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8월 9일,
록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펼쳐진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는
Iron maiden의 역사적인 World slavery Tour의 막이 올랐다.
1984년 8월 9일 시작되어 1985년 7월 5일까지 거의 1년 가까이 진행된 이 투어는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프랑스, 스웨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뿐만 아니라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 동구권 국가에서까지 공연을 했다.
이것은 서양의 헤비메탈 밴드가 동구권 국가에서 공연한 최초의 사례였다.
1985년 발매한 실황 음반 Live after death는 바로 이 World slavery Tour 중 미국 공연을 담은 것이다.
간만에 버즈에 갔다.
버즈 총각이 날 보며 언제나처럼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이상하게도 그는 내가 새로운 여자와 올때마다 어색하게 맞이하곤한다.
으례이 생경한 상황이건만 그의 그런 모습이 왠지 순수하게 보여 그리 불편하진 않았다.
그녀와 나는 잭 대니얼즈 한 병을 일단 시키고 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께"
"그래"
버즈 청년으로부터 키를 받아 2층 화장실에 가서 바지 재크를 내리자 길고도 나른한 소변 줄기가 심묘하게 뒤틀린 무지개를
그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머리 속이 아득하게 뒤틀리며 무언가 잃어 버렸던 기억이 아련하게 꿈틀대기 시작했다.
거울 속으로 시선을 고정시켜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나의 목을 뒤에서 부여잡고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오래만이군"
"왠일이야??"
"나는 너의 잠재의식이야....
니가 죽을때까지 너는 날 벗어날 수 없어"
"무슨 볼 일이지??"
"나를 부른건 너야...."
남자는 시가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어때?? 그녀와 재회를 한 소감이??"
"그저 그래"
"과연 그럴까??"
"원하는게 뭐냐??"
"그것은 니가 더 잘 알고 있을텐데??"
"내가 원하는 것을 니가 줄수 있단 말인가??"
"나의 존재는 너의 욕망이 만들어낸거야"
그는 시가를 들이키며 심홍색 연기를 나의 눈 안으로 뿌려주었다.
연기 속에서 그을여진 그의 강렬한 눈빛은 나의 욕망을 솔직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잠시후 나는 그의 최면에 휩싸여 목구멍 깊은 곳에서 꾹꾹 눌러왔던 굴욕적인 동심을 힘없이 토로하고야 말았다.
"돌아가고 싶어... 처음 만난 그때로"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가능할까??"
"가능해.... 단 조건이 있지"
"조건??"
"니가 아직도 아이언 메이든을 진심으로 좋아해야만 가능해.
기억나?? 내가 너의 잠재의식이 될수 있던 것은 바로 그들 때문이야."
"난 아직도 메이든을 진심으로 좋아해"
"그럼 가능해
자 가라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단 시간은 제한되어있다
아이언 메이든의 라이브 애프터 데쓰
앨범이 돌아가는 시간까지만 허용된다"
화장실을 나와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다
2017년의 버즈는 1989년의 홍대 카페로 변해 있었고
그녀의 모습은 28년전 19세의 얼굴로 변신했다
청순하고 순결한 이미지
특히 지금과는 달리 주름 하나 없는 하얗고 미끈한 피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듣기 싫은 비음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아가씨 특유의 낭랑한 음성으로 그녀는 내게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냥요 ^^"
이윽고 바에는 라이브 애프터 데쓰의 엘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Churchill's Speech
"이거 무슨 음악이에요??"
"아이언 메이든의 라이브 애프터 데쓰인것 같은데요"
"아이언 메이든 좋아해요??"
"네"
"라이브인것 같네요"
"1985년 10월 14일 발매된 라이브 앨범이구요
영국 차트 2위에 랭크되었죠
이 공연실황은 1984년 3월 14일부터 17일까지
L.A의 롱 비치 아레나에서 벌어진 라이브를 레코딩한 것이랍니다
아 참 지금 나오는 인트로는 처칠 수상의 메시지입니다"
"호 그래요??"
