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태양천(太陽天)과 대밀종천(大密宗天) ① 태양천(太陽天). 이 신비단체에 대해서는 항간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단지 휘하에 암흑십세와 공포의 십이대천마를 거느리고 있다는 점 외에는 총단의 위치나 정확한 문도수, 심지어는 천주(天主)의 정 체까지도 불명이었다. 벽력자가 태양천주라는 일설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했다. 몇몇 현자들은 아예 그의 능력으로는 그처럼 가공할 단 체를 이끌어갈 수 없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유력한 인물로 천사(天邪)를 지목했다. 과거 사빈성 을 세워 천하제일문이라는 명성을 얻어낸 사도무림의 대부(代父) 신비대종(神秘大宗)이 그였으므로. 태양천은 작년 칠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고, 그 시기는 강호일정 무영금마선의 죽음과 맞물렸다. 백도 무림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가 죽자 백도인들은 의기를 상실 했으며 그로 인해 월영성궁주인 월락대제(月落大帝)가 주최하기로 한 군웅대회도 번번이 연기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 기회를 틈타 태양천은 백도의 제문파들을 붕괴시켜 갔다. 암흑 십세를 앞세운 그들에 의해 군소문파들로부터 대문파에 이르기까 지 차례로 멸문지화를 당했던 것이다. 이에 백도인들은 보복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자파의 문만을 걸어 잠글 뿐 뚜렷한 대비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은 전대(前代) 기인들이 동분서주하며 무림정기를 회복시키 기 위해 헌신했으나 그것마저도 공공천야 공손찬이 실종되어 버리 자 흐지부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따라서 구월로 접어들며 태양천은 강남의 이개 성(省)을 장악하더 니 겨울에도 다른 이개 성을 수중에 거머쥐었다. 또한 해가 바뀌어도 그 발호는 여전하여 암흑십세를 앞세운 그들 군단은 삼월 초순 경에 남칠성 모두를 장악했다. 그것은 천 년 전 불사천황성의 독패 이래 최악의 사태였다. 이렇게 되자 월락대제는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신주십대고수 중 오 인을 초빙하여 군웅대회의 날을 결정지었다. 날짜는 사월 초파일! 월영성궁에서는 즉각 천하 각처로 파발을 띄우고 격문을 보내기에 이르렀고, 그에 따라 구대문파와 사문(四門), 삼회(三會), 일방 등 십칠대문파를 위시하여 천하의 대소문파 종주들이 하남의 동백 산(桐栢山)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태양천에서는 백도의 군웅대회를 저지하려 들 지 않았다. 강남을 석권한 후로 그들은 무엇 때문인지 기세가 주 춤해져 강북으로의 진출도 시도하지 않고 있었다. 세인들은 그 현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두터운 장막 속에 가려져 있는 그들이 또 어떤 마수를 드러낼지 알 수 없었기에. 청담(淸潭). 연꽃잎이 둥실 떠 그림 같은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극히 호사스러운 정원이었다. 한 명의 왜소한 노인이 연 못가에서 죽간을 드리운 채 홀로 앉아 있었다. 훌렁 벗겨진 앞머리는 그렇다 치고 두부(頭部)가 유난히 커 전체 적으로 체구가 기형적으로 보이는 노인, 그는 태양천의 천후(天 后)에게 납치된 천사(天邪) 신비대종 온양후였다. 그는 지금 자못 여유롭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심으로는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놈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나를 십 개월째 이곳에 구금해 놓고 언질이라곤 한마디도 없으니.' 상대의 속셈을 파악할 수 없을 때 당황하기로는 천사 신비대종인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혹 려아를 찾아내 그때부터 위협을 가해올 심산인가?' 그는 죽간을 톡톡 치면서도 계속하여 염두를 굴렸다. '놈들은 철저히 신비를 가장하고 있다. 십 개월 동안 나로 하여금 이 금성(禁城)의 별원에서만 지내게 한 것도 그 일환이겠지. 시중 드는 계집들조차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탈출을 시도했더라면 진즉 성공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굳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일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온양후는 무림의 신비 거단(巨團)인 태양천의 일각에 머 무르고 있으면서도 내부의 기밀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수치감을 느끼고 있는 터였다. '천주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발휘해 온 지략과 통솔력으로 미루어 대단한 자임에는 틀림없는데.......' 