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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이 혼자서 금천(金川)을 거쳐
송도(松都)까지 왔다. 송도 어느 객주에서
짐방 노릇으로 연명하는 중에 걸핏하면
싸움질로 대판 시비가 오가고 입정이
더럽고 불량기가 많다 하여 방색을
당하였다. 불현듯 길을 나서
장단(長湍).파주(坡州).고양(高陽)길
백팔십 리를 사흘 걸려 와서 송파에 당도한
것이다.
선돌의 저간의 사정을 다 듣고 난 봉삼은
담배 한 대를 다 태울 동안 이렇다 할
대꾸가 없었다. 멀리서 첫닭이 홰치는
멎었다. 봉삼은 문득 조소사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다.
"자네, 그 오쟁이를 지운 도포짜리를
물고를 내지 않고 왜 살려보냈나?"
"나도 모를 일이지. 봉노로 돌입해들
적엔 그 모가지에 비수를 꽂을 만큼 결이
돋았었지."
"내게 장가처가 있었다면 자네처럼
타일러서 내쫓을 경황은 없었을 것이야."
"여편네의 몰골을 눈앞에 보는 순간,
나는 어쩐 셈인지 기력이 꺾이듯 하였네.
음욕에 빠진 계집 내가 잡도리 못한 것을
뉘게다가 타박한단 말인가."
"그러나 주먹부터 나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나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네. 그러나
주기를 바랐고 또한 집에 불지를 것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
도포짜리를 죽여 내가 얻는 명분이
무엇인가. 나만 마을에 소문만 왜자하여
욕이 되돌아올 뿐이지 않은가. 연놈을
눈앞에서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군자(君子)연하고 싶었다네. 내 속내는
그것이 아니면서 말일세."
"한번도 상면하지 못한 아지마씨였네만
이태를 참지 못해 바자에 개구멍을 내고
사잇서방을 불러들이다니. 나는 그 지경이
이르면 도륙을 내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겠네. 그러나 그만하면 설분도 되었고
세월도 지났으니 그만 심지를 차리게. 내게
사백 냥 전대를 몽땅 넘기고 신명 하나로
고향을 찾은 자네가 바로 화근이었네."
원망할까. 나가서 술이나 한 방구리 더
가져오게나."
첫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마방에 거처하는 식솔들이 모두들 일어나서
쇠죽솥에다 군불을 지피기 시작하였다.
봉삼이 들어 있는 상방에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었고 두런두런 말소기라 그치지
않았던 터라, 봉삼이 장지를 열자 중노미
노릇인 아이놈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술 한
방구리를 디밀었다.
"사내 평생에 한번 지나간
소나기바람이었다 생각하게. 이제 송파까지
왔으니 나와 동사하며 임의롭게 지내는 게
어떤가?"
"난 이미 글러버린 놈이야."
"글렀다니, 그게 무슨 흰소린가?"
"자네의 셈술이 특출하고 또한 눈썰미가
남다른 터에 무슨 딴소린가? 한 열플
신색을 가다듬어 상로(商路)에 나서기로
하세."
선돌이 불쑥 되받아 뇌까린다는 말이,
"내가 와서 묵는 게 비편할 테지. 내
숭한 몰골 때문에 자네 행세가 깎이고
창피볼 지경에 이르렀다면 내가 여기서 뜰
수도 있지......"
"고이헌 사람. 응석 부리는 걸 보아하니
젖먹이나 진배없네그려. 그렇게 의표가
선명하고 슬금하던 사람이 홀저에 이렇게
변하다니. 내가 오시목퇴침과 명주이불로
공궤할 주변이 못 된다 하여 이렇게 성화를
먹이려 드는가?"
"외대라니, 자네의 대접이 과해서 되레
이러다 싸움나겠네."
"자네로 인하여 내가 우리 동패들에게
구경 소조(所遭)를 당하는 낭패를 볼지언정
자네를 방색하고 천둥 치는 하늘로 머리
두고 다닐 수가 있겠나."
"나는 중놈 바랑 속에 든 빗처럼
쓸모없는 놈이 되었네. 그러나 솟증이
돋쳐서 살가루가 뚝뚝 떨어지는 판인데
육허기나 채우게 기생방 출입이나
시켜주게."
"해참, 상제 노릇 하는 중에도
기방(妓房) 갈 염의가 있다는 겐가? 이제
와서 기생방 천틀 요량인가?"
"무슨 소리, 내 연갑(年甲)에 오입쟁이
발천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네.
