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해궁랑(海弓郞)의 비밀(秘密) 해궁도 기슭. 포구(浦口)를 향해 다가서는 한 척의 쾌속선이 있었다. 다른 배들은 모두 바다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 배 만은 아주 빠른 속도로 포구를 향해 다가서는 것이었다. 삐이이익-! 쾌속선 위에서는 호각 소리가 연발 났다. 호료범은 검발을 보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무슨 일 같소?" "귀하가 상관할 일은 아니니, 걱정 말게." 검발은 몹시 차게 말한 다음, 배를 포구에 댔다. 그가 호료범과 함께 내릴 때. "검삼도주(劍三島主)!" "큰일입니다. 옥작약 소도주가 납치당하셨다 합니다!" "괴고수들이 나타나 선박 천 척을 불지르고, 사람 오백여 명을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무차별 죽였습니다!" 십여 명이 분기탱천한 얼굴로 다가섰다. "오백이나 죽고, 배가 불탔다고? 으으, 옥작약이 잡혔다고?" 검발은 몸을 휘청였다. "어떤 무리들이 해궁파를 쳤단 말이냐! 해궁파의 철저한 복수를 모르는 자가 있단 말인가?" 그의 눈에서 살광이 쏟아져 나왔다. '온화해 보이나, 해궁파의 존망에 걸린 일에는 결사적이다. 그것이 바로 해궁파를 키운 원동력일 것이다.' 호료범은 조금 무관심해 했다. 하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게 빛나고 있었다. 검발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어서 가세!" 그는 경신술을 이용해 해궁도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해조약파신법(海鳥掠波身法)으로 움직였다. 호료범은 단 오 성 공력으로도 아주 여유 있게 그를 따를 수 있었다. 검대(劍臺). 그 곳은 해궁도의 성역(聖域)이었다. 검대란 아주 너른 흰 바위를 말했다. 그 곳은 해궁자가 심득을 얻어 해궁파천황검을 창안한 장소이기도 했다. 세 명의 청의노인이 시립한 채로 있고, 그 맞은편에는 얼굴이 청수한 중년인 하나가 배첩 하나를 펴 보고 있었다. "그… 그가, 세상을 피로 씻기를 시작하는군. 그럴 자라는 것은 알았으나… 으으…!" 중년인의 신색은 몹시 나빴다. 그와 함께 있는 세 노인은 해궁삼로(海弓三老)였다. 천노(天老), 지노(地老), 인노(人老). 이들은 해궁자를 중원에서부터 따르던 해궁검파의 호법들이었다. "놈들은 너무도 쾌속했다 하오, 대도주(大島主)!" "시산혈해 속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소. 육이도주(陸二島主)는 쾌속선을 몰고 나갔고, 검삼도주도 출타한 후인지라… 하는 수 없이 연검 중인 대도주께 갖고 온 것이오." 천지인 삼노가 벌레 씹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휘잉-! 파천검서생 검발이 아주 빠른 속도로 검대 위로 올라섰다. "호법들! 여긴 어인 일이오?" 검발이 묻자. "소식을 받고 오셨군요?" 천지인 해궁삼노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어찌 된 일이오?" 검발이 재촉하자. "무자비한 놈들이었소. 그리고 지독하게 거만한 놈들이었소. 해궁도 사람 오백여 명을 죽인 다음, 배첩을 두기까지 했소이다!" 천노가 말하자. "배… 배첩?" 검발의 눈에 핏발이 돌았다. "대도주가 보고 계신 것이 그것이오!" 천노는 청수한 중년인을 슬쩍 가리켰다. "사… 사형!" 검발은 중년인 가까이로 갔다. 중년인은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목검이, 그의 왼손에는 배첩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검발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검발의 안내를 받고 나타난 호료범을 보고 있었다. "네… 네가 여기까지 오다니… 으으…!" 그는 호료범을 보고 눈에서 혈광을 일으켰다. 호료범도 그를 보고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다.' 호료범은 중년인을 유심히 살펴봤다. 중년인의 이목구비는 아주 준수했다. 젊었을 땐 뭇 여인을 울렸을 만한 용모였다. 놀라운 것은, 그의 용모가 호료범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나와 비슷하다니…' 호료범은 몹시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설마… 저 사람이 바로 반도(叛徒)라는 해궁랑(海弓郞)일까?' 