"네"
두번째 곡인 Aces High가 흐른다
"이 노래 많이 들었는데"
"5집 파워슬레이브에 수록된 에이시스 하이란 곡이죠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공군의 전투력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그런 곡입니다"
"꽤 스트레이트 하네요"
"네 멋진 곡이죠"
"우리 한잔 할래요??"
"그래요"
그녀와 나는 밀러를 마신다
"그런데 고등학생인데 술 마셔도 돼요??"
"왠 고리타분한 소리?? 학력고사도 보고 몇달후면 졸업인데??
그쪽도 마찬가지 아니야??"
"전 고등학생 아닙니다
재수생이에요 - ㅜ"
"그거나 그거나"
세번째 곡 2 Minutes To Midnight이 흘러 내려온다
"이 노래도 많이 들은것 같은데"
"역시 파워슬레이브 수록곡이죠
공교롭게도 그 앨범의 1번 2번 곡이 여기서도 똑같은 순서로 흘러내리고 있군요"
"그런걸 가리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고 하나요??"
"주혹새 날자 배 떨어진다고도 하지요"
"주혹새?? 그게 뭔가요??"
"까마귀과에 속하는 새입니다"
"새에 관심이 많나봐요??"
"네"
"가장 좋아하는 새가 뭐에요??"
"사글새입니다"
"뭐??"
예나 지금이나 나의 유머는 엄청 썰렁하군 - ㅜ
"이 곡은 세계의 종말을 다룬 곡이라고 해요"
"종말??"
"네 잠깐 설명드릴까요??"
"한번 해봐요"
"처음에 지구종말시계는 자정의 7분 전에서 출발했다가
1953년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 2분 전으로
자정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죠
1991년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상에
서명하고 핵무기 보유국들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당시에는 17분 전까지 조정되어 가장
안전한 때였습니다만 1995년 시계는 14분 전으로 조정되고,
1998년 6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 감축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면서 다시 9분 전으로 조정됩니다"
"이봐 당신 지금 소설 쓰는거에요?? 지금은 1989년도에요
그런데 1998년 이야기를 당신이 어떻게 알지??"
아 그렇군 지금은 1989년 겨울이지 - ㅜ
"하하 그냥 저의 상상력입니다 케케케"
"당신 정말 썰렁하군"
나를 비웃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섹시하고 깜찍하다
그녀의 비아냥거리는 소리와 함께 네번째곡 The Trooper가 등장한다
"이 노래는 MTV에서 진짜 많이 본건데"
"맞습니다 흑백비디오로 많이 나왔죠"
"신나는데요"
"그렇죠?? 신나죠"
"이 곡에 대해 아는거 없나요??"
"이 노래는 1853년과 1856년 사이에 발발한 크림 전쟁에 관하여 다룬 것입니다"
"크림 전쟁이라면 영국과 러시아간에 발발한??"
"네 맞아요~~"
"그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으로
약간 메탈리카의 One과 비슷한 포멧이지요 ^^"
다섯번째 곡 Revelations이 흘러내린다
"이 노래는 첨 듣는다"
"4집 피이스 오브 마인드 수록곡이죠
아이언 메이든의 앨범중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혹시 표지가 멤버들이 식탁에 앉아 해골반찬 먹고 있는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골찌게죠"
"지금 그것도 유머인가요??"
"네 썰렁했나요??"
"엄청요 - ㅜ"
"케케케 암튼간 중요한건 그게 아니구요
그 앨범 표지 원래 그게 아닙니다
에디가 쇠사슬에 묶여 괴로워하고있는 자켓이 오리지널이죠"
"에디가 뭐에요??"
"그들을 상징하고 있는 괴물덩어리입니다"
"그나저나 우리 술 한잔 하지 않을래요??"
