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앗! 이런 황당한 실수를 "이얍! 죽여랏!" 채챙! 퍼펑! 쇄에에엑―! "으악!" "케엑!" 요란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단말마 비명소리, 호령소리, 기합 소리가 어우러져 몹시도 시끄러운 격전장에서는 수천에 달하는 무리들이 서로 뒤엉켜 나전투구를 벌이고 있었다. 제각각의 의복을 걸쳤는지라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구별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한쪽의 가슴엔 시커먼 흑탑이 수놓아져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은 서하국 국경 부근 한적한 야산이었다. 어림잡아 칠팔천은 족히 될 양측 무리들은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백중세를 유지한 채 물고 물리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가슴에 흑탑이 수놓아진 무리들이 사용하는 무공은 한결같이 잔인독랄한 마공이나 사공인 반면, 그렇지 않은 쪽은 비교적 정공에 가까운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금겁장에서 파견한 상황호천대와 일월교도들이었다. 상황호천대에서 파견된 삼만에 가까운 무사들은 현재 여러 갈래로 나뉘어 일월교도들과 접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수적으로는 단연 상황호천대가 위였다. 그들에게 습격당한 일월교도들은 약간 당황한 듯 평소의 실력을 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서하국 양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서하국과 금겁장의 교역을 끊으려 파견된 자들이었다. 이들은 서하국의 여인들이 금발에 파란 눈을 하고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는지 그 동안 수차례나 월경(越境)하여 여인들을 납치하여 색욕을 채워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하국 군사들은 국경을 넘지 못하였다. 대명제국과 쓸데없는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서하국의 군사들은 도저히 이들을 상대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은 여기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주둔해 있던 일월교도들의 수효는 불과 사천이었다. 그들을 치기 위하여 상황호천대는 팔천의 고수들을 보냈다. 나머지는 현재 다른 곳에 주둔해 있는 일월교도들을 치기 위하여 분산시켰던 것이다. 모두 네 곳에 주둔해 있는 일월교도들의 수효는 일만오천 가량 되었다. 결국 일 대 이의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 상황호천대가 급습하였을 때 일월교도들은 당황하여 손발을 제대로 놀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냉정을 되찾았는지 날카로운 반격을 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랏!" 상황호천대의 누군가가 호령하자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병장기를 휘둘렀다. "크크크, 놈들의 씨를 말려라!" 일월교도들 가운데서도 누군가가 소리치자 금방 격전장은 아수라지옥으로 변하였다. 끊긴 팔다리가 선혈을 내뿜으며 허공을 비산하고 있었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수급이 굴러다녔다. 배가 갈라져 창자가 흘러내린 시신도 다수였고, 중상을 입고 죽어 가는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흘러내린 선혈이 작은 도랑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었고, 황토는 어느새 시뻘건 적토(赤土)로 변해 있었다. 무공만 가지고 따진다면 일월교도들이 한 수 위였다. 만일 상황호천대의 수효가 동등하였다면 죽어 있는 것은 아마 그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배의 인원으로 덤비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호각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피차간에 기호지세가 된 이상 이젠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고 죽는 일만 남아 보였다. 이런 일은 이곳 서하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파사국 국경 부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왜국에 가까운 대마도라는 곳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황호천대는 상권을 지키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월교도들과 접전을 벌인 끝에 상처뿐인 영광을 거둘 수 있었다. 세 곳에 있던 오만 가량의 일월교 고수들을 없애는 대신 팔만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되었던 것이다. 중원 상권을 위협하는 무리들이 다름 아닌 일월교도들이라는 보고가 들어오자 금겁장은 초비상 상태가 되었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늘어만 가는 일월교도들은 한결같이 문제를 발생시키던 불한당들이 아니던가! 그런 그들을 규합하여 이런 막강한 고수로 키울 수 있는 곳은 당금 천하에는 없다고 생각한 금겁장은 그들의 배후가 누구인가를 캐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금겁장은 밝은 곳에 있지만 적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면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여 금겁장에서는 개방으로 흉수들의 정체를 밝혀 줄 것을 요청하였고, 개방에서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였다. 개방방주인 무취신개는 장강 이남의 구휼을 위해 막대한 재물을 푼 금겁장에 호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아버님! 소자, 대손이옵니다." "오, 그래. 들어오너라." 무적철기병 재건에 온 정력을 쏟던 무정검 북리대손이 오랜만에 부친인 철사자를 찾았다. 그들 부자는 여전히 당당하고 여전히 강건해 보였다. "그래, 웬일로 왔느냐?" "예, 아버님. 강호에 일월교라는 무리들이 적지 않은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일월교? 