그는 공공천야 공손찬을 떠올리고 있었다. 공손찬이 처음에 그를 의심했듯 그 역시 공손찬이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답답하군. 그동안 무림의 동정은 어떤지?' 그의 등뒤로 하나의 핏빛 인영이 소리없이 다가섰다. 냉막한 안색의 그 중년인은 무심(無心)의 소유자로 무정사신(無情 死神) 철엽(鐵葉)이라는 명호를 가지고 있다. 그의 허리춤에는 둥근 금패가 매달려 있었다. 전날에 수석 은천영 주였던 그는 태양천이 강남을 석권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금천 오영주(金天五令主)의 직위에 올라 있었다. 따라서 철엽은 암흑십세의 지존들 가운데서도 직위가 가장 높았으 며 영주급 중 천후의 거처인 금성에 유일하게 출입이 허용되는 인 물이기도 했다. ② 철엽은 온양후의 옆에 가 섰다. "많이 잡으셨소?" 억양이 없는 그 음성에 온양후는 내뱉듯 대꾸했다. "잡히면 뭘 하나? 쓸개가 빠진 놈들 뿐인 걸." 다분히 뼈가 들어 있는 듯한 응수였다. 하지만 철엽은 이를 개의 치 않는지 여전히 무감한 어조로 물었다. "달리 불편한 점은 없으시오?" 이런 식의 대화는 두 사람간에 가끔씩 있었다. 철엽이 일방적으로 온양후를 찾아와 안부를 묻고 가곤 했던 것이다. '이자는 내게 악의(惡意)를 가지지는 않았다.' 온양후는 오래 전부터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회만 보아 오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접근전을 시도했다. "어쨌든 승진을 축하하네. 그리고 금천영주 정도라면 혹시 내 손 녀의 행방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나 싶은데?" 철엽은 순순히 아는 바를 털어놓았다. "아직 영손녀의 행방은 알아내지 못했소. 추적의 귀신이라는 지옥 삼사가 그 일로 인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소." "크크... 재미있군. 그밖에 다른 소식은 없는가? 이곳에만 갇혀 있으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몰라서 말이야." "사월 초파일을 기해 백도의 군웅대회가 벌어진다 하오." 고기가 물렸는지 온양후는 죽간을 위로 홱 치켜올렸다. "너무 늦은 감이 있군." "그건 강호일정 용비운의 죽음으로 한동안 백도의 의기가 저하되 어 있었기 때문이오." "뭐, 뭣? 용비운이 죽었다고......!" 온양후는 충격이 컸는지 입을 딱 벌린 채 굳어지고 말았다. 죽간 의 끝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파닥이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거둘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그는 신음하듯 물었다. "누구에게... 말인가?" "범황천불 범패륵과 싸우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들었소." "우우! 그 괴물이 여태껏 살아 있었다니......." 온양후는 고개를 홱 돌려 철엽을 응시했다. "군웅대회의 주최자는 공공천야인가?" "아니오, 그는 지난 일 년간 행적이 묘연했소." "그럼 누가......?" "월락대제를 비롯하여 독행천괴 천잔수, 보타성니, 천결신의 취몽 성수, 천종선옹(天鍾仙翁) 양천인(楊天引), 옥정성후(玉鼎聖后) 서매림(徐梅林) 등 신주십대고수 육 인이오." 온양후는 물고기를 거두어 바구니에 넣었다. "크ㅋ! 고맙군. 이만 가 보게." 철엽은 예의 냉막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고마울 것 없소. 그저 남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을 들려 주었 을 뿐이니까." 그는 전면으로 이어진 석로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그 우측의 도화림(桃花林) 속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철영주! 이리로 오라." 철엽은 굳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 를 알 수 있었다. '천후가 나를 왜......?' ③ 이름하여 도화정(桃花亭). 도화림 내에 위치한 덕에 그윽한 화향이 정자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곳에서 천후는 등나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전신을 금은보화로 휘감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도 여전히 망사로 된 취의여서 젖가리개와 짧은 단의를 제 외하고는 속살이 적나라하게 내비쳐 보였다. 