호료범이 중년인을 볼 때, 중년인의 입술이 달짝였다. "대단한 인물인 줄은 알았으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는 전음으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낯익었다. "어어엇…!" 호료범은 그 목소리를 듣고 한 인물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연상이었다. '설마… 이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철강시(鐵疆屍)로 만승기루의 노예가 되었던 흑의인마(黑衣人魔)란 말인가?' 그는 중년인의 다리 쪽을 봤다. 중년인은 두 다리가 없는 불구자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아주 옅은 상처 자국이 있었다. "설… 설마…?" 호료범이 말을 더듬자. "내가 여기 있는 줄은 몰랐겠지? 그러니까 버젓이 왔겠지!" 중년인은 또 한 번 전음으로 말한 다음 검발을 봤다. "사제!" "예, 사형!" 검발은 얼른 허리를 숙였다. 검발의 사형, 중년인은 분명 해궁랑이었다. 그가 흑의인마라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승기루 사람들은 해궁랑을 찾아 삼십 년을 허송세월하지 않았던가? 한데, 흑의인마가 바로 해궁랑의 화신(化身)이었단 말인가? 검발은 해궁랑을 몹시 존경하는 듯 보였다. 그가 해궁랑의 말을 기다릴 때. "두 가지 부탁이 있네!" "무엇인지요?" "하나는 삼노와 더불어 여기를 물러나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 하나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네!" "관이오?" "명대로만 해 주게!" 해궁랑의 손이 흔들리며 암경이 일어났다. 검발은 저절로 떠올라 뒤로 물러났고, 천지인 삼노는 해궁랑의 손속을 보고 기쁜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검발은 해궁삼노와 함께 꽤 먼 곳으로 물러났다. 남은 사람은 호료범과 해궁랑뿐이었다. 해궁랑은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띄웠다. "과거 이야기는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흠…!" "그리고… 비밀은 지킬 것이다." "그럼… 나의 생각이 맞는단 말인가? 우리가 서로 구면이라는 것이?" "훗훗…!" 해궁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흑의인마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전음으로 말했다. "나는 해궁랑이라는 사람이다. 나는 중원고수 만허생에게 속아 중원으로 나갔다가 암습당했다. 나는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한 가지 괴질을 얻었다. 그러다가 기억을 잃었고… 아주 우연히 본도 사람들에게 구출되어 삼십 년을 같이 지냈었다!" "으으음…!" "그들이 나를 몰라본 이유는, 내가 두 다리를 잃고 얼굴이 으스러진 데다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었지!" 해궁랑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 어찌 들으면 배은망덕하다 할 정도로. "중원인은 하나같이 음험하고 교활하다. 훗훗, 그들은 한때 나를 철저히 이용하기도 했었다." "이용?" "오랜 일이고…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여간… 나는 중원에 대한 원한이 극심한 상태로 여기에 왔다!" "…" "나는 죽을 작정으로 왔다. 그러나 사부는 자비스럽게 나를 맞이했다. 사부는 내가 속았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다!" 해궁랑은 간간이 이를 갈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뻣뻣이 곤두선 상태였다. "나는 중원 이야기를 할 때, 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적이기는 하나, 너를 존경하고 네게 빚졌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너는 다른 중원의 악도들하고는 다르다고 여겼었다. 하나, 너도 결국 철저한 위선자였다!" "위선자?" "봐라, 네놈 것을!" 피이이잉-! 해궁랑의 손에 쥐어졌던 배첩이 호료범의 얼굴로 쏘아졌다. 호료범은 접인수(接引手)로 배첩을 받아 쥐었다. 손가락이 조금 뜨끔했다. 해궁랑의 공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해궁자의 신뢰를 받을 만한 사람이다.' 