"그래요"
그녀와 나는 다시 밀러를 마셨다
여섯번째 곡 Flight Of Icarus로 넘어갔다
"이 노래도 MTV에서 많이 보았는데"
"네 맞아요 더 트루퍼와 함께 많이 나왔었죠"
"멤버중에 괜찮게 생긴 사람이 있었는데 기타치는 사람??"
"에드리안 스미스 말이군요"
"그 남자 혹시 히어앤 에이드에도 나오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또다른 기타인 데이브 머레이와 같이 나왔죠"
이 노래 괜찮죠??"
"네...좋네요"
"이 곡은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 밀랍 날개가 녹아버려 추락한
이카루스라는 비극적 인물을 테마로 삼은 곡입니다
다소 팝적인 면도 없잖아 있지만 매우 멋진 곡이죠
특히 후반부 브루스 디킨슨의 절규는 아주 인상적이죠"
"근데 라이브에선 약간 힘을 못쓰는것 같네요 - ㅜ"
"네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긴 하나 그래도 대단한것 같습니다"
버즈 청년이 판을 갈아 B면으로 넘어가자
일곱 번째 곡 Rime Of The Ancient Mariner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입니다
중학교때 이 곡으로 아이언 메이든을 처음 알게 됐죠"
"그래요??"
"굉장히 긴 곡인데 구성이 상당히 잘 되어 있죠
초중반까지는 평이한 구성인데 중반부에 접어들어 음산한 나레이션이 깔리며
흡사 호러무비적인 환타지가 펼쳐진 후 스티브 해리스의 베이스 솔로를 시작으로
묵시적인 부분이 만개하고 데이브-애드리안의 트윈기타가 작열하며
다시 원래의 평이한 부분으로 귀환하지요"
"중간에 뭐라 씨부렁거리는 거에요??"
"아 저건 말이죠
영국의 문학가 쎄무앨 태일러 칼러릿지(1772-1834)라는 사람의 대 서정시인
"라임 오브 디 에인션트 매리나(1798)"입니다 ^^
영문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이라 합니다"
"흥 저 영어 못해요 - ㅜ"
"저도 잘 못해요 ^^"
여덟번째 곡 Powerslave가 흐른다
"이 노래가 바로 5집의 타이틀 트랙인 파워슬레이브입니다"
"약간 스레쉬적이네요"
"약간 그렇죠 메이든의 사운드는 이후 스레쉬메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당신이 어떻게 알지??"
"케케 그냥 그런것 같다구요"
"술이나 한잔 할래요??"
그녀와 난 이번엔 한국술 화랑을 마신다
"블랙 사바스와도 분위기가 비슷한것 같아"
"그런 면도 없잖아 있죠 주다스 프리스트랑도 비슷하고
하지만 아이언 메이든은 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그것은 주다스나 사바스에게는 없는 강렬한 베이스의 활약입니다
이 곡 중반부에서 펼쳐지는 스티브 해리스의 베이스는 실로 가공하죠
기타 둘을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는 그런 청천벽력의 베이스 연주입니다
또한 니코 멕브레인의 드럼 연주도 주다스 혹은 사바스로부터는 느낄 수 없는
다이내믹,파워풀,드라마틱 스틱터치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아 그 드럼?? 약간 개그맨처럼 생겼는데 이름이 누구더라??"
"정부미"
"아 그래 맞아 정부미 ㅎㅎㅎ 너무 못생겼어"
"그래도 드럼은 잘치잖습니까 ^^"
"하긴 뮤지션이 음악만 잘하면 되지 외모가 무슨 상관이야??"
아홉번째 곡 The Number Of The Beast가 흘러내린다
"어 이곡도 뮤비로 많이 본건데"
"맞습니다 더 트루퍼,플라잇 오브 이카루스와 함께
대학로 MTV에서 자주 나왔던 곡이죠"
"혹시 이곡에 에디인가 하는 그 괴물이 등장하지 않나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뮤직 비디오에선 가죽잠바를 걸친 대형 에디가 등장하고
라이브 비디오에선 파라오에디가 등장하지요
아 그리고 아까 나왔던 파워슬레이브 중간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대형 에디가 등장해서 춤을 추기도 합니다"
"당신 이제보니 아이언 메이든 광팬이군요"
"우하하하하"
"한 잔 할래요??"
