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원점의 흑막 호료범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드러나지 않게 혼신공력을 일으킨 상태였다. 호료범의 겉모습은 망신단의 노예,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목우(木偶)로 변한 듯, 무심한 눈빛을 흘리며 괴인의 말을 기다렸다. 괴인은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너의 선배(先輩)들이 있었다만, 모두 너만은 못했다!" "…" "너는 이 곳을 거친 모든 사람 중 가장 영리하고 가장 뛰어나다. 훗훗…!" "감… 감사합니다, 주인!" "너는 이제 십오 주야(晝夜)에 걸친 연공에 들 것이다!" "…" "너는 연공하는 동안 독단(毒丹) 천 알을 먹고, 마단(魔丹) 천 알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너의 내공은 현재보다 세 배 강해지고, 너의 장력은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독장이 된다!" "감사합니다, 주인!" "그 다음, 너는 명을 받게 될 것이다." "…" "명은 내가 내릴 수도 있고, 나의 신패를 가진 다른 사람이 내릴 수도 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든 명령받은 대로 행하라는 것이다!" "예!" "자, 이제 세 가지를 외워라!" "…" "따라 해 봐라!" "…" "나는…" "나는…" 호료범은 괴인의 말을 따라 했다. "나는 영혼을 주인에게 바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맹세는 깨어지지 않는다." "나는 영혼을 주인에게 바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맹세는 깨어지지 않는다." 호료범은 앵무새가 된 듯 괴인의 말을 따라 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괴인의 목소리가 아주 차분해졌다. "나는 변황제일인(邊荒第一人)이다!" 순간, 호료범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으으음, 왜 따라 하지 않느냐?" 괴인이 화를 내자. "나는…" 호료범이 입술을 달짝였다. "나는 폭풍마검(暴風魔劍)이다!" 순간, 괴인의 입이 딱 벌어졌다. "속였군?" 그가 자지러지게 놀랄 때. "푸우!" 호료범이 숨을 내뿜자,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갔던 세 알의 단약이 아주 빠른 속도로 천정으로 날아올랐다. "어어엇…?" 괴인은 깜짝 놀라 손바람을 일으켜 강기막을 만들었다. 다섯 겹의 강기막이 만들어질 때, 호료범의 입 안에서 튀어나간 단약이 그의 호신강기를 으스러뜨리며 들어왔고, 그의 얼굴 한 쪽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버렸다. 펑-! "으아악… 내 눈이…!" 괴인은 보리암기(普提暗器) 수법으로 쏘아진 세 알의 단약으로 인해, 왼쪽 눈알이 터진 채 뒤로 벌렁 넘어졌다. "흑혈탑주, 네놈이 변황제일인을 만들어 강호를 혼란시킨 놈이었구나! 이제야 마각(馬脚)을 드러내는구나!" 호료범은 크게 외치며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마조등천신법(魔鳥騰天身法)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작은 구멍 바로 밑에 이르렀다. 그 순간, 구멍 안쪽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작은 구멍이 단단히 닫혔다. 펑-! 호료범의 손에서 일어난 장력은 철판에 한 자 깊이의 장인(掌印)을 남기는 것으로 그쳤다. "교활한 놈!" 호료범은 찰나의 차이로 흑혈탑주를 죽이지 못하자, 화를 내며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하아앗-!" 항마신후가 철실을 뒤흔들더니, 호료범의 두 손바닥에서 시퍼런 기류가 일어나 철실 천정을 후려갈겼다. 꽈광- 꽝-!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쇳조각이 뿌려졌다. 호료범은 세 자 두께 강철판을 깨뜨리고 위로 날아올랐다.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를 때. "폭사시켜라!" "놈과 동귀어진(同歸於盡)하라! 나의 제자들아!" "저 놈과 함께 죽어라! 흑혈탑의 영웅들아!" "우우…!" 복잡한 통로 사방에서 흑의인들이 날아들었다. 통로가 사람 그림자로 가득 메워질 때. "폭(暴)- 풍(風)- 권(拳)-!" 호료범은 불사조(不死鳥) 같은 기세로 몸을 틀며 두 손을 어지럽게 흔들어 댔다. 대폭풍이 석실 안에 휘몰아쳤다. 메뚜기 떼처럼 달려들던 흑의인들은 강기에 휩쓸린 추풍낙엽이 되어 버렸다. 이게 웬일인가? 꽈광- 꽝-! 흑의인들의 몸뚱어리가 피투성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덩이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매캐한 초연, 그리고 뜨거운 바람이 일며 천정과 바닥, 그리고 좌우의 벽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종말(大終末)… 아, 거대한 기관은 동귀어진의 수법과 함께 산산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꽈르르릉- 꽝-! 집채만한 돌덩어리가 우르르 무너졌다. 