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배옥주-
겨울이야기 한 마리를 소설(小雪)에 잡았다
노안을 호소하는 회원들을 불러 판을 벌였다 눈에 좋다는 머리말은 피데기처럼
말려 잘게 찢었고, 목록은 자작하게 볶아 내놓았다 행간에 들러붙은 살점들은 적
당히 쫄깃했다 다들 탄력적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작은도서관 회원답게 301호는 단편마다 추려낸 부속물들을 조목조목 품평했다
잡내를 잡으려면 기름기 번지는 복선을 걷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첫눈을
기다리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결말은 곱씹을수록 단물이 올라왔다
독서회를 세 개나 끌어가는 607호는 표제에 솟은 뿔부터 표사 꼬리까지 툭툭,
질문을 던졌다 정답 없는 서술형의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눈 덮인 장독에서 쩌
억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라 먹고 조려 먹고 소설 한 마리를 오지게 뜯어 먹었다 트림소리가 들리거나
소화불량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살얼음이 녹을 때까지 우리의 겨울은 살
냄새로 충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