책상물림이나 무변들만 드나들란 기방이
"기생방 출입 잘못 알음하여
허튼수작하다간 난장개 되기 일쑤라네.
어디 그뿐인가 오입쟁이 날이 나면 건달
되고 건달이 배고프면 조방꾼 신세 면하기
어렵다네."
이에 선돌이가 발끈하여 화증을 돋으며,
"그렇다면 내가 이 초빈(草殯) 속보다 더
어두운 음산한 봉노에 육장 처박혀서 그깐
한번 찡하다 마는 용두질이나 치고 있으란
말인가?"
"제발 그 더러운 입정 그만 놀리게."
"자네가 상약 따위나 디밀고 심기를
건드리니까 그렇지."
"상약이 방문약(方文藥)보다 나을 수도
있다니 약이나 거르지 말고 들게."
"약그릇을 내동댕이쳐 버리겠네."
완곡히 타이르고 경계를 따지고 시종이
여일하게 받자를 하고 드는 봉삼의 말에
선돌은 거탈 수작으로 고개만 두어 번
주억거렸을 뿐 아퀴지어 동사하겠단 말은
끝내 없었다. 더 이상 다잡아 묻는 것도
경난 겪은 당자 심사만 긁어놓는 격이라
봉삼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선돌도 똥개
없는 사람이 아니건만 앉아 있는 형용이
흡사 썩은 장승 같아 한 손으로 잡아들어도
번쩍 들릴 것같이 수척한 것을 무어라
탓하랴. 두어 파수가 지나보아야 선돌이
행보할 만큼 신기를 되찾을 것 같았다.
선돌이가 오던 날 새벽부터 질금거리기
시작한 비가 두 파수 내내 그치지 않아
장이 서질 못했다. 두 장도막 동안 마방에
매인 소들은 그대로였다. 매팔자가 된
선돌은 해가 서 발이나 치뜨도록 자고
일어나면 식전 술국집과 저녁 모주집을
뻔질들락거렸다. 삼개의
공덕리(孔德里)에는 황해도의 신계(新溪),
곡산(谷山), 안악(安岳) 인근의
책상물림들이 아주 권속들을 솔거해와서
살며 성균관이나 사학(四學)으로 나아가
과거 준비를 하였다. 과거 바라지를 하는
권속들이 과채(科債)에 시달리고 궁핍을
겪다 못해 서울에서는 귀하기 마련인
나중엔 식초도 만들어
겸매(兼賣)하였었는데, 그 소주가 청결하고
독하다는 소문을 들은 선돌이가 뗏배를
얻어 타고 공덕리 소주촌(燒酒村)까지 찾게
되었다.
봉삼은 약 수발에 끼니 지공(支供)은
물론이려니와 선돌의 용처에 부족이 없도록
각별 주선하였다. 재취장가를 들 요량은
않고 계집과 농탕을 치겠다 하면 되대머리
논다니이고 들어앉은 계집이고 간에
군소리없이 끌어대었고, 동패 쇠전꾼들에게
대중없이 해라를 내붙이며 왜장을 쳐도
그리 알고 위하며 심사 틀린 대꾸들을 하지
말게 닦달하였다. 선돌이도 혹간 반죽이
눅을 때에는 홍제원 인절미 같았으나
식전술에 취하여 솟증이 돋았을 때에는
길길이 날뛰었다. 술청을 두드려 엎는 것은
약과요 애꿎은 주모들까지 골병을
들이었다. 의원을 불러 진맥을 시켰더니 그
전부가 신기가 허한 탓이라니 탓하고 나설
수도 없는 것, 성깔이 삭아질 때만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방책이 없었다.
삼남에서 올라온 쇠전군들은 외양가와
객비만 불어난다고 걱정들이 태산 같은
중에 투전질과 척전(擲錢)질로 소일하는
중에 장마가 들었다. 두 장도막이나 저자가
열리지 못하였으니 북새판을 이룰 만한데
그렇지가 못한 까닭이 있었다.
때마침 삼남에서는 역병이 돌아 고을마다
백성들이 효복을 틀어안고 몰사죽음을
당하는 처참이 있었고, 저자에는 광주부
유수(廣州府留守)인 민영목(閔泳穆)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한 가운데 저자
모퉁이 곳곳에서는 광주 유수의 탐학을
고변하는 쾌서(快書)가 나붙는 가운데
동헌에 정장(呈狀)을 올린다는 소문이
분분하고 자못 인심이 흉흉한 판이었다.
