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는 '룻'이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룻'은 모압 출신이지만 놀랍게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족보)에 이름을 올린 아주 귀한 여인이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다윗의 할아버지)을 낳고
오벳은 이새(다윗의 아버지)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 1:5-6a)
룻기는 네 장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책이지만,
보아스와 룻의 러브 스토리가 있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는 책 중 하나이다.
룻기에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들 – 예수님의 조상 다윗의 족보와 영원한 고엘(Redeemer: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 이 담겨 있다. 룻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표로 정리해 본다.
아주 놀라운 사실은 룻기의 배경이 '사사시대'라는 것이다.
사사시대의 특징이 무엇인가?
사사기 21:2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행하던 시대”였다.
쉽게 말하자면,
사사시대의 특징은
“왕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룻기에는 왕이 없던 사사시대에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여러 가지 희생과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룻'과 '보아스'이다.
룻은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 모압 여인이다.
남편이 죽은 후, 룻은 친정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다.
왜냐하면 시어머니가 룻과 오르바에게 새 남편을 맞아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냥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는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사시대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과 자기 체면 때문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다 베들레헴으로 갔어도,
룻은 시어머니를 대충 모시다가 돌아가도 되었다.
이미 남편은 죽었고, 더 이상 시어머니를 모실 의무도 없었다.
이미 시어머니도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룻이 베들레헴까지 갔다가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도 아무도 욕할 사람 없었다.
그때는 사사시대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갈 결심을 한다.
룻은 시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조국 모압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다.
룻은 자기 조상들이 섬기던 신을 버린다.
룻은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믿기 위해 종교까지 바꾸려고 한다.
게다가 룻은 시어머니가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고, 거기서 죽을 거라는 약속까지 한다.
그 약속대로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갔다.
룻은 모압 출신이기 때문에 베들레헴에서 사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이스라엘 땅에 살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을
여호와의 총회(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에
영원토록 못 들어오게 하셨기 때문이다.
신명기 23:3-6절 말씀이다.
“3)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4)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6)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신명기 23:3-6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스라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 구절을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무시해도 되는 근거로 사용한다.
유대인의 '선민의식'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아무리 시어머니를 사랑해서 베들레헴까지 따라왔지만
모압 여인이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정착한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압 여인 룻은 베들레헴에 정착할 수 있었을까?
나오미는 빈털터리가 되어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모압 출신 며느리를 보호해 줄 아무런 힘도 없었다.
오직 하나 룻은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장차 남편이 될 보아스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잘 섬겼다.
그 이유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섬기는 것처럼 말이다.
룻기에서, 보아스와 룻의 만남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하여 보면 안 된다.
청춘 남녀의 '로맨스, 사랑'하면 다들 자기 일처럼 좋아들 하지만,
룻은 당시 유대인들이 짐승만큼이나 싫어했던 모압 출신이었다.
게다가 룻은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여인이었다. 룻은 아들도 없는 여인이었다.
거기서든 여기서든 살아갈 방법이 전혀 없는 무력한 사람이 룻이었다.
룻의 상황은 결코 아름다운 로맨스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보아스는 능력있고 부자였지만 나이가 꽤 많은 남자였다.
보아스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보아스는 룻을 '내 딸아'하고 부른다. 룻기 3:10절이다.
“그(보아스)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룻 3:10)
성경에 나오는 '내 딸아(my daughter)'라는 표현은
대부분 글자 그대로 진짜 딸과 며느리에게만 사용되었다.
가족이 아닌 연하의 여자를 대상으로 이 표현을 쓴 사람은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 밖에 없다.
만약 룻이 15-20세에 결혼을 했다고 가정하면,
그녀가 남편과 약 10년간 결혼생활을 했으니(룻기 1:4-5)
당시 그녀의 나이는 약 25-30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보아스가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능력있는 남자라고 해도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여자에게 '내 딸아'라고 부를 수는 없다.
보아스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과부에게 '나의 누이여'가 아니라 '내 딸아'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른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보아스의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의 나이였을 거라고 추측된다.
보아스와 룻의 만남을 세상적인 뉴스거리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룻이 돈 보고 보아스와 결혼한 것도 아니고,
룻이 과부지만 젊고 예쁜 여자라서 욕심을 낼 정도로 보아스 역시, 속물이 아니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뜻이었다.
고엘(Redeemer: 기업 무를 자)
룻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보아스이다.
그러나 '보아스'가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살았다는 게 룻기의 중심 내용이 아니다.
보아스가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해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았다는 것도 룻기의 중심 주제가 아니다.
룻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업 무를 자(Redeemer: 고엘)이다.
보아스가 바로 고엘(기업 무를 자)이기 때문이다.
고엘(Redeemer: 기업 무를 자)은 성경에 나오는 아주 중요한 제도이다.
고엘(Goel)은 '되찾다, 복수하다, 구속하다',
'친족, 근족, 보수할 자, 구속자(Redeemer)'를 말한다.
기업 무를 자(고엘: redeemer)'는 친족의 땅을 되찾아 주고,
친족이 흘린 억울한 피를 복수하며,
죽은 친족의 아내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서
친족의 대를 이어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는 사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파 별로 나눠주신 땅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다.
남편이 죽고, 아들이 없는 과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더 중요하게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땅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기업 무를 자'(고엘: redeemer)제도를 만드셨다.
룻기에 ‘기업 무를 자’에 대해 21번 나오고,
성경 전체에 104번이나 나올 정도로 Goel 제도는 중요하다.
고엘 제도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보아스는 고엘 제도에 의하면,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자가 아니었다.
