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안락사 실패기(?) 이후 20년
이원우
참 많이도 아팠다. 허풍이 심한 나는 가끔, 그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고소를 날리면서 혼잣말이다. 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어디 있었던가? 근래에도 코로나에 걸렸었다. 그 자체의 증상도 문제였지만, 뒤따른 후유증後遺症이 나를 나락奈落으로 떨어뜨렸다. 수시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두 달 만에 나았지만…. 한데 가수인 내게 치명적인 상처 하나를 남기는 게 아닌가! ‘고음高音 발성’의 불안정을 덧보태 놓은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노래는 무리하지 않게 연습하여, 옛 실력을 되찾기로 하면 되리라 믿어서다. 그 연장선상에서 서울이나 근교의 문학 모임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찾아, 축가를 부름으로써 이 난관을 극복하려 한다. 연습 과정過程도 치유에 도움을 주리라. 게다가 말이다. 우리 집엔 반려견(비숑)이 있다. 한창 재롱을 피울 때라서 녀석이 떴다 하면 온 집안이 웃음의 도가니로 변해, 가가대소가 따로 없다. 그게 또한 나를 병마로부터 떼어놓는 또 하나의 구실을 하고말고. 그런데 잠든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몸부림이 쳐지고 식은땀이 흐를 때가 있다. 반세기 전 ‘애견상’까지 받은 내가 실은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자책감의 엄습에 의해서라 하자. 뒤돌아보면 가슴이 찢어져야 할 만큼, 나는 개에 대해 오히려 죄를 지었으니…. 내가 아니었으면 살았을 반려견이, 나 때문에 죽은 경우까지 있다. 아직 다 고백을 못 했다. 특히 글로써 말이다. 오늘 들먹이는 경우도 그와 비슷하다. 퍽 조심스럽다. 명견 중의 명견인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가 있었다. 워낙 잘 생겨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썩 좋은 후손을 받아 돈도 벌 수 있을 거라 확신하며 키웠다. 실제 첫 배에서 받은 새끼들은 모두 팔려나갔고 손해는 보지 않았으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녀석을 돌보았다. 하나 녀석에겐 조리가 시원찮았던지 엄청난 불행으로 이어진 거다. 어느 날 나는 목욕시키려고, 대야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았다. 그러곤 반드시 애완견들에게 해 줘야 하는 ‘항문 짜기’를 서두르는데, 녀석이 이상하게도 평소와는 달리 허리를 동그랗게 하곤 펴질 않는 게 아닌가! 나는 그저 예사롭게 여기고 손바닥으로 그 부분을 조금 세차게 눌렀다. 그 순간 나는 소리, 우두둑! 녀석도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고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뻗어버리는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가까운 동물 병원에 갔더니 수의사가 척추에 손상이 갔다고 했다. 응급 처치하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불길한 예감을 거둘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르랴. 녀석 아니 ‘애’의 건강은 날로 나빠졌다. 움직임이 둔해지는가 싶더니, 다리를 질질 끌고 겨우 걸었다. 음식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할 정도로 변하고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 그대로였다.
근데 말이다. 나도 중환重患 중이니, 둘을 간호해야 하는 아내 혼자서 녀석을 제대로 돌보기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애가 너무 불쌍하지만, 더 버티게 하는 것은 되레 ‘사랑’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죄와 다름없는 ‘안락사’를 결심한 것이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건넸겠다? 그러자 아내는 대성통곡하면서 실신 직전에까지 이르는 게 아닌가! 양자택일(?)의 고통은 순간이어서, 이윽고 일어난 아내가 애를 안고 날 부축하여 동물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수의사에게 온 목적을 말하니, 그가 하는 단언이 둔기가 되어 내 머리를 쳤다. 지금 자기 손으로 도무지 주사를 놓지 못하겠다는 것! 살아 봐야 하루 이틀이라던가. 둘은 다시 애를 안고 귀가해야만 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 애를 케이지에 넣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도리밖에. 나도 녀석의 임종이 오늘내일 사이라는 체념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밤 한 시쯤 되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나를 깨운 것이…. 한데 아,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던 케이지 가로대에 턱을 걸치고, 애는 이미 숨져 있었다! 그날 밤의 상황을 여기에 더 적지 말자. 가슴이 터질지 몰라서다. 어쨌든 내 건강은 더 악화(惡化)될 수밖에. 그러나 애의 장례를 치러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삼베 수의를 입혀 화장까지 하는 데 제법 비용이 들었다. 화장장까지 동행하고 싶었으나, 내 겨우 발걸음을 떼는 처지에 그럴 수는 없었다. 이윽고 유해가 되어 돌아온 아이는, ‘아버지 어머니 그동안 눈물겹도록 감사했으며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는 인사말을 함函 바깥에 문자로 남겼다. 둘은 통도사 가까이 달려가 뼛가루를 그곳 냇물에 뿌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누선淚腺이 그때 망가졌는지 나는 옛날과 달리 눈물이 적어졌다. 그로부터 흐른 세월이 20년이다. 나는 이러구러 건강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고, 아내와 함께 딸 내외, 손자 둘의 효도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 거기다가 가족과 마찬가지인 쫑도 가세(?)하고 있으니 행복하다. 게다가 말이다. 바로 이웃에 24시간 진료 가능한 동물 병원도 있다. 반풍수 집안 망치듯이, 함부로 쫑을 안 다루어도 되는 터다. 중성화 수술을 했으므로, 산전産前 ‧ 후 고통을 안 겪어도 된다. 이 또한 녀석이 천수를 다하리라는 당위성 중 하나라 할까.
*원고량 13장 半
이원우 •76년 『새교실 지우문예』 3회 천료, 79년 『수필문학』 초회추천(김승우 발행), 81년 수필집 『밀려나는 새벽』 출간 등단, 83년 『한국수필』 2회 천료, 97년 『한글문학』 소설 신인상 •87년 수필부산문학회 입회 •국제PEN한국본부 이사(가입심의위원),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가톨릭문인회 이사, 대한가수협회 회원 등 •화쟁포럼문화대상(소설), 경기PEN문학대상, 경기문학인대상 등 •소설집 『연적의 딸은 살아 있다』 외 5권, 수필집 『열아홉 과부의 스물아홉 딸』 외 14권, · 기타 3권, 총 2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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