만큼 잘 쓰셨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래도 자식들이 그 고생을 다 알아 주고, 든든한 사회의 버팀목으로 자라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