관부에서는 각 고을의 풍헌이며
동소임들에게 신칙을 내려 매매를 빙자한
백성들이 인근 저자에서 취회하지 못하도록
엄중 단속하고 있었다.
방리(坊里)마다 효시문(梟示文)을
게첩하는 등 백방으로 엄금하는 판이어서
송파에서 양주(楊州)의 평구(平邱)장터를
드나들며 소몰이를 하는 동패 일곱과 소가
열다섯 두(頭)나 길이 막혔다. 동패들이
송파로 건너오는 거루를 타지 못해
살곶이에서 묵고 있다는 기별만
주장(朱杖)을 꼬나든 향청의 별감배들이
떼로 몰려나와 행객들을 서캐 잡듯
검색하는 판이어서 비가 들었다 하나
장시의 거래가 순탄할 리 없었다. 외양가와
연가에 물린 삼남의 쇠전꾼들은
척매(斥賣)로 소를 처분하고 마방들을 뜨는
판인데 살곶이에서 발이 묶인 동패들 일이
난사였다. 물론 채장 가진 장사치가 읍치
밖으로 나가는 것이야 자유스러웠다.
봉삼이가 살곶이로 나갈 수도 있었으나
차제에 선돌을 끌어들이자는 심사로 듣고
있는 자리에서 걱정을 내쏟았다. 선돌이
무슨 염의가 돌았는지 전과 같이
뒤숭숭하지 않고 제법 침착하게 살곶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을 영솔하여 아예
다락원까지 다녀오겠다고 나섰다.
내가 한 행보 하지."
속으로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으나
봉삼이 미심쩍다는 시늉으로,
"자네 신색으로는 먼길 행보가 아직은
지난일 터인데?"
"그런 말 말게. 이젠 행패도 그만치
놓았으니 기력에 동이 났고 자네에게 앉혀
사는 치골 노릇도 진력이 났다네.
장공속죄(將功贖罪)하는 셈치고 다녀옴세."
봉삼의 속셈을 어림할 수 없었던
동패들은 마방에 바람 재울 날이 없이 연일
찍자를 부리던 선돌이가 빈말이라도 듣기에
놀랍고 반가워서 입을 맞춘 듯 선돌을
부추기고 나섰다.
"기력에 동이 났다는 사람이 원행이
가당한가?"
하초를 아주 버릴 만큼은 낭패를 보지
않았네. 도감포수(都監砲手) 오줌짐작으로
그러지 말게. 길목버선 두어 켤레하고
견술이나 매단 행리 하나면 원산포까진들
못 다녀오겠나."
"살곶이에 기다리고 있는 동패 일곱과
안동한다면 초행길이라도 별 탈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이야."
"글쎄, 걱정 말라니깐."
선돌이가 지각을 차린 것만 반가워 더
이상 주저를 않고 살곶이로 떠나보냈다.
살곶이에서 만난 일행과는 초면인지라
인사 수작 나누고 늦은 동자를 걸게 든
다음 지체없이 다락원으로 소들을
몰아대었다. 다락원의 득추의 대장간에
들렀으나 원산포에서 내려온 북상(北商)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낭패이나 선돌이패도 덩달아 송파로
회정한 수는 없었다. 득추의 대장간
툇마루에선 공론들이 분분하였다. 득추가
불쑥 끼여들어 손사래를 치면서,
"솔모루[松隅店] 장터까지라면 반나절
길이지만 연천(漣川)지경까지라면 길이
초간하지 않고 또한 고개티 목쟁이마다
화적들이 득실거리는 판국에 한발 더
놓으려다 낭패를 보십니다."
"지레 겁부터 집어먹을 게 뭐요? 그렇담
북상들은 어찌 무상으로 고개티를
넘어다니오?"
"북상들이야 적굴 사람들과 더러는
안면을 트고 지내는 터수이고 달포
상간으로 곡식말이나 보태주는 사이라
"여기서 다시 한 파수를 기다린 순 없소.
중로에서 장맞이해서 소를 넘기는 게
좋소이다. 그깐 쇠파리 무서워 장 못
담글까."
"공연히 허세를 부리려다간 명 보전하기
힘들지요."
"그놈들, 공물 실은 부담마다 털 일이지
하필이면 장사치일까."
"새벽에 나온 호랑이, 쥐나 개나
하루살이나 하는 판인데 뭘 가리겠소."
"그깐 뛰면 벼룩이요, 날면 파리겠지.
우리도 떨거지가 이만하니 당적할 만하지
않겠소."