"그러지요"
우린 다시 화랑을 마신다
"겁나 마셔 진짜!!!"
"이 천하에 악당 같으니라고!!!"
버즈 청년이 다시 판을 갈아 이제는 C면을 플레이어에 올리고 바늘을 내렸다
그러자 내가 엄청 좋아하는 Hallowed Be Thy Name이 등장했다
갑자기 이 노래를 듣자 이 세상을 떠난 지우 하야부사가 떠올라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어머 왜 그래요?? 당신 지금 우는 거에요??"
"아니에요 잠깐 담배연기가 눈 안에 들어가서"
"바보 같아요~~"
순간 머리 속에서 생전의 하야부사가 주혹새에 썼던 글이 미친듯이 맴돌기 시작했다.
나한텐 아이언메이든에 미친듯이 열광하던 학창시절 친구 둘이 있다.
기독교 사상과 메탈정신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이미 마음은 헤비메탈로 완전히 기울어 있던 어린 시절
친구들은 나에게 아이언메이든을 들어보라며 베스트 앨범(테잎)을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교회다닐 때
많이 들었던 메이든에 대한 괴소문은 그들의 음악을 두팔벌려 환영하는데 쭈뼛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들었다. 열심히 들었다. 고마움에 감사하며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좋아하는 자들의 행렬에 끼어들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이다. 좋아하는 마음+ 좋아해야한다는 당위....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났다.
인생 최대의 브레이크에 걸리며 음악을 듣는 걸 포기해야할 때가 있었다.
주혹새에 가입하고 다시금 헤비메탈을 듣기 시작했다. 즐거움이 찾아오는 덴 오래걸리질 않았다.....
어느날 .1
천안 집에 내려가서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러 PC방에 갔다. 게임에 서툰 난 방해만 되었고 우린 각자
개인 플레이 모드로 들어갔다.
난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미치도록 아이언 메이든이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네이버에 검색을 해서 링크가 걸린 블로그를 찾았다. 헤드셋으로 흘러나온 곡은
Hallowed be thy name........... 너무도 평화로운 날 난 담배연기 자욱한 PC방 구석에서 눈물을 흘렸다.
곧 죽을 죄수가 된 듯한....그러한 절대적인 공포와 허무와 울분이 밀려왔다.
시간아..............느리게 가다오........Running Row~~~~~~~~Yeah~~~~~~
그 부분부터 눈물이 쏟아진 것 같다.
머리털나고 음악을 들으며 운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엉뚱한 상황에서 아주 엉뚱한 시간에...그것도
갑자기...... 당혹스러웠지만, 마음속 아련한 싹이 자란 듯 했다. 메이든에 대한 애틋한 감정.
날 울게 했다는 존경심에 가까운 감정. 그런 것인듯 했다. 아이언메이든에 대한 이전의 어정쩡한 감정
을 벗어버린 듯한 해방감도 밀려왔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형수 아닌 사형수, 시한부 인생 환자의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게 했던 할로우드 비 다이 네임
은 미친 열병처럼 생전의 그를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염되어 가슴을 저미게 한다.
내 나이 열아홉~~
그 시절에도 나는 아이언 메이든의 열렬한 팬이었지만 설마 할로우드 비 다이 네임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거라곤 단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열아홉의 나는 할로우드 비 다이 네임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고~~
열아홉의 그는 나를 이해 못하겠다는듯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녀의 작고 귀여운 입술에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회색빛 담배 연기가 살포시 흘러나올무렵
열한번째곡 Iron Maiden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이 노래는 그들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그룹송이죠"
"노래제목이 아이언 메이든인가 보져?"
