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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륜43회/고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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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유 게 시 판 스크랩 여행스케치 2015.3.4.-3.12 이태리 일주 /로마 시티투어 /콜로세움
구름/최상운 추천 0 조회 217 15.03.27 23: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5.3.4.-3.12 이태리 일주 /로마 시티투어 /콜로세움

로마 !

로마하면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이 최고 먼저 생각난다.

부푼 마음으로 로마의 휴일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간 햅번의 흔적들을 찾아 본다.

로마의 휴일은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이고 반세기도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그 영화와 오드리햅번의 유명세에

아직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로마를 찾게하며 영화속 배경이 된 곳들은 관심의 대상이다.

그 작품이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콜로세움, 진실의 입, 나보나 광장, 포로 로마노, 천상의 성, 소망의 벽, 바티칸 등의

관광 명소들에서 촬영을 하므로서 관객들에게 대리관광의 즐거움도 선사하였지만, 당시 할리우드로서는 보기드문

100% 현지촬영도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고 로마 로서는 큰 수확이다.

 

세계적인 스타로서도 유명하지만 인생 후반기에 헐벗고 굼주리고 병든 아이들을 위해 그의 유명세도 잊고 봉사하고 간

그의 외적 아름다운 못지 않게 내적 아름다운 마음이 더욱더 가슴 뭉클하고 그를 더욱더 오래 오래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그가 종종 읖조렸다는 구절들이 뜨오른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히루에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

 로마의 바티칸쪽에서 테베레강을 건너 본격적인 로마 시티 투어를 위해 콜롯세움 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부터는 짧은 시간에 로마의 많은 곳들 둘러 보기 위해 로마 구시가지 좁은 길도 구석 구석 갈수있는

로마 시티투어 전문 반나절 벤츠 밴 투어를 합니다 (요금은 1인당 60불 기사 가이드 포함 8인승)

걸어서 다니기엔 일정상 시간도 부족하고 비온후 흐린 날씨와 로마의 3월 답지 않은 이상 기온으로  추위도....

화창하고 따뜻한 로마를 기대하고 왔건만.....

 

먼저 들린곳은 콜로세움 입구 길목에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은 통합된, 312년에 세워진 개선문

이 웅장한 개선문은 로마의 손꼽히는 명소 중 하나로, 로마 황제들이 축하 행렬을 벌일 때 택했던 오래된 길인

'비아 트리움팔리스'에 서 있는 주요 유적이다.

이 개선문은 티투스 개선문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더불어, 고전기 로마 시대부터 온전한 상태로 살아남은

3개의 로마 개선문에 속한다.

이는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 황제라 알려지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바로 외부에서 벌어진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312)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이 승리로 인해 그는 서로마 제국의 단일한 지배자가 되었으며

기독교 세력이 성장하는 데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이 인상적인 건축물의 높이 21m, 너비 25.7m, 두께 7.4m이다. 개선문의 아래쪽은 콘스탄티누스가 전리품들과 더불어

지나갔을 육중한 중앙 아치와 사이드 아치, 대리석으로 된 지지 교각, 코린트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티카 양식으로 된 꼭대기 부분은, 황제가 막센티우스와 벌인 전투와 그 승리를 표시하는 여러 장면, 인물, 글귀가

조각되어 있는 대리석 패널에 둘러싸여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은 재치 있는 재활용을 보여 주는 매우 오래된 본보기라 할 수 있는데,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세워졌던 옛 기념물로부터 장식 부분을 떼어오거나 개조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재료가 재사용되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쩌면 단순히 개선문에 나타나 있는 사건의 하나이기도 한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거둔 승리에 뒤따라 급하게

 제작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또한 의도적으로 콘스탄티누스를 많은 존경을 받았던 초기 황제들과 동일시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1700년대에 대규모 복구 작업이 행해졌으며, 현대로 와서는 1990년대 후반에 상당한 양의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로마 콜로세움

로마의 가장 위대한 원형 경기장 !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의 각기 다른 기둥으로도 유명한 이 곳은 72년

베스파시우스 황제에 의해 건설되었다.

노예와 전쟁포로, 범죄자, 검투사, 그리고 동물들이 목숨을 걸고 경기를 했던 곳. 낙성식 때에는 맹수 5000마리와

검투사 2000명이 희생되었다.

검투사의 대부분은 노예, 포로, 죄인들이었는데 격투경기에서 동물의 곡예 뒤에 사람들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검투사가 등장하여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시합이 펼쳐졌다. 승자는 영웅이 되어 자유가 주어졌다.