기관이 통째로 화염에 휩싸이며, 대지진(大地震)이 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뜨거운 바람이 돌틈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재가 된 시체들, 불에 타서 일그러진 쇳조각들… 그런 것들이 바위 아래에서 삐죽삐죽 나와 있을 뿐, 산 것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파괴가 컸기에, 평화도 큰 것일까? 대폭발(大爆發) 후의 지옥도(地獄圖)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요한 지옥도가 되었다. 열기가 식으려면 몇 나절은 있어야 할 것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빛이 일어났다. 차고 날카로운 빛, 그것은 간간이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났다. 눈빛, 증오와 저주에 찬 눈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이었다. "처음의 변황제일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나, 최근의 변황제일인은 모두 흑혈탑에서 나왔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그것을 안 것만 해도 큰 수확이다! 이제 변황삼파와 흑혈탑이 한패가 아닌가만 알면 된다. 변황이 흑혈탑을 앞에 세워 두고 있는지 아닌지를 안 다음, 모조리 죽여 버리리라!"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우르르릉-! 바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나를 살해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만… 훗훗, 없앤 것은 나의 털오라기 몇 올에 불과하다!" 바위를 무너뜨리며 몸을 일으키는 사람은 바로 호료범이었다. 그는 극심한 내상을 입었다. 하나, 그가 얻은 수확은 내상과 바꿀 만한 가치 이상이었다. 변황제일인(邊荒第一人). 강호를 피로 씻던 변황제일인은 바로 흑혈탑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우르르릉- 꽝-! 호료범은 강기로 바위가 무너지는 것을 퉁겨 내며 걸어 나갔다. 얼마 후, 그는 갈기갈기 찢어진 옷을 걸친 채, 단애(斷崖) 위에 서게 되었다. 근처는 새벽이었다. 안개가 벼랑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호료범은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다가 흠칫 놀라워했다. "이럴 수가?" 그는 근처의 지형을 보고 자지러지게 놀랐다. 그가 서 있는 곳, 그 곳은 바로 비파애(琵琶涯) 뒤쪽의 벼랑이 아닌가? "으으, 복우산(伏牛山) 비파애 절벽 안이었단 말인가?" 호료범은 넋을 잃고 말았다. 휘이이잉-!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휘날리게 했다. 그는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럴 수가? 이게 꿈이 아니라면…' 그의 얼굴이 시꺼매졌다. 그의 발 아래 펼쳐진 호리병 모양의 분지(盆地), 그 곳은 바로 육합의문(六合義門)의 총단(總壇)이 있는 곳이었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호료범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다가 벼랑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그는 벽호공을 이용해 벼랑 아래로 갈 수 있었다. 새벽의 분지는 공허했다. 발자국이 무수한 모래밭, 그리고 텅 빈 수백 채의 석옥들… 어디를 봐도 인기척은 없었다. "죽림 안으로 가 보자!" 호료범은 몸을 날려 죽림 안으로 갔다. 일 식경 후, 그는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몸을 휘청였다. 죽림 한가운데는 잿더미였다. 육합부(六合府)는 철저히 파괴된 상태였다. 싸운 흔적은 전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병대협도 없고, 칠절미인도 없었다. "도깨비에 홀린 것이 아니라면… 으으, 나는 동정호까지 갔다가 육합의문으로 눈을 가린 채 되돌아온 것이다!" 그의 얼굴이 아주 창백해졌다. - 흑혈탑주를 죽일 수 있는 호기이네. 병대협의 말이 귓전에 쟁쟁했다. 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것으로 인정받은 사람, 호료범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며 실소를 흘렸다. "훗훗… 너는 천재(天才)다!" 그는 철퇴에 한 대를 맞은 표정이 되었다. 흑혈탑은 변황제일인이 만들어지는 장소였다. 육합의문은 변황제일인 때문에 뭉친 백도맹이다. 두 파는 원수이어야 하는데, 같은 장소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천하를 속였던 것이다!" 호료범은 병대협을 기억했다. 그는 철저한 위선자(僞善者)였던 것이다. '그는 변황제일인을 내세워 백도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런데변황제일인은 바로 그의 부하였던 것이다.' 호료범은 주먹이 으스러져라 거머쥐었다. "이 곳이 내가 함정에 빠진 사이, 흑혈탑에 의해 점령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내가 겪은 일이 꿈이 아니라면… 병대협은 바로 내가 찾는 자다!" 