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권씨 시조 태사 권행 묘역 전경 |
안동권씨 시조(安東權氏 始祖) 권행(權幸)은 본래 신라(新羅) 종성(宗姓)인 김씨(金氏)였다. 신라(新羅)의 천년 사직이 기울어 가는 서기 927년 후백제(後百濟) 견훤(甄 萱)이 신라에 침입하여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하던 경애왕(景哀王 : 제 55대 왕, 재위 기간 : 924~927)을 자살하게 하였다. |
▲ 태사 권행 묘역 하단, 서애 부모 묘역 뒷편에 위치한 평창군사 권옹(태사 18세손)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 권옹 묘역 뒷편에 위치한 태사 권행 묘역으로 가 봅니다. | ▲ 태사 권행 묘역 하단 좌측에 재실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네요... |
이에 격분한 김행(金幸)은 견훤의 군사를 맞아 싸우고, 김선평(金宣平 : 신안동 김씨의 시조)․장길(張 吉 : 안동 장씨의 시조) 등과 함께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功)을 세웠다. |
▲ 태사 권행 묘역 전경 |
이어 태조(太祖)가 기뻐하며 이들에게 삼한벽상아부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亞父功臣 三重大匡太師)을 제수하고, 김행(金幸)에게는 <능히 기미에 밝고 권도에 통달하다(能炳機達權)>하여 권씨(權氏)의 성(姓)을 내리고 고창군(古昌郡)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니 안동권씨(安東權氏)가 문호(門戶)를 열게 되었다. |
▲ 태사 권행 묘역 모습 ▼ | |
▲ 묘역내 석물 모습 | ▲ 권태사 묘역 뒤에서 내려다 본 모습 |
안동(安東)은 경상북도(慶尙北道)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고대(古代)의 창녕국(昌寧國)이었는데 신라시대(新羅時代)에는 고타야국(古陀耶國)․고창군(古昌郡)으로 불렸고,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견훤(甄萱)과 싸워 전공을 세움으로써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 그 후 영가군(榮可郡) 또는 복주(福州)로 개칭되었다가 1361년(공민왕 10)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附)로 승격되었다. - 성씨뉴스닷컴 내용 발췌 - |
▲ 상단에 권태사 묘역, 중간에 권옹 묘역, 하단에 서애 부모 묘역 순으로 내려다 보입니다. |
권태사 신도비(경북 문화재자료 63호) |
▲ 권태사 신도비각 외부 전경 |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어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안동 권씨의 시조(始祖)인 태사 권행(權幸)을 기리고 있다.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조선 현종 2년(1621) 권행의 24세손인 군수 권성원이 세웠다. 비문은 이후 우의정을 지내기도 한 허목선생의 글씨로 새겼다. 1971년에 비각을 세워 비를 보호하고 있다. |
▲ 태사 권행 묘역에서 다시 묘역 입구로 내려와서 도로를 따라서 조금 올라가면 좌측에 태사 권행 신도비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 권태사 신도비각을 두른 담장이 닫혀 있어서 문틈으로 신도비를 조망해 봅니다. |
안동 안동권씨 능동재사(국가 민속문화재 183호) |
▲ 안동권씨 능동재사 전경 |
고려 삼태사 중의 한사람이자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을 제사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마루·방·곳간 등 16칸을 처음 지었고, 숙종 9년(1683)에 누각 7칸을 더하여 지었다. 영조 19년(1743) 불로 건물이 모두 불타서 다시 지었고, 고종 33년(1896)에 다시 불이 나서 당시 70여칸이던 건물 중 임사청·전사청 등 몇 칸만 남기고 모두 불타서 다시 지었다. |
▲ 권태사 신도비각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능동재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
▲ 능동재사 전면 모습 | ▲ 능동재사 우측에서 바라 본 모습 |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왼쪽에 높은 축대를 쌓아 문루인 '추원루'를 세웠고, 누문 안쪽에 정면으로 재사 큰채가 있다. 큰마당을 둘러싸고 양 옆으로 안사랑채인 '동재'와 헛간채인 '서재'가 튼 ㅁ자를 이루고 있다. 동재의 뒷쪽으로는 별당인 '임사청'과 곳간채인 '전사청'·안채인 '주사'가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日'자 모양이다. 구조적인 면에서 큰 특징은 없지만 재사건물로는 보기드물게 큰 규모로 조선시대 제례행사의 성대함을 짐작하게 하는 건물이다. |
