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복음화의 역사와 전망
말라 1,14-2,10; 1테살 2,7-13; 마태 23,1-12
연중 제31주일; 2023.11.5; 이기우 신부
1. 전례의 흐름과 초점
오늘은 위령성월의 첫 주일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이들과 남아 있는 이들이 통공을 하기 위해서는 믿는 이들이 하느님과 통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 수직적 통공에 무능한 사제들을 말라키 예언자가 질타하고 있고,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보여 주는 위선적 행태에 대해 질타하는 말씀을 쏟아 내셨습니다. 하느님과 통공하지 않으면서도 통공하는 척 하는 위선적인 행태로 말미암아 동시대인들과도 통공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약한 이들을 억누르는 죄악마저 서슴없이 저지르던 행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알게 된 사도 바오로는 선교여행에서 보낸 첫 편지에서 자신이 테살로니카의 교우들과 통공을 이루고 감화를 시키기 위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노력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카 그 교우들도 사도를 본받아 하느님과 통공을 이루라는 당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2. 마르티니 추기경의 유언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의 영성 지도사제로 지내다가 선종한 마르티니(Carlo Maria Martini, 1927~2012) 추기경의 유언을 인용하며 교황청 관료들에게 새 복음화의 당위성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2019.12.23.). “가톨릭은 변화에 대한 태생적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몰이해와 증오의 지뢰밭으로 몰아넣고 있다. ‘현재의 가톨릭은 세상에 200년쯤 뒤처졌다.’고 한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전 밀라노 교구 추기경(1927~2012)의 충고를 되새겨야 한다.”
밀라노 교구장을 22년이나 역임했던 그가 말년에 교황청의 영성지도사제로 들어와서 역대 교황들과 유럽 백인 투성이인 교황청 관료 고위 성직자들에게 피정을 지도하며 기대했던 바는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쇄신 여정을 따라 개혁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요한 바오로 2세도, 베네딕토 16세도 또 현 교황 프란치스코도 그의 권유를 따라서 ‘새 복음화’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가톨릭교회 최고 수장인 교황의 기치에도 불구하고 늙고 쇠락한 가톨릭교회는 개혁과 쇄신작업에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여왔기에 죽기 전 유언으로 남긴 것입니다.
예수회 출신이었던 마르티니 추기경은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 고위 관료들에게 피정을 지도해 온 관록있는 사제로서 그 누구보다도 교황청과 보편교회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네 복음서를 종횡무진으로 인용하며 마치 예수님께서 오늘날 바티칸에 재림하신 듯 살아 있는 복음을 들려주었던 성서학자요, 다수의 서적을 출간함으로써 신구약성경을 망라하여 하느님의 섭리를 가톨릭교회에 전해 주고자 애를 썼던 현대 예언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공의회의 노선을 계승하는 새 복음화의 여정이 왜 이리도 지지부진한 것일까요?
3. 지지부진한 새 복음화의 역사
이하는 서울 대신학교(가톨릭 신학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사회교리 과목을 담담했던 박정우 신부(종교사회학)가 ‘새 복음화의 실천 원리로서의 사회 교리와 한국교회 현황’에 관하여 신학과 사상지에 게재했던 요약문입니다(가톨릭 신학과 사상2012, vol., no.70, 통권 70호 pp. 233-277).
최근 가톨릭교회의 화두는 ‘새 복음화’이다. ‘새 복음화’라는 용어는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19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총회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복음화를 위해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식,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새 복음화’를 강조한 이후부터 기존의 선교, 복음화와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새 복음화’를 말하는 배경은 오늘날 이미 복음화가 진척되었지만 신앙의 활력을 잃은 현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는 세속주의와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생긴 영적인 삶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반종교적‧반생명적 문화, 쾌락주의, 물질과 소비 지상주의 등이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국가들 안에서 영적 활력을 잃게 만드는 요인으로서 교회가 직면해야 할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므로 ‘새 복음화’는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 새롭게 신앙의 쇄신과 영적 활성화를 촉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관심은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서도 이어지는데, 교황은 2010년 6월 30일 교황청 평의회 안에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New Evangelization)를 신설하였고, 2012년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까지 ‘새 복음화’ 촉진을 위한 ‘신앙의 해’(Year of Faith)로 지낼 것을 선포하였다. ‘신앙의 해’ 개막일을 2012년 10월 11일로 정한 이유는 이날이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1962.10.11) 50주년 기념일이면서, 동시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반포(1992.10.11)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신앙의 해’를 각 지역 교회가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 신앙교리성을 통해 2012년 1월 6일 ‘신앙의 해를 위한 사목 권고를 담은 공지’를 발표하였는데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결실들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핵심적인 실천 사항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교황청의 움직임의 영향으로 한국교회 안에서도 ‘새 복음화’는 핵심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다. 