선돌의 푸른 서슬에 동패들은 쓰다 달다
대꾸가 없었다. 콧등 센 왈자 출신들이라
겁들이 적었고 당장 회정한 곳도
장수원(長水院)까지는 상거가 십 리밖에
되지 않았고 거기서 반마장을 채 못 가서
파발막(擺撥幕)에 당도한다. 이곳에서 길은
삭녕(朔寧)으로 해서 평양 노정으로
이어지는 길과 원산포(元山浦)로 빠지는
길로 나뉜다. 파발막에서 축석령(祝石嶺)
고개티까지가 줄잡아 오르막길 이십 리이고
축석령에서 솔모루까지를 내리막길 이십
리로 잡는다. 솔모루는 송파나 다락원과
함께 금난전권 밖에 있는 또 하나의 과시
못할 사상도고(私商都賈)들의 근거지였다.
솔모루는 관동지경과 원산, 함흥 소산
어물(魚物: 혹은 北魚)과 이른바
북포(北布)라고 통칭되는 길주(吉州),
북청(北靑), 종성(鐘城). 회령(會寧),
마전(麻田), 등지의 포목(布木)이
거쳐 서울로 운반되었다.
특히 북어(北魚)바리들이 서울로
들어오는 경로는 소산지(所産地)의
도고(都賈)들과 중간 통과지인 통천(通川)
여각의 포주인들, 그리고 솔모루를
근거지로 하는 건방(乾房)의 난전꾼들이
서로 결탁이 되었고, 이들에 의하여 교역된
물화들이 마지막으로 서울의
사상(私商)들에게 넘겨지고 있었다. 이렇듯
솔모루는 원산포와 통천의 포주인들과는
끊을 수 없는 주객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시전 상인들의 추상 같은 위협일지라도
이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서울의
금난전권을 에워싸는 사상도고들의
포위망은 경강(京江)과 다락원과
동작나루를 연결하는 첫번째의
연결하는 또 하나의 상로가 있었다.
북상들은 솔모루에 당도하면 거의가 거래를
이루게 되고 회정하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었으니 하루에도 칠십여 바리의 어물과
포목들이 솔모루의 건방과 객주를 통하여
다락원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다락원에서는
솔모루에서 오는 각종 어물을
매점해두었다가 서울의 칠패와 배우개의
난전꾼들에게 보내면 그들이 수시로 물화의
시세를 조정할 뿐 아니라 시전의
어물도가에서는 물량을 제대로 구처하지
못하는 폐단을 겪었다.
선돌이가 화적 만날 것을 짐작하면서도
민주대고 연천(漣川)으로 오르려 한 데는
그 나름대로 까닭이 있었다. 송파에서
다락원까지는 득추의 마방과 서로 연경과
솔모루 위로는 연결될 만한 마방이 없어
중로 저자에 진을 치고 있는 쇠살쭈들과
몰이꾼들에게 많은 이문과 객비를 뜯기고
있었기에 솔모루나 철원(鐵原)에 상로를 틀
만한 곳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계집과
자식을 잃고 난 뒤 멀쩡한 사람이
병풍상성(病風喪性)을 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는 하나 차제에 봉삼에게 할 수
있는 품앗이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기에 불쑥 길 나서기를
자청하였었다.
다락원에서 중화하고 난 다음 공론들을
한답시고 시각을 지체한 터라 축석령
고개티에 득달하였을 때에는 길어자빠진
팔월의 한여름 해도 서너 뼘밖에 남지
않았었다. 노량으로 걷게 마련인 짐승의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솔모루에서
다락원으로 가는 어물이며 포목 바리며,
다락원에서 솔모루로 오르는 황화짐이며
소금장수들과 점사람들과도 심심찮게
만나는 것이어서 행로가 적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황톳길을 달달 볶아대는
뙤약볕과 쇠파리에 시달리며 워낭소리만
따라서 노량으로 걷자 하니 속에 천불이
올라오고 승새 굵은 삼베등거리에 하초들이
시커멓게 들여다보이는 쇠코잠방이를
걸쳤다 하나 땀을 하루종일 노 드린
듯하였다. 고개티를 내려간 제 쇠여울이
나타나고 한창 북새판인 천렵꾼들을
만났다. 연방 여뀌풀을 돌로 찧어 소에다
풀어놓는 놈, 청솔가지 연기에 눈물을
질금거려가며 노구솥에 불을 지피는 놈에
더러는 등목들을 하고 길목을 돌아서는데
떼 안 입힌 백정들 무덤들이 듬성듬성한
언덕빼기 위로 다 쓰러져가는 천궁(天宮:
屠殺場) 한 채가 바라보였다.