호료범의 목소리로 인해 근처 벼랑에선 산사태가 일어났다. 우르르릉-! 우레 소리와 함께 도처에서 낙엽이 졌다. 마차 안. "쿨룩… 쿨룩…!" 백의인 하나가 기침을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놈은 죽었을 것이다.' 그는 간간이 기침 소리를 냈다. 기침을 할 때마다 핏물이 토해졌다. 하나, 그것은 진짜 상처에서 나온 핏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백도천하를 취하는 대가로 희생하는 몇 방울의 피에 불과했다. '하나,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놈은 너무도 강한 놈이니까! 놈이 산다면, 놈의 주둥아리로 인해 천하를 잃고 말리라!' 그의 눈빛이 간혹 아주 차가와졌다. '하지만… 놈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두었으니, 최후(最後)란 내게 없다. 훗훗, 놈이 죽었다면 그만이고… 산다면 변화가 조금 있을 뿐이지.' 그는 차디찬 눈빛을 흘리다가 마차 밖을 향해 말했다. "자, 서두르자! 쿨룩… 쿨룩… 비파애의 거처를 과감히 버리고 떠나는 이상, 일말의 흔적도 없이 행동해 육합의문을 노리고 있던 모든 적을 철저히 조롱해야 한다." "예… 엣!" "태상문주, 속하들이 있습니다!"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고 떠날 날이 있을 줄 알고, 비밀 장소 한 곳을 마련해 두었었지. 거기 가면 비밀리에 키운 부하들이 있고, 비밀리에 만든 영단이 많다. 그것을 이용하면, 육합의문은 완전히 다르게 탈바꿈할 수 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두우- 두두-! 마차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호일금지 대폭풍탑(大暴風塔). 탑 주변은 예의 흑무(黑霧)가 뇌성을 동반한 채 흐르고 있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 "으으윽…!" 그 깊은 지하에서 청년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엄살이 심하십니다. 이제 고약만 떼면 되니… 호호… 꾀병은 그만 부리십시오!"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도 들렸다. 탑의 지하 석실 안, 청년 하나가 상체를 벗은 채 돌침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 곁, 아름다운 여인이 끈끈한 기름과 고약이 든 병을 들고 서서 청년의 몸에 난 화상(火傷)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으으윽…!" 청년은 약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신음 소리를 냈다. 하나, 그것은 아픔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어떠한 아픔 가운데서도 웃을 정도의 수양을 갖고 있었다. 그가 신음 소리를 내는 이유는, 아픔 때문이라기보다 미녀의 섬섬옥수가 너무도 나긋나긋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등판에는 상처가 허다했다. 신기한 것은, 그것이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간다는 것이었다. "탑주의 신체는 정말 특이합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복우산에서 죽었을 텐데…!" "수운 낭자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돌침상에 엎드려 있는 청년은 아주 아름다웠다. 섬약(纖弱)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의 근골은 너무도 잘 발달되어 있었다. 굳은 살은 하나도 없고, 삐쩍 마른 부분도 없었다. 그의 신체는 완전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바로 호료범이 아닌가? 그가 철저히 희롱당한 쓰라림을 지닌 채 자신의 집인 대폭풍탑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를 간호하는 여인은 황수운이었다. "그런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왜?" "탑주는 장수할 관상입니다. 게다가… 아주 많은 첩과 부인을 거느릴 운세입니다." "핫핫… 외상을 치유케 하는 금창약보다 그 말 한 마디가 더욱 힘이 되오!" 호료범은 크게 웃었다. 그 때, 성성(猩猩)이 울음소리가 나며 금빛 그림자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금모신후는 호료범 앞에 와 재주를 한 바퀴 돌았다. "핫핫… 내가 시킨 일을 거의 달성했다는 뜻이구나?" 끼이이-! 금모신후는 웃는 얼굴을 했다. "내가 곧 갈 것이니, 금색마조(金色魔鳥)를 탑의 꼭대기에 있게 하라!" 금모신후는 사람같이 포권을 취한 다음, 석실을 나섰다. 그 때 황수운은 비단 수건으로 고약을 닦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시킨 일이라니요?" "또다시 나타난 변황제일인을 잡는 일 말이오, 황 낭자!" "금모신후 스물여덟 마리 중 일곱 마리가 탑을 나갔는데, 벌써 변황제일인을 잡았단 말입니까?" 황수운이 크게 말하자. "금모신후 중 가장 약한 놈을 골라 비무해 보시오. 훗훗, 천 초를 버틴다면… 내가 낭자에게 절을 하겠소!" 