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도 정벌 이윽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 도착한 남궁호는 장창 을 들고 서 있는 수문위사에게 다가섰다. "이놈, 게 섰거라! 예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발걸음을 들여놓는단 말이냐?" 수문위사는 남궁호가 양반들이 즐겨 입는 문사복이 아닌 평범한 장포를 걸치고 있자 경을 치려 다가섰다. 이를 본 유옥경은 사색이 되어 다가서며 수문위사들에게 사정을 하였다. "아이고! 나으리,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 분은 중원에서 오셨는지라 이곳이 왕궁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네 이년! 네년은 이곳이 어디인 줄 뻔히 알면서 이런 행동을 하도록 그냥 방치하였단 말이냐?" 남궁호는 둘 사이에 오가는 말의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없었으나 표정으로 미루어 자신 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알고 준엄한 표정을 지으며 유옥경에게 말을 하였다. "유 낭자! 수문위사에게 중원에서 남궁호가 왔다는 전갈을 하라 이르시오." 유옥경은 남궁호의 말에 그가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헛소리를 한다는 듯 가볍게 눈을 흘긴 후 입을 열었다. "공자님! 이곳이 어딘 줄 아시나요? 이곳이 바로 조선의 국왕께서 계시는 경복궁이에요. 이곳은 아무나 들 수 없는 곳이니, 어서 돌아가요." 그녀는 남궁호의 소매를 잡아끌며 빨리 뒤로 물러서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혹여 남궁호가 불경죄로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모습이 역력하였다. "후후후, 유 낭자. 어서 소생이 왔다고 전하시오." 유옥경은 등뒤에서 진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사색이 되어 갔다. 아무리 끌어당겨도 남궁호의 신형이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다소 떨어진 곳에 있던 수문위사들이 장창을 꼬나들고 다가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웬 소란이냐?" 막 수문위사들이 남궁호의 신형을 포위하려 할 때 붉은색 관복을 걸친 수염이 허연 노인 하나가 정문을 나서려다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이미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웬 젊은이가 경을 칠 것이라 생각하였는지 혀를 차고 있었다. "쯧쯧, 생긴 것도 멍청한 게 멍청한 짓을 하니 저러다 경을 치지. 쯧쯧쯧……." 대개가 이런 소리였다. 유옥경의 안색은 완전히 사색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감히 왕궁 앞에서 이런 소란을 부렸으니 이제 최소 곤장 백 대는 맞을 각오를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중원에서 왔다는 이 자가 무단으로 안으로 들어오려 하여 이를 제지하고 있던 중입니다, 대감!" "무엇이?" 대감은 서릿발같이 안색을 굳혔다. 그러면서 남궁호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는 영의정 유정현으로 평소 명나라의 사신들이 올 때마다 거들먹거리는 꼴에 이가 갈리던 사람이었다. 하여 대국 사람이라는 핑계로 왕궁까지 와서 행패를 부린다 생각하여 노화가 치솟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즉각 체포하여 압송하라는 명을 내리려는 찰나, 남궁호가 유옥경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유 낭자! 저 사람이 상전인 듯하니, 그에게 중원에서 남궁호가 왔다고 일러주시오." "공, 공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시다 경을 치니 빨리 물러서세요." 둘 사이에 오간 대화에 유정현의 안색이 갑자기 급변하였다. 그는 예전에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일이 있기에 중원어에 대하여 웬만큼 알고 있었기에 대화 내용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방금 무엇이라 하였소이까?" 남궁호는 유정현이 유창한 중원어로 말을 걸자 반갑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소생은 중원에서 온 남궁호라 하오이다. 안으로 들어가 귀국의 왕을 뵙고자 하니,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을 들은 유정현은 눈앞에 보이는 젊은이가 바로 그 동안 조정에서 그토록 행방을 알고 싶어하던 대명제국의 부마도위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즉시 허리 굽혀 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소신이 눈이 멀어 대인을 미처 몰라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정에서 대인께서 언제 오실지 알 수 없어 애를 태우던 중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과 수문위사들은 갑자기 영의정 유정현이 허리 굽혀 절을 하며 안으로 들라는 손짓을 하자,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잠시 후에 젊은이가 포도청으로 압송되는 것을 볼 것이라는 예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 중원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유옥경 역시 멍한 표정이 되어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이때 그녀의 뇌리로는 대명의 부마도위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영의정 유정현을 본 적이 없기에 그의 신분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호위무사들의 입에서 대감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무척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그가 절까지 해 대자 완전히 얼이 빠져 버렸던 것이다. 유정현은 직접 길 안내를 맡아 안으로 인도하며 곁에 있던 수하에게 명을 내렸다. "지금 즉시 안으로 들어가서 대명제국의 부마도위께서 입궁하셨다고 상감마마께 전하라!" "예에!" 이 말을 들은 중인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너무도 평범한 복장에 너무도 평범한 인물이 설마 대명제국의 부마도위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때문이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유옥경이었다. 그녀는 남궁호가 평범한 의원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으로서는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지고무상한 신분이라는 것에 뇌가 텅 비는 듯함을 맛보고 있었다. 