천궁 앞엔 이끼가 낀 수혼비(獸魂碑)
두어 개가 잡초 사이에 누워 뒹굴고,
고리짝을 만들 버들껍질이 각담 밖 덕대에
주렁주렁 널려 있는 고샅을 빠져나가니
개활지 건너로 장거리가 훤하게
바라보였다. 다락원을 나서면
장천거리(長舛巨里)와 파발막에 당도하고
비석거리(碑石巨里)와 포천읍치인
장거리(場巨里)를 지나 사뭇 계곡길로
빠지면 삼십리 상거에 만세교(萬世橋)가
있으니 천상 솔모루에서 하처를 잡아야
하였다. 마침 빨랫가지를 자배기에 넣어
물었더니 장터목으로 가보라고
지소해주었다. 객점으로 찾아들긴 하였으나
역시 소들을 재울 만한 마방 딸린 객점은
없었다.
"덕서들을 구처해서 씌우고 한터에다
노숙을 시키는 수밖에 없게 되었네."
"우리가 번을 만들어 상직을 서도록
하지요."
"관동의 화적들이 드세다 할지라도
주막거리까지 쫓아내려와서 북새를 놓기야
하겠나."
소들을 노숙시킬 공론들을 하는 중에
객점 마당에 깐 멍석 위로 저녁이 날라져
왔다. 장마 뒤끝이라 봉놋바닥이 눅눅하고
후텁지근한지라 다른 봉노에 들었던
행객들도 장지문이며 지게문을 활짝 열고
잡담들이 늘어진 판이었다. 그때 술질에
열심이던 한 사람이 옆에 앉은 동패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여보게 초풍할 일이 생겼네. 자네 저기
퇴에 나와 누운 인사를 눈여겨보게. 얼추
알 만한 놈이 아닌가?"
"누구 말인가?"
"분주는 떨지 말고 퇴에 누운 인사를
가만히 훔쳐보게."
"장돌림 복색들만 우글거리는 객점
마당에 누구 말인가?"
"궐자는 초저녁잠에 취해 우리는 보지
못하였네만 저놈이 새경다리께 살고 있는
길아무개란 놈이 분명하네."
"길가란 놈 말여? 아니 저 육시랄 놈이
솔모루 객점엔 웬일인가?"
몰라 한시름되더니 잘 만났네. 자네
손떠꾸가 근질근질하거든 저 놈 제독을 줄
겸 한번 가서 민주를 대보게나."
"저놈이 어쨌든 구실을 살아보겠다고
재상가에 총촉질을 하고 다니는 주제에 딴
변고가 나지 않은 이상 장돌림으로 나설
리도 만무일텐데 어떻게 되어 여기 와서
나자빠져 누었을까. 석식 뒤에 딴 볼일도
없는데 가서 수작이나 붙여볼까."
"아서. 공연히 덧들였다가 또 무슨
앙화를 입을지 모르네."
"장안에서 놀아야 할 놈이 외방 저자
객점으로 홀연히 나타나서 잠에 취해 있는
처지라면 분명 남다른 속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게 아닌가?"
"그렇더라도 평지풍파를 일으켜 경난을
척해두지."
"어디 면분 있는 동무님이라도 만났소?"
두 사람이 귀엣소리로 받고채는 말을
선돌이가 어림짐작으로 얻어듣고 물었다.
그러나 이미 묵어자빠진 고려 적 일을
주착없이 토설하였다간 선돌이 성깔에 또
무슨 환난을 벌일지 몰라 두 사람은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석식을 마치고 힐끗
돌아다보았더니 길소개는 어디로 나갔는지
행지가 묘연하였다. 이 봉노 저 봉노를
기웃거려보았으나 후배는 따라온 겸인이나
떨거지들도 없는 것 같았다.
