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 내리는 눈
박현덕
진도대교 건너자 와락 눈이 한창이다
울돌목 곡소리도 내 귀엔 들리지 않아
먼 길을 끌고 왔던 생, 길 따라 굳어지듯
남도의 끄트머리 그리움이 눈에 섞여
바다가 훤히 보인 죽림길 언덕 앉아
술잔에 파도를 담아 뭉친 가슴 풀어낸다
무장무장 눈 내려 칼바람에 베이고
어디론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중
나는 또 난파된 배처럼, 적막 하나 키운다
모두가 잠든 시간 - 소쇄원에서
박현덕
수척해진 하루가 바람결에 짐짓 놀라 깊어진 상처들을 모두 풀어 놓는 밤 제월당 난간에 기대 그 어둠을 핥아 본다
미친 듯 비 퍼부어 계곡 쩍쩍 악을 써 빗줄기에 가리워진 흰 문장을 펼치면 비울음 내게로 와서 한 몸이 되는 구나
한밤 내내 비질하는 소리들이 마음 적셔 숨어 있는 어둠을 끌고 나와 북 만든다 푸른 생 야위어 가는 그런 밤, 두드릴 거야
- 박현덕 시조집 『와온에 와 너를 만난다』 2024. 문학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