남궁호는 유정현의 안내로 근정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지난 며칠간 조정은 발칵 뒤집어졌다. 분명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대명제국의 부마도위가 들어왔다는 전갈은 있었는데, 그 후의 종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조정에서는 개국 이후 가장 존귀한 손님이기에 새로 등극한 왕이 적어도 십 리 이상은 마중을 나가야 한다 중론이 모아져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 어가를 옮길 수 있도록 만반의 차비를 갖추고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남궁호가 직접 걸어서 광화문을 지나왔다는 전갈이 전해지자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남궁호가 가고 나면 경을 칠 신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조선은 올해 상왕인 태종이 보위를 올해 이십이 세가 된 천령군에게 넘겨주었다. 다만 국방 등에는 아직 경험이 일천한 신왕이 제대로 대비할 수 없기에 군사권만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근정전에 도착한 남궁호는 자신을 마중 나온 조선의 왕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조선의 대소신료들이 도열해 있었다. 정해진 예법에 따라 예절이 오가고 난 뒤 남궁호는 유옥경을 통하여 왕과의 독대를 요청하였다. 그녀는 얼떨결에 이곳까지 따라왔던 것이다. 후일 세종대왕으로 불려질 젊은 왕은 대명제국의 부마도위와 독대하였지만 전혀 위축되는 기색이 없는 제왕의 기도를 갖춘 타고난 왕재이었다. "전하! 소생은 대명제국의 부마도위 이전에 한 사람의 조선인으로서 전하께 청을 드릴 일이 있습니다." "오오, 대명의 부마도위께서 우리 한족이시라는 말씀이십니까?" 세종은 느닷없는 남궁호의 말에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고 반색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호가 이런 말을 첫머리로 꺼냈다는 것은 뭔가 무리한 요구를 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던 때문이었다. 조정에서는 대명의 지엄한 신분인 부마도위가 직접 행보를 하였을 때에는 뭔가 엄청난 요구를 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하여 내심 그것이 무엇인가 짐작할 수 없어 노심초사하였던 것이다. 놀란 것은 세종뿐이 아니었다. 곁에서 통역을 하던 유옥경 역시 놀랐다. 그가 대명제국의 부마도위라는 지고무상한 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그녀의 안색은 보기에도 딱하게 변해 있었다. 그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일순간에 깨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한족의 일원이라 밝히자, 그것만은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후후……, 소생이 전하께 이것을 밝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오, 말씀하시오. 부마도위께서 하시는 말씀을 세이경청(洗耳敬聽)하겠소이다." 유옥경의 통역으로 나눈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남궁호가 왜구들의 횡포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렇지 않아도 조선 땅을 침략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소탕하러 조선에서는 이종무(李從茂)를 삼군도체찰사에 임명하였고, 그를 지원하기 위하여 영의정 유정현을 삼도도통사로 임명한 바 있다 하였다. 대마도 정벌은 바다가 잔잔해지는 유월 중순쯤으로 잡고 있었는데 이를 위하여 현재 전라, 경상, 충청, 삼 도의 병선(兵船)들을 한곳에 집결시키고 있으며, 또한 군사 일만칠천을 선발하여 현재 맹훈련을 시키고 있다 하였다. 예상되는 전함(戰艦)의 수는 모두 이백이십칠 척이라 하였다. 남궁호는 자신 또한 한족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출정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을 하였고, 세종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지만 흔쾌히 받아들였다. 남궁호는 통역인 유옥경과 함께 백의종군한다는 기분이었지만 조정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임금조차 하대를 할 수 없는 지고무상한 신분을 지닌 그가 혹여 부상이라도 입게 된다면 이를 만회할 방법이 없어 나름대로 고심을 해야 하였다. 남궁호가 또 하나 요청한 것은 바로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삼성단에 들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세종은 이 또한 흔쾌히 수락하였다. 한족으로서 시조인 단군에게 제례를 올리고 싶음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남궁호가 어전에서 물러나와 특별히 마련된 전각에서 쉬고 있을 때, 의정부(議政府) 관리 중 하나가 독대를 요청한다는 전갈이 있었다. 접견은 즉각 허락되었다. "신(臣), 최만호가 대인을 알현하옵니다." 최만호는 얼마 전 대과에 장원급제하여 의정부에 배속된 장래가 촉망되는 학사였다. 그는 입궁한 이후 학문을 닦는 한편 남들과 다르게 매일 아침과 저녁에 검술을 연마하였다. 그러나 아직 그의 검술은 적을 상대로 시전하기에는 모자란 구석이 많은 상태였다. "호오, 무슨 일로 소생을 찾으셨소이까?" 남궁호는 자신과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였다. "소신, 대인께 특별히 청을 드릴 것이 있어 왔사옵니다." "말씀하시오." 최만호는 대명제국의 부마도위와 독대하는 자리에서 전혀 위축됨이 없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반듯하게 예절을 갖추었다. 남궁호는 조선에 와서 만났던 최윤덕이나 유정현, 그리고 눈앞의 최만호와 세종대왕까지 모두 한결같이 당당하고 자신에 찬 모습을 보이는 것이 왠지 기분이 좋았다. 만일 자신을 대국의 부마도위라 하여 조금이라도 굴욕적인 자세로 대하였다면 아마도 실망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이는 자신의 혈맥에 도도히 흐르는 피가 한족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고 있었다. "우선 소신은 대인께 처녀진헌(處女進獻)을 폐지시켜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처녀진헌? 그게 대체 무엇이오?" 남궁호는 금시초문인 말에 다소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처녀진헌이란 소국이 대국에 매년 아름다운 처녀들을 차출하여 진상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에서는 매년 적지 않은 수효의 처녀들을 선발하여 대명제국으로 보내고 있으나 그로 인한 폐단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설명을 들은 남궁호는 흔쾌히 수락하였다. 