이튿날 신새벽 첫닭 울 녘이 되어서
새벽동자 바쁘게 뜬 다음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섰다. 솔모루 장거리에서 영평(永平)길로
접어들어 자하골[紫霞洞]과
영평읍치에 이른다. 영평에서
남대천(南大川)을 끼고 왼편으로 꺾으면
밤모루골[栗隅]과 숯골[炭洞]을 지나
전곡(全谷)에 이르고 다시 왼편으로 또
한번 꺾어 장진나루를 거텨 이십리 상거인
연천(漣川)에 득달한다. 연천 어름인
원모루[院隅]를 지나고 점마을[店村]
장거리에 당도하여 다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철원부중(鐵原府中)에 당도하였으나
원산포에서 내려온 탑삭부리 일행은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철원장터에서
지체할 수도 없어 내친김에 평강(平康)가지
오르기로 하였다. 철원에서 포촌(浦村),
천통, 달우물골[月井里],
석탑거리(石塔巨里:弓裔石塔)를 지나면
원골[院里]에 당도한다. 원골에서
따라 꾸불꾸불 내려간 길 양편엔
묵정밭이고 키 큰 전나무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었다.
산중길 사흘 행보에 몰이꾼들도 행역에
지쳤고 소들도 지치었다. 병문에서
수소문하여 원산포의 소몰이꾼들이 단골로
정하고 묵는다는 객점은 찾아내었으나 역시
마방은 없었다. 설사를 하고 다리를
절름거리는 소가 있어 하루를 평강
숙소참에서 묵기로 작정하였다. 그날
해질녘에 탑삭부리와 원산포 소몰이꾼
일행이 숙소에 들이닥쳤다. 탑삭부리를
알아본 일행 중 한 사람이 객점 마당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
"이거 탑삭부리 성님 아니시오?"
"어허? 이거 웬놈들이여?"
뛰었소."
"천행수는 별 탈 없으시지?"
"조행수님은 어떻소?"
"무탈하시다네. 그런데 전번 파수에는
자네들이 배약(背約)하는 바람에 허행하고
용용(冗用)이만 수월찮게 나서
양실(兩失)을 보았다네."
"아픈 데도 없으면서 괜히 앓는 소리
마슈. 장마에 갇힌 걸 어떡하우. 우리도
평강까지 오느라고 객비가 수월찮았소."
"행수 구실은 누구인가?"
탑삭부리가 수상으로 온 선돌과 초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시생은 이래봬도 연전까지 강경포구
어름에 둔소를 둔 적굴의 화적이었소."
적굴에 종사했던 일을 거침없이 내쏟는데
것은 생각 않고 제 신명만 알아서 떠드는
판에 선돌은 정색을 하고,
"모개흥정으로 해서 가전이나 넘기시오.
우린 곧장 회정해야 합니다."
"원 바쁘기도 하시오. 오줌 누고 뭐 털
사이도 없으시단 게요? 우리가 초대면에
첫거래를 튼 셈이니 명색이 성애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소."
"송파에서 나설 적엔 솔모루까지만
겨냥했었으니까요. 그러나 다음부턴
평강까지 소몰이를 할 터이니 금어치는 더
쳐주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수월하게 되었소이다.
고개티를 지키고 있는 화적들이야 내
수중에 있소이다만 외양가며 부비가 헐하게
되었으니 그만한 금어치는
탑삭부리는 언죽번죽 얘길 잘하고 괘나
시원시원하게 선돌은 다루는 것이었다.
소들을 넘기고 받은 꿰미돈이 두 바리나
되었다. 탑삭부리 일행이 치행하여
원산포로 회정한 뒤 선돌이패도 이튿날
아침으로 평강에서 다시 서울길로
회정하였다. 소금섬에다가 전대를 넣어
소금방수로 가장하였으니 평상 소산(所産)
설화지(雪花紙)를 행매하지 못하면
철원장까지만 바삐 대어가서 북포(北布)로
환매할 적정이었다. 북포를 솔모루까지
가져가서 다시 돈으로 바꾼다면 봉적할
걱정도 덜고 길미도 바랄 수 있으니 그것이
이른바 상리를 꾀하는 재간이었다.
철원도 관동지경에서는 꽤나 소문난
향시여서 인근에서 장꾼들이 모여들기
한짐이나 되게 북포로 환매하여 정한
객점으로 돌아와서 하룻밤을 지내려는데,
삽짝 밖이 소연해지더니 뜻밖에 한
패거리의 행객들이 들이닥쳤다. 상방으로
들어서는 행객들은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경사(京辭)이니 경아리들이
분명하였다. 진대 부리기 좋아하는 동패
중의 한 사람이 불문곡직하고 쫓아가서
통성명들 하자고 성화를 먹이었다.
산초기름 희미한 불빛 아래로 분별해선
확연치는 않으나 그들은 입성부터가
선돌이패들보다는 말쑥하였고 성깔깨나
부리게들 생겼었다. 그러나 그만한
외양이라 해서 기가 질릴 반죽이 아닌지라,
"보아하니 서울서 오신 동무님들
같소이다그려?"