서울대교구 사목국은 2011년 10월 <‘새로운 복음화’ 개념 연구 및 사목적 모색>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였는데, 이는 서울대교구가 2011년 사목교서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교구 사목 정책의 중장기 계획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앞에 놓인 시대적 흐름과 도전 앞에서 가톨릭교회가 ‘새 복음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가치관, 삶의 태도를 쇄신하고 굳건한 신앙을 바탕으로 삶의 영역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려는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앞서 말한 서울대교구 사목국의 연구 보고서는 우선 21세기 사회 및 교회의 변화에서 생겨난 갈등과 위기를 성찰하자고 주문한다. 특히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가치 체계들, 즉 성장주의, 소비주의, 상업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교회의 자기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펼쳐왔던 교회 내의 소공동체 운동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하며, 정의×평화×인권×사회복지 등 사회복음화 활동을 강화하여 한국의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식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어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준거와 사목적 제안으로 ‘현장 중심의 복음화’, ‘사랑의 실천’, ‘인격적인 만남’,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정의’ ‘환경 및 생태윤리’ ‘생명의 문화 건설’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 보고서에서도 제안하듯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보편교회의 ‘새로운 복음화’의 흐름을 정리하고 한국의 현실을 성찰하면서 한국교회에 가장 시급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출발은 결국 성숙한 신앙의 정립과 실천을 위한 사회사목에 대한 관심, 그리고 ‘사회 교리’의 보급과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보편교회가 ‘신앙의 해’를 준비하면서 전 세계 모든 교구와 본당에 구체적인 지침으로 내세운 것 중 핵심 사안이 바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연구하고 보급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1992년에 편찬된 이 새 교리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그 이후 사회 문제를 다룬 여러 공식 문헌들이 대폭 수용하고 있고, 특히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계명에 대한 해설과 함께 사회 교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교리는 1995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사회 교리 학교”를 시작하기 전에는 일반 신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현재의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1992년 10월 로마에서 프랑스어 초판과, 1997년 라틴어 최종본이 출판되고, 2003년 한국교회에서 라틴어 최종본에 대한 번역본이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에 일선 본당 교리 교육에서 사회 교리가 소홀히 취급되거나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특히 서울대교구에 주로 사용하는 예비자 교리서 <함께하는 여정>에는 사회 교리와 관련된 내용이 전무하였고, 2010년 비로소 사회 교리 내용이 포함된 <함께하는 여정―봉사자용 해설서>가 출판되었을 뿐이다. 또한 7개 신학대학에서 사회 교리가 교과 과정에 들어있지만 서울 대신학교에서는 사회 교리가 필수가 아니라 선택 과목으로 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사회 교리 교육은 매우 미흡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 교리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 부족은 현실 안에서 그대로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2010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4대강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용산 재개발, 핵발전소, 제주 해군기지 등 교회가 정부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표명한 바 있다.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 사회정의,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 환경과 평화, 공권력의 책임과 한계 등 불의한 현실에 대해 교회가 정당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에 대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해 무지한 일부 신자들이 교회가 정치에 개입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혼란스런 사회 현실 속에서 교회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사안이 많아지면서 사회 교리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도 높아져가고 있지만, 정작 신자들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은 탓에 이처럼 교회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당면 과제는 적극적인 사회 교리의 교육과 실천이다.
4. 새 복음화를 위한 교도권의 가르침
이런 고언(苦言)이 가톨릭대학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신학 학술지에 게재되어야 했던 배경을 살펴보자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도권이 취한 조치와 문헌을 파악해야 합니다.
공의회가 폐막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던 1974년, 바오로 6세 교황은 공의회가 던진 교회쇄신의 깃발에 놀라서 아직 주춤해 하고 있던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향해 새로운 화두를 던졌으니, 그것이 현 ‘새 복음화’의 원 이름인 ‘복음 선교’입니다. 모든 나라 주교회의의 대의원 주교들을 모아 시노드를 연 교황은 그들의 건의안을 받아들이고 공의회의 본 가르침을 알멩이로 하여 사도적 권고(현대의 복음 선교, 1975)를 펴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톨릭교회를 현대 문명과 대화하고자 현대화시키고 또한 각 민족 문화에 뿌리내려서 토착화시키기 위한 가르침을 복음 선교라는 초점으로 집대성한 이 문헌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본당 사목과 함께 새로운 선교 모델 내지 노선을 선보였습니다. 새롭다고 하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이미 2천 년 전에 공생활 내내 선보여 주셨던 정통 노선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사회사목입니다.
이 사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복음화의 요소는 “더 더욱 넓은 지역에서 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일”(현대의 복음선교, 17항)이며, 이에 못지않게 각별히 유의해야 할 복음화의 국면은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일”(현대의 복음선교, 19항)입니다.