마신을 믿는다는 그 종교 집단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현재……." 북리대손은 나름대로 얻은 첩보를 바탕으로 현 무림의 정세를 낱낱이 고했다. 그의 첩보는 예상외로 정확하여 파사국, 서하국, 조선, 왜 등의 나라와 교역이 일월교로 인하여 막대한 타격을 받았으며, 그들을 치기 위하여 상황호천대가 출동하였으나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하였다. "흐음, 그런데 왜 이 일로 아비의 처소를 찾았느냐? 본보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데……." "아버님! 소자, 조금 전 혜아의 처소를 방문했었습니다." "혜아의 처소, 거긴 왜?" 철기보의 금지옥엽 북리운혜는 철기보의 서고를 뒤지던 중 우연히 시뻘건 선혈로 기록한 서책 한 권을 발견하고 경악하였다. 그 내용을 살핀 즉, 그것은 귀암마성과 혈요마성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것을 읽고 천기를 헤아린 그녀는 당금 강호에 엄청난 혈겁의 조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서둘러 무정검을 찾았던 것이다. 소림사에 대대로 전해져 오던 겁혈마전이 이곳에 또 한 권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실을 전해들은 무정검이, 즉시 이곳을 찾아왔다는 말을 하자 철사자의 안색이 굳어졌다. 강호십정 가운데 다섯은 괴멸되고, 나머지 금겁장, 경천문집장, 만화옥녀보는 사실상 강호상의 활동이 정지된 상태였다. 남은 태극은하궁이 문제이나 그곳은 강호제패에 전혀 뜻이 없는 곳이기에 이대로 힘을 좀더 키우면 언젠가는 강호를 독패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그 동안 잠잠히 지냈던 것이다. 비록 구파일방이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엔 구파일방은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늘 허례허식과 격식을 찾았기에 이토록 피폐해진 구파일방은 그 습성을 버리지 않는 한 다시 예전과 같은 영화를 맞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구파일방이 이토록 맥빠져 있는 것은 쓸데없는 격식에 너무 많은 것을 투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무공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문파들의 무공은 나날이 발전해 가는 반면 구파일방은 여전히 장중한 격식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강호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그래서 강호십정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 철사자가 강호를 주유할 때 그는 많은 구파일방의 고수들과 비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느낀 것은 그들의 검식이나 도식에는 쓸데없는 변식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런 것을 배제한 그의 파천검식이 늘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중한 격식은 무공을 연마할 때는 보기에 좋으나, 목숨을 건 대결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만간 혈겁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철기보는 다른 문파와 달리 시진 한복판에 있기에 고립 당하기 십상인 곳입니다. 대책을 세워 두지 않으면 비록 적이 이곳을 넘볼 수 없을지 몰라도, 우리 역시 나갈 수 없어 아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혜아의 말을 빌면 다가올 겁난은 중원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던 엄청난 혈겁일 것이라고 합니다. 시산혈해를 이룰 것이고, 시신을 묻을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였습니다." "……!" 철사자는 말없이 북리대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것이 북리운혜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뛰어난 오성으로 여러 번 놀라게 하였다. 사 세 때 사서오경을 줄줄 암송할 정도였으니 두말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혜아는 혈겁이 머지않았으니 본보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힘을 길러야 한다 하였습니다. 현재의 인원으론 어림도 없으니 가능하다면 현재보다 열 배 정도의 힘을 길러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지금보다 열 배나 더 강해야 한다고? 흐음……." 철사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현재보다 열 배의 힘이라 함은 단순히 인원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엄청난 혈겁이란 말이냐? 금강수라대와 격돌하여……." "아버님! 혜아의 말로는 다가올 혈겁의 주역들은 금강수라대보다도 훨씬 강하다 하옵니다." "그, 그 정도로……?" 철사자의 안색은 완전히 흑빛으로 변해 버렸다. 은근히 강호제패의 기회를 엿보려던 야심을 접음은 물론 살아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한참을 침잠해 있던 철사자의 드디어 입이 열렸다. "가서 수뇌부들을 집결시키고 혜아를 참석시키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무정검은 신속히 밖으로 향하였다. 지금껏 잠잠하던 철기보가 살아남기 위하여 몸부림치려는 것이다. * * * "호호, 공자님. 소녀가 주안을 준비하였으니 요기나 하시지요." 늦은 밤 자신의 처소에서 독서삼매경에 젖어 있던 남궁호는 문득 들리는 유연의 고운 음색을 듣고 삼매경에서 깨어났다. "하하, 그렇지 않아도 출출하던 참인데 어서 오시오." 유연은 늘 입고 있던 경장을 벗어 던지고 화사한 연홍색 궁장을 걸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요리가 있었고, 향기 그윽한 술도 있었다. "하하, 야심한 시각에 소생을 위하여 너무도 고생이 많았소이다. 거기에 두면 소생이 먹을 테니, 이만 가서 쉬어도 좋소이다." "어머, 안 되어요. 공자께서 다 드실 때까지 시중을 들어 드릴 터이니, 어서 식기 전에 드시어요." 남궁호는 이곳까지 오는 동안 유연이 보기보다는 고집이 센 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그녀가 만든 것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다 먹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세외천미가 특별히 당부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뜻이기도 하였다. 