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 강 철수
내가 아침나절에 몸을 단련하는 건강 증진 센터의 수련 도장, 그곳의 남성 시니어 수련생 일곱이 한 달에 한 번 점심을 함께한다. 수련장 주변의 감자탕집이나 돼지갈비구이 집으로 가서 소주잔을 곁들여도 별로 부담이 되지 않는 소박한 회식이다. 그래도 즐겁다. 젊어 잘 나갈 때는 모임도 숱했고 오라는 곳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밥값을 낼 차례, 늘 먹던 것만 먹지 말고 오늘은 딴 곳으로 가서 색다른 음식도 좀 먹어 보자고 했더니 다들 좋다고 했다. 생선조림을 잘하는 그 식당은 전철 한 구간인 경복궁역에서 안국역까지를 이동해야 하는데 K 씨가 문제였다.
그분은 소지품 없이 맨몸으로 다닌다. 핸드폰도 없고 돈 넣는 지갑도 없으니 전철 패스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별로 내키지 않은 듯 망설이는 그를 일행 중 한 분이 껴안다시피 해서 검표대를 통과했다. 우여곡절 끝에 안국역에 내렸는데 어라! 그가 없다. 뒤를 돌아보니 막 출발하는 전철 문에 손바닥을 댄 그가 우리를 향해 계면쩍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굼뜬 움직임 땜에 못 내린 걸까 아니면 껴안기다시피 해서 검표대를 통과한 것에 대한 골 풀이로 일부러 내리지 않은 걸까. 안국역에서 집까지는 꽤 먼 거리, 어떻게 집으로 갈까. 택시를 탔다면 무슨 돈으로? 혹여 양말 속에 비상금이라도 꿍쳐두었던 걸까. 아니면 집에 도착해서 부인더러 돈을 주라고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튿날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탈의실에서 만난 K 씨, 어제 일을 꺼내려는데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가로막고 손사래까지 치면서 나를 만류했다.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내 체크무늬 티셔츠를 쓰다듬으며 “강 선생은 항상 멋쟁이셔!” 상큼한 위트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분은 동작이 굼뜨고 말씨가 어눌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몸을 사리거나 주눅 드는 법이 없다.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않는다. 덥수룩한 머리칼, 웃자란 수염, 훌렁훌렁한 옷차림, 그런 것들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천하태평, 느릿느릿 바쁜 것이 없다. 잘 웃고 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다. 18번인 “자아~떠어나자~동~해~바아다로…”를 늘 입에 달고 다닌다.
청각에 장애가 있기 때문인지 수련 중에도 지도 사범의 지시 멘트와 상관없는 엉뚱한 동작을 해서 수련장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 때가 많다. 그런 그를 사범님은 ‘자유로운 영혼’이라 다독이고 수련생들은 군대 용어인 ‘고문관’에다 존칭인 ‘님’자를 더해 ’고문관님‘이라 부르며 미소롭게 대했다. K 씨도 불감청 고소원이었는지 그 호칭에 별 이의를 달지 않았다.
행동반경도 단순 명료하다. 소지품 없이 맨몸으로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집과 수련센터 그리고 공원, 그 속에서만 움직인다. 집에서 5분 거리인 센터에 남들보다 일찍 나와 혼자 몸풀기를 하고 한 시간 반의 정규 수련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간다. 오후에는 드넓은 사직공원을 자기 정원인 양 노래를 흥얼거리며 누비고 다닌다. 그곳에서는 또래 노인들과 파안대소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고 들었다.
70대 중반인 그는 오랫동안 플라스틱 사출 공장을 하면서 노후 준비를 단단히 했고 지금은 두 아들을 독립시킨 후 부인과 둘이서만 유복하게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데, 원활한 대인 관계와 고도의 판단력이 요구되는 공장을 운영하던 분이 어쩌다가 자유로운 영혼, 고문관님으로 내려앉았을까. 혹여 그분이 일부러 꾸민 자작극이 아닐까. 밤낮없이 일에만 매달렸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쉬고 싶지 않았을까. 어깨를 짓누르던 가장(家長)자리마저도 벗어 버리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칠순 잔치가 끝나고 두어 달 뒤 아내 앞에 자신의 핸드폰, 신용카드, 지갑 그리고 예금통장 등을 내어놓으며 “몸도 아프고 정신이 깜박깜박 치매가 온 것 같소, 앞으로 무슨 실수를 저질을 지도 모르니 이제부터 당신이 모든 것을 챙기시오” 이리하여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이고 고문관님이 된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수상쩍은 게 한둘이 아니다. 우선 핸드폰을 비롯한 소지품 없이 나다니는 게 본인의 확고한 의지 없이 가능한 일일까. 보청기를 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청각 장애라는 것도 과장이거나 위장일 수도 있다. 나와 둘이서만 얘기할 때는 막힘 없이 얘기하다가 여럿일 때는 듣지 못하는 듯 입을 꽉 다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지도 사범이 난이도 센 동작을 요구할 때만 못 들은 척 엉뚱한 동작을 했던 것 같다. 어눌한 말씨와 굼뜬 움직임도 일부러 꾸민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적절하게 위트도 구사할 만큼 센스 있는 분이 아니던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자유로운 영혼, 고문관님으로 살고부터는 세상이 K 씨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았을까. 이전과 달리 가족들의 세심한 배려와 극진한 보살핌이 뒤따랐고 주변 사람들도 ’좀 모자라는 분‘이라 생각해서 무엇이든 도와주고 보살펴 주려 무진 애를 쓴다고 들었다. 이 정도면 여느 노인들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마치 옛날 부잣집 삼대독자가 받았음 직한 고임이 아니던가.
뿌듯함을 만끽하는 K 씨, “예서 뭘 더 바라겠는가”라 독백할지도 모른다. 고진감래. 젊어서 허리가 휘도록 열심히 일한 K 씨, 늘그막인 지금 명실공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 오늘도 내일도 복되게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