부상당한 검투사의 운명은 관객이 쥐고 있었는데 황제가 엄지 손가락을 세우면 자비를 주고 밑으로 향했을 때에는

죽음을 주었다.

러셀 크로 주연의 영화 “ 글래디에이터 ” 의 처절한 검투 장면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한편, 로마 정치가들에게 원형경기장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화합을 도모하며

때로는 로마나 귀족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건축물이다.

르네상스시대의 건축붐으로 귀족들은 저택을 짓고,  바티칸 궁까지 멋지게 짓느라

콜로세움 안팎의  대리석같은 것들을 앞다투며 떼어가는 바람에 더욱 황페화되엇다네요,

 

당시 4층에다 천막을 쳐서 햇?도 피할 수 있었고, 물을 들여 모의해전도 가능했고

1층에는 80개 아치로 된 출입구가 있어 혼잡없이 사람들이 빠질 수도 있는 기능이 앞선 건축물로도 유명하답니다.

 

 내부로 입장

 

 

 

 예전 원형엔 중앙부 에  일부 부분과 같이 나무 판들이 덮여서  맹수들이 대기하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콜로세움에서 내려다 본 정경

 

 

 

 

 

 이제 그 옛날 로마제국이 망하기전 로마의 중심지 "포로 로마노"로 간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인들이 시민생활의 중심지로 생각하던 신전과 공회당 등 공공 기구와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이 있는 곳이다. 팔라티노 언덕 주변에는 한때 원주민들이 수장 묘지로 사용하던 늪이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에트루리아의 왕 타르퀴노 프리스코가 하수처리장을 시설하고 이 늪을 메워버리자 공회장터 역시

매몰되었는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가축 방목지로 사용되었기에 '우시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발굴작업이 괄목할 정도로 진행된 다음 이 공회장은 엄청난 신전과 공공건물, 그리고 아치형 건물과 상점이 나란히

 이어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건물들을 치장하고 있는 조각상들도 무수히 널려 있으나 안타까운 것은 이 석상들 중 온전한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놓여 있는 곳곳에 새겨진 역사의 의미는 대단하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곳의 건물들은 모두 동시대에 함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상세하게 파악하는 것은 힘든 작업이 될 수 있다.

 

  포로 로마노로 들어가는 티투스 개선문이다

로마시대 고대유적-포로 로마노 가는 입구다

초기 공화정 시대 신전 , 원로원 뿐 아니라 가판 상점에 매음굴까지 있는 무질서 구역이었던 포로 로마노!

하지만 도시계획으로 식료품 상점들은 상업 센터와 법정으로 개조되었고 로마의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새롭게 변모되었다.

 이 곳에는 세베루스의 아치와 티투스의 아치가 있으며 재판과 비즈니스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

불의 여신 베스타를 섬기는 신녀의 집, 로마의 원로원이 소집되던 쿠리아, 연설가의 연단 등이 있다.

지금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폐허만 남아있어 역사의 흥망성쇠를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카피톨리네 언덕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아주 훌륭하다. 베스타 신녀들을 생각하며 성스러운 길(Via Sacra)을 걸어본다.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포로로마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며 보존상태가 좋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앞에 보이는 기둥은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신전의 흔적이라고 한다

전쟁 중 로마를 도운 쌍둥이의 신전으로 로마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신이었다고 한다

 

 

 

 

 

 

 대전차 경기장/ 영화 ‘벤허'에서 보았던 그 대전차 경기를 하던 경기장
25만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대한 경기장  팔라티노 언덕이나 아벤티노 언덕에 올라가면 더 넓게 전체를 볼 수 있다.
영화 ‘벤허'에서 보았던 그 대전차 경기장이 있던 곳이 치르코 마시모 이다.  현재 공터만 남아 있긴 한데 상당히 넓다.

처음 경기장을 세운 것은 4세기 경이며 549년까지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가로세로 600미터 * 200미터 가량 되는 경기장이다.

팔라티노 언덕이나 아벤티노 언덕에 올라가면 더 넓게 전체를 볼 수 있다.

 

 

 

진실의 입/영화 로마의 휴일로 더욱더 유명해진 진실의 입.

코스메딘 산타마리아델라교회에 가면 입구에 대리석으로 만든 진실의 입을 볼 수 있다.

얼굴 앞면을 둥글게 새긴 대리석 가면으로, 지름은 1.5m 정도이다. 기원전 4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인데, 이 조각상이 진실과 거짓을 심판하는

'진실의 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로마시대에는 가축시장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었다고도 하는데, 확인되지 않는다.