봉노로 들어서던 위인 하나가 그 말을 냉큼
되받아서,
"이건 웬 물것이 불쑥 뛰어들어 촐싹대나
그래?"
"여보시오들, 불 없는 질화로에 딸 없는
사위라더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다정다감한
맛이 없으시오들? 병풍상서(病風傷暑)라
했듯이 서로 쪼들림을 당하는 장사치들
차지에 통성명들 하자는데 웬 방색이
그렇게도 혹독하시오?"
"그럼 초인사들 나누시지. 산 사람
소원들 풀어줘."
성화를 받다 못해 색책으로 말하는 것을
짜장 좋은 도리를 일러 주는 것으로 듣고
송파패는,
"난 정주가 지본이오, 임가라 합니다요.
"거참, 죽은 놈 매장은 안하고 초빈만
해둔 탓에 벼락소리 듣고 되살아난 놈처럼
꽤나 엉뚱하게 성화일세."
한 놈이 꽥 소리를 지르며 한 손
식지가락을 내뻗치고 흔들며 곧장 드잡이를
놓을 것같이 팔을 뽐내고 있는 터에,
"이런 제미 붙을 놈을 보았나. 초인사
나누자는데 웬 성깔이여 그래?"
"여어, 이놈 보아라."
한 놈이 어금니를 바드득 갈아 부치더니
삿자리 위에 넓죽하니 엎드린 송파패를
드잡이하고 장지문 쪽으로 내다꼰질러
박으려는데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던
작자가 드잡이한 손을 잽싸게 뿌리치며
부담농 쌓아둔 바람벽으로 가서 풀썩
나자빠졌다.
두었다간 여러 사람 코다칠 놈이 아닌가."
행수 격으로 보이는 위인이 호령하자 세
놈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송파패를 싸잡이
툇마루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코피가 터진
채로 쫓겨난 송파패가 선돌이 있는 방으로
들어와서,
"행수님, 저 상방에 하처잡은 패거리들의
부담농이 수상쩍습니다."
용집이 배어 고린내가 등천을 하는
길목을 벗어 활활 털고 있던 선돌은 궐자가
패거리들에게 덧들이다가 우세만 당하고
쫓겨난 것을 부족하게 여겨 쏘아붙이기를,
"이상하면 자네가 어쩔 텐가? 더운밥
먹고 식은방귀 뀌지 말고 잠이나 자게."
"아닙니다, 행수님. 제가 저
패거리들에게 부대껴본 것은 당초부터
"해괴한 잔소리 집어치우고 어디 가서
논다니 계집이나 업어오게. 응어리를 풀지
못하면 잠을 청할 수가 없다네."
"농이 아닙니다요. 제가 그놈들 따귀 한
대를 모질게 얻어맞고 넘어지는 척하고
시렁 아래 쌓아둔 부담농 위로 넘어졌을 땐
생각이 있어 한 짓이라니까요."
"부담에 금은보화가 들었던가?"
"사연인즉슨 그 부담농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습지요."
"자네 코가 개코인 줄은 당초부터 알고
있었네."
"냄새고 보아 어물이나 포목은
아니었습지요. 이상한 약초냄새가
났습니다요."
"불땐 굴뚝에 연기 난다는 이치군.
무엇이 탈잡을 게 있단 말인가?"
"약주릅도 아닌 놈들이 약초를 부담농에
넣어 싣고 다닐 게 무엇입니까? 약고개로
가면 당재(唐材)는 물론이요 희한한 관동의
약초가 천새나는 찬에 저들이 관동
산중까지 행보할 까닭이 없겠지요.
궐놈들의 성깔이 괴팍한 것하며 손떠꾸가
곱상들 한 것이 함지는 복수들로 가장한
시전붙이들이 분명합니다요."
말인즉슨 그럴싸하였다. 고개를 고아박고
한참 뜸을 들이던 선돌이가,
"그렇담 저 부담짝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짐작 가는 일이 있다는 게여?"
"아편이 아닐까요. 되국 밀매상들에게
받아오는 아편이 분명합니다요."
"부담농들이 열댓이나 되어 보이는데
가구를 모조리 족쟁이로 만들어도 남을
양이 아닌가."
"그중에 몇은 황화짐이겠지요."
"자네 보아하니 그 부담짝에 붙어온
쥐새끼처럼 환하게 알고 있나 그래?"
"짐작인즉슨 그러하다는 얘기지요."
