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은 국에 밥을 넣어 말아 먹는 식문화이자 음식의 종류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을 손꼽았을 때 국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식을 대표하며 그 역사도 매우 깊다.
국물에 밥알을 말아 먹는 관습과 식습관은 한국의 국밥 문화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시피 하는데, 이런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식습관이자 식문화인 국밥의 범위와 응용성은 매우 무궁무진하다. 순대국에 말아 먹으면 순대국밥, 콩나물국에 말아 먹으면 콩나물국밥, 소고기국에 말아 먹으면 소고기국밥이 되는 식이다. 특히 경상도의 돼지국밥은 향토적인 특성이 더해져 더욱 그 특징이 강하다.
밥 요리도 국 요리도 많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그 밥 요리와 국 요리가 어떤 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밥을 먹는 문화는 인도, 동남아, 중국 등등 많지만 쌀 품종이 안남미라서 생 쌀밥은 먹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볶음밥을 먹는다. 그걸 국에 말면 괴식이 탄생한다. 또한 그 국이라는 것도 대부분 국물이 아니라 건더기를 강조한다. 수질이 좋지 않아 국물 요리가 발전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그나마 중국은 자포니카도 많이 먹지만, 역시 수질 문제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즉, 국물을 강조하는 국 요리가 적다. 반면 한국은 수질이 좋고 찰기있는 밥을 먹어 국 같은 게 잘 어울리는 데다, 조리 환경이 국물 요리에 적합하고 한랭한 기후 탓에 따뜻한 국물에 대한 열망이 강해 국물요리가 발전하기 쉬운 환경이었다. 그래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국물이 발전한 나라가 되었다. 같은 이유로 북아시아에서도 국물 요리가 발달했다고 하지만 여긴 반대로 밥이 없다. 그나마 비슷한 환경을 가진 게 일본인데, 여기도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국물요리가 꽤나 발전했다. 돈부리 같은 경우 보통은 장국을 부어도 밥알이 젖을 정도로만 붓지만, 식당에 따라 돈부리에 장국을 푸짐하게 부어 국밥처럼 된 곳도 있다. 다만, 이것도 국과 밥이 합쳐진 별개의 요리로 존재할 뿐, 한국처럼 그냥 일반 식사에서 좀 심심하다 싶으면 밥 말아 먹는 게 일반적인 문화는 아니다. 적어도 국물만 있으면 그게 라면, 우동, 심지어 크림수프일지라도 밥을 말아먹을 만큼, 밥을 말아 먹는 것에 독보적인 애정을 보이는 문화는 없다.
국밥을 국에 밥을 말아 먹는 모든 행위로 간주하여 범위를 넓게 보면, 그 역사는 한민족의 식습관 및 식문화의 시작과 그 맥을 같이할 것이다. 그러나 행위가 아닌 하나의 음식 그 자체의 범위에서 살펴보자면 조선 초기 문신이었던 유순(1441~1517)이 지은 오언고시인 십삼산도중(十三山途中)에 국밥, 즉 탕반(湯飯)이 언급 되는 게 최초이다. 그리고 사극에서 묘사된 주막에서 국밥을 파는 장면은 빨라도 조선시대 중기부터 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고려 중기 이후 몽골과의 전쟁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에 전쟁 약탈 등 여러 이유로 식량 자급이 어려워 농민들이 고깃국에 보리를 넣어 양을 늘려 먹던 것에서 유래 한다고 하기도 한다.
조선 중기 문신인 윤국형(1543-1611)이 지은 문소만록(聞韶漫錄)을 보면 전국을 유랑하며 본 견문중 주막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주막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오로지 술과 잠자리를 제공할 뿐, 나머지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그리하여 많은 여행자들이 개인의 짐을 비롯한 먹거리까지 가지고 다닌다고 나온다. 물론 임진왜란 시기라 물자가 부족했던 시기였다는 사정이 다소 있기는 하나 실제 다른 문헌들을 찾아보더라도 여행자들은 쌀이나 보리, 조, 수수와 같은 곡식과 미역, 북어 등의 건조식량, 장이나 소금 따위의 부식을 들고 다니면서 스스로 해결하거나, 민가에 여분의 대가를 치르고 음식을 부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주모가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여행자가 음식 재료를 대고 요리를 해 주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가 되어서도 한양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은 화폐를 쓰는 일이 거의 전무했다. 지방에서 돈의 역할을 하던 것은 쌀과 무명이었고, 돈을 내고 밥을 사먹는 행위가 성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밥을 해 먹으려면 최소한 쌀 같은 곡식은 스스로 준비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공업이 그나마 발달하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화폐가 향촌 사회에도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 사이마다 주막이 생기고, 이에 따라 주막이 발전하면서 음식을 제공하는 것 또한 가능해졌다.
