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뼈와 살이 타는 밤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천하의 안위가 걸린 일입니 다. 소생이 황궁에 고하여 협조를 얻어낼 터이니, 그들과 힘을 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법으론……." 모든 이야기를 종합한 남궁호가 입을 열자 중인들의 시선이 집결되었다. 이제 그는 단순히 태극은하궁의 사위이고 황궁의 부마도위가 아니었다. 과거 금강수라마강시들을 괴멸시키는 데 앞장섰던 그였기에 그에게서 어떤 묘안이 나오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남궁호는 잠시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중인들은 궁금하다는 듯 그의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소생은 중원을 떠나기 전 내자에게 만일 천하에 겁난이 발생되면 가능한 모든 양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도록 말해 둔 바가 있었습니다." "……?" 남궁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소생의 생각으론 일단 금강수라마강시들이 가둬져 있는 황산 지옥곡의 진세를 풀까 합니다." "뭐라고? 방금 무엇이라 말하였는가? 그 마물들을 풀어놓으면 천하가 혈겁에 빠진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천령군은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그의 말에 대경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남궁호는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상공! 그럼 천하를 구하기 위하여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계(計)를 쓰자는 말씀이신가요?" 총명하기로 이름난 세외천미가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자, 중인들은 그제서야 남궁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다. 가둬 둔 금강수라마강시들을 풀어놓으면 분명 일월교도들과 충돌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양쪽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일단 일월교의 예봉이 꺾어진 뒤 태극은하궁과 황궁, 그리고 호천대와 상황호천대가 기타 세력과 결집되면 한 번 해 볼 만하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과연……!" 중인들은 감탄만 거듭할 뿐이었다. 일단 중지가 모아지자 모든 것은 일사천리였다. 황산에 가둬 둔 금강수라마강시들을 풀어놓는 것은 남궁호와 호천대가 맡기로 하였다. 그쪽은 일월교도들조차 발 들여놓기를 꺼려하는 곳이며, 호천대가 이미 그곳에 은신해 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황궁에는 천령군이 작성한 서찰을 남궁호가 전달하기로 하였다. 그 밖에 강호의 다른 문파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태극은하궁에서 맡기로 하였다. 그들이 연락을 취할 곳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겁난의 시작과 동시에 지하로 숨어든 하오밀문뿐이었던 것이다. 철기보의 괴멸 소식은 이곳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 일월교와 접전을 벌이는 정체 모를 집단과도 선이 닿는다면 연락을 취하여 공조체제를 갖추기로 하였다. 호천성녀를 비롯한 흑요무후와 요금추상은 너무도 쉽게 일이 풀리는 것이 기쁜지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세외천미였다. 얼마 전 그녀는 자신의 시녀인 유연이 심한 입덧을 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다그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그녀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겉으로 내색은 않았으나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함을 맛보고 며칠 간 식음을 전폐하였었다. 자신이 얼마나 남궁호를 연모하는지 뻔히 아는 그녀가 감히 자신도 모르게 그와 야합을 하였다 생각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유연은 죄책감에 눈물 흘리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때 세외천미는 다른 시비인 채향과 기진을 불러 그녀들의 진심을 떠보았다. 그 결과, 그녀는 남궁호에게는 여인들의 방심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으며, 한 번이라도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보기에도 전혀 볼품없는 그에게 자신의 방심을 빼앗긴 것도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너그럽게 유연을 용서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회가 닿는다면 채향과 기진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남궁호가 아리따운 세 여인을 동반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일부러 무릉소축을 벗어나 그녀들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들은 어떤 말을 들었는지 세외천미를 깍듯이 대하였다. 구파일방의 공동제자이자 호천대의 핵심 수뇌부인 그녀들은 남궁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눈빛을 빛냈다. 그래서 세외천미는 그녀들 역시 남궁호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그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시비로부터 들은 말에 세외천미는 화가 나 있었다. 세 여인들의 수욕을 도왔던 시비들의 보고에 의하면, 셋 다 수궁사가 없었다 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화가 났던 것이다. 지금은 중인들과 함께 있기에 노화를 터뜨릴 수 없으나 현재 그녀는 터지기 일보 직전인 화산과 같은 상태였다. 