말로는 도저히 쫓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남궁호는 서둘러 음식을 당겨 먹기 시작하였다. 빨리 먹어야 그녀가 가서 쉴 수 있으리란 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 음식을 이렇게 많이 차려 왔지?' 남궁호는 유연이 평상시와는 달리 혼자서는 도저히 못 먹을 분량을 준비하였기에 이걸 언제 다 먹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이렇게 늦은 밤에 여러 번 밤참을 준비하여 왔으나 이토록 많은 양을 가져오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유연의 계략이었다. 늘 남궁호의 음식을 준비하던 그녀는 그의 식사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훤히 꿰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먹고 많은 양을 준비해 왔다. 남궁호로부터 함께 먹자는 말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혼자 먹기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소저도 함께 먹읍시다." 계략대로 드디어 남궁호의 입에서 혼자서 못 먹겠다는 소리가 나오고야 말았다. "어머! 아, 아니에요. 소녀가 어찌 공자님과 한자리에서……." 유연은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으나 겉으로는 얌전빼는 시늉을 하며 교태스럽게 머리를 흔들었다. "하하……, 도저히 혼자 먹을 자신이 없소이다. 그러지 말고 여기 앉아 같이 먹읍시다." 쬬르르르륵! 남궁호가 말하는 사이 유연의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하여 일부러 저녁식사를 거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거 보시오! 소저도 배가 고픈 모양인데 빨리 앉아 드시오." "어, 어머! 아, 아니에요. 소녀가 어찌 공자님과 동석을……. 나중에라도 아씨께서 아시면……." 유연의 말에 먹을 의사가 있다는 듯이 비쳐지자 남궁호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건 걱정 마시오.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겠소. 자, 자, 이렇게 서 있지 마시고 어서 앉으시오." 남궁호가 젓가락까지 챙기자 유연은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앉으면서 한 소리했다. "어머! 이, 이러면 정말 안 되는데……." "후후……, 걱정 말래도 그러시네. 그리고 소생이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어려워하시는 게요?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대해 주셨으면 좋겠소이다." "아, 알았어요." 유연은 못 이기는 척 젓가락을 잡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다. 남궁호는 오늘따라 유연이 저녁 식사를 조금밖에 주지 않았기에 그렇지 않아도 허기를 느끼던 터라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쓸어 넣고 있었다. "호홋……, 너무 그렇게 급하게 드시지 마세요. 여기 소녀가 술 한 잔 드릴 터이니, 천천히 마시면서 드세요." 유연은 자연스럽게 남궁호이 술잔에 호박색 술을 다소곳한 자세로 따랐다. 밖에는 비가 오기 시작하였는지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고, 실내를 밝힌 황촉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지 불길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조금밖에 주지 않은 것도, 황촉도 일부러 작은 것을 고르되 그 위치는 자신의 좌측 얼굴이 보이는 쪽으로 놓은 것도 다 유연의 치밀한 안배였다. 이 세상 어떤 여인이든 정면이나 우측에서 볼 때보다 좌측에서 볼 때가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남궁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황촉에는 미량의 음양미혼산(陰陽迷魂散)이 섞여 있었다. 초저녁부터 밝혀 두었기에 벌써 상당량의 음양미혼산이 실내의 공기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방금 남궁호가 마신 술에도 수작을 부려 두었다. 정촉산(情促散)을 타 두었던 것이다. 정촉산은 여인들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으나 남자에게는 욕정을 일으키게 하는 효능이 있는 묘약이었다. 이것은 황궁의 어의가 황제를 위하여 특별히 조제하여 바친 것이 시초였으나, 워낙 효험이 좋자 대신들이 너도 나도 달라 하여 저잣거리로 흘러나온 물건이었다. 유연은 오늘 밤 남궁호를 유혹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로 단단히 마음먹으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수욕을 마치고 사향 주머니를 찼기에 그녀의 교구에서도 은은한 향이 나고 있었다. 이런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남궁호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느라 여념이 없었고, 유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의 술잔에 술을 채우기 바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세 가지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본능이 있다. 그것은 식욕(食慾), 수욕(睡慾), 그리고 색욕(色慾)이다. 식사를 마친 남궁호는 그들 가운데 둘을 만족시킨 셈이다. 아까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였던 것이다. 부른 배를 문지르던 그의 눈에 너무도 고운 유연의 자태가 안 보일 리 없었다. '으읏!' 남궁호는 귀밑머리가 어른거리는 황촉불에 비치는 유연의 옥용을 보고 잠시 자신의 아랫도리가 불쑥 성을 내자 잠시 당황하였다. '이, 이런! 말도 안 돼!' 그러나 한번 성난 물건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눈앞이 약간 몽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체 내가 왜 이러지? 너무 오랫동안 여인을 접하지 못하여 그런가?' 남궁호가 마지막으로 여인을 접한 것은 황궁에서였다. 승상부로 떠나기 전 희란공주와 불타는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간혹 세외천미와 담소를 나누노라면 아랫도리가 요동을 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이성으로 그것을 충분히 억제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이상했다. 