그녀는 사뭇 우아한 동작으로 공작선을 펼쳐 들었다. "그대는 온양후와 무슨 얘기를 그리도 오래 했지?" 철엽은 허리를 약간 숙여 보이며 무심히 대꾸했다. "별 것 아니외다. 바깥의 소식을 묻기에 알려 주었소." 천후는 낮게 웃었다. "호호... 그건 알아서 무엇하게? 어차피 이곳에서 한 발짝도 나가 지 못하는 처지인 걸." "실은 속하도 그래서 말해주게 되었소." "음, 금천영주답군. 우리에 갇혀 있는 맹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 지. 쓸개가 빠졌으면 좀 어때, 안 그런가?" 철엽은 그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다소 경직되어 있는 그를 향해 천후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어젯밤 내 처소로 오라 했는데 왜 안왔지?" "급한 용무가 생겨 따를 수 없었소이다." 간략한 그의 대답에 천후는 아미를 매섭게 치켜올렸다. "설마 무엄하게도 내 뜻을 오해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무엇을 오해했다는 것이오?" 그녀는 철엽이 직선적으로 묻자 슬며시 말꼬리를 돌렸다. "호호호... 아니라면 되었다. 단지 나는 그대에게 은밀하게 한 가 지 명을 내리려고 했던 것뿐이니까." 천후는 공작선을 천천히 저었다. "내 이 참에 못박아 두어야겠다. 그대는 본후 하옥군(霞玉君)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해야 한다." "알고 있소이다." 철엽의 음성에는 역시 억양이 들어가지 않았다. "좋아,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렇다면 한 명을 죽여라." "누구를......?" 천후 하옥군은 공작선을 탁 소리나게 접었다. "살인은 그대의 주특기니까 수행에 별 문제 없으리라 본다. 단, 아주 교묘하게 죽여야 하지. 자살한 것처럼 말이다." "척살대상은?" 같은 말을 또 묻게 되어서인지 철엽은 답답한 듯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한 계집이다." 밝은 갈색을 띤 천후 하옥군의 눈에서 일시지간 섬뜩한 광채가 번 뜩였다. 그것은 뜻밖에도 질투의 빛이었다. 그런데 이때, 도화정으로 한 명의 금비가 날아들었다. "천후께 아룁니다!" "흐음?" 하옥군의 아미가 홱 치켜 올라갔다. "왜 왔느냐? 내 방해하지 말라 그토록 일렀거늘." "요... 용서를......!" 금비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도 그녀 는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무슨 말인가를 전했다. 천후 하옥군은 입술을 깨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았다." 그녀는 총총히 정자를 내려갔다. "철영주, 그대와는 다음 기회에 얘기하겠다." 하옥군의 모습은 곧 도화림 사이로 사라져갔다. '무슨 일이기에......?' 철엽은 무표정한 가운데서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평소 도도하기 짝이 없는 천후 하옥군으로 하여금 밀명을 내리던 도중에 일어나 게 할 수 있는 사건이란 어떤 것일까고. ④ 능라주단 등으로 치장된 화려한 침실이다. 하옥군이 굳은 표정으로 이곳에 들어섰다. 그녀의 시선은 곧장 창 문가에 있는 한 인물에게로 옮겨졌다. 일신에 금포를 입은 그자는 하옥군의 출현을 알면서도 계속 팔짱 을 낀 채 창밖의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그는 예삿 인물 같지는 않았다. 탄탄한 두 어깨는 하늘이라도 떠받칠 듯 굳건해 보였으며 전신에 서린 웅후한 기도 는 사해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을 듯했다. 다만 그에게서 인간미나 포용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냉철한 면모와 위엄만이 그가 보여주는 전부였으므로. "당신... 왠일이죠?" 하옥군의 부름으로 인해 그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 금포인은 그녀의 부군(夫君), 즉 신비 속에 가리워져 있던 태 양천주였다. 암흑십세와 십이대천마를 휘하에 거두고 웅비(雄飛) 하는 당세 무림의 새로운 절대자인 것이다. 강남 무림을 석권함으로써 무림사에 드문 패업을 달성한 제왕, 그 가 아내인 하옥군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왜, 내가 오면 안되는 것이었소?" 하옥군은 휘적휘적 걸어가 침상가에 걸터앉았다. "물론 소첩이 당신의 방문을 막을 수야 없죠." 분명 부부이면서도 그들 사이에는 왠지 냉기가 감돌았다. 태양천주는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더니 스윽 저었다. 그러자 허공 에서 하나의 금영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끼룩―! 