호료범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금모신후의 무공이 그 정도라면, 대폭풍탑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문파입니다요. 호호…!" 황수운은 재빨리 준비해 둔 흑삼을 건네 주었다. 호료범은 흑삼을 걸치고 허리띠를 조인 다음, 덥석 황수운의 손을 거머쥐었다. "사매에게 부탁이 있소!" 사매라고 하자 정감이 더욱 짙어졌다. "무… 무슨 일이신지요?" 황수운의 뺨이 새빨개졌다. "형산(衡山) 축융봉(祝融峰)에 가서 한 사람을 데리고 와 주시오." "누… 누구를요?" "원미옥(元美玉)이라는 여인이오." "으으음…!" 황수운은 여인이라는 말에 조금 실망해 했다. "이 옥가락지를 갖고 가시오. 가서 이것을 보이시오. 그 여인이 이것을 알면 데리고 오고, 모르면 데리고 오지 마시오." 호료범은 지금 잡혀 있는 변황제일인의 손에서 빼낸 가락지를 건네 주었다. "예, 명대로 하겠습니다!" 황수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명이 아니오. 부탁이지. 그것을 오해하면 아니 되오!" "으으음…!" 황수운의 얼굴은 아주 탐스러워졌다. 호료범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나, 그는 그런 마음이 나는 찰나 황수운의 손에서 손을 떼어 냈다. "마조를 타고 가면 곧 다녀올 수 있을 것이오. 이 곳은 지킬 필요가 없으니 비워도 좋소!" 그가 조금 차게 말할 때. "흥! 이제는 나를 종으로 부려먹으려 하는군?" 문 쪽에서 노한 소리가 났다. 눈빛이 아주 찬 여인, 마제갈이 두 사람이 가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심한 질투의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마제갈은 무공을 금제당한 상태였다. "걸어다니는 것을 보니, 상처가 다 나았구려?" "폭풍마검! 나를 어쩔 작정이냐?" 그녀가 다가서자. "그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가 궁금한데? 금모신후 두 마리로 하여금 지키게 했는데?" 호료범이 팔짱을 끼자. "부처라도 속일 마제갈이다. 두 마리 금모신후는 내게 속아, 나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속다니?" "고수 놀이를 했지. 금모신후는 놀이에 지자 문을 열어 주었다." 마제갈은 더 다가섰다. 그녀는 몹시 악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보기일 뿐이었다. 그녀는 나약할 대로 나약해진 상태였다. 악독해 하는 이유는, 남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일 뿐이었다. "너희 둘이 모두 떠나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그녀가 차게 말하자. "흠, 그것도 그렇군!" 호료범은 손바닥으로 턱면을 쓰다듬었다. 잠시 후,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입술을 떼었다. "나갔다가 돌아오는 대로 너와 함께 객로합하(喀老哈河)로 가겠다!" "정… 정말이냐?" "그 대신 너는 나와 수운 낭자가 나갔다 오는 사이, 금모신후들을 독려해 폭풍탑의 건조를 완성시켜라!" "원숭이 두목 놀이라면 자신 있다. 호호…!" 마제갈은 그제서야 여인답게 웃었다. '강호에서는 악녀 중의 악녀인데, 속마음은 다정한 계집이다.' 호료범은 그녀가 아주 아름답다 여겼다. 특히, 간간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눈빛을 할 때의 모습은 아주 사랑스러웠다. '다른 것은 모르나, 한 말을 지키는 신의(信義)만은 있는 계집이다. 신의가 없다 해도, 이 곳을 도망칠 수는 없고…' 호료범은 그녀를 믿기로 하고, 그녀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제갈은 그가 휙 지나가자 조금 서운해 했다. '저 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강한 반면, 저 자의 가슴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아아, 잡힌 이후… 마음이 너무 약해졌다.' 그녀는 아무도 없게 되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공을 되찾으면 마음이 다시 모질어지리라! 그러나 나는… 지금 이런 상태로 지내는 것이 좋다. 무공을 다시 찾고, 남을 조롱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아아…!' 마제갈은 얼굴을 푹 떨어뜨렸다. 탑 위. 골조만 엉성한 대폭풍탑 위에 한 마리 금색마조가 있었다. 마조는 한 사람이 다가서자, 반가워 날갯짓을 했다. 끼이이-! 마조가 다시 한 번 울 때. "방금 전 돌아온 네게 다시 만 리를 날게 한다는 것이 미안하나, 지금은 바쁜 때이니… 하는 수 없다!" 청년은 마조의 등 위로 사뿐히 올라갔고, 마조는 신이 나는지 큰 날개를 흔들다가 위로 쭈욱 솟아올랐다. 휘이이잉-! 금색마조는 곧바로 오백 장 높이로 날아올랐다. 그것은 진도에 구애받지 않고 대폭풍탑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방법이 아니라면, 기문진을 겪은 다음에야 대폭풍탑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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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했습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