이는 대명 천자가 무엇이든 남궁호가 원하는 세 가지는 들어 주겠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금강수라마강시들을 무찌르고 돌아왔을 때 한 말이었다. 최만호가 요청한 또 하나는 매년 금(金)과 은(銀)을 조공물(朝貢物)로 명나라에 보냈는데, 이를 마(馬)와 포(布)로 대신하게 해 달라는 말이었다. 조선에는 광산이 적어 조공물을 감당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 역시 흔쾌히 수락되었다. 그러면서 남궁호는 진심으로 나라 걱정을 하는 최만호와 같은 신하를 중용할 줄 아는 세종대왕의 안목과 덕에 감탄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요구한 것은 이번 출정에 자신도 데리고 가 달라는 말이었다. 그는 의정부 소속 문관(文官)이지, 무관(武官)이 아니기에 이번 출정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최만호는 그러면서 자신과 이연실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모든 사연을 들은 남궁호는 이 역시 흔쾌히 수락하였다. 한 사람쯤 더 데리고 간다 해서 불편할 것도 없거니와 그와 같은 장부를 지기로 만나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가 청하면 조정에서는 군말 없이 허락할 것이다. 그날 남궁호는 최만호의 당당한 기개에 감탄하며 그와 말술을 마셨다. 드디어 출정의 날이 밝자 남궁호는 유옥경과 함께 말에 올라 군사들과 함께 먼길을 떠났다. * * * "만마앙복(萬魔仰伏)! 마신현신(魔神現身)! 속하들이 순찰을 뵈오이다." "크크크, 마신의 명령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강호를 제패할 것이니, 철저한 준비를 하여라!" "존명!" 수천 명이 운집한 곤명지부 지하 광장에는 괴이한 열기가 솟아나고 있었다. 일월교가 창건된 이후 처음으로 마신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진다는 설렘으로 들떠 있었던 것이다. 온통 시커먼 흑의를 걸치고 흑색 복면을 한 순찰의 가슴에는 금빛 실로 수놓은 일월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난 세월 일월교는 기구 조직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남칠성북육성에 있던 지부에는 새로운 부주가 부임하였다. 그리고 그의 바로 밑으로 두 명씩의 순찰이 임명되었다. 원래 있던 부주는 일월태상각으로 호출되어 갔다. 그들에겐 특별히 마신이 하사한 무공기서가 지급될 것이라 하였다. 교주로 있던 뇌진자가 복상사로 죽은 후 부교주가 새로운 교주가 되었다. 그는 뛰어난 영도력을 바탕으로 일월교도들은 한데 묶는 데 성공하였고, 그들로부터 죽음을 불사하는 충성심을 도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현재 일월교도들의 수효는 무려 오백만을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크크크, 이제 너희들은 천하의 모든 미녀들을 공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또한 너희들은 억조창생의 위에 군림하며 평생을 호의호식할 것이다." 순찰의 나지막하면서도 힘있는 음성은 교도들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상승전음술인 육합전성(六合傳聲)과 같은 수법을 시전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은 이곳 곤명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만마앙복탑에서 보낸 순찰들이 남칠성북육성의 모든 지부에서 동시에 이러한 마신의 전갈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크, 즐겨라! 이제 너희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너희가 마신께 충성을 하는 한 너희는 제왕 부럽지 않은 만족할 만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순찰의 말이 끝나자 곤명지부 지하 광장에서는 광란의 축제가 벌어졌다. 누구든 마음에 드는 이성을 골라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음양교합을 하였던 것이다. 일월교도들은 이제 그 어느 누구도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철면피들이 되어 있었다. 남녀간의 야릇한 신음이 지하 광장 가득히 메아리칠 때 순찰과 수뇌부들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목표를 채우기 위한 회합을 가졌다. 그것은 남칠성북육성에서 한날 한시에 봉기하여 무림의 모든 세력들을 없애는 무림말살계(武林抹殺計)였다. 이것이 시작되는 시점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마신(魔神)의 권한이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그의 명만 떨어지면 즉각 시행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던 것이다. * * * "됐어요! 조금만 더 수련하면 우리도 능히 한몫을 할 수 있겠어요." 너른 연무장에서 상의를 벗어제친 사내들이 어지러운 검무를 추고 있는 것을 바라보던 여인의 입에서 영롱한 옥음이 속삭이듯 흘러나왔다. 그녀가 앉아 있는 팔선탁의 건너편에는 여러 여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사내들은 각기 다섯이 한 조가 되어 춤추는 듯한 동작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일견하기엔 어설프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퇴로가 전혀 없는 가공할 검진이었다. 다만 아직은 서툰지 여기저기 허점이 보이고 있었다. 또 하나, 연무장에서 검무를 추고 있는 사내들의 체격은 검법을 연마하는 무사답지 않게 다소 앙상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예리한 안광을 뿜지 않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태양혈이 불룩 나온 자도 없었다. 다시 말해, 검을 쥐기에는 다소 빈약한 체형의 사내들만 모여 검무를 추되 그들의 내공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들은 거의 한 시진 동안이나 잠시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으나 누구 하나 숨이 거칠다거나 땀을 흘리는 사람이 없었다. "호호호, 영선단(靈仙丹)의 효과가 정말 대단해. 글이나 읽던 학사들을 불과 일 년 만에 저토록 발전할 수 있게 한 것은 순전히 언니 덕분이에요." "호호호, 무슨 말을……. 영선단은 저들에게 조금의 내공을 주었을 뿐이야. 나머지 검진이랑 이런 것들은 다 동생들 덕이야." 여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연무장에서 검무를 추고 있는 이백여 장한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그저 죽기살기로 검무를 추어 댔다. 이곳은 험난하기로 이름난 팔달령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름 없는 계곡이었다. 