호료범은 해궁랑에게 감탄해 하며 배첩을 봤다. <폭풍첩(暴風帖)> 그 위의 글이 그를 놀라게 했다. "으으…!" 호료범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폭풍첩에 적힌 글, 그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변황삼파(邊荒三派)는 중원의 적이기에, 모조리 쳐죽인다. 변황의 무리를 죽이는 일은 죄가 아니다. 본좌 폭풍탑주는 반 년 안에 무림을 장악할 것이다. 용기가 있는 자는 폭풍탑으로 와서 도전하라!> 실로 믿지 못할 일이었다. "이… 이게 뭐냐?" 호료범이 폭풍첩을 들고 묻자. "네가 너의 수하들을 부려 해궁검파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 남긴 것이 아니냐?" "내… 내가?" "철저한 놈! 연극까지 잘해 내는군. 하나, 나는 너를 알고 있다. 폭풍마검… 바로 네놈이 폭풍탑주라는 것을!" 해궁랑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웅…! 그는 목검을 쳐들며 검강을 쳐내 몸을 가렸다. 이내 해궁랑의 몸은 사라지고, 지독한 검기만이 남았다. "폭풍탑주! 너는 흑의인마가 해궁랑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제 모습을 하고 오지 않았을 테니까." 위이이잉-! 검강이 오 장 길이로 일어났다. 일순, 검파가 폭풍처럼 밀어닥치며 검대가 거북이 등가죽처럼 갈라졌다. 검화 송이가 하나둘 피어 오를 때, 호료범은 마조등천신법으로 칠 장 떠오르며 손을 휘저었다. "멈춰라!" 꽈르르릉-! 그의 손이 핏빛으로 물들며 무서운 강기가 일어났다. 팍-! 검강과 강기가 부딪치자, 무서운 폭음이 일어났다. 해궁랑은 그 자세를 유지한 채 삼 장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검강은 조금도 흩어지지 않았다. "나를 멈추게 하는 길은… 나를 죽이는 길뿐이다!" 그의 목검은 천하의 어떤 보검보다도 날카로웠다. 파팍- 팍-! 이십 장 안이 검강에 휘말려 산산이 으스러질 때. "원래 검대 위에 있는 자를 쳐죽이려 왔다. 하나, 이제는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네게 사실을 알려 준 다음, 죽이리라!" 호료범은 벌써 이십 장 높이 떠올라 있었다. "더 강해졌군?" 해궁랑은 핏빛 보검이 뽑히는 것을 보며 급히 검을 고쳐 잡았다. 그의 몸이 빙빙 돌며 수천 개의 검영이 일어났다. "해(海)- 궁(弓)- 파(破)-천(天)- 황(荒)-!" 츠측- 측-! 삼백육십오 가닥의 검기(劍氣)가 누에실같이 뿌려질 때. "폭풍팔십일식(暴風八十一式)-!" 호료범의 몸이 핏빛 광막(光幕)에 잠기며 여든한 군데에서 혈영(血影)이 흘렀다. 우르르르릉-! 흰 기류와 붉은 기류가 뒤엉키며 검대가 산산이 으스러졌다. 모든 것이 산산이 으스러져 버릴 때. "크으으…!" 해궁랑은 목검을 부러뜨린 채 뒤로 훌훌 날고 있었다. 반면, 호료범은 너덜너덜한 옷자락을 흔들며 허공에서 몸을 바로잡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삼백육십오 개의 검흔이 있었다. 물론, 피부에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혈수미교 최고 절기를 몰랐다면… 몸이 벌써 잘렸다.' 호료범은 자신이 내공으로 승리했음을 알았다. 해궁랑은 칠 장 퉁겨 나가다가 송림(松林)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으으…!"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그의 가슴에는 여든한 개의 검흔이 있었다. 그의 얼굴색은 아주 창백했다. "폭풍마검… 어이해 죽일 수 있는 데도, 죽이지 않는 게냐?" 그는 호료범이 다가서는 것을 보며 얼굴을 더 찡그렸다. "네게 밝힐 것이 있다. 그래서 몇 수 접어 준 것이다!" 호료범은 몹시 오만했다. "네… 네놈 따위에게 또다시 동정을 받다니… 검파의 명예가 나로 인해 철저히 추락하는군!" 해궁랑은 호흡 소리를 격하게 냈다. 그는 내상보다 심한 영적인 충격을 느끼는 듯했다. "고… 고질이 도지는군… 으으…!" 그의 얼굴은 대취(大醉)한 사람의 얼굴같이 붉어졌다. 그의 입술 사이에서 피거품이 흘러 나왔다. "고… 고질이라니? 철강시(鐵疆屍)에서 벗어나며 모든 상처를 회복했다고 아는데… 고질이라니?" 호료범이 다가가 묻자. "나… 나는 만허생이란 자에게 두 다리를 잘렸다. 나는 그 때, 독장에 당해 바다 속으로 떨어졌었다. 구사일생(九死一生)하기는 했으나, 기혈이 뒤틀려 기억을 잃고 말았다. 그것이 네 덕에 나았었는데… 이제는 과거의 병이 도졌다! 모두 나의 운명일 것이다!" 