중세 때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사람을 심문할 때 심문을 받는 사람의 손을 입 안에 넣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릴 것을 서약하게 한 데서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진실을 말하더라도 심문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손을 자르도록 미리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진실의 입은 마리가() 산타마리아델라교회 입구의 한쪽 벽면에 있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 로 유명해진 이래, 로마의 명소 가운데 하나로

국내외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진실의 입에 손한번 넣어 보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우리도 마찬가지.....ㅎㅎㅎ

 

 

 

 산타마리아델라교회

 

  캄피돌리오 광장

아라챌리 성 마리아 성당 바로 옆에 캄피돌리오가 있는데 거기엔 옛 시청사가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도 코르도나타라는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돌계단 중간 지점 왼쪽으로 조그만 숲이 있는데,

한때는 나무 밑에 늑대 한 쌍을 키우고 있었다.

이곳 로마 늑대는 로마의 아버지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게 젖을 먹여 키웠던 은혜의 동물로 알려져있다.

카피톨리노 언덕 역시 옛 로마를 형성하는 일곱 개의 언덕 중 하나이다.

특히 이 언덕은 초기부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엔 기원전 509년에 세운 카피톨리누스 신전이 있다. 고대 로마인들의 종교와 정치 및 공공생활의 중심지로서 행정업무

종합 서비스센터 기능을 가진 시청이었다.

이 언덕은 초창기부터 고대 로마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탈리아 최대의 서정시인 페트라르카가 계관시인으로 위촉되었을 때 이 언덕에서 월계관을 수여받았으며 14세기에

로마 공화정의 회복을 위해 국민들을 선동하던 콜라 디 리엔초가 민중운동의 실패로 인해 화형을 당한 곳도 이곳이다.

우선 언덕 위에 올라서면 말을 이끌고 있는 카스토레와 폴루체를 형상화한 미켈란젤로의 석상들이 우람한 모습으로

계단 양쪽을 지키고 있다. 카스토레와 폴루체는 쌍둥이 형제로서, 로마가 라틴족에 대항해 싸워 이겼을 때 그 소식을

로마에 처음으로 전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나중에 신격화되었다.

왼편에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조각상이 하나 있는데 그 주인공은 콜라 디 리엔초이다.

카피톨리노 언덕에는 원래 두 개의 봉우리가 있었는데, 그 중 더 높은 봉우리에 로마인들의 요새가 세워졌다.

이 요새는 나중에 화폐를 주관하는 유노 신전이 되었다. 또 다른 봉우리에는 제우스 신전이 기원전 510년에 세워졌다.

고대 로마인들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 이 신전 부근에 작은 신전들이 스물다섯 개나 있었다 한다.

이 두개의 봉우리 사이에 성역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이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이다.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캄피돌리오 광장은 그 자체가 예술품으로 평가된다.

 

 늑대상/로마의 아버지의 어릴때 늑대의 젖을...

 

 

트레비 분수/역시 영화 "로마 의 휴일" 무대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부, 폴리 대공(大公)의 궁전 정면에 있는 분수.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명을 받아 N. 살비(1639~1751)의

설계로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성된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졌다.

트레비('삼거리')란 이름은 분수의 앞에 있는 광장이 3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 중앙에 자리한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신과 트리톤신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

 이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분수중 최고의 걸작으로 가장 인기 있는 분수다.

뒤로 돌아 동전을 어깨너머로 던져 분수 안에는 세계 동전을 다 볼 수 있다.

한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고, 두번을 던지면 연인과의 소원을 이루고, 세번을 던지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분수 가운데의 조각상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아들 반신반어 바다의 신 트리톤과 두 마리의 말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었다.  중앙의 조각상 양쪽에는 넵튠신이 서 있는데 이 넵튠신은 풍요와 건강을 상징한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갔을땐 아래와 같이 공사중....위 사진은 자료에서 가져옴

 

 

 

 

   둘러본후 이곳에 유명하다는 젤라또 아이스 크림을 먹었다.

 

 

여기 바로 로마의 스페인 광장/역시 이곳도 공사중

 스페인 광장은 교황청 스페인 대사의 본부가 있었던 곳이라 스페인 광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으로 더욱더 유명해졌다.계단을 오르면 트리니타데이 몬티 교회가 있고.

 

광장 중앙에는 태베레 강에서 와인을 운반하는 조각배를 본떠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가 설계한

바르카치아 라는 배 모양의 분수가 있다.바르카차는 낡은 배를 뜻한다.

?스페인 광장의 바로 앞의 콘도티거리가 있는데 일류 브랜드 숍과 화려한 부티크가 늘어서 있어

로마 제일의 쇼핑 구역으로 꼽고 있다.?