그것은 한 마리의 금응(金鷹)으로 태양천주의 소유인 듯 자연스럽 게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는 금응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무감동한 어조로 물었다. "요즘 당신에 대해 불미스러운 소문이 들리던데, 무정사신 철엽은 무엇하러 가까이 두는 게요?" "풋! 질투하시는 건가요?" 태양천주는 껄껄 웃었다. "그 초로(初老)의 살수를 상대로 질투라....... 후후... 당신은 이제껏 나를 겨우 그 정도로 보았었소?" 하옥군은 공작선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가 어때서요? 당신처럼 뛰어나지는 못해도 그는 최소한 제가 부르면 하시라도 달려와 주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언성을 높였으되 태양천주는 반대로 나직이 말했다. "흥분하지 마시오. 내 말뜻은 그게 아니니까." "그럼 뭐죠?" "질투란 계집들이나 하는 짓이오." "흥! 비겁하게 말 돌리지 마세요. 당신은 남자라서 질투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제게 관심이 없어 그러시는 거예요." 태양천주는 더 이상 응대하기가 싫은 듯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 다. 하옥군도 자신이 지나쳤다 싶었는지 씩씩거리기는 했으나 상 황을 원점으로 되돌려갔다. "자! 말해 보세요. 무슨 목적으로 예까지 오셨는지." 태양천주는 금응의 날개깃을 어루만지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게 말했다. "서하옥새(西霞玉璽)가 필요하오." 하옥군의 안색이 이번에는 하얗게 질렸다. "안돼요!"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내저었다. "절대로 안돼요, 그것만은......!" 태양천주는 금응의 부리를 툭툭 쳤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고자 하던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둔 적이 한 번도 없소. 당신은 나와 서하옥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오." 그는 비로소 아내를 향해 빙글 돌아섰다. ⑤ 대사막(大沙漠). 작렬하는 태양이 사위를 불덩이처럼 달구고 있다. 그늘 한 점 없 이 광활한 모래 벌판은 망망대해처럼 끝도 없다. 오직 죽음처럼 황량한 고적감만이 메마른 모래알 위에 감돈다. 그 폭양 아래서 일곱 개의 인영이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들의 신법은 한결같이 쾌속절륜했으며 그들이 지나간 뒤에는 발자 국 하나 남지 않았다. 일행의 선두에는 장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칠 척의 깡마른 노인 과 안색이 창백한 한 청년이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노인은 불사천황성의 총상이 된 목극렴이었고, 그 옆의 청년이란 진면목을 감추기 위해 변용을 한 용비운이었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그가 오히려 그 사실을 이용해 새로운 신분으 로 활동하고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두 사람의 뒤로는 천마종사의 특별 시위(侍衛)인 십대금사 중 오 대금사가 묵묵히 따르고 있었다. 용비운은 지독한 폭염에 고개를 저었다. "목로(木老),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기는 한 게요?" 그들은 현재 불사천황성의 성주와 총상으로서가 아니라 세간에 흔 한 상전과 종복으로 행세하고 있는 중이었다. 목극렴은 확신이 깃든 음성으로 말했다. "주공, 노복의 기억력은 틀림없소이다. 대밀종천에 이르려면 반드 시 이 사막을 지나야 하오." "이곳은 백 년 전에, 그것도 딱 한 번 지나쳤을 뿐이라면서 어찌 그렇게 자신하오?" "세월이 흘러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법이오." "글쎄, 과연 그럴지......?" 용비운의 투덜거림은 계속 이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길을 알아보고 오는 건데 큰 실수를 했 군. 이나마 잔화를 데려오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쯧!" 잔화는 지난 십 개월 동안 완전한 변신을 이루었다. 미풍에도 쓰 러질 것만 같던 허약한 소녀에서 구파일방의 십대절학을 두루 익 힌 당대의 초절정 고수로 성장한 것이다. 용비운은 차후로 그녀에게도 무엇이든 임무를 맡길 요량으로 나머 지 오대금사를 대동시켜 먼저 중원으로 내보냈다. 목극렴이 그를 힐끗 보더니 길게 탄식을 불어냈다. "아아! 주공께서는 언제쯤이면 이 가련한 종을 제대로 평가해 주 실런지....... 정녕 섭섭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로고." 