왠지 도저히 참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났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아랫도리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강렬하였던 것이다. 이런 것을 모를 리 없는 유연은 짐짓 깨작대면서 오랫동안 음식을 먹고 있었다. "호호…… 공자님, 한 잔 더 드세요." 유연은 섬섬옥수로 남궁호의 잔에 술을 따른 뒤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잔을 건넸다. "오! 고, 고맙소." 얼떨결에 잔을 받던 그는 유연의 교구에서 나는 향기를 맡고는 일순간에 취하는 듯 갑자기 눈앞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와중에도 체통을 지키려 단숨에 잔을 비운 남궁호는 갑자기 무엇인가 뭉클한 것이 품으로 안겨 들자 얼떨결에 안았다. "고, 공자님! 소녀는 공자님을……." 대답하게도 유연은 자신의 교구를 그의 품으로 던졌던 것이다. "허억!" 남궁호는 너무도 가까이서 느껴지는 처녀의 체향이 코를 통하여 들어오자 그만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어머! 고, 공자님!" 유연은 남궁호에게 모든 것을 바칠 것을 각오하고 왔지만 막상 그가 거칠게 끌어안자 잠시 겁이 나는지 거부의 몸짓을 하였다. 이것은 아직까지 청백을 유지하고 있는 처녀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행동이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음을 그녀는 몰랐다. 거칠게 포옹하는 남궁호의 품에서 유연은 마치 비 맞은 참새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면서도 묘한 흥분을 느끼는지 옥용을 홍시처럼 붉히고 있었다. 유연은 남궁호의 얼굴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다가오자 와락 겁이 났다. 스스로 원한 일이지만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였다. "으읍!" 뜨겁기 이를 데 없는 남궁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덮자 유연은 화들짝 놀라 꿈틀하다 스르르 봉목을 감았다. 끓어오르는 욕정을 주체하기 힘든 그의 억센 손은 그녀의 교구를 힘껏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가 너무도 세차게 조이는 바람에 숨쉬기조차 힘들어 숨을 몰아쉬려 입술을 연 유연은 무언가 물컹한 것이 자신의 입 속을 파고들어 깊숙이 감춰 두었던 혀를 뿌리가 빠지도록 흡입해 가자 아련한 통증과 함께 태어나서 단 한번도 느낄 수 없었던 황홀함에 바르르 떨었다. 옥기린과 용화서생은 적정을 정탐하는 데 동행하였는지라 후원 별채에는 그 어느 누구도 다가올 수 없는 곳이었다. 한동안 너무도 뜨거운 입맞춤에 완전히 녹아 버린 유연은 나지막한 비음을 낼 뿐 아무런 반항도 거부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유연의 교구는 침상으로 내려졌고, 남궁호의 손길은 그녀의 궁장을 하나하나 벗겨 갔다. 하늘하늘 흔들거리던 황촉은 수명이 다하였는지 가물거리는 불빛을 발하고 대신 교교한 월광이 창을 통하여 참상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마치 물에 젖은 비단 같은 부드러운 살결에선 풋풋한 처녀의 체향이 물씬 풍겨나 남궁호의 이성을 점점 더 마비시켜 갔다. 삼단 같은 머릿결은 넓게 흐트러져 침상을 뒤덮고 있었고, 벗겨진 궁장들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유연은 할딱거리면서도 남궁호의 손길을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손길은 거부의 몸짓이 없기에 마치 봄바람에 찰랑이는 호수의 물결처럼 부드럽게 교구를 쓰다듬으며 서서히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아학! 아아앙!" 유연의 한쪽 유방은 어느새 그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고, 다른 한쪽 유방의 정상에 외롭게 달려 있던 유실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몸을 활처럼 흰 채 어쩔 줄 몰라 잔경련을 일으킬 즈음 그의 손 하나가 무성한 흑림을 헤치고 그 어느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전인미답지를 서서히 유린하며 진군하고 있었다. 유연은 마치 거친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심하게 요동치며 자신의 뇌를 완전히 익혀 버릴 듯 뜨거운 황홀함이라는 괴물에게 굴복한 듯 젖은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신음과 교성을 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좌우 두 개의 유방에 이빨 자국이 가득할 즈음 유연은 갑자기 봉목을 하얗게 치켜뜨며 펄쩍 튀어올랐다. 남궁호의 손가락 하나가 어디론가 사라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아흑! 아아!" 유연의 교구는 전신에 잔뜩 힘을 주었는지 잔 경련이 끊이지 않았고, 모든 땀구멍이 열렸는지 진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또한 손은 무엇인가를 잡으려 끊임없이 허우적대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온통 땀에 젖어 엉클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남궁호의 동체를 부둥켜안고 고개를 심하게 좌우로 저으며 죽을 것만 같은 열락에 빠져 신음하던 그녀는 그의 움직임이 멈추자 이제 끝났는가 싶어 슬며시 눈을 뜨려다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찢듯이 의복을 벗어 던지던 그의 우람한 하물을 본 것이다. '에그머니나! 저렇게 큰 걸로?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어떻게 해?' 두 손으로 눈을 가린다고 가렸으나 손가락 사이로 보일 것은 죄다 보이고 있었다. 얼핏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하자 그녀의 봉목은 스르르 감기고 있었다. 잠시 후, 남궁호는 유연의 옥주를 벌리고 그 사이에 앉아 자신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하물을 흥건히 젖은 비역 입구에 대고 슬슬 문질렀다. 그러자 그녀는 종전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쾌감이 전신을 마치 작렬하는 뇌전처럼 스치고 지나는 것을 느끼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펄쩍 튀어올랐다. "아흑!" 