해궁랑은 괴로움을 이길 수 없는 듯, 눈을 꾹 눌러 감았다. "크으으…!" 그가 비명 소리를 내자, 호료범이 즉시 손을 내밀어 그의 천령개(天靈蓋)에 손을 댔다. '무슨 고질이란 말인가?' 그는 미륵수미공(彌勒須彌功)을 일으켜 해궁랑의 몸 안으로 진기를 불어넣어 주려 했다. 잠시 후, 호료범의 얼굴이 아주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진기가 들어가지 않다니… 마치 밑 빠진 독 같다니…!" 그는 해궁랑을 바라봤다. 해궁랑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이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인데…?' 호료범은 몹시 의아해 하며, 그의 혈도 백여 군데를 샅샅이 살펴봤다. 얼마 후, 그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전에 없던 것이 있다.' 그는 해궁랑을 다시 바라봤다. "철강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이 사람의 숨은 고질을 도지게 한 것이었다. 그… 그것을 몰랐었다. 철강시공법(鐵疆屍功法) 덕에 특이체질이 숨겨졌었던 것을…!" 호료범은 땀을 줄줄 흘렸다. '육양절맥(六陽絶脈)의 흔적이 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흔적이 있다. 이 사람은 그래서 총명하고, 그래서 공력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이다.' 육양절맥! 그것은 몹시 특이한 체질이었다. 육양절맥은 겉보기엔 남다른 데가 없다. 한 가지 특징이라면, 범녀(凡女)와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하나, 거기에는 무가(武家)의 비밀이 있었다. <육양절맥에 걸린 사람은 범인보다 여섯 배 총명하다. 그리고 힘을 쓰면, 여섯 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나, 그것은 잠재력의 폭발에 불과하다. 내공을 한 번 쓴 후 오랫동안 정양하지 않으면, 내공을 되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육양절맥의 특징이다. 일컬어 화복(禍福)이 동시에 있는 체질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성수신의가 전한 의서 중 한 구절이었다. "육… 육양절맥!" 호료범은 해궁랑의 얼굴을 살펴봤다. 그의 얼굴은 자신과 너무도 비슷했다. 그의 두 다리는 무릎 위부터 끊어진 상태였고… 호료범은 오랫동안 마른침만 삼켰다. 그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말 한 마디, 그것은 바로… - 나의 아버지… 아버지라는 말이었다. '해궁랑은 육양절맥의 상태인지라, 성취가 남달리 빨랐을 것이다. 그리고 가짜 만허생 할아버지의 공격 속에서도 구사일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 기억을 잃은 이유도, 육양절맥이 기혈을 뒤집었기 때문일 것이고… 철강시에서 깨어나자, 다시 육양절맥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먹인 영약 덕에 육양절맥이 거의 사라졌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 나와의 비무로 인해 다시 도졌을 것이다.' 호료범은 땀을 줄줄 흘렸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은 해궁랑의 모습과 아주 비슷했다. '두 다리가 없고, 얼굴이 흉한 자… 그리고 육양절맥… 기억을 모르던 자… 나와 얼굴이 같은 사람…' 호료범은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기조차 힘든 정도가 되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호료범은 냉풍(冷風)을 느끼며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철저히 포위당한 상태였다. 그를 보며 치를 떠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육불영(陸佛英). 그녀는 해궁삼십육천강검사(海弓三十六天剛劍士)와 더불어 호료범과 해궁랑 주위를 완전히 포위한 상태였다. 육불영은 아주 잔혹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떼었다. "폭풍마검! 사부가 어이해 네게 해궁적우령(海弓赤羽令)을 주었는지 모르나, 그것이 너를 살리지는 못할 것이다!" "뭐… 뭐라고?" 호료범은 그녀의 말뜻을 잘 알지 못했다. "호호… 해궁적우령은 사부의 신물(信物)이다. 