"네 그렇습니다 원래 보컬은 폴 디아노라는 친구가 했는데
그 사람은 2집까지만 참여하고 그 뒤를 이어 가입한
브루스 디킨슨이 이 곡을 부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노래를 잘하지만 갠적으로 전 폴이 더 끌립니다"
열두번째 곡 Run To The Hills가 흐른다
"이 노래도 MTV에서 자주 봤어요"
"하하 비디오가 상당히 재밌는 곡이죠
인디언들과 초기 미국인들의 혈투를 상당히 코믹하게 그린"
"이 비디오에서 애드리안 스미스 참 예뻤어요"
"귀여웠죠 하지만 갠적으로 전 스티브 해리스가 더 잘 생긴 것 같습니다"
"노래 참 괜찮네요 신나고"
"재미나고"
"마실래요?"
"네??"
"이 천하에 악당 같으니라고..... 마셔요!!!"
"네~~"
그녀와 난 다시 화랑을 마셨다
열세번째곡 Running Free가 흐른다
"이 곡 역시 아까 아이언 메이든과 마찬가지로 데뷔앨범에 수록된 곡이죠
전형적인 NWOBHM풍의 아주 신나고 경쾌한 곡입니다
베이스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세요 은근히 흥분됩니다"
"별로 흥분 안되는데?"
"쩝..."
"아니에요 흥분되요 ㅋㅋㅋ"
"원곡과는 달리 곡을 길게 늘려 관객들과 유니즌을 하는데 매우 신납니다
비디오로 보면 아주 장관이지요"
"유니즌?? 관객들과 같이 따라부르는거??"
"네"
"마실래요??"
"조금 천천히...^^"
"마셔!!!!!"
"네..."
"이 천하에 악당 같으니라고!!!!!!!!"
이번에는 화랑이 아니라 그녀가 좋아하는 밀러를 마셨다
술집 사장이 판을 갈아 D면을 올리자
내가 겁나게 좋아하는 열 네번째곡 Wrathchild가 터져나왔다
"이 노래 열라 멋지지 않습니까??
특히 초반부 스티브 해리스의 베이스 소리가 겁나 쩌러!!!!!!!!"
"난 뭐 그저 그런데"
"이 곡은 2집 수록곡으로 폴 디아노가 불렀죠
폴의 보컬로 들어야 제 맛이지만 브루스 버젼도 나름대로 멋지군요"
"당신 정말 메이든 광팬이군요"
"헤헤"
열 다섯번째 곡 22 Acacia Avenue가 끈적하게 흘러 내려온다
"아 이곡도 겁나 쩌는 명작입니다"
"어떤 앨범에 있는건데요?"
"제가 아주 광분하는 3집 더 넘버 오브 더 비스트 수록곡입니다
A면 네번째 곡으로 매우 드라마틱한 면모를 자랑하지요
가사는 22번가의 집장촌을 모델로 한거랍니다
1집의 샤롯데 하롯에서도 언급했던 그곳의 그 여인을 노래한거지요"
"아이언 메이든이 그런 외설적인 소재를??"
"샤롯데 하롯은 창녀가 되어 버린 애인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남자의 마음을 묘사하는데 그친 데 반해
아카시아 아베뉴는 그녀에게 가방을 챙겨 같이 떠나자고 힘차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즉 왜곡된 인생을 그만 두고 다른 삶을 권고하는 것이죠
갠적으로 음악 자체는 샤롯데 하롯을 더 좋아하지만 메시지로만 보았을땐
아카시아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열여섯번째 곡인 Children Of The Damned가 흐른다
"이 곡 역시 더 넘버 오브 더 비스트 수록곡입니다
참 애절한 발라드죠"
"발라드?? 아니 이런 곡이?? 너무 비트가 세지 않아??"