그와 동시에 비역에서는 뜨거운 하물을 식히려는 듯 엄청난 양의 애액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활화산처럼 성질이 난 하물을 달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잠시 후, 남궁호의 둔부가 약간 뒤로 물러선다는 느낌에 잠시 봉목을 뜨려던 그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그의 동체를 힘껏 밀쳤다. "아, 아파요! 그만, 이제 그만!" 마치 전신을 찢어발길 듯한 굉렬한 고통에 그녀의 두 눈에 있던 검은자는 사라지고 하얀 흰자위만 남았다. 그녀는 생전 처음 겪는 엄청난 고통이 너무나도 엄청나자 불현듯 자신이 그를 넘봐서 이런 고통을 겪나 싶어 잠깐 동안 후회를 하였다. 하지만 후회란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 법! 유연은 이를 악물고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을 감내하려 아미를 잔뜩 찌푸리고 두 손으론 요를 잔뜩 움켜쥐고 있었다. 아마도 고통이 조금만 더 심했다면 그녀의 모든 손가락은 부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뒤부터는 광풍폭우였다. 폭풍은 그녀의 전신을 휘말려 올릴 듯 엄청난 기세로 불어닥쳤고, 점점 심해짐에 따라 외마디 비명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런 그녀의 옥주로는 한 줄기 앵혈이 스르르 흘러내려 요를 적시고 있었다. 너무도 적극적이었던 한 소녀가 이제 여인의 길을 걷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남궁호의 움직임은 그가 비록 여러 춘약에 취해 움직이는 것이지만 예전에 얻었던 천면인 추자도의 옥방진결(玉房眞訣)의 구결대로 움직이고 있기에 유연은 첫경험에서 엄청난 희열을 맛보는 기연을 얻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체내에 있던 순음지기들이 빨려나가는 듯싶더니 이내 완전한 음양조화를 이룬 막강한 진기가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그녀는 더 큰 희열에 젖어 울부짖었다. 고통에 겨웠던 신음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고, 그녀의 입술 사이로 나오는 소리는 모두 열락을 이길 수 없어 저절로 나오는 신음과 교성이었다. 그것은 마치 한밤중에 고양이가 우는 듯한 그런 기괴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에는 신음을 억지로 자제하려는 유연의 피나는 노력이 담겨 있음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거의 반시진 가까이 지나자 남궁호의 등에는 여덟 줄기 긴 고랑이 파여 있었고, 그곳에선 선혈이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움직임을 멈출 줄 몰랐다. 구천일심(九淺一深), 좌삼우사(左三右四), 상충하완(上沖下緩). 옥방진결에 기록된 최절정 방중술에 유연은 전신이 녹아 사라지는 듯함에 수시로 의식의 끈을 놓았다 잡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늦은 봄 뱃놀이를 나왔다 거친 풍랑을 만난 듯 유연이라는 조각배는 그가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물결 따라 흔들리면서 쾌락에 겨운 신음과 교성을 토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남궁호의 거친 숨소리가 갑자기 멈추자 그녀는 그가 떨어져 나가려는 줄 알고 그의 등을 바싹 끌어안다가 또 한번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학!" 비역 깊숙한 곳,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번도 타인은 물론 자신의 손길조차 닿을 수 없던 곳에서 갑자기 찬란한 폭죽놀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끝도 없을 것 같은 폭죽놀이에 유연의 동체는 활처럼 휘어져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앙증맞은 발가락은 부러질 듯 안쪽으로 굽혀져 있었으며, 참을 수 없는 쾌감에 겨워 머리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영사 같은 두 팔은 남궁호의 겨드랑이 사이를 지나 그의 등을 완벽하게 껴안고 있었다. 잠시 후, 모든 움직임이 멈추자 유연은 긴 한숨을 몰아쉬고 긴장을 풀려다 또다시 남궁호가 움직이자 얼른 그의 동체를 바짝 끌어안았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단 한번도 이성과 접해 본 적이 없던 그녀가 술에 탄 정촉산은 그 양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또한 음양미혼분 역시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남궁호가 마치 미친 야생마처럼 날뛰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남궁호는 물려 아홉 번이나 파정을 하고서야 곯아떨어졌다. 그것은 유연도 마찬가지였다. 남궁호가 깨어난 것은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였다. "흐흑…… 흐흐흑……!" 이물질을 섞은 술을 마셨는지라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일어나려던 그는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오열 소리에 전신에서 갑자기 식은땀이 솟았다. 그 순간, 그의 뇌리로는 지난밤 욕정에 젖어 한 마리 짐승처럼 굴었던 자신의 행위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엇! 이런 황당한 실수를…….' 남궁호는 자신이 세외천미의 시비인 유연을 어젯밤 겁탈하였다고 생각하는지 경악을 하였다. 그는 본시 술에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어젯밤 마신 술 때문에 이렇게 된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흑! 이제 어쩌면 좋아? 흐흑! 아씨한테는 뭐라고 하지? 아아앙! 차라리 가서 확 죽어 버릴까? 흐흐흑! 그래, 그러는 편이 낫겠어. 공자님과 이러고 어떻게 아씨를 볼 수 있을까? 흐흑! 공자님이 깨시기 전에 가야지." 유연은 이미 오래 전에 깨어 있었다. 그녀는 눈을 뜸과 동시에 몸을 일으키려다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둔중한 통증에 고운 아미를 잔뜩 찌푸렸다. 그녀는 지난밤 춘약에 취한 것이 아니기에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나자 자신이 청백을 잃었음을 알고 몇 방울 눈물을 떨구었다. 