그것을 갖고 하는 명령은, 곧 사부의 명이다. 얼마 전이었다면, 나는 그것 아래 굴복했을 것이다!" "그… 그런데…?" "하나, 이제는 다르다. 나는 지금 중원인 모두를 죽일 작정을 했다!" "으으음…!" 호료범은 쓴 숨소리를 내는 가운데, 냉정을 되찾았다. "중원의 대폭풍탑주가 우리를 건드렸다. 그 자는 부하들을 부려 우리들을 해했고, 옥작약을 납치해 사부를 금제시켰다. 사부는 실의에 잠겨 있으나, 중원을 치는 일은 더욱 앞당겨지게 되었다!" "…" "사부는 옥작약이 죽을까 봉검(封劍)하자 하셨으나, 나는 그럴 수 없다. 어린 계집 하나가 어찌 해궁검파를 막겠느냐? 그 놈들이 그 아이를 죽이건 말건, 상관없다. 오늘 네놈 폭풍마검을 죽이는 것으로 중원 침략을 시작할 것이다!" "폭풍탑에 원한이 많군." "천하쌍폭(天下雙暴)을 모조리 죽이리라. 네놈 폭풍마검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나서, 폭풍탑으로 쳐들어가 그 곳을 쑥밭으로 만들리라! 옥작약이 죽는다면… 그 아이의 명이 본시 짧기 때문일 것이다!" 육불영은 옥작약을 입에 담으며 눈물을 흘렸다. - 폭풍탑으로 쳐들어가… 호료범은 그 말에 묘한 기분이 되었다. '죄를 폭풍탑에 덮어씌울 만한 자, 해궁검파를 동요시켜 폭풍탑을 교란시키는 자는… 바로 그 자다.' 호료범은 서쪽을 봤다. 대륙이 있는 곳, 폭풍탑과 흑혈탑이 있는 곳. 호료범의 눈빛에서 잠시 사라졌던 신광이 다시 일어났다. '필경 일이 생겼다. 흑혈탑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어쩌면 혈수미궁이나 비타궁에도 일이 벌어졌을지도…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면, 죽을 무덤을 제 스스로 파는 일이 될 것이다. 변황이파가 이미 폭풍탑임을 모르는 자가, 철저하게 제 죽을 꾀를 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몹시 침착해질 수 있었다. 그는 땅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이분을 구하는 일이지!" 그는 쓰러진 해궁랑을 팔과 허리 사이에 꼈다. 순간. "으드득! 인질을 쓰다니…" "천한 놈! 그분을 어서 내려놔라!" 육불영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노할 때. "나를 해궁자에게 안내해라!" 호료범의 목소리가 섬을 들썩이게 했다. "크으!" "어이쿠! 고막이 터졌다!" 육불영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두 손으로 고막을 틀어막으며 벌렁벌렁 넘어졌다. "너… 너의 내공이 이 정도더냐?" 육불영은 세 걸음 물러나 얼굴을 잿빛으로 물들였다. 그녀는 그제야 태산을 알아본 것이었다. 해궁석부(海弓石府) 안, 노소(老少)가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흰 돌을 쥔 쪽은 젊은이였다. "제가 또 이긴 듯합니다!" "정말 묘수(妙手)네. 헛헛…!"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그는 해궁검파를 세운 변황제일기인 해궁자였다. "벌써 다섯 판을 내리지다니… 헛헛… 그것도 아홉 점을 붙이고도!" 해궁자는 웃으며 투석(投石)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침상 가로 다가가게 되었다. 침상 위에는 중년인 하나가 누워 있었다. 그의 정수리에는 오금혈침(烏金血針) 하나가 박혀 있었다. 노인은 그를 보며 입술을 벌렸다. "이 아이의 운명은 몹시 기구하네. 헛헛…!" "…" "무진 시련을 겪었고, 무진 슬픔을 겪었지. 하나, 결국 하늘을 받칠 기둥 하나를 만들었으니…!" 노인은 청년을 바라봤다. "자네가 정말 해궁랑의 아들이란 말인가?" "십중팔구 맞습니다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확인하려 한 일이 벌어진 후에나, 사실이 입증될 것입니다!" 청년은 바로 호료범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궁자에게 모두 한 후였다. 과거였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마음이 나약해서 부모를 그리는 것일까?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너무도 완숙했다. 그러기에 이제는 신세가 어떻다 해도 간과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믿고, 모든 것을 해궁자에게 말했던 것이다. 누운 사람은 해궁랑이었다. 