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맛집 친구들과 떠나는 부산평화역사기행
"부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일본과 연결되는 개방적 도시! 영화 '친구'가 떠오르는 우정! 코 끝 비린 자갈치 시장의 내음!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 인심좋은 돼지국밥! 친구들과 무작정 떠나는 기차여행! 모두가 부산이고, 그만큼 다양하고 특별한 느낌을 지닌 감성의 도시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부산은 역사속에 평화를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였다.
창비에서 출판된 '대한민국 평화기행'에서는 부산을 평화의 관문이라 표현한다. 한반도의 분단상황에서는 부산은 후방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라! 임진왜란,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모두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6.25전쟁 또한 전세가 밀릴때 부산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쳤을 뿐만 아니라 피난민들이 몰렸던 곳, 그래서 이 책은 부산을 '한반도의 또 다른 최전선'이라 표현한다.
"선생님! 저 기차를 처음 타 봐요!", "선생님! 우리 바다도 가는 거예요?", "선생님! 부산에는 뭐가 있어요? ", "야! 나 간식 싸왔는데, 같이 먹을래?", "야! 너 오늘밤에 뭐할거야? 나랑 같이 놀자!"
기차를 타는 아이들이 신이 났다. 조잘조잘 말도 많고, 흥이 넘쳐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보니, 지금까지 여행을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다. 2박 3일의 앞으로 '독서맛집'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기대가 된다. 계획하길 잘했다.
'마음성장 독서맛집'은 김기현 작가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희망의 인문학, '마음성장 독서맛집'은 한부모 탈북 배경 가정의 자녀들에게 양질의 인문학 교육을 해보자라는 취지의 독서동아리이다. 아이들이 장차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을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계획된 부산평화역사기행은 창비 출판사에서 나온 '대한민국 평화기행'에 소개된 부산의 지역들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계획되었다. 평화의 감수성을 기르고, 친구들끼리 좋은 추억도 쌓게하고, 더하여 김기현 작가님도 만나는 1석 3조의 시간을 갖을 것이다.
첫째날, 우리는 부산역에 도착하여 바로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인 박차정 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찾았다. 일신여학교는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여학교이다. 이 곳은 부산 최초로 3.1독립만세운동을 벌인 학교이기도 하다. 1929년 박차정은 일신여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의열단의 약산 김원봉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3,4학년의 여학생들이다. 아이들이 멋진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첫 코스로 이 곳을 선택하였다.
일신여학교를 찍고, 조금 내려오면 좌천동굴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방공호로 개발된 동굴인데, 한국전쟁때는 피난민들의 피난처로, 이후에는 민방위교육장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지역 주민들의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리조리, 왁자지껄 동굴 탐험까지 마치고, 드디어 숙소로 이동. 이제 작가님과의 만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책을 작가를 만나는 것이 신기한지, 서울-부산간 긴 여정도 피곤하지 않은 기색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궁금한 부분을 질문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둘째날, 백산기념관을 찾았다. 백산 안희제선생, 그는 일제강점기때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업을 했던 사람. 자칫 돈의 노예가 되는 물질만능주의의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돈을 사용하고 이용해야 하는지, 그를 통해 배우게 된다. 우리 아이들의 시대에는 지금보다도 더 경제적 양극화가 심할텐데, 적어도 우리 아이들만큼은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다음 코스로 이동해 본다.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시대의 흔적을 봤다면, 이제는 민족 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의 흔적을 탐방한다. 우리는 피난민들의 애환을 들여다 볼수 있는 40계단과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하였다. 40계단위에서 살았던 피난민들은 저 멀리 부산항에 배가 들어오는 것이 보이면, 먼저 일을 구하기 위해 앞다투어 뛰어 내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을 오르락 내리락, 고단한 생활을 했던 피난민들, 그들은 영도다리 위에 뜬 달을 보며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려온다. 아이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예사선생님의 실감나는 당시의 문화소개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까지 답답하고 힘든 과거의 흔적을 봤다면 이제 끝없이 펼쳐지는 겨울 바다를 보며 생각을 환기하는 시간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멋진 다리가 있는 광안리 바닷가에서 지난 이틀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생각해 본다. 가슴이 뻥 뚤릴 것 같은 바다앞에 서 있는 우리 아이들, 그동안 받았던 학업 스트레스가 날아가기를 바라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길 바라며,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아픔을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마지막 셋째날, 이제 부산의 역사 중 평화를 위한 노력들의 흔적을 탐방한다. 부산에는 전세계 하나뿐이 없는 기념묘지가 있다. 바로 유엔기념묘지가 있다. UN군이 창설한 이후 참전한 유일한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유엔기념묘지에는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한 11개국의 2311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이들은 누구의 아들이자, 누구의 가족이다. 이 묘지에는 자신들과 상관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묻혀있다.
아이들과 함께 유엔기념묘지가 있는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저기 앞에 보이는 튀르키예 깃발이 보인다. 튀르키예는 얼마전 큰 지진으로 많은 사상자가 난 지역이다. 우리를 위해 싸워줬던 그들 앞에 서서 그들의 조국인 튀르키예가 하루 빨리 복구되고 회복되기를 위해 잠시 기도해 본다. 아이들도 사뭇 진지하게 기도한다.
일제 강점기에서 분단, 전쟁과 평화를 위한 노력들, 이제 독서맛집 친구들과 떠나는 지난 3일간의 부산평화역사기행이 끝났다. 바라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추억이 하나 쓰여졌기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새겨졌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