열여덟 꽃다운 방년인 그녀는 훤앙한 청년이 열렬히 구애해 오는 것을 늘 꿈꾸어 왔었으나 이제 그것이 물 건너갔다는 상실감의 발로였다. 그러던 그녀는 이제부터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그의 사랑을 얻고 못 얻고가 달려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앙큼맞게도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다가 그 시간에 맞춰 오열하는 연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봉목에서 흐르는 눈물은 진짜였다. 왠지 이렇게 사랑을 구걸하여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가련하다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남궁호가 들으라고 독백을 하다 정말 자살하러 가려는 것처럼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섰다. 그 순간, 유연은 자신의 허리를 감는 남궁호의 팔을 느끼고 내심 뛸 듯이 기뻤다. "소, 소저! 소생이 잘못했소이다. 이러지 마시오" '호호호, 됐어! 내가 이제 이 분의 마음을 얻은 거야!' 유연은 남궁호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느끼고 기뻤으나 여기서 조금만 더하면 그가 더욱 자신을 아껴 줄 것이라 생각하고 또 한번 연기를 하였다. "흐흑! 공자님, 죄송해요. 소녀 때문에 공자님이……. 흐흐흑! 소녀는 괜찮아요. 소녀가 어찌 아씨의 부군이 되실 공자님께 누를 끼칠 수 있겠어요? 흐흐흑……!" 그녀의 연기는 너무도 현실감이 있었다. 사실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는 판에 이 정도 연기를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게다가 여인들이란 날 때부터 연기자가 아니던가! 남궁호는 자신과 세외천미를 먼저 생각하는 유연의 마음이 너무도 곱다 생각하며 그녀의 교구를 힘차게 품었다. "소저, 미안하오. 소저께서 소생을 용서할 수만 있다면……." '있다면? 빨리요!' 이 순간에도 유연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의 마음을 완전히 얻기 위한 치열한 갈망이 있었다. "소생이 소저의 앞날을 책임지겠소." 결국 유연이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말이 남궁호의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흐흑! 공자님! 흐흐흑! 고마워요!" 그제서야 남궁호의 품에 안긴 유연의 눈에서 정말 닭똥같이 굵은 이슬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이 눈물은 진짜였다. 유연이 그토록 노심초사하던 자신의 장래가 원하는 대로 결정된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고, 남궁호에 대한 샘솟는 애정을 표현하는 눈물이었다. "후후……, 미안하오. 하나, 후회는 하지 않소. 세외천미에게는 다소 미안하나 소저 같은 미인을 누군들 탐내지 않겠소? 소생같이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고 용서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소. 내 죽을 때까지 연매를 아끼고 사랑하며, 보살펴 줄 것을 약속하오." "흐흑! 공자님, 고마워요." 유연은 아직 세외천미에게조차 남궁호가 인매라 부르지 않는데 자신을 연매라 불러 주자 그만 감격하였다. "후후……, 고맙긴 소생이 더 고맙소. 자, 이제 그만 우시오. 이러다 고운 얼굴에 얼룩지겠소." 남궁호는 자신의 손으로 유연의 봉목에 그렁그렁한 이슬을 닦아내려다 그녀가 마치 비에 젖은 한 송이 꽃처럼 느껴지자 아랫도리에서 또다시 불 같은 욕념이 올라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었다. "으으읍!" 또다시 열풍이 불어닥쳤다. 이번엔 춘약에 취해서가 아니고 진실로 아껴 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밴 행위였다. 유연은 남궁호가 원하는 대로 그의 손길 아래서 고혹스런 신음을 냄으로써 이에 답하고 있었다. 아직 그녀는 모르고 있었으나 그녀 역시 다른 여인들처럼 체내의 음양조화가 완벽해지는 기연을 맞아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행운을 맞았으며, 내공도 조금 늘었다. 반면 남궁호는 그간 애써 모았던 내공 중 절반이 사라져 또다시 삼류무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 *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어두컴컴한 동혈 깊숙한 곳에서 여인의 영롱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곳은 숭산 조사전 뒤쪽 컴컴한 동혈 속이었다. "헉헉! 헉헉!" 여인의 음성에 이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지옥수라혈천관의 제일 마지막 관문인 사관(沙關)이었다. 지옥수라혈천관에는 모두 열여덟 개의 관문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통과하기 힘든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처음 이 관문에 도전하였던 자들은 언뜻 보기엔 무척 쉬울 것 같다 생각하여 무심히 지나치려다 이곳에서 관문 돌파에 실패하곤 하였다. 사관은 보통 모래로 이루어진 관문이 아니던 것이다. 이곳의 모래는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침사(沈沙)로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빠져드는 모래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기러기의 날개조차 이곳에 떨어지면 일각 안에 모래 속으로 사라진다. 이곳을 통과하는 조건은 내공은 사용할 수 있되 발목에 각기 오십 근에 달하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백 장 거리를 빠지지 않고 지나가야 통과할 수 있는 곳이다. 일 갑자 내공으로도 통과하기 힘든 관문이다. 설사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라 할지라도 이곳을 전부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모래는 깊이가 사람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지금까지 가장 많은 탈락자를 낸 관문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과도하게 진기를 사용했던 자들은 모래 위를 달리다 진기 부족으로 영락없이 탈락되었다. 이번이 열세 번째 도전이었다. 만일 이번에도 탈락자가 나오면 또다시 어두컴컴한 지하 동굴에서 끝없는 무공 수련을 하여야 할 것이다. 