용비운은 피식 실소했다. "내게 과대평가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목극렴은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득의만면하여 외쳤다. "저기를 보시오! 그래도 과대평가 운운 하시려오?" 용비운은 눈을 들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곤 지평선을 사이에 두고 광대하게 펼져진 모래벌판과 폭염에 지쳐버린 하늘이 전부였다. 오대금사 또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목극렴 혼자 신이 나서 떠벌였다. "저기, 초원이 보이지 않소? 저 초원을 넘어서면 바로 대밀종천이 자리잡고 있는 수미산(須彌山)이외다." 용비운은 냅다 그의 뺨을 한 대 갈겼다. 철썩! "어이쿠!" 목극렴은 비명을 토하더니 놀란 듯 눈을 크게 휩떴다. "주공! 날이 더워 미치셨소?" 그를 향해 용비운은 혀를 끌끌 찼다. "어디 다시 한 번 보시오. 저기에 초원이 있는지." "엉?" 목극렴은 괴상한 소리를 내고는 주먹으로 눈을 마구 부볐다. 그의 눈에도 보이는 것은 끝없는 모래벌판 뿐이었으므로. "아니, 갑자기 왜 초원이 사라졌소?" 용비운은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건 당신이 미쳤었기 때문이오. 내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에서 한 대 때려 주었지. 그러지 않으면 모래를 물로 알고 퍼 마실지도 모르니까." 실상 목극렴이 가리킨 초원이란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고, 그 때문 에 용비운에게 이처럼 호되게 당한 것이었다. "으음!" 목극렴은 앓는 소리를 하며 고개를 돌려 오대금사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화풀이를 할만한 껀수를 잡기 위해서였다. 오대금사의 응수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공연히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딴청을 부렸다. 그러는 사이, 이번에는 용비운이 한쪽을 가리켰다. "오! 저기 초원이 보이는군." 목극렴은 슬며시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 그의 입가에 소리없이 매달린 것은 자못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흐흐... 내게도 기회가 왔군.' ⑥ 그의 손이 용비운의 뺨을 세차게 후려쳐갔다. "용서하시... 응?" 목극렴의 보복은 실패하고 말았다. 용비운이 그의 행동을 미리 알 고 피해버려 허공을 치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그러시오? 난 미치지도 않았는데." 멀쩡하게 묻는 용비운을 그는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저곳에 무슨 초원이 있다는 것이오? 주공도 신기루를 보았으니 노복에게 한 대는 맞아 주셔야......." 용비운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목로, 증세가 심각하구려. 정말 저 초원이 보이지 않소?" 목극렴은 다시 쳐다볼 생각도 않고 말했다. "얘들아, 대신 말씀 좀 드려라. 저건 초원이 아니라고." 과연 오대금사는 그의 명대로 정중히 아뢰기는 했다. 그러나 유감 스럽게도 그 대상이 바뀌어 있었다. "노사, 송구합니다만 저건 틀림없는 초원이올씨다." 목극렴의 입가에 서렸던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제서야 고개를 돌 려 본 그는 금시라도 폭발할 듯 길길이 뛰었다. "이...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이냐? 분명 잠시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거늘......!" 용비운이 다가가 그의 등판을 툭툭 쳤다. "목로, 내 설명해 주리다. 방금 전 당신은 일종의 풍사(風沙) 현 상에 의해 눈이 가리워졌던 것이오." "쓰헐! 이놈의 사막이 사람을 가지고 노는구나." "하하하하......!" 일행은 잠시 폭염도 잊고 크게 웃어제꼈다. 그러다 문득 함께 웃 던 목극렴이 웃음을 뚝 그치며 오대금사를 쏘아보았다. "너희들은 웃지 마라!" 오대금사는 움찔하여 입을 다물며 자세를 고쳤다. 그들을 향해 목 극렴은 계속하여 으르렁거렸다. "건방진 것들 같으니! 사문의 대존장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감히 네놈들이 주공이 웃으신다고 따라 웃어?" 오대금사는 이 순간을 견디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눌러참는 일이란 보통 고역이 아니었기에. 그 앞에서 목극렴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명령했다. "뭣들하는 게냐? 어서 대밀종천의 문을 활짝 열고 천마공자를 맞 이할 채비를 갖추라 전하지 않고." "넷! 노사." 오대금사는 머리를 깊숙이 조아려 보이더니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 났다. 