보아스보다 죽은 엘리멜렉(나오미의 남편)과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을 책임질 이유가 없었다.
법적인 고엘(친족의 고아와 과부를 책임질 친척)에게 미루면 될 일이었다.
보아스가 직접 나서서 나오미와 룻의 고엘이 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보아스는 그냥 구경만 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나오미의 고엘(기름 무를 자)가 되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사줄 책임뿐만 아니라,
룻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데도 고엘의 의무를 다했다.
하나님의 섭리로, 결국 보아스와 룻은 결혼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일 뿐만 아니라, 보아스도 간절히 바라는 일이었다.
보아스는 기꺼이 나오미와 룻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아닐까?
누군가를 책임지는 사람, 어떤 일을 책임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룻기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모압 여인 룻과 늙은 총각 보아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오벳’이다.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아버지요,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그래서 룻기 맨 마지막 부분에 다윗의 족보가 나오는 것이다.
룻기가 겉으로 보기에는 룻의 이야기 또는 룻과 보아스의 러브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룻기의 주인공은 보아스도 아니고 룻도 아니다.
룻기의 주인공은 바로 '다윗'이다.
그리고 다윗의 혈통을 통해 진정한 기업 무를 자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기업 무를 자’는 영어로, ‘redeemer’인데, 그 의미가 ‘구원자’이다.
룻기 4:22절을 보자.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룻 4:22)
룻기는 룻과 보아스의 로멘스, 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쓴 책이 아니다.
룻기는 이 땅의 며느리들에게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잘 모셔야 한다는 교훈을 주려고 기록한 책도 아니다.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주제로
룻과 나오미 이야기를 해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룻기를 통해 사사기의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준다.
그들에게 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가 진정한 왕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룻기 마지막 절에 그 왕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그 왕이 바로 다윗이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왕 중의 왕,
다윗 왕이 곧 등장한다는 것이 룻기의 메시지 중 하나이다.
하지만 룻기를 좀 더 깊이 읽어보면,
진정한 왕은 다윗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기 때문이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에 대해 한 가지 깨닫는 것은,
룻과 보아스의 만남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와 그리스도 예수께서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기업 무를 자', '구원자' 예수님을 미리 볼 수 있는
성경이 룻기이기 때문에 룻기를 읽으며
예수님을 발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룻기 속에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모압 여인을 통해 다윗 왕을 이 땅에 보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여인도, 이방인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깨닫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스라엘 변방 골짜기에서,
그것도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통해 온 민족과 열방을 구원하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이신가? 할렐루야!
룻기를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남는 말씀은
룻기 1:16,17절이지만 이 구절은 룻기의 핵심 구절(Key Verse)은 아니다!
이 구절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룻의 개인적인 사랑 고백이다.
이 고백이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룻기는 네 장으로 된 책이라 짧아 보이지만, 룻기는 결코 짧은 이야기가 아니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1:16-17)
어머님 자리에 예수님을 넣어서 읽어본다.
(단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이 부분은 넘어간다)
핵심 구절(Key Verse)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4:17)
중심 내용(main idea)
1)이방 여인 룻을 통한 다윗의 계보(다윗 왕의 정통성)
2)헤세드(Hesed) - 하나님의 헤세드와 보아스와 룻의 헤세드
기록 목적(이유)
1)보아스와 룻을 통해 다윗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2)다윗이 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만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 사울 왕의 불순종과 실패 속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3)기근 중에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하려고
룻기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성품
1)하나님의 인자와 사랑(헤세드)
2)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중단 없이 이루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룻기에서 말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 ‘헤세드’(HOW 주석 pp. 416,417)
룻기에서 우리가 결코 놓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있다.
이 주제는 지극히 신학적이며 영성적인 주제이고 동시에 목회적인 주제다.
즉 룻기의 핵심적인 주제는 바로 ‘헤세드(Hesed)’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이 단어는 비록 룻기에서 세 번 밖에 쓰이지 않았지만,
이것은 메시아 왕조와 그 통치 이념의 핵심이요 기원인 개념이다.
룻의 나오미에 대한 헤세드(자비),
그리고 보아스의 헤세드를 통하여 하나님의 헤세드가
온 이스라엘 공동체와 다윗의 집안과 그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에 실현되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1:8; 2:20; 3).
먼저 이 ‘헤세드’에 의해 다윗의 가문의 조상 ‘오벳’이 탄생하였다.
즉 메시아 왕조인 다윗 왕조의 성립의 기초가 바로 ‘하나님의 헤세드’였던 것이다.
다윗 왕국은 하나님이 보아스를 통하여
룻과 나오미에게 헤세드를 베푸셨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 왕국의 태생적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인애(Hesed)’ 그 자체인 것이다.
다윗 왕국의 완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헤세드 왕국을 세우러
이 땅에 오신 것이며, 그것을 완성하러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여기서 보아스와 룻은 나오미에게 ‘인애를 베푼 자로 나오는데,
이들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델인 셈이다.
이 헤세드의 삶을 통하여 개인이 구원받고,
가정이 거룩해지며,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그 거룩한 통치가 온 세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원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원리 - 는 바로 ‘자비’(Hesed)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약 성경의 가장 큰 계명인 ‘아가페’요 ‘원수 사랑’이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하여 보여 주신 예수님의 이웃사랑의 원리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중심을 꿰뚫고 흐르는 이 헤세드의 원리를 개인과 가정,
또 모든 교회 공동체가 종말론적인 인류공동체의 원리로 받아들일 때,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