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자非常識者
불교에는 완전 다른 두 가지 불교가 있다.
하나는, 소승불교 이것은, 출가자중심의
계율위주의 공부하는 상식의 수행불교이다.
또 하나의 대승불교는, 상식을 초월한
탈상식·비상식의 불교를 말한다.
그런 사람을 보살이라고 부른다.
대승불교의 대표격이 유마 거사이다.
그는, 보석으로 몸을 꾸미지만,
몸에 갖추어진 품격이 있다.
음식을 좋아하지만, 음식의 진실한 맛을 알고 있다.
도박장에 출몰하여 그것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을 인도한다.
불교이외의 연구도 활발히 하지만,
불교에 대하는 신념은 확고부동하다.
여러 학문을 배우지만, 불법만을 즐기고 있다.
유마는, 열심히 장사도 하여 돈을 번다.
여러 장소, 학교나 환락가, 주점 등에 출몰한다.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난다.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을 행복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유마 거사는, 품행방정한 측면과
호탕호방한 면을 겸해 갖추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이상의 인물상이다.
“상식을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한다면,
상식적인 사람과
탈상식·비상식적인 사람과
그리고, 몰상식한 사람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뉜다.
이 모든 것은 어떤 쪽이
좋고/나쁘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이일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상식적인 사람은, 사회를 유지하고,
탈상식·비상식의 사람은,
사회를 개선·변화시키고,
몰상식한 사람은 사회를 망친다.
이것은, 상식을 모르는 만큼 죄를 짓고,
아는 만큼 보이고,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공부하라고 호소하는 것은
공부하는 그곳에서 의식양이 넓어지고
시야도 따라 높아진다.
생각과 시야의 증식에 따라
말도 행동도 달라진다.
그만큼 반경이 높고 넓어지는 것이다.
매의 눈과 개미의 눈을 갖추게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하면 관계의 질, 삶의 질이 달라진다.
곧, 인생의 폭과 깊이는,
공부하는 것의 양과 질에 비례한다.
다다이즘dadaism(기존의 모든 가치나 질서를
철저히 부정하고 야유하면서,
비이성적, 비심미적, 비도덕적인 것을
지향하는 예술 사조)이란 말이 있다.
‘다다이즘’에서 주철환(피디)은 ‘더다이즘’이라는 말을 창조한다.
‘더다이즘’이란 말은, ‘더 잘사는 것도 좋지만, 다 잘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렵게 깨달은 한 조각의 단어였다”라고 하면서,
“이왕이면 ‘더’보다는 ‘다’를 더 큰 글씨로 쓰고 싶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나’를 내세우려고 기쓰면서 말꾸미는 ‘기어綺語’를 하기보다는,
‘다’를 내세울 수 있는 겸손의 ‘애어愛語’를 보시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 지금이다.
또, 주철환(피디)의 목표는, ‘감지덕지’라고 말한다.
‘감지덕지’의 원래의 사적적의미는,
‘분에 넘치게 감사하게 생각함’이다.
그런데, 주철환은,
‘감성, 지성, 덕성을 갖춘 지도자’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천명’을 넘어 ‘이순’의 나이가 되어
누군가를 이끌어줘야 할 때,
갖추어야 할 지혜로서 그는, ‘감지덕지’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감성의 시작은, 드라마 <다모>의 명대사,
바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하는 연민이다.
지성의 시작은,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겸양이다.
덕성의 시작은,
남의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는 야량이다.”라고.
대승불교의 보살은, ‘감지덕지’를 갖춘 리더를 말한다.
감성과 지성과 덕성을 갖추고, 상대에 맞은 방편을 구사하여
상대를 한단계 위로 이끌어주는 지도자이다.
불교를 자칭 공부한다는 당신은,
‘상식인’인가?
‘몰상식인’인가?
아니면 ‘탈상식·비상식인’인가?
정말, 부끄럽다.
‘감지덕지’를 못 하고 있는 자신이.
-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