애초에 이곳은 전인미답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일단의 인원들이 이곳으로 와서 초라하지만 초옥들을 짓고 무공 연마를 시작하였다. 들어온 입구 외에는 다른 곳으로 향할 데는 전혀 없는 분지인 이곳 주변에는 언제부터인지 자욱한 운무가 피어올라 사방을 가리고 있었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감히 헤치고 들어올 수 없는 절진들이 겹겹이 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기문진법의 대가인 귀곡자(鬼哭子)라 할지라도 적어도 일 년은 고심하여야만 간신히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이곳은 몇몇 여인들이 머리를 짜서 만든 진세가 쳐져 있었다. 아마도 귀곡자가 다시 환생한다 할지라도 이처럼 절묘한 절진은 창안하지 못하였으리라! 이들이 이곳에 온 지는 대략 일 년 하고도 반이 조금 넘었다. 처음 반년 간은 모든 인원들이 온 산을 이 잡듯 뒤졌다. 그들은 어떤 약초들을 캐러 다녔던 것이다. 그들은 운 좋게도 희귀한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 음양만령초(陰陽萬靈草), 자엽설란(紫葉雪蘭), 청지홍엽설련실(靑枝紅葉雪蓮實) 등등을 캐내는 개가를 올렸다. 게다가 상고시대 때 살던 용들이 죽을 때가 되면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얻었던 이름 모를 고동에서 용들의 내단을 얻는 기연을 맞았다. 반년 후 몇몇 여인들이 진세를 설치하는 동안 나머지는 영단 제조에 들어갔다. 그 결과, 영선단이라는 희세의 영단을 만들게 되었다. 그것은 비록 무공이 전혀 없는 범인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 갑자 내공을 단숨에 얻을 수 있는 선약이었다. 그래서 글이나 읽던 학사들이 가공할 검무를 출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마파단(魔破團)이라고 칭했다. 세상의 모든 사악한 마도 세력을 없애겠다고 만든 이름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한 작지만 단단한 단체 하나가 성장하고 있었다. * * * 판옥선의 선수에서 안력을 높인 남궁호는 자욱한 운무 저쪽에 수십 척의 전함들이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삼 장 앞이 전혀 판별되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운무는 지난 며칠간 계속된 현상이었다. 부산포를 떠난 이백이십칠 척에 달하는 조선 전함들은 일 년 중 가장 바다가 잔잔한 대신 자욱한 운무가 발생되는 유월 중순에 출발하였다. 이때 출발한다면 가는 도중 풍랑으로 전함을 잃는 불상사가 발생되지 않을 뿐더러, 조선 수군이 대마도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구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자욱한 운무를 헤치고 정확히 나아갈 수 있는 고도의 항해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조선 수군은 그런 방면에는 도가 트다시피 하여 아무런 사고 없이 대마도 앞 바다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전함에 나누어 탄 일만칠천에 달하는 조선 수군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그 동안 조선 땅을 침범하여 갖은 악행을 저질러 온 왜구들을 소탕하는 대열에 자신들이 끼여 있다는 것에 지극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출진에 앞서 부산포에서 이번 정벌에 성공을 거두면 막대한 부상이 주어지리라는 삼도도통사 유정현 대감의 발표가 있었기에 일등공신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이런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은 지난 몇 달 동안 지독하리만치 엄격한 훈련을 받았던 때문이다. "장군! 소생이 보기에 왜선들은 조선의 전함보다 약한 듯 보이오이다." "……?" 이정무 장군은 자욱한 운무를 가리키며 입을 연 남궁호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남궁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저 입을 열었다. "장군! 소생이 보기에 왜선은 삼나무로 만든 듯 보이오이다. 삼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볍기에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으나, 단단하지 못하여 무엇이든 부딪히기만 하면 깨질 것이오. 다행히 조선 수군의 전함들은 단단한 소나무로 만들었으니 충돌시키면 산산이 부서질 것이오. 화포는 그 뒤에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싶소이다." "대인! 소장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찌……." 이정무는 남궁호가 마치 모든 것이 환히 보인다는 듯 손짓을 해 가며 이야기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반문하였다. "후후……, 소생은 다행히 눈이 좋기에 모든 것이 보인다오. 소생이 수신호를 할 터이니, 그때 일제히 출진하면 능히 적선들을 깨버릴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이정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무엇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잠시 멈칫거렸다. '맞아! 대인은 이곳까지 오는 한 달 동안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던 최만호를 극상승의 검사로 만들었다. 중원에는 기인이사들이 모래알처럼 많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대인께서 그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이정무는 남궁호가 대명 황실의 부마도위라는 생각이 미치자 어쩌면 그에게 대단한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그가 말한 대로 해 보기로 하였다. 그 역시 왜구들의 전함은 삼나무로 만들어 빠르기는 하지만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 알고 있었기에 아군의 손해는 극히 경미하리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인! 신호를 주십시오." 남궁호는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의 안쪽을 자세히 살폈다. 거기엔 한가롭게 오가는 왜인들 몇만이 있을 뿐 별다른 것들이 없었다. 그러나 포구를 감싸고 있는 울창한 숲 저쪽에 거대한 전각들이 세워져 있는 것을 살핀 남궁호는 일단 적선들을 깨어 버린 후 후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마도가 제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섬인 것이 분명한 이상 섬 주위를 돌며 모든 선박들을 깨버린다면 그들은 그야말로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후후…… 장군, 일단 아군의 선박들로 하여금 적선들을 깨버린 후 후퇴하게 하시오." "예에? 