복음화의 요소와 국면에 대한 이 같은 정의는 교회를 쇄신하기 위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하여 ‘복음선교’를 주제로 열린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1974)의 건의를 바오로 6세 교황이 수용하여 교황권고로 반포된 문헌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내려진 것입니다. 통상 복음화의 요소를 본당사목 또는 일반사목이라 하고, 복음화의 국면을 특수사목 또는 사회사목이라고 합니다. 복음화의 국면인 사회사목을 설명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공동선이고, 또 이 공동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역대 교황들이 사회사목에 대해 가르친 바를 집대성해 놓은 가톨릭 사회교리입니다.
5. 사회사목의 활성화와 사회교리 보급 및 실천
이미 구약시대에 말라키 예언자는 시대의 징표를 외면하고 막무가내로 하느님 제사를 독점하는 사제들에게 경고한 바 있었습니다. “자 이제, 사제들아,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계명이다. 너희가 말을 듣지 않고, 명심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겠다.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너희는 레위의 계약을 깨뜨렸다. 그러므로 나도 너희가 온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리라. 너희는 나의 길을 지키지 않고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한 분이 아니시냐?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며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더럽히는가?”(말라 3,1.8-10). 이를 이어 받아 예수님께서도 경고하셨으니, 바로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2-3).
공의회가 폐막된 지 벌써 반세기가 넘어가는 이즈음에도 공의회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아는 신자들이 거의 없고, 그 문헌을 읽어본 신자들도 또한 거의 없으며, 공의회의 가르침을 주제로 강론하는 교구장이나 본당 신부들도 가뭄에 콩 나듯 하니, 이러한 답답함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한 번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에게 보낸 교황 메시지의 일부를 소개해 드립니다: “한때 세상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갖고 있던 가톨릭이 이제는 그런 존재감을 잃었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가톨릭은 문화 또는 사회적 가치관의 선도적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부정당하거나 조롱 당하기 쉬운 대상이 됐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까지 교구와 본당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심한 경우 구박을 받으면서 사회사목와 사회교리를 통하여 새 복음화 과업을 위해 수고하고 고생한 이들에게 오늘 미사에서 독서와 복음으로 예언자와 예수님과 사도 바오로가 들려 주신 말씀으로 하느님의 위로와 축복을 전해 드립니다. 본당사목의 이모저모에서 실망스럽다고 해서 냉담할 유혹에 빠져서 기도생활과 성사생활을 소홀히 할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 강론을 마무리하면서, 마르티니 추기경이 자신의 마지막 저서 <예루살렘 밤의 대화>(Nighttime Conversations in Jerusalem)에 남겨 놓은 평소 자신의 의견을 소개합니다. “예수께서 2000년 전처럼 젊은이들을 사도를 만드신다면, 지금의 가톨릭교회를 당시 바리사이처럼 대하실 것인가?”라는 한 젊은이의 질문에 “아마 그러실 겁니다. 그분은 교회 고위 당국자들과 싸우실 것이고, 이것이 그들의 사명임을 상기시키실 겁니다. 교회가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그들의 울타리 너머를 보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2.09.02).
결국 새 복음화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는 사회사목을 활성화시키고 사회교리를 보급하면서 동시에 이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열쇠로 문을 열지 않으면 문을 열지 못하거나 문고리를 부수어야만 하듯이, 열쇠는 필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사목을 외면하고 사회교리에 무지한 채로, 본당사목에만 교회의 역량을 집중하는 일은 이제 따라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복음을 중계방송하듯이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일도 이제 그만 두어야 합니다.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짊어 진 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는 일을 이제 시작해야 합니다. 공의회가 제시한 길에서 벗어나 낡은 복음화 방식에만 연연하는 일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깨뜨리는 일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는 마치 열쇠 없이 문을 억지로 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파격적으로 들리는 교황이 이러한 발언은 제자들과 군중에게 남기신 경고조의 당부 말씀을 중계하듯이 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사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에게 성령으로 현존하시면서 몸소 사회사목적 실천을 이끄셨습니다. 특히 사도 바오로는 이 같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서 실행했던 바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데, 이 역시 사회사목에 종사하는 이들과 사회교리 보급과 실천에 힘쓰는 이들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1테살 2,7-8).
교우 여러분!
가톨릭교회는 서기 2천년을 앞두고 20세기 중반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계기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복음화 제3천년기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의 복음화 제3세기는 보편교회의 복음화 제3천년기의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안고 출발하는 셈입니다. 본당사목과 사회사목은 공의회가 높이 쳐 들었던 현대화를 향한 교회쇄신과 복음화를 향한 매력 회복을 위해 함께 달려가야 하는 쌍두마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