도전할 때마다 관문의 순번이 매번 달라지기에 요령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호천대가 장차 강호에 나갔을 때 적어도 진기 고갈로 억울하게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관문이었다. 호천대 전원은 지옥수라혈천관의 십팔 관문을 전원 통과하지 않으면 강호로 나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바 있었다. 이번 도전에서 구백팔십이 명은 무사히 모든 관문을 통과하여 쉬고 있다. 마지막 남은 십팔 명만 통과하면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내고 강호로 나갈 수 있기에 도전자들은 체내의 잠력까지 끌어올려 이를 악물고 모래 위를 스치듯 달리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서 소리치는 여인은 바로 호천대주인 소수백연 진추하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였기에 모든 호천대원들로부터 대주로 인정받고 있었다. 현재 소리치고 있는 소수백연은 양쪽 발목에 각기 백 근짜리 자루를 단 채 일행의 선두에서 나는 듯 달리고 있었다. 다른 대원들이 진기 부족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으나 그녀만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처음 그녀가 대주가 되었을 때 대원들은 내심 그녀를 거부하였다. 어찌 사나이 대장부들을 한낱 여인이 지휘를 할 수 있느냐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녀의 탁월한 통솔력과 지도로 호천대원들의 수준이 날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격려에 힘입어 마지막 남은 십팔 명이 무사히 사관을 돌파하자 동굴 안은 함성의 도가니가 되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보낸 사 년이 조금 넘는 세월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와와! 만세! 드디어 전원 통과다!" 이런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미타불……, 그 동안 수고들 하였구나. 허허허,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오. 아미타불. 대주, 부디 강호로 나가거든 혈겁을 종식시켜 천하를 구하시오." 그는 바로 호천대주 태상장로인 승광대선사였다. 이때 그의 뇌리로는 지난 사 년여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났다. 구파일방에서 보낸 영재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모두 뛰어난 자질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서로가 잘났다며 우쭐해하다 사소한 시비로 유혈 낭자한 주먹 다툼이 벌어지곤 하였던 것이다. 휴식 시간이 되면 언제나 자파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곤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미파의 비구니 바로 곁에 개방의 제자가 있고, 그의 곁에는 청성파의 제자, 그리고 공동파의 제자가 있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이나 별호를 부르며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던 것이다. 지난 세월이 그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단련시킨 셈이다. 이제 호천대원들에게 있어 구파일방이라는 이름은 먼 옛날의 이름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호천대라는 이름과 소수백연, 아니 이제는 호천성녀(護天聖女)라 부르는 진추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무공은 이곳에 들어올 때와는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었다. 일천 명 중 태반이 노화순청(爐火純淸)의 경지에 올라 있었고, 수뇌부들 대부분은 삼화취정(三花聚頂)의 화후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호천성녀 진추하는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에 올라서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경에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구파일방에서 보낸 영초들과 영단들을 배합하여 만든 희세의 영약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호천대 전원의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것이었다. 이제 이들은 강호로 나아가 독자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문파를 창건하건, 천하를 상대로 노략질을 하건 구파일방에서는 절대로 손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파일방은 알고 있다. 이들이 결코 그러한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이들은 오로지 천하의 안위를 위하여 결성된 정파의 기둥이기 때문이었다. "자, 그 동안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이제 본대가 강호로 나아가 혈겁을 종식시키는 데 앞장을 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들 있을 거예요.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본대는 결코 본색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혈겁의 원흉이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나기 전에는 절대로 나서지 말아야 할 것이에요. 우선은 천하의 정세에 어둡기에 본대를 열로 나눠……." 호천성녀 진추하의 말은 한참을 이어졌다. 그리고는 일천에 달하는 호천대원들이 숭산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목적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태상장로인 승광대선사조차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무림의 정확한 동태 파악을 위하여 천하각지로 흩어진 것이다. 