대인, 그건……." 후퇴하라는 남궁호의 말에 의아한 눈치를 보이던 이정무는 남궁호의 계책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아군은 단 한 발의 화포도 소모하지 않고 적들의 발을 묶은 후 바다에서 화포로 적의 성을 공격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대인!" 이정무는 곧 선수로 올라가 부장들과 협의를 한 후 남궁호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수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는 의미였다. 잠시 기다리던 남궁호는 운무가 조금 걷히려는 시점에 수신호로 일제히 공격 명령을 하였다. "공격하라! 적선들을 완전히 박살내 버려라!" 이정무의 고함은 고요하던 바다를 뒤흔들 정도로 우렁찼다. 그의 공격 명령에 지금껏 기다리기만 했던 판옥선들이 일제히 전진하며 엄청난 함성이 들렸다. 조선 수군들이 지르는 소리였다. "와와!" 판옥선들은 출발은 느릿느릿하였으나 일단 속도가 붙자 무서운 속도로 정박해 있는 왜구들의 선박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우지직! 우드득! 빠지직! "아앗! 적이닷!" 땡땡땡땡땡땡! 전함 안에서 한가롭게 오수(午睡)를 즐기려던 왜구들은 느닷없는 함성에 이어 조선 수군들의 전함이 무지막지하게 부딪쳐 오자 경악하며 이리저리 날뛰었다. 요란한 경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우군이 배로 오려면 적어도 이각은 족히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그저 제 목숨을 구하려 재빨리 상륙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침략했다! 조선에서 침략했다!" 몇몇 왜구들은 울창한 숲속으로 파고들며 요란하게 소리쳤다. 그 사이 조선의 판옥선들은 왜구들의 전함을 거의 박살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일부 용감한 수군들은 재빨리 왜구의 전함에 올라타 바닥에 구멍을 내는 한편 닥치는 대로 불을 질렀다. 나중에라도 침몰한 배의 잔해를 이용하여 다시 배를 건조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이정무의 고함이 다시 한번 바닷가를 뒤흔들자 판옥선들은 일제히 후퇴하여 자욱한 운무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완전히 철군한 뒤 숲속에 있던 왜구들 몇몇이 바닷가로 나와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본 남궁호는 빙긋 미소를 지은 후 이정무로 하여금 다른 포구로 이동하도록 하였다. 조선 수군의 이러한 행동은 자욱한 운무로 인하여 왜구들에게 전혀 발각되지 않았다. "도, 도주! 큰일났소이다." "클클……, 대체 무엇이 큰일이란 말이냐? 그렇게 호들갑을 떤다고 본 도주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으냐?" 대마도주인 소오사다모리[宗貞盛]는 흥겨운 연회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서 호들갑스런 보고를 하는 수하를 보고 짜증이 났다. 그는 오늘 오래간만에 대마도를 양분하고 있는 태양검파와 일도류파 수장들을 불러 놓고 연회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일도류파 종주인 일도섬전 궁검근자와 그의 장자인 마령신도 궁검일수, 그리고 태양검파의 종주와 그의 세 아들이 연회에 참석해 있었다. 일도섬전의 차남인 독안혈도 궁검일태랑은 이 자리에 참석해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마신 술은 수레로 하나는 족히 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고, 오늘 오래간만에 마음껏 취한 상태였다. "도주! 지금 한가롭게 연회를 베풀 시간이 없소이다. 어서 의사청으로 나셔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네놈이 감히 본 도주에게 훈계를 한단 말이냐?" "도주! 그, 그게 아니고……. 조선의 수군이 새까맣게 몰려와 닥치는 대로 우리 선박들을 부수고 있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소오사다모리는 일순간에 취기가 가시는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일도류파와 태양검파 수장들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무엇이라 하였느냐?" 양쪽 눈끝이 바짝 위로 치켜 올라갔고, 입술은 얇기 그지없었으며, 매부리코를 하여 잔인무도하게 생긴 일도섬전의 물음에 보고하던 자는 벌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조선의 수군이 본도의 모든 선박들을 박살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은 어디에 있느냐? 상륙을 하였느냐?" "아, 아직 상륙은 하지 않았으나 본도를 선회하며 모든 선박들을……." "그들이 배를 박살냈다면 필시 화포소리가 들렸을 터인데, 어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느냐?" 소오사다모리가 입을 열자 수하는 마치 제가 죄를 지은 양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들은 화포를 사용하지 않고 전함들을 충돌시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회장을 나서는 여섯 그림자가 있었다. 대마도주를 제외한 일도류파와 태양검파 수장들이었다. 대마도주가 오늘 베푼 연회는 대마도의 양대세력인 일도류파와 태양검파를 화해시키려는 자리였다. 그 동안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는 두 문파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한편 대신 조선에 상륙하여 좀더 많은 물자와 여인들을 구해 오라 은근히 종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의도를 들은 두 문파의 수장들은 앞으로 그러겠노라고 답한 후 사이좋게 연회를 즐기던 중이었다. 그러나 이제 연회는 끝났다. 악기를 연주하던 악사들과 앞에서 나무를 추던 여인들은 도주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성격이 너무도 포악하고 편협하며, 수시로 변하는 변화무쌍한 그의 성격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미리 피신하는 것이었다. "으으으, 모든 군사들을 집결시켜라!" 소오사다모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나서자, 수하는 그제서야 이제 살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마도에는 사만에 달하는 일도류파와 태양검파를 제외하고도 오천에 달하는 군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무공은 비록 두 문파의 제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독특한 군진(軍陣)을 사용하는 장기가 있었다. 