멀리 초원을 향해 내닫는 그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는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만한 노릇이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용비운은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목로의 수하 다루는 솜씨는 일품이오." "크ㅋ! 주공의 방식대로 따랐을 뿐이외다." 목극렴은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지고는 앞장 섰다. 수미산. 운무를 뚫고 솟아오른 거산은 산세가 수려하기 그지 없었다. 그 중앙에는 거대한 사원(寺院)이 자리잡고 있었다. 높다란 담장은 길이가 끝도 없어 성곽을 방불케 했으며, 곳곳에 튀어나온 첨탑들과 반원형의 지붕을 이고 있는 건축물들이 이국 (異國)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대밀종천(大密宗天). 이곳이 라마교의 총본산이자 서장과 신강(新疆)을 지배하는 서역 무림의 최강 무단이었다. 서장과 신강의 열여덟 개 대사찰 도 이 들 대밀종천의 관할하에 놓여 있었다. 이른바 대법왕(大法王)이라고도 불리우는 대밀종천주를 서역 무림 에서는 불존(佛尊)처럼 숭배하고 있었다. 특히 백 년 전 변황제일인으로 군림했던 변황천불(邊荒天佛) 범패 륵의 존재는 서역인들에게 영원한 우상이자 긍지였다. ⑦ 콰콰콰쾅―! 누대에 걸쳐 성역(聖域)시 되어온 대밀종천의 정문 밖에서 언제부 터인가 폭음이 잇달아 울렸다. 그곳에는 수천 명의 라마승들이 문 을 등진 채 반원형으로 포진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무섭 도록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들은 대밀종천 휘하 십팔 개 사원의 승려들이었다. 개중 다섯 명의 주지급 승려들은 현재 살벌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 다. 홍의가사를 걸친 그들 노라마는 승포를 휘날리며 전력을 다해 맹렬한 공세를 떨쳤다. 콰르르르―! 그 상대는 다름 아닌 불사천황성의 오대금사였다. 그들은 과연 중 원 최강인 천마일맥의 제자들답게 시종 여유있는 대결 국면을 펼 쳐가고 있었다. "크흐흐... 대밀종천의 힘이 겨우 이 정도였단 말인가?" "어서 범패륵을 불러 와 천마공자를 알현토록 해라." 반대로 대밀종천의 진영에서는 이 대전을 지켜보며 줄곧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누구이기에 사대존자(四大尊子)의 다음 서열인 십팔대법 사를 능가하는가?' 금발의 한 미청년이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는 범패륵의 직전 제자인 아목함(亞木含)이었다. '중원에 공포로 대변되는 십이대천마가 있다더니, 이들이 혹시 그 자들이 아닐까?' 그의 고심은 그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그렇다 치고, 이처럼 막강한 자들을 수하로 부리는 인물 은 누구인가?' 이때에 사대존자가 그의 뒤로 다가섰다. "소천주(少天主), 노납들이 나서 보겠소." 맨발에 묵의가사를 걸친 그들은 모두 금강역사인 양 우람한 체격 을 가지고 있었다. 아목함은 고개를 저었다. "안되오. 우선 저들의 상전이 무슨 이유로 본천을 찾아왔는지부터 알아보기로 합시다. 저자들을 더 이상 경동시켰다간 또 어떤 사태 가 야기될지 모르겠구려." "알겠소이다." 사대존자도 그 말에 수긍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멈추어라―!" 한 가닥 웅후한 외침과 함께 용비운이 목극렴을 대동하고 장내에 내려선 것은 그때였다. 오대금사는 손을 거두고 용비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공, 치죄를......! 속하들의 능력이 부족하여 아직도 범패륵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용비운은 가볍게 소매를 저어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 일은 그대들의 죄가 아니다. 물러서 있거라." "복명!" 오대금사는 합창하듯 부르짖은 뒤 그의 뒤로 가 시립했다. 목극렴 이 퀭한 눈에서 분광을 뿜어내며 외쳤다. "범패륵! 어디 있느냐? 속히 나와 일전을 가르자." 그 말에 아목함이 분연히 앞으로 나섰다. "귀하는 너무 무례하구려.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 감히 사부의 존명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목극렴은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시끄럽다! 입 닥치고 어서 네 사부나 나오라고 해라. 절대패왕이 백 년 묵은 빚을 청산하러 왔노라고." 아목함은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맙소사! 정녕... 