앞으로 반년 후 그들은 다시 한 장소에 모일 것이며, 거기서 향후의 진로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며칠 후, 숭산에는 또다시 구파일방이 장문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승광대선사로부터 호천대원들이 출동하였다는 말을 듣고 기쁨의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무림의 영재들이 암흑 속에서 호시탐탐 혈겁의 원흉 색출을 위하여 작업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든든하였던 것이다. * * * "크흐흐! 그래, 계집들은 잡아왔느냐?" "크크크, 어느 분의 명이시라고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백여 명을 잡아왔으니, 먼저 고르시지요." "크하하하, 좋아! 앞장을 서라. 네놈들 덕에 오랜만에 회포를 풀겠구나." "크크크,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이번에 잡아온 계집들 가운덴 반반한 계집도 꽤 있습니다." 나이가 오십 정도 된 장한이 앉아 있던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칠 척 장신에 떡 벌어진 어깨를 하고 있는 체격이 장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손에는 육중해 보이는 잘 손질된 언월도가 들려 있었다. 길게 자란 시커먼 수염과 장대한 체격, 그리고 부리부리한 고리눈 등만 보면 누가 보아도 전설의 명장인 관운장과 흡사하다 아니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에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관운장을 닮았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수염과는 달리 그는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독두(禿頭)였던 것이다. 그는 철로 만든 육중한 갑주를 걸치고 있었지만 하나도 무겁지 않은 듯 성큼성큼 걸어서 수하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곳은 장백산 기슭에 임시로 만들어진 군막들 가운데 정중앙에 위치한 군막이었다. 군막은 거의 이천여 개에 달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쳐져 있었다. 방금 군막을 벗어난 인물은 일월교에서 이곳으로 파견한 사천에 달하는 일월성군(日月聖軍) 제일군단(第一軍團)의 단주인 파천도부(破天屠夫) 소섭극(蘇燮極)이었다. 본시 악양(岳陽)의 도살장에서 소나 돼지를 잡으며 살던 평범한 도부(屠夫)였던 그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살고 있었다. 유난히도 장대한 체구와 양물을 지닌 그는 혼기가 지났음에도 혼례를 올려 가정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떤 여인이든 그와 교합을 하고 나면 다시는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 됨은 물론, 음문(陰門)이 찢어져 심한 하혈로 죽어야만 하였던 것이다. 그의 양물이 말의 그것보다도 적어도 두 배는 큰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받아 주었던 홍루에서는 그를 상대하였던 기녀들마다 하혈이 멈추지 않아 죽어 버리자, 제아무리 많은 은자를 낸다 하더라도 다시는 받아 주지 않았다. 당연히 욕정을 풀 상대가 없어진 그는 은밀히 여인들을 납치하여 욕심을 채운 후엔 그녀들의 시신을 인육으로 만두를 빚어 파는 흑점(黑點)에 팔아 넘겨 왔던 것이다. 제아무리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악양이라 하지라도 거의 매일 규중 처자들이 실종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관까지 나서서 조사를 벌이게 되었다. 수사망이 점점 좁혀올 즈음 악양에 일월교가 나타났고, 그는 즉시 교도가 되었다. 누구든 그가 원하기만 하면 그 여인과 상대할 수 있게 해 준다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일월교에 투신한 그가 거의 이십여 명의 여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자, 악양전 전주는 그를 일월성군으로 추천하는 추천장을 써서 일월태상각이 있는 옥대로 보내 버렸다. 타고난 신력만으로도 황소의 뿔을 부러뜨릴 수 있었기에 이 추천에 이의를 다는 다른 교도들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이 추천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악양전의 여인들이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가장 환영한 것은 악양전 소속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혹여 그가 자신을 지목할까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것이다. 일월태상각에 도착한 그는 막강한 마공을 전수받으면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일월교의 장로 가운데 하나가 그에게 만일 모든 연공을 수석으로 마치면 백 명의 여인들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유난히 하물이 커서 이 세상에 짝을 이룰 만한 여인이 없기에 늘 욕정에 굶주려 산다는 것을 교묘히 자극한 처사였다. 당연히 그의 무공 연마는 다른 자들에 비하여 훨씬 더 필사적이었다. 하여 일월성군 제일군단 단주직을 제수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파천도부는 이곳 장백산으로 출동하면서 약속대로 백 명의 여인들을 하사받았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들은 벌써 모두 황천으로 향한 상태였다. 이곳에 주둔하면서 처음 며칠간은 잠잠히 지내던 그는 수하들에게 국경을 넘어 여인들을 납치하여 오라 지시한 바 있었다. 그의 이런 지시는 일월성군 제일군단 소속 모든 수하들로부터 환영받았다. 그들 역시 욕정에 굶주려 있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일월교에 입교하기 전 그들의 전력은 하나같이 무뢰한이나 불한당 등 주로 암흑가에 속해 있던 자들인지라 그들은 탁월한 솜씨로 여인들을 납치하여 욕정을 채워 왔다. 당연히 조선에서는 관군을 동원하여 이들의 침입을 대비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이들은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솜씨로 조선 병사들의 엄중한 호위망을 뚫었던 것이다. 조선 병사들이 이들을 손쉽게 대처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들에게는 절정의 신법이 있으나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조정에 증원군을 요청하였으나 때마침 왜구들이 창궐하던 시기인지라 모두 남쪽에 있었기에 증원이 되지 않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