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곳저곳, 참으로 넓어라
북극노선 안에서
벤쿠버를 출발해서 태평양을 활처럼 휘어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15년만에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과 나란히 앉게 된다. 전면의 화면에 의하면 비행기 기수는 북북서로 향해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지나고 캄차카를 통과하면서, 다시 하향 포물선을 타고 남남서의 한반도로 향한다. 말하자면 북극노선이다. 옆에 앉은 건장한 중년은 승무원의 걱정스러운 만류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동안 스카치언더락을 세 잔을 마시고, 막무가내로 맥주를 시켜가며 술에 대한 갈증을 숨기지 못한다. 승무원이 너무 급하게 드시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에 15년만에 귀향이니 이해하라며 연거푸 술을 찾는 목소리가 다소 흥분상태다. 맥주 캔을 우그러뜨리는 소리에 걱정스러운 내 눈초리가 부딪히자, 그렇지 않아도 분출할 곳을 오랫동안 찾았다는 듯이, 그래 너 잘 만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15년이라. 15년.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그의 젊은 날들은 벤쿠버 다운타운인 킹스로드의 이곳저곳에 자리한 햄버거 집의 재료 배달 생활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동안 고생에서부터 햄버거 주재료인 빵공장 주인에 자리 잡은 오늘날까지, 등에 비수를 꽂은 섭섭했던 한국사람들에 대한 욕설과 더불어, 돈을 쓰기 위해 캐나다로 온 한국 부유층에 대한 불만이 거침없이 높았다. 내가 이 땅에서 의자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동안 타국의 하늘 아래에서 노동으로 얻어낸 그의 두툼한 손과 굵은 팔목이 건강하여 그나마 안도한다. "오랜만에 가니까 조금 흥분되네요. 며칠 잠도 못자구요" 말투로 보아 영어에 물들지 않았고 더불어 15년의 긴 세월 동안에 한국도 끝끝내 놓아 버리지 못했다. 목소리는 높고 육두문자에 거칠어도 눈빛은 그리움으로 선하다. 이제 돌아가 만나는 형제들은 또 얼마나 반가울까. 그의 부모님은 아직 살아 계시기는 할까... 그는 교묘하게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지뢰 피하듯 쏙 빼가며 언어 나열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아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는 듯하다. 그런 사연들이 그를 이 땅에서 바다 건너로 내몰았는지 몰라 한 마디의 질문도 던지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린스빌 아일랜드의 퍼브릭 마켓 진열장에서 연어를 보았다. 얼음 사이에 통째로 던져진 것은 물론, 붉은 살을 드러내고 가지가지 향료와 버무려져 조각난 채 누워있는 것들이 많기도 했다. 붉은 살을 도려내 후추향, 마늘, 양파와 버무려진 채, 혹은 한 손에 잡고 먹기 좋게 철갑상어알, 치즈가루와 더불어 김밥처럼 말려 진열장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에서 태어나 먼 바다, 베링 해와 알래스카로 나가 살다가 다시 천만리 길 본향 모천으로 되돌아와 종족번식을 위해 알을 낳고 죽어간 연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요란한 물보라와 강바닥을 긁어가며 상류로 튀어 오르는 회귀의 귀소본능의 소리가 진열장에서 와르르 들리는 듯했다. 그들이 찾아온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포획이거나 혹은 마지막 임무인 산란이거나 어찌되었든 이 세상에서의 종말이었다. 한국에서의 삶을 버리고 캐나다로 이민간 분이 계셨다. 부러움 반 혹은 측은한 심정 반으로 김포를 떠난 그들은 모친 친구분 가족이었다. 직항선이 없어 동경으로 간 후 다시 갈아타고 캐나다로 들어간다고 했다. 아직 사진첩 안에 빛 바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김포에서의 환송사진은 기대와 연민이 범벅된 그만 그만한 사람들의 표정이 밝은 햇살 아래에서 머리를 모으고 어깨를 포개듯 겹쳐 서서 표정을 만들고 있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살아라, 부모님 말씀 잘 듣고...'의 통상적인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돈 많이 벌어서 미국도 가고 캐나다도 놀러와라...' 이런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고. 그리고 환송대에서 많은 인파 안에서 서로가 쉽게 알아보기 위해 같은 빛깔의 손수건을 이리저리 흔들어 멀리 가는 그들의 행운을 빌었을 터이고... 이제 벤쿠버는 더 이상 키 크고 코 높은 사람들만의 땅은 아니다. 다운타운을 걷다보면 많은 동양인들이 미스터 벤쿠버와 사이먼 프래이져 이후 일찌감치 자리잡은 현지인 들과 함께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연어는 물론 온갖 과일, 생필품과 음식을 파는 퍼브릭마켓에서의 상인의 1/3 역시 고향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동양인이다. 그들 사이에서 심신이 낡은 동양인 노파를 보자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래 전 김포를 떠나 대양으로 나간, 이제는 더 이상 이승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는 그 분의 안부를 여쭙는다. 그분이 캐나다로 떠난 지 한 해가 지나 소포 박스가 하나 도착했다. 중고 스케이트였다. 이리저리 얼음을 지치며 앞으로 나갈 때, 그 당시 유행하던 전진상 세이버 스케이트가 아닌 캐나다 산이라는 자부심으로 팔을 휘두르는 동작이 으시대듯 유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편지가 뜸하더니 '누가 그러는데 어느 마을로 이사갔다더라...' '누가 그러는데 더 동쪽으로 떠나가서 장사한다더라...' 서로가 궁벽한 살림으로 겹쳐 가는 이삿짐 속에 옛 편지만 남겨지고 새로운 편지는 주인을 못 찾아 잃어 반송되거나 수취인 불명으로 사라졌을 터, 어느 날 더 이상 스케이트를 신지 못하던 겨울 무렵, 인연은 그렇게 태평양을 마주한 서로의 생활 탓으로 끊겨져야 했다.