귀하가 백 년 전 사부와 일만 초를 겨루었다는 절대패왕이시오?" 목극렴은 괴소를 흘렸다. "크흐흐... 그렇다. 범패륵도 나를 보면 반가울 것이다." 이번에는 사대존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이르자면 과거 두 초 인들의 격돌을 지켜보았던 참관인들이었다. "시주, 우리들을 기억하시겠소?" 목극렴은 그들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이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 사대금강(四大金剛)도 노부 만큼 이나 명줄이 질기구나." 사대존자는 한손을 가슴에 붙여 예를 취했다. "이렇듯 패왕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변황천불은 어디에 있느냐?" 목극렴이 같은 말을 거듭 묻자 사대존자는 난색을 표명하며 고개 를 좌우로 저었다. "대법왕께서는 출타하셔서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소이다. 죄송하 지만 패왕께서는 훗날 한 번 더 찾아오셔야겠소." 목극렴이 그들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어떤 놈이 죽어야 입을 열겠느냐?" 그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콰르르르― 뇌성과 함께 노도와 같은 광풍이 휘몰아쳤다. 사대존자 중 다라존 자(多羅尊子)가 손을 뒤집으며 이를 막았다. "범천강기(梵天 氣)!" 콰쾅! 요란한 폭음이 울리며 다라존자는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목극렴 의 막대한 공력이 실린 붕천마권(崩天魔拳)을 혼자 감당해 내기에 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크핫핫핫... 너희들은 노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어서 범패륵 이나 나오라고 전해라." 목극렴은 허공을 우러러 광소를 터뜨렸다. 그 틈을 타 아목함이 환상처럼 날아들며 쌍수를 뒤집었다. "범황대수천인(梵荒大手天印)!" 콰르르르― 목극렴은 두 개의 거대한 수인(手印)이 짓쳐오자 흠칫 했지만 희 대의 고수답게 응전해 갔다. "천마혈옥수!" 그의 쌍수가 팔꿈치까지 투명한 핏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삽시에 무려 일천 개의 수영(手影)을 환출시켰다. 밀종과 천마, 두 가지의 절학이 마침내 충돌했다. 꽈꽝―! 천지개벽이라도 하듯 흙먼지가 돌풍에 휘말려 허공을 수십 장 높 이까지 뒤덮었다. 그 여파로 막강한 경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대 밀종천의 라마승들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⑧ "크으... 이것들이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그 일장의 무시무시한 격돌은 목극렴의 의복을 갈갈이 찢어 놓았 고, 그로 인해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기습전을 성공시킨 아목함은 허공을 아홉 바퀴나 선회해 사뿐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말 삼가시오! 본천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아시오?" "오냐, 내 오늘 네놈을 까뒤집어 진짜 사람인가 보겠다." 아목함은 한결 여유를 되찾은 어조로 말했다. "귀하가 사대존자의 범환대연력(梵桓大聯力)을 받아낼 수 있다면 사부께서 출관하시도록 하겠소." 범환대연력이란 밀종 비전의 절예였다. 그것은 소위 파천(破天)의 합격술로도 일컬어지는데 사 인이 사상 (四象)의 위치를 점한 후, 여덟 개의 손으로 팔방(八方)을 동시에 공격하는 절대필승의 절학이었다. 서역무림 사상 범환대연력을 능가하는 합격술은 없었다고 하며, 이것을 받아낸 사람 역시 한 명도 없다고 전해진다. 목극렴은 그러한 내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두려 워 물러날 위인은 아니었다. "좋다! 어디 펼쳐봐라. 내 너희들이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그 잡술 을 한 번 견식해 보리라." 이때, 용비운이 나서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목로, 비켜 서시오. 내가 받아보겠소." "아니오, 주공. 이것은 노부의 일이외다." 목극렴은 단호히 거절했다. (잊었소? 난 천마종사외다.) 용비운의 전음을 듣게 되자 그제서야 그는 비켜섰다. (정녕 종사께는 당해낼 재간이 없구려.) (변황천불과의 대전에서는 우선권을 넘겨 주겠소.) (그 약속, 필히 지키셔야 하오?) 목극렴은 암거래(?)가 만족스러웠는지 기소를 흘렸다. "크크크... 저들을 잘 요리해 주시오, 공자." "고맙소. 양보해 주어서." 용비운은 간단히 답례하고는 사대존자를 둘러보았다. "나는 천마공자라 불리우는 사람이오. 목로를 대신해 그대들의 범 환대연력을 받아볼까 하오." 