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의 둘째 아들 광해군의 출생과 형, 의인왕후가 1600년 고열로 갑자기 사망하고 재혼한 선조의 새 왕비는 광해군보다 9세연하 계모 인목왕후로 그녀가 4년만에 아들 영창대군을 낳았다.
그후 세월이 흘러
1607년10월 선조가 위독해지고 57세로 사망한다. 이때 광해는 33세, 영창 2세로 너무 어려서 선조는 광해군을 지목하고 붕어하였다.
그렇게 광해군이 제15대 조선의 왕이 된 것이다.
광해군은 취임초기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백성을 위한 일을 추진하였지만 서출 권력의 지위에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선대 선조가 가졌던 불안한 마음을 그대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한양을 버리고 명나라 망명을 계획하고 광해군에게 양위하고 명으로 가려고 했으나 명나라에서 원군을 보내 다시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에 잘 대처한 광해군을 질투하고 경계하고 싫어해서 18번이나 양위 소동을 일으키고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했다.
자신의 형 임해군을 유배보내 죽이고, 선조의 인목왕비가 낳은 적통 아들인 영창대군을 제거하기 위해서 문경세제 은괴 약탈사건을 꾸미고 범인은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 김제남이 꾸민 역모라는 실토를 받아내고 김제남을 죽이고 가족들은 유배를 보낸다.
뿐만아니라 영창대군을 유배보내고 죽여버린다.
심지어 인목왕후를 대비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하고 지금의 덕수궁 내에서만 살도록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