카이로 나일강 서안에 사는 한 노인은 무슬림의 신성한 다섯 가지 의무 중에 하나인 핫지-순례를 위해 메카로 향하기로 했다. 작은 노새를 하나 사서 간단한 먹거리와 옷가지를 싣고 다시는 돌아올지 모르는 여행을 시작했다. 평소에 비루한 일로 살아왔지만 착하기 그지없었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서서 그를 안아주고, 등을 두드리고, 가슴에 껴안으며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기를 축복하며 환송했다. 순례는 처절한 것이었다. 도적 떼에 붙잡혀 무려 2년이나 허드렛일을 했고, 간신히 몸 하나 탈출하여 숨어든 동굴에서는 뱀에게 발꿈치를 물려 사경을 헤매야 했다. 그러나 순례의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대상들을 따라 거친 사막을 넘어서며 메카로 향했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젊은이로 구성된 대상은 병들고 늙고 가난한 그를 더 이상 동행할 수 없어 작은 오아시스 마을에서 떨구어 놓아야 했다. 그는 시름시름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결국 아무런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대추야자열매나무 아래에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작은 소년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며 그가 힘들게 내뱉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지금 진정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성지 메카가 아냐, 내 고향 카이로야" 그리고는 메카가 자리한 동쪽이 아니라 사막의 해가 지는 서쪽, 고향이 자리한 해지는 방향으로 돌아누우며 숨을 거두었다. 지는 해는 그의 얼굴을 곱게 닦아주었다.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물냄새란다. 자신이 태어나 성장했던 어머니강-모천의 내음을 추적하며 고향을 찾아간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을 휘돌아' 나와서는 차가운 현실의 극지방에서 평생을 보내고 고향 강물의 독특한 물냄새를 찾아 회귀라는 이름의 죽음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태어난 곳에서 죽게 된다. 삶에서 성지보다 소중한 것은 고향일까. 삶에서 최고의 성지는 고향이 아닐까. 취기로 맥주를 흘리며 마시는 내 나이 또래의 이민자에게서 고향을 떠나 다시 되돌아오는 연어의 첨벙거림을 보고 느낀다.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결국 또다른 맥주 캔을 잡은 그는 혼잣말처럼 이야기한다. 그는 국내에 돌아가는 정치 경제는 물론 문화에 대한 모든 제반상황을 나보다 잘 알고 있다.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을 한 번에 싸잡아 욕을 하다가, 환율로 고통받는 수출수입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더불어 여가수의 스캔들까지 일간 스포츠신문처럼 줄줄이 꿰차고 있다. 고단한 노동 뒤에 이어지는 휴식시간에 모든 관심이 태평양 반대편에 자리한 고향에 햇볕을 모으는 돋보기처럼 집중되어 왔음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고향이란 무엇일까. 가난, 피치 못할 사정, 그 어떤 이유든 고향을 향하는 귀소본능을 막지는 못한다. 그가 우그러트리는 맥주 캔의 소리가 물소리처럼 들린다. 또다시 승무원에게 술을 청한다. 15년만의 귀향, 연어, 캐나다로 이민 떠난 모친의 친구분, 핫지 중에 죽어간 무슬림 노인. 알 듯 혹은 모를 듯한 연관성이 고향을 떠난 연어가 무럭무럭 크고 있는 베링 해를 지나는 노선 안에서 가슴으로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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