사대존자는 그를 보며 새삼 경각심을 다졌다. '절대패왕을 종복으로 부릴 정도라면 내력이 어느 정도일까? 짐작 컨대 대법왕에 버금가는 인물이리라.' 그들은 심각한 안색으로 사상의 위치를 잡고 섰다. 용비운은 아목 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목함, 당신의 여동생은 왜 보이지 않소?" 아목함은 눈앞의 신비청년이 자신의 여동생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 에 무척 놀랐다. 하지만 그는 십 개월 전 천각봉 대전에 참관인 자격으로 나섰던 일을 떠올리며 의문을 접었다. "그 애의 일은 왜 묻소?" "당신의 안색이 매우 어둡소. 또한 당신들 모두의 얼굴에 깊은 수 심이 깃들어 있소. 아마도 대밀종천 내에 무슨 불상사라도 생긴 것 같은데, 아니오?" 용비운이 슬쩍 넘겨짚자 아목함은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몰라 난 감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본래 변황천불과 자웅을 겨루기 위해 이곳에 왔소만 범환대 연력을 감당해내지 못하면 이대로 돌아가겠소." "으음!" "그러나 다행히 범환대연력을 받아낸다면 당신은 지금 대밀종천에 생긴 모종의 사태에 대해 말해 주어야겠소." 아목함은 용비운이 내건 조건을 두고 잠시 숙고했다. '어차피 이자는 범환대연력을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설사 감당해 낸들 본천이 크게 손해볼 일은 없지 않은가?' 마침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당신의 제안을 수락하겠소." 용비운은 소맷자락을 팔목에 감았다. "그럼......." 그의 쌍수가 가슴에 붙여져 열십자로 교차되었다. 장내를 둘러싼 중인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를 지켜 보았다. 사대존자는 쌍수를 각기 천(天), 지(地)로 향했다. 그들의 묵색 범의가 서서히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그들의 일신에서 짙은 자색의 기류가 피어올라 거대한 강막을 형 성했다. 덕분에 용비운은 그 속에 갇힌 바 되었다. '음, 내가 아무리 공력이 높아보았댔자 이들 사 인의 공력을 합친 것보다는 못하다. 절대 힘으로 맞부딪쳐서는 안된다.' 용비운은 감아 쥔 소맷자락을 풀어 빳빳이 세웠다. 그 순간, 자색 강막은 그 자체가 막대한 진기로 화해 폭출되었다. "범환대연력!" 꽈르르르르― 해일처럼 밀려드는 경력에 용비운은 전신 혈관이 모조리 터져버릴 듯한 고통을 느꼈다. 무려 십 갑자에 달하는 공력이 일시에 그의 경맥을 조여 온 것이었다. 그는 빳빳이 세운 소매를 휘저으며 신형을 빙그르르 돌렸다. 번뇌 를 대변하는 승무(僧舞)인 양 유현하기만한 그 동작은 도저히 범 환대연력의 암경을 당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그의 넓은 소맷자락은 범환대연력의 강막 을 꿰뚫고 있었다. 파파파팟! 자색의 강막은 대번에 거미줄 형상의 자잘한 균열을 일으켰다. 이 어 결을 따라 계속 파고드는 그의 수강(手 )에 의해 범환대연력 은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콰콰쾅―!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막강한 암경이 사위로 흩어지자 개 중 공력이 딸리는 라마승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큭! 끄으으윽!" 사대존자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저마다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격돌시의 충격 때문에 심각한 내상을 입은 듯 그들은 검붉은 선혈을 꾸역꾸역 토해냈다. 반면에 용비운은 조금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제자리 를 지키고 선 채 묘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과연 범천신수(梵天神手)의 위력은 불가사의하군.' 그는 대밀종천의 소유였던 범천패역진경 상의 기학을 이용해 범환 대연력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목함, 약조는 지키리라 믿소." 아목함은 믿었던 바가 무너지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좋소." 그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사문의 불상사가 외부인에 게 알려지는 일이 달갑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읊조림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얘기를 하면 본천에 득이 될지.'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잼 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