그리고 암중에 도주를 호위하는 열두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의 진실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도주 측근일 것이다. 태양검파와 일도류파가 도주에게 복종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들 십이 호위 때문이었다. 두 문파의 종주는 일 대 일이라면 능히 자신이 있으나 그들 열둘을 동시에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전전대 태양검파 종주는 도주를 암살하고 자신이 도주직에 오르려다가 거꾸로 도주의 십이 호위에 의하여 처참한 시신으로 변하였다. 거사를 일으킨 다음 날, 태양검파는 원래의 형체를 알 수 없는 수북한 육포가 가득 든 관 하나를 전달받았다. 그것은 바로 태양검파 종주의 시신이었다. 십이 호위는 일벌백계의 의미로 그렇게 잔인하게 처형하였던 것이다. 그 후, 대마도 내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도주에게 대항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마도 내에서는 도주가 왕이었고, 신이었다. 그러나 암중으로 대체 십이 호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는 물밑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가 파악되면 각개격파가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도주가 두려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어느 누구도 도주의 십이 호위의 진정한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후후……, 이제 되었소이다. 이제 왜구들은 발이 묶였으니 소탕만 하면 될 것이외다." 남궁호는 활활 타오르는 왜구들의 선박들을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지었다. 그는 이곳에 오기까지 최만호와 유옥경으로부터 들어 왜구들이 대체 어떤 족속들인지를 파악하였다. 왜구는 조선이 건국되기 훨씬 이전인 삼국시대 때 한족들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여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렀다. 일찍이 백제의 왕이 왜왕에게 보낸 칠지도(七枝刀)는 왕이 제후에게 하사하는 하사품이었다. 그것이 현재 왜에서는 보물로서 대접받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때 같이 보낸 기저귀의 용도를 몰라 그것을 여인들이 입는 기모노라는 의복 등에 붙였으며, 버선은 남자들이 머리 위에 쓰는 모자인 줄 알고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실소를 머금었었다. 그러는 한편 왜인들은 좁은 섬에서만 사는 섬사람답게 성격이 편협하며, 잔인하며,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지닌 일백칠십여 년 동안 사백여 차례나 조선에 침범하고도 전혀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는 것을 바탕으로 추측해 낸 것이다. 사실 그 동안 고려와 조선에서는 대국답게 왜의 침탈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는 포용력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잡은 포로도 방면해 주기를 여러 차례나 되풀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왜인들은 잡혔을 때에만 반성하는 눈치를 보이고 일단 방면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다시 악행을 일삼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흐음, 왜인들은 형상은 사람이나 도저히 사람으로 보아 줄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이다. 이 기회에 아예 씨를 말려 버리는 것이 우리 한족의 장래를 위해서 더 이로울 것이다!" 남궁호는 대마도 정벌에 따라나서면서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굶어 죽든 말든 모든 선박들을 파괴하였던 것이다. 이제 잠시 후면 조선 수군들이 상륙을 하게 될 것이고,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것은 자명하였다. 모든 전투가 끝나면 눈에 뜨이는 모든 왜인들을 섬멸할 계획이고, 모든 숲에는 불을 질러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의 이런 마음을 짐작하고 있는 사람은 최만호와 유옥경뿐이었다. 그들은 이연실이 당한 일과 최근 왜구들의 행태가 어땠는지를 잘 알고 있는지라 남궁호의 의견에 이견이 없었다. "장군! 이제 왜구들의 모든 선박들을 부숴 버렸으니, 수군들로 하여금 상륙하여 적들을 토벌하도록 하시지요." 이종무는 남궁호의 계략 덕분에 왜구들의 모든 선박들을 박살내자 다소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껄껄…… 알겠소이다, 대인! 상륙에 앞서 화포로 왜구들의 성을 먼저 부숴야겠습니다." "후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이종무는 군검(軍劍)을 높이 쳐든 후 또다시 우렁찬 음성으로 명을 내렸다. "전군은 즉시 화포로 적의 성을 파괴하라!" "존명! 전군은 즉시 화포로 적의 성을 파괴하라." 곁에 있던 부관이 복창하며 명을 전달하자, 곧이어 같은 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전함 사이를 스치며 지났고, 잠시 후부터 화포들이 굉음과 함께 화염을 뿜었다. 펑! 뻥! 퍼펑! 뻐뻐뻐뻥! 자욱한 초연이 걷힐 무렵 왜구들의 견고해 보이는 성에서 화염이 치솟으며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사이 바닷가에는 엄청난 인원이 병장기를 든 채 모여들고 있었다. 바로 일도류파와 태양검파 소속 왜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선 수군이 쏘아대는 화포를 보기만 할 뿐 아무런 제지도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군들은 단 한 명도 상륙하지 않고 화살이 닿을 수 없는 전함에서 화포만 쏘아대기 때문이었다. "으으, 이러다간 모두 이곳에서 굶어 죽는다. 무슨 수를 쓰든 적이 상륙하면 그들을 섬멸하고 전함을 빼앗아야 한다." 바닷가를 마치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숲에 불이 붙자 일도섬전은 조선 수군들이 왜 이러는지를 짐작하였던 것이다. 숲이 몽땅 타 버리고 나면 염분기가 섞여 있는 해풍으로 인해 모든 농작물들이 말라죽음은 물론 다시는 소출을 거둘 수 없는 땅이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무엇들 하느냐? 빨리 불을 꺼라!" 태양검파의 종주인 태양검존이 거칠게 명을 내리자 멍하니 솟구치는 불길만 바라보던 왜구들이 마치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이리저리 뛰는 모습을 본 조선 수군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상륙을 준비하라!" 