물론 당대 최고의 해장국으로 명망이 높았던 효종갱 같이 돈 받고 파는 국밥 음식도 있긴 했으나, 화폐가 활발하게 유통되었던 수도권에서나 가능하였지 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 후기부터 외식이라는 문화가 상공업에 발맞춰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한양에는 수많은 장국밥집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장국밥집들 중에서 매우 유명했던 곳으로는 19세기에 조선 헌종조차 변복하고 자주 드나들었다는 설이 있는 무교탕반이라는 곳이 있다.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인기가 좋았던 곳으로 장국밥을 주로 팔았다. 지금이야 국밥이 다양하고, 이 시대의 장국밥은 현대인에겐 맛이 없어 먹지도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인기가 매우 좋았다. 간장 또는 된장을 사용하여 국물의 간을 맞춰 이름이 장국밥인데, 흔히 유행했던 다른 지방의 국밥들이 시래기 등을 가지고 끓인 채소 국밥인 반면 이 국밥은 고기를 듬뿍 사용하였다고 한다.
월탄 박종화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이 집은 "양지머리만 가지고 국밥을 만들어도 충분한데 젖통 부위 고기를 넣고 또한 갖가지 고명으로 양념한 산적까지 넣어주니 고기와 산적이 어우러져 천하진미가 따로 없다." 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먹는 음식으로 간주되었던 설렁탕이 특유의 냄새와 푸짐함, 고소함 등을 무기로 일제강점기 내내 득세하면서 장국밥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해방 이후 물자가 풍족해지면서 경상도 고향 지방 특색의 돼지국밥이나 전주에서 유명했던 콩나물국밥 등도 많이 인기를 끌면서 그 외 여러가지 다양한 국밥들이 다양한 변모를 걸쳐 현재까지 이른다.
많은 국밥에는 시래기, 우거지, 콩나물 등의 채소, 다양한 종류 및 형태의 고기, 두부, 선지 등이 재료로 들어간다. 이러한 국밥의 재료를 생각해보면, 영양소 측면에서는 생각 외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3대 영양소와 각종 무기질이 제법 균형있게 들어간 괜찮은 음식이다. 국밥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지방이 포함된 고기가 제법 들어있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탄수화물 또한 당연하다.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를 흔히 따로국밥이라고 부르며, 일반적인 국밥보다 가격은 천 원 가량 더 비싸다. 식당에서 밥그릇을 따로 준비해야 하고, 국그릇에서 밥이 빠지는 만큼 국물이나 건더기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설거지감도 늘어나니 시간과 인력, 세제가 더 들어간다. 굳이 따로국밥이 아니더라도 밥과 국이 따로 나오는 국밥집도 많다. 즉 일반적인 국밥집에서는 본인의 기호에 맞게 선택이 가능하다. 덧붙여 과거 국밥을 먹을 때 반찬으로 나오는 깍두기에는 새우젓을 넣지 않았다.
국밥을 조리할 때 국물을 부은 다음 그 국물을 따라내고 다시 국물을 붓기를 반복하는 작업이 있는데, 이를 토렴이라고 말한다. 토렴을 통해 면과 밥에 국물의 맛이 배어나고 국물도 식지 않고 따뜻하게 나올 수 있게 된다.
국밥은 종류를 막론하고 나트륨 섭취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짬뽕, 냉면, 짜장면 등의 외식 음식들도 나트륨 함량이 만만치 않다.
국밥의 종류에 따라 소면이나 당면, 또는 그러한 면종류를 재료로 하는 식재료(예를 들어 순대)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밥 한공기까지 다 넣어먹으면 탄수화물 섭취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 체중감량과 혈당조절을 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나 고혈압 환자에게는 과다한 탄수화물 섭취로 인해 매우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병을 지닌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가급적 국밥 종류를 멀리하는 것이지만, 밥을 최대한 적게 넣고 국밥의 건더기 위주로만 먹는다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이명박전 대통령이 17대 대선 후보였을 때 속칭 '이명박은 배 고픕니다'라는 국밥 먹방 광고를 내보냈었다. 이명박은 이 선거 광고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수성가하여 성공 가도를 달린 CEO 출신 경제대통령 후보자라는 이미지를 강력하게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당시 네거티브 전략으로 일관하던 정동영 후보와 대비되었다. 당시 이명박 대세론이 팽배해 있던 상황에서 지지율이 뒤쳐지던 정동영은 이명박의 BBK 주가조작 의혹을 무기 삼아 네거티브 공세에 나섰고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았던 이명박은 이를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경제는 살려야 한다!"라는 전략으로 맞받아치고 있었다.
17대 대선 TV 광고 욕쟁이 할머니편 (youtube.com)
나무위키, 한국의 국물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