"설마 시전붙이들이 잠상질로 치부를
하려 들까."
"설마설마하다 앞집 처녀 놓친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까. 외전에서들 물화를
도집하고 시새들을 농하는 바람에 시전이
피폐를 보고 있는 지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시전붙이들이 이제 와서야
형용만 남아 바지저고리들만 걸어다니는
꼴이 되었습지요. 아편 밀매라도 해서
궁가에 재용을 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하였습니다. 기왕 선김에 한번 부닐어서
점고를 해보시지요."
"도대체 저 차인놈들의 상전은
누구일까?"
"저도 그걸 알려다가 따귀만 맞고
쫓겨났습니다. 행수님은 언변도 그만하시고
외양도 그럴듯하시니 한번 건너가서
화햇술이라도 먹자 하고 안면을
터보십시오."
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선돌이가
벗었던 길목을 다시 꿰고 행전 친 다음
상방으로 건너갔다. 마침 문지방을 베고
누워 물것들을 쫓던 한 놈이 벌떡 반몸을
일으키며 뉘시냐고 불량스럽게 물었다.
"행수님을 뵙자 하오. 마침 시생의
동패가 돌입하여 수선을 피웠다기에
반실(半失)이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거참, 을사년 주린 가마귀 빈 측간
드나들듯 한다더니 원. 썩 불러나지 못하고
부아를 돋두는 데는 이골이 난 인사들이군.
화해(和解)고 나발이고 싫다는데 왜 자꾸
건너와서 성화를 부리나 그래?"
그때, 봉당에 서 있던 선돌이가 흰자
많은 눈자위를 굴리며 위인에게 꾸지람을
안기는데,
"발칙한 놈, 말본새가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웃는 얼굴에 침 뱉지 않고
먹고 있는 개는 쫓지를 않는 법이다.
하물며 도리를 찾아 이치에 맞추고 갈피를
찾아서 화해 말씀 올리자는데 뉘게다가
솔잎상투를 까딱거리며 버릇없는
말대답이냐? 내 꼴이 면추가 못되어 주제
명색이 행수 노릇이다, 이놈."
"이놈 봐라? 얻다 대고 간대로 호놈이여?
이놈, 행수면 다냐? 행수도 행수 나름이다
이놈. 산중 도방놈이 철점 동무 맛 좀
볼래?"
위인이 맞장구를 치고 기어오르는 품이
아무래도 셈평이 잘못되었는가 싶은데,
선돌이가 다짜고짜로 퇴로 쫓아올라가서
위인의 뒷고대를 냉큼 잡아채고서는
왼발걸이로 일같잖게 객점 마당에다 꼰질러
박아버렸다. 상투를 마당 귀퉁이에다
꼬아박은 놈이 채 일어나기도 전에 선돌이
뒤미처 쫓아가서 궐자의 뒷덜미를 밟고
서서 호령이었다.
"이놈, 행수도 행수 나름이라 했것다? 키
큰 놈이나 키 작은 놈이나 하늘 보고
밟고 있는 발을 떼고 궐자를 번쩍 치켜
둘러메고 두어 번 헹가래를 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자구멍 아래에 놓은
오줌장군에다 상투째 곤두박아버렸다.
궐자가 거꾸로 박힌 채로 두 발로 허공에다
발장구를 치고 있는 참에도 상방
패거리들은 꿈쩍 않고 두 사람의 거동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들 아니래도 저녁 먹은 것이 관격이
되어 울화통이 치밀던 판에 잘되었다.
몇놈이든 나와봐라 육젓을 담가주마."
호기있게 다짐한 선돌이가 짚신감발을
죄어 신는데, 한 사람이 상방 지게문을
열고 마루로 나서는 것이었다. 키꼴이
훌쩍하고 어깨가 장대하여 장골값에 갈
만하고 때벗은 품이 산골 농투성이 같지도
선돌에게 손짓하며 부르기를,
"여보시오 형장. 그렇게 화증만 돋우지
말고 이리 와서 앉으시지요."
선돌이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넌 웬놈이냐?"
"시생이 진작 형장께 초인사 올리지 못한
불찰이야 있습니다만 장사치들끼리 타관
객점에서 이런 난장판을 벌인다면
객점거리에 빈축이나 살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결기 삭이시고 이리 오시오."
궐자가 싸개통을 가로막고 나섰으되
선돌을 상종하여 새삼 주먹다짐을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루로 오를 핑계가
없어 주저주저하는판에 궐자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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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