삼도도체찰사 이종무의 우렁찬 음성이 터져 나오자 웃음을 거둔 조선 수군들은 일제히 병장기를 꼬나들고 전함이 정박하기를 기다렸다. "공격 개시!" 조선 수군들은 전함들이 접안하는 속도를 조정하여 일제히 상륙하도록 수없이 연습을 하였던 바가 있었기에 모든 행동이 일사불란해 보였다. "공격하라!" 태양검파와 일도류파의 종주들 역시 조선 수군들이 일제히 상륙하여 대오를 갖추려 하자 재빨리 명을 내렸다. 곧 양측의 군사들이 일제히 내달리며 엄청난 함성으로 기선을 제압하려 하였다. "와와! 죽여랏! 한 놈도 살려 두지 말아라!" 채채채챙! 차챵! "으악!" "케에엑!" "어억!" 바닷가는 삽시간에 선혈로 물든 듯 시뻘겋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잘려진 팔다리가 비산하였고, 여기저기 수급이 널렸으며, 흘러내린 내장으로 인하여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였다. 아직 상륙하지 않고 판옥선의 선수에서 격전장을 바라보던 남궁호는 왜구들 가운데 발군의 기량을 보이는 몇 곳을 발견하고는 지체없이 몸을 날렸다. "유 낭자! 이곳에서 꼼짝 말고 있으시오." 일학충천(一鶴沖天)의 신법으로 치솟은 남궁호의 신형은 곧 곤륜파의 절기인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을 시전하였는지 허공에서 마치 꿈틀거리는 용처럼 움직이며 쾌속하게 날아갔다. 드디어 무공초현이었던 것이다. 그의 신형이 날아든 곳은 바로 일도류파의 종주인 일도섬전이 조선 수군들을 마구 베어 넘기고 있는 곳이었다. 다른 곳들은 비교적 호각세를 이루고 있건만 유독 이곳에서 조선 수군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모두 비키시오! 무적파천(無敵破天)―!" 무적풍 위세기의 독문검법 제일초가 시전되자 엄청난 경기가 먼저 휩쓰는가 싶더니 이내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검기가 그대로 일도섬전의 신형을 휩쓸어 갔다. 남궁호의 내공 섞인 사자후를 들은 조선 수군들은 일제히 후퇴를 하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공에서 시전한 남궁호의 검세가 마치 폭풍 같은 기세로 일도섬전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도저히 사람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어찌 한 자루의 검에서 반경 오 장이 넘는 엄청난 검기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일도섬전은 적들이 일제히 후퇴를 함과 동시에 살을 에일 듯한 예리한 검기가 몰아닥치자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 판단하였는지 알고 있는 수비식 중 가장 강한 초식을 시전하였다. "이얍! 만벽밀밀(萬壁密密)―!" 그러자 그의 도가 섬전처럼 움직이며 그의 신형 주위로 엄밀한 도막(刀幕)이 형성되었다. 설사 하늘에 구멍이 뚫린 양 비가 온다 하더라도 단 한 방울의 물도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엄밀한 도막이었다. 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치솟아 한동안 시야를 가렸다. 먼지가 가라앉자 온통 산발한 일도섬전의 입가에는 검붉은 선혈이 흐르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무려 열일곱 개의 깊숙한 발자국이 있었으며, 한 덩어리의 검붉은 선혈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좌측 장포는 어디론가 사라져 없었다. 물론 그의 좌수 역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도섬전이 펼친 도막은 남궁호가 시전한 무적검법에 그대로 분쇄되고 말았던 것이다. 단 일 검이었지만 일도섬전은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강적이 나타났음을 알았지만 도망갈 곳이 없었다. 너무도 엄청난 굉음에 격전장은 잠시 멈춰 있었고, 너무도 놀라운 상황에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조선 수군들은 아군이 엄청나게 강하여 적의 수괴 중 하나를 단 일검에 박살내는 것을 보고 사기가 충천하였으나 왜구들은 반대였다. "으으, 조선에 저토록 강한 장수가 있었단 말인가?" 남궁호가 이종무와 같은 전포(戰袍)를 걸치고 있었기에 그들은 그를 조선의 장수 중 하나인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태양검존은 자신과 대등한 무위를 지닌 일도섬전이 단 일검에 왼팔을 잃자 일 대 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판단하고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합공하여야 할 것 같소!" 일도섬전은 자신의 좌측으로 내려서는 그의 말을 들으며 아득해져 오는 정신을 다잡으며 소리쳤다. "저 자만 죽이면 우리의 승리다. 일제히 협공하라!" 왜구들은 겁을 집어먹고 있다 종주의 말을 듣고는 안광을 빛냈다. 종주의 말대로 가장 강한 적 하나만 죽이면 나머지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더 이상 잔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것들이 그들의 습성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혈랑 떼처럼 물불 안 가리고 남궁호의 신형을 향하여 일제히 폭사되어 갔다. "후후……, 가소로운 것들." 남궁호는 다가서는 왜구들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오늘 살계를 열어 눈에 뜨이는 모든 왜구들을 죽이려 마음먹었다. 함성을 지르며 다가서는 왜구들이 들고 있는 병장기의 날에서 새파란 빛을 발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도신(刀身)이나 검신(劍身)에 절독을 발랐음을 짐작한 남궁호는 노화가 치솟았다.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 하였다! 내 오늘 네놈들을 반드시 천참만륙(天塹萬戮)시키고야 말리라!" 조선 수군은 이들을 치기 위하여 왔건만 병장기에 독을 바른다거나 하는 비열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원 강호에서도 병장기에 독을 바르는 따위의 일을 하는 자는 무인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남궁호가 보기에 왜구들은 더 이상 살려둘 가치가 전혀 없는 독사나 마찬가지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한족 양민들이 그 동안 얼마나 혹독하게 당했을지를 짐작하고는 무적검에 전신 공력을 쏟아 부었다. 단 일검에 무적검법의 가공함과 한족의 가공함을 보이고 싶음 때문이었다. "오너라! 모조리 베어 주마! 이얍! 무적검법 제이초 무적만멸(無敵萬滅)―!" 막 남궁호의 신형을 꿰뚫으려 지근거리(至近距離)에 당도하였던 왜구들의 병장기들은 급작스럽게 솟아나는 가공할 호신강기에 그대로 퉁겨 나갔고, 그와 동시에 남궁호의 신형에서 폭풍과 같은 기도가 일어나 온 사방 천지를 휩쓸어 버렸다. 쓔와왕! 채챙! 챠챠챠챵! "아악!" "끄윽!" 남궁호의 일신을 향하여 마치 메뚜기 떼처럼 달려들던 왜구들은 거친 풍랑에 휩싸인 나뭇잎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며 단말마의 비명을 터뜨렸다. 