 

 

   그 유명한 로마의 휴일에서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장면이 촬영된 바로 그 장소.

 

 

   조각배를 본떠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가 설계한 바르카치아 라는 배 모양의 분수

 

   콘도티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스페인 광장의  계단 위쪽에서 아래로 본 광장.

 

 

다음은 판테온 신전으로 갔습니다...

테온은 로마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의 건축물이다.

집정관에아그리파  의해 처음 건축된 판테온은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었고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를 재건하기 위한 계획으로 다시 건축되었다.

 

아그리파 집정관 때 처음 만들어진 건축의 흔적으로는 석판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한다

 원형 본당의 안지름과 천장의 높이 43.2m,벽의 두께 6.2m. 북측 입구에 코린트식 8주 전주식의 돌출랑이 있으며,

기둥 높이는 12.5m이다. 당 내부에는 7개의 벽감이 설치되어, 제우스·아폴론·아르테미스·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 등

다신교였던 로마에서 중요 신들이 모셔졌다

 

돔의 내측은 원개 천창 부분을 제외하고는 28열의 방사상 격간(格間)으로 덮여 있고 각각의 격간은 5단으로 되어 있다.

채광은 돔 정상에 설치된 지름 9m의 천창뿐이며, 벽면에는 창문이 없고,거대한 본당의 외형에는 전혀 장식이 없다.

그 수적 비례의 미와 강대한 내부 공감의 창조라는 당시의 경이적인 토목기술로서 서양건축사상 불후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직각과 사각의입구에 원형의 건물이 부착되어진 형태로 그 시대에의 건축물에서 원형(돔)형식의 건축기술을 선보여

획기적인 기술로 인정받았다.

브루넬레스키가 판테온의 돔 건축 방식을 채용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건축하였고 이로인해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인정받았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 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판테온은 무덤으로도 사용되어 이탈리아의 거장 라파엘로와 카라치, 이탈리아의 왕 빅토리오

임마뉴엘 2세, 움베르토 1세가 판테온에 묻혀있다.

현재에는 카톨릭 성당으로 이용되어 미사를 하거나 카톨릭 종교 행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판테온의 원형 구성은 천체와 태양을 반영하며 신전이 주로 직사각형 형태인 초기 그리스 로마 건축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판테온의 돔에서 영향을 얻어 성베드로 성당의 바실리카 쿠폴라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곳은 천정의 뻥뚫린 원형 구멍('거대한 눈'이라고도 불린다)으로, 정오 무렵이 되면 태양 광선이 들어와

 이 특별한 장소를 마모된 대리석 실내와 외부와 단절된 기하학적 공간으로 반짝이게 한다.

이 직경 9미터 원형 구멍은 내부의 탁한 공기를 빨아 올리고 실내 공기의 외부 발산으로 인해 눈비도 내부로 떨어지지 않게 설계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바닥엔 들어오는 빗물이 빠져나갈수 있도록 중앙으로 경사지게 설계되었다.

해질무렵이라 천장으로 부터 떨어지는 한줄기 빛을 감상할 수 있단다.

 

 

 거리의 악사도 보인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은 

나보나 광장은  테베레 강코르소 거리 사이에 위치해있다. 이 광장의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는 1세기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황제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이 있던 곳으로, 경기장의 관중석 계단이 있던

그 자리에 오늘날 광장을 빙 둘러 감싸고 있는 건물들이 세워진 셈이다.

이 경기장은 모형 해상전투, 대중을 위한 놀이 등의 행사가 거행되던 일종의 매머드 스포츠 복합시설이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파괴되어 흔적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중세기 동안에는 민중들의 축제행사가 이곳에서 계속 열렸고,

19세기에도 떠돌이 광대들이 무더운 8월의 휴일에 우스갯거리를 들고 나와 대중을 즐겁게 하였다.

현재의 직사각형 형태로 광장이 건축된 것은 17~18세기의 일인데, 그 뒤로 변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지롤라모 라이날디에게 명령하여 팜필리 궁전을 재건축함으로써 그때까지 버려졌던 광장을

재정비하였다. 교황은 성녀 아녜스가 순교했던 그 자리에 성 아녜스 성당도 짓도록 하였다.

중세 때에도 이미 이 경기장 성벽 위에 첫 번째 성당이 세워졌다가 나중에 파괴되었는데 그 잔해 위에 건축가 보로미니가

새 성당을 건축하였다.

나보나 광장에는 바로크풍의 분수가 셋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광장 가운데 자리잡은

4대 강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로서 베르니니가 설계한 것이다.

네 사람의 비유적 형상은 나일 강, 갠지스 강, 다뉴브 강, 라플라타 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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