▲ 능동재사 우측 권역으로 가면서 바라 본 모습 |
▲ 능동재사 맨 우측 뒷편에 위치한 보판각(譜板閣) | ▲ 보판각 앞에서 내려다 본 능동재사 후면 모습 |
권태사 子 권인행 단소 |
▲ 능동재사 우측 권역에 위치한 권태사의 子 권인행 단소 전경 |
안동 권씨 시조 父子 '천년만의 상봉' 매일신문 2010-05-11 청도에 있던 亞시조 묘단 문중 합의로 안동 이설 안동 권씨 문중의 아시조(亞始祖)인 권인행(權仁幸)공의 묘단(墓壇)이 청도에서 1천여년 만에 본향인 안동으로 옮겨졌다. 안동 권씨 대종회와 화수회는 7일 안동 권씨 시조 묘소가 있는 안동 서후면 능동재사에서 아시조 묘단 이설 고유제를 가졌다. |
▲ 능동재사 우측 전방에서 바라 본 원경 | ▲ 이 곳에서 권태사 묘역으로 가는 길이 있네요... |
▲ 권태사의 외아들 권인행 묘역으로 가 봅니다. | ▲ 청도에 있던 권인행선생 묘단을 2010년 이 곳으로 옮겼다고... |
이날 행사에는 안동 권씨와 함께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을 도와 삼태사라는 칭호를 받은 안동 김·안동 장씨뿐만 아니라 하회 류·의성 김·고성 이씨 등 100여명의 대문중 관계자들도 전통 제례복식으로 참석해 아시조 묘단 이설을 반겼다. 아시조란 시조의 바로 다음 대 주손(장자)을 칭하는 말이다. 안동 권씨 시조인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외아들 권인행공의 묘단 이설은 이튿날인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1천년 만에 안동 권씨의 시조인 아버지를 찾아 와 '천년의 해후'로 효를 행한다는 뜻도 내포돼 있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
▲ 권인행선생 단소 모습 ▼ | |
안동 권씨 문중의 아시조 묘단 이설은 천년 전인 고려 중엽부터 시작해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대제학 권유, 이조판서 권혁, 영의정 권돈인 등 후손들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했을 때마다 추진을 시도했으나 '안동으로 이설을 해야한다'는 주장과 '청도 그 자리에 그냥 둬야한다'는 등 문중 내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서 지금까지 이뤄지지 못했는데, 지난해 안동 권씨 대종회의 전격적인 이설 결의로 마침내 권문의 이 '천년열망'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청도 운문면 공암 정자동 뒷산에 소재한 권인행의 구(舊) 묘단은 그동안 마을 주민들이 '권릉'(權陵)이라고 불러왔으며 고려 때 낭중이라는 벼슬을 지낸 그와 부인 양천 허씨의 무덤이라는 구전이 전해져 왔다. 부인은 양천(陽川)의 청도 공암촌주(孔巖村主)인 허선문(許宣文)의 딸. 허선문은 양천 허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
▲ 권인행선생 단소에서 내려다 본 모습 |
안동민속박물관 손상학 학예사는 "고려시대를 포함해 약 1천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한 문중에서 대를 이어 관련 기록을 책자와 목판으로 남겨가며 아시조 묘단 이설 문제를 끝없이 논의하고 추진해 온 것 자체만도 조상의 업적과 공덕을 기리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숭조보본(崇祖報本) 사상이 얼마나 뿌리깊은 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권정달 안동 권씨 대종회장은 "아시조의 묘단 이설로 선조에 대한 향념을 올곧게 이어가고자 하는 지난 1천년간 간직해 온 후손들의 열망이 비로소 마무리됐다"며 "고려 태조로부터 사성(賜姓)받은 안동 권씨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 시조 묘소 곁에 아시조 묘단이 함께하는 서후 능동재사를 후손들에게 효를 가르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동·권동순 |
태사 권행 묘역 위치도 |
하단 빨간선 시작점에부터 유중용 묘/권행 묘/신도비/능동재사/김인행 단소 순으로...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산11 |
좌측 빨간선 시작점에부터 신도비/능동재사/김인행 단소/태사 권행 묘역을 가도 됩니다. 신도비 :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395 |
지도 상단의 화살표 지점에 태사 권행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도 하단의 안동시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