"글쎄 제 기준엔 발라드라고 생각합니다
전 러브송=발라드라는 공식을 인정하지 않거든요
저의 기준에선 메틀리카의 웰컴 홈, 메가데스의 인 마이 다키스트 아우어
메틀 처치의 와치 더 츌드런 프레이, 앤스렉스의 암드 앤 데인저러스같은
곡들도 싸그리 발라드로 포함시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발라드는 느낌이 발라드틱(애절+처연+공허)한 곡들이지요"
"독특해... 독특해"
열 일곱번째 곡 Die With Your Boots On이 굽이쳐 흐른다
"이 곡은 피이스 오브 마인드 수록곡인데요
불행히도 국내 라이센스 본에는 잘렸습니다"
"왜 잘렸을까? 너무 폭력적인 가사 때문에?"
"폭력적이라기 보다는 핵전쟁으로 일그러진 세기말의 암울한 상황을 그린 것이기에
금지곡 처분을 받았겠죠
암튼 이곡도 무지 멋진 음악입니다
브루스의 보컬도 강렬하고 애드리안과 데이브의 트윈기타도 죽이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리프와 곡 구성방식이 더 트루퍼와 비스무리하다는 것 정도??"
아 드디어 마지막곡 Phantom of the opera가 휘몰아친다
"왜 갑자기 슬픈 얼굴을 하는거죠??"
".........."
"왜 그래요?"
"이제 이 곡이 끝나면 당신을 볼수가 없어"
"뭐?"
"열 아홉살의 우리들은 이 곡이 끝나면 사라지게 돼"
"무슨 말이야??"
"이 노래는 오페라의 유령을 노래한 곡이죠
여기서 유령이란 나의 모습이죠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
이제 헤어지면 우리는 28년후에 다시 만나게 되지요
하지만 그땐 당신과 나는 그냥 친구로밖에 지낼 수 없어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알 수 없을꺼야...."
나의 식도 위로 최고로 독한 위스키인 쿠사나기 39년산이 콸콸 쏟아져 내려온다
쿠사나기는 나의 위를 뜨겁게 불태우고 머리 속을 새하얗게 물들인다
열 아홉살의 내가 잠시후 사라진다
애드리안과 데이브의 기타,니코의 드럼,브루스의 보컬
그리고 스티브의 베이스가 나의 귓가에서 서서히 멀어져 간다
완전히 취해버렸다
더 이상 나는 이성적인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볼수가 없다
열 아홉살의 그녀가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열 아홉살의 나 또한 허무하게 사라져간다
귓가에 들리는건 오로지 아이언 메이든의 연주일뿐
그것 역시 서서히 바래어져간다
조금씩 의식이 혼미해지며 영혼이 소멸되어간다
이와 동시에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 미식거리는 것이 시큼하게 치밀어올랐다
위식도 역류 현상...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버즈 화장실 변기 속에 얼굴을 처박고 구토를 하고 있었다
구토물이 변기 속에 고인 물과 마찰을 일으키며 온갖 더러운 것들이 내 얼굴 위로 튀어오르는데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때 누군가 다정하게 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변기 속에 고인 흐릿한 물위로 그의 모습이 비쳤다
"괜찮아??"
"아~ 목이 너무 아파 미치겠어~"
"재미 있었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는 특유의 건조한 미소를 머금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주었다
"앞으로도 니가 부르면 나타날께"
그는 나의 몸을 관통하여 변기 속에 고인 더러운 물로 미끄러지듯 사라져버렸고
이와 동시에 나의 얼굴에 묻어 있던 더러운 구토물과 배설물들 또한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화장실에서 나와 버즈로 다시 돌아오자 그녀가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지천명을 얼마 남기지 않은 그녀가 쭈글쭈글한 피부에 처절하게 분을 바르고 있었다
한편으론 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적잖은 사람들이 그녀를 추한줄 모르고 나대는 늙은 아줌마라고 비아냥거리겠지만
그녀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익히 기억하는 나는 결코 그녀를 능멸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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