그는 검대에서 쓰러진 이후 줄곧 누워 자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 침을 꽂은 사람은 바로 호료범이었다. 해궁석부의 접객실. 호료범은 해궁자와 차를 나눠 마시며 상승검도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찻잔을 비웠을 때, 문이 열리며 육불영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호료범이 사부와 함께 담소하는 것을 지극히 혐오하는 눈치였다. 하나, 그녀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녀가 탁자 가까이로 다가설 때. "너를 부른 이유는, 한 가지를 묻기 위함이었다!" 해궁자가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그것은… 중원에서 세운 만승기루에서 거둔 바 있던 흑의인마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것인지요?" "그를 어디서, 어떻게 발견했는지 말해 봐라!" "예!" 육불영은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그는 배를 타고 떠돌다가 발견되었습니다." "…" 호료범은 숨을 죽이고 귀담아 들었다. "당시 그는 기혈이 몹시 허한 상태였습니다. 그를 철강시로 만든 이유는, 그를 이용하자는 것뿐만 아니라… 그를 돕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돕다니?" 해궁자가 날카롭게 묻자. "그는 당시 아주 처량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를 구하기 위해 몇 가지 추궁과혈(推宮過穴)을 해 봤습니다만, 하나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버려 두면 죽을 것 같아, 강시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흠…!" "제가 말씀드린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육불영이 허리를 숙일 때. "당시 그가 지닌 물건 중, 한 알의 야명주(夜明珠)가 있었느냐?" 해궁자의 목소리는 몹시 차가웠다. "사… 사부님이 그것을 어찌 아시는지요?" 육불영이 입을 딱 벌릴 때. "크으으…!" 호료범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침통한 숨소리를 냈다. - 네 아버지 되는 사람은 만 냥짜리 보석을 지닌 채 배에 태워져 보내졌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조물주도 모른다. 만허생이 자신의 비정을 뉘우치며 해 준 유언은, 그가 한시도 잊은 바 없는 말이었다. 그가 눈시울을 붉힐 때, 해궁자의 손이 그의 어깨를 덮었다. 그는 호료범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육불영에게 말했다. "푹풍마검은 정식으로 해궁도의 제이대도주(第二代島主)다!" "예… 에?" 육불영의 옷이 풍선같이 부풀었다. "폭풍마검은 가장 무서운 해천일자검결(海天一字劍訣)을 알고 있고, 얼마 전 노부와 바둑을 두며, 해궁파천황검을 얻었다. 그는 대구식, 소구식, 해궁삼재검식에 더해 광풍칠절초(狂風七絶招)를 더해 해궁파천황검을 천하에서 가장 완벽한 초식으로 만들었다!" "사부! 어찌 저 자를 도주로…?" 육불영이 털썩 쓰러지자. "모든 것은 이제 도주에게 물어 봐라. 옥작약을 찾는 일도 도주의 명에 따라 행하라! 도주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라! 알겠느냐?" "사… 사부…!" "고약한 것! 대답하지 못하겠느냐?" 해궁자가 눈을 부라리자. "명… 명대로 하겠습니다!" 육불영은 괴로운 듯 눈물을 계속 흘렸다. "그럼 도주께 삼 배 한 다음, 나가 발아를 불러 부복케 하라. 발아에게 올 때, 중원에서 급히 취한 소식을 갖고 오라 하고!" "예!" 육불영은 처참한 표정을 짓고 일어나며 호료범에게 세 번 절했다. 호료범은 지금 비몽사몽을 헤매는 중이었다. '내게도 부모가 있었다.' 그는 몹시 기쁜 상태였다. 변황삼파는 그에게 철저히 복종했다. 그것은 팔기인의 업적을 상상 이상으로 성취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잊으려 했던 부모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해궁도(海弓島)에서는 아버지를, 혈수미교에서는 어머니를, 그리고 비타궁에서는 미첩(美妾)을… 그는 정말 큰 도둑이라 할 수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즐독 ㄳ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