설명은 길었으나 남궁호가 검법을 시전한 것은 불과 일수유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다. 잠시 후, 전장에는 질식할 것만 같은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남궁호가 서 있는 반경 십 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근에 있던 주먹만한 돌멩이들조차 검세에 날려갔던 것이다. 단 일수에 죽어 자빠진 왜구의 수효는 대략 일백여 명, 부상자는 삼백여 명에 가까웠다. 이는 무적검의 검극에서 솟구친 십 장 길이의 검강(劍 ) 때문이었다. 검강에 직접 닿은 자들은 어디가 잘려도 잘린 채 죽었고, 나머지 검풍에 의하여 부상당하였던 것이다. "으으으, 가공할 무위다." 일도섬전은 할 말을 잊었는지 몇 마디 중얼거리고는 입만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방금 그가 본 것은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가 추구하던 도의 빠름과 변화는 방금 전에 본 것과 비교하면 마치 태양과 반딧불의 차이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곁에 있던 태양검존도 마찬가지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공할 검법 앞에 자신이 창안하여 자금까지 무적이라고 자랑하던 태양검법은 그야말로 나뭇가지를 들고 설치는 어린아이 수준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장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일도류파의 차기 종주로 내정된 마령신도였다. 그는 부친이 좌측 어깨를 잃는 것을 본 순간, 이미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부친을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런 부친이 마치 홍수를 만난 토용처럼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는 도저히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무엇들하고 있는 게냐? 저놈도 사람이다. 지칠 때까지 공격하라! 저 자의 목을 베는 자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리라. 그러나, 만일 도주하는 자가 있다면 본좌가 먼저 목을 베겠다." 마령신도의 분노에 찬 일성(一聲)은 침묵을 깨기에 충분하였다. 왜구들은 명을 내린 마령일도의 포악한 성품을 익히 알기에 그의 말대로 이제 공격 아니면 죽음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재차 공격하려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그들의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이제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왜구들이 일제히 남궁호를 포위하며 다가서는 순간, 일도섬전과 태양검존 등 수뇌부는 슬그머니 뒤로 빠져 가까이 있는 수하들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였다. 그러자 각기 다른 복장을 한 두 인물이 수하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궁호는 이를 보았으나 도주하여 보았자 어차피 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한편 최만호는 격전장에 접어들자마자 그 동안 남궁호에게서 배운 신묘한 검법으로 왜구들의 목을 치며 전진하였다. 가히 파죽지세라 불러도 좋을 만큼 그의 검세는 가공하였기에 왜구들은 쓰러지기에 바빴다. 최만호는 자신의 정혼자인 이연실을 능욕하고 어디론가 끌고 간 왜구들을 단 하나도 용서할 수 없었기에 검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검에 당한 자들은 그 즉시 절명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뒤에서 깃발을 휘두르고 북을 치며 독전을 하던 이종무는 문관인 최만호가 보이는 가공할 무위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의 무위는 무관들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단 한치도 모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덕분에 전투는 비록 수적인 열세이지만 호각세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왜구들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조선 수군은 약간 열세였다. 그렇기에 일단 퇴각을 명한 다음 다시 전열을 가다듬을 생각으로 기수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려다 또 한번 놀라야 했다. 엄청난 사자후와 더불어 남궁호의 신형이 마치 쏜살처럼 허공을 휘젓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왜구들의 수장을 요절내고, 잠시 후에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보일 수 없는 가공할 무공으로 왜구들을 마치 태풍에 휘날리는 낙엽 마냥 쓸어 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이종무는 문득 남궁호가 천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랐다.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무위였던 것이다. 잠시 후, 전투는 이제 남궁호 대 왜구들 전체로 변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남궁호가 비록 엄청난 무위를 지니고는 있으나 사만에 가까운 왜구들을 물리칠 수 없다 판단되었기에 우렁찬 음성으로 명을 내렸다. "무엇들 하는 게냐? 즉시 공격하라!" 이종무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잠시 손을 놓고 있던 조선 수군들은 일제히 함성과 함께 왜구들을 향하여 밀려 나갔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처음보다도 훨씬 더 강한 모습이었다. 왜구들은 뒤에서 밀려드는 조선 수군을 상대하랴, 남궁호를 상대하랴,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으나 곧 수를 나눠 양측과 대치하였다. 그러는 동안 남궁호 주변에 새까맣게 몰려들었던 왜구들은 시산혈해의 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남궁호의 일수가 휘둘러질 때마다 백여 명에 가까운 왜구들이 목숨을 잃고 황천행을 하였으며, 파죽지세로 밀고 나오는 최만호로 인해 수십 명의 왜구들이 죽었다. 둘의 눈부신 활약은 아군의 기세에 막대한 영향을 줘 조선 수군은 전에 없이 맹렬히 왜구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왜구들은 손발이 어지러워지는가 싶다가는 이내 지옥으로 향하기에도 바빴기에 비록 수효가 많다고 하나 그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시뻘건 선혈이 모래사장 속으로 스며들어 원래부터 백사장이 붉은색이었던 듯 그렇게 물들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