그래서 세 여인을 바라보는 눈길에 질투의 빛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연모하는지를 뻔히 아는 남궁호가 자신을 빼놓고 다른 여인들만 거두는 것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였다. 회합이 끝나자마자 남궁호는 세외천미의 손에 이끌려 무릉소축으로 향하였다. 거기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세 여인들이 공손히 시립해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유연이었다. "소첩이 상공을 뵈어요." "소녀들이 공자님을 뵈옵니다." 남궁호는 유연의 말을 듣고 직감적으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크, 큰일이군.' 유연은 정감이 그득한 눈길로 남궁호를 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아랫배는 전과는 달리 약간 불룩해 보이는 것이 아마도 잉태를 한 모양이었다. "흥! 상공! 어쩌면, 어쩌면 그러실 수 있어요? 흐흐흑……!" "후우! 미안하오. 어쩌다 보니 그만……. 정말 미안하오." 남궁호는 만일 자신이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하여 얕은 수를 쓴다면 분명 큰일이 기다릴 것이라 판단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시인하였다. "조만간 혼례식을 거행하도록 합시다." 남궁호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세외천미의 등을 다독였다. 그러자 그녀의 교구는 그대로 그의 품으로 무너지듯 안겨 왔다. "흐흐흑! 싫어요." "……?" 남궁호는 세외천미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하다 빙그레 미소지었다. 너무도 화가 나 그러는 줄 알았던 것이다. "후후……, 이러지 마시오. 이제 며칠 후면……." "흐흐흑! 싫어요." 세외천미는 그의 품을 앙증맞은 두 손으로 두들기며 도리질을 하였다. 잠시 말을 끊었던 그녀의 말은 남궁호를 아연실색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흐흑! 싫어요! 그러시다 또 가 버리시면 소녀는 어떻게 해요? 지, 지금 거두어 주세요." "……!" 남궁호는 세외천미에게 미안한 기분도 들면서도 이토록 자신을 연모하는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그녀의 교구를 품에 꼭 안으며 다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후후……, 지금은 대낮이오. 남들의 이목도 있는데 어찌 대낮에…… 으읍!" 그러나 남궁호의 말을 이어지지 않았다. 품속의 세외천미가 느닷없이 자신의 입술로 그의 입술을 덮었기 때문이었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던 남궁호는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용기를 냈는지를 짐작하고는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얼른 그녀의 교구를 바짝 끌어당겼다. 그녀는 난생 처음 입맞춤을 하기에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는지 입술만 대고 비비고 있었다. 잠시 후 세외천미는 나직한 비음을 내며 지상 최고의 황홀을 맛보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젖은 입술은 반쯤 열려 있었고, 단단한 치열마저 열려 있었다. 그녀의 혀는 그의 입 안으로 끌려 들어가 마치 발버둥치는 뱀처럼 이리저리 요동치고 있었다. 영사 같은 두 팔은 그의 목을 휘감고 있었고, 닫혀진 봉목에서는 한 줄기 이슬이 굴러 떨어짐과 동시에 속눈썹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이 순간, 그녀는 천하를 모두 얻은 것 같은 기분과 더불어 너무나 감미롭고 황홀하여 모든 시름을 잊고 오로지 뇌리를 스치는 황홀함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었다. "흐으응!" 세외천미는 남궁호의 두 손이 교묘히 움직이며 자신의 궁장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것도 모른 채 열락에 겨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신의 맥이 모두 빠진 듯 마치 연체동물처럼 그렇게 흐느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뒤 그녀는 태어날 때의 모습처럼 단 하나의 천 조각도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녀의 나신은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십전완미(十全完美), 빙기옥골(氷肌玉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두 팔로 그의 목을 휘감고 그의 달콤한 설육을 맛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연모하던 정인과의 첫 입맞춤인지라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그것에만 탐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호는 너무도 보드랍고 탄력이 있으며, 마치 손끝에 묻어날 듯한 오묘한 느낌에 지금이 대낮인 것도, 월동창 밖에 시비들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서서히 열락의 바다로 빠져들고 있었다. 잠시 후 길고 긴 입맞춤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탐스러운 융기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입김에 전율하고 말았다. 그의 목에 감겨 있던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감과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유실이 깊고 깊은 곳으로 흡입되는 느낌에 또 한 번 전율하여야만 하였다. "아아흑!" 이미 모든 것을 잊은 세외천미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남궁호의 색욕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그의 입술과 손은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세외천미는 젖은 입술로 끊임없는 신음과 교성을 내었다. 그녀의 전신은 끊임없이 벼락이라도 맞는지 쉬지 않고 경련 비슷한 것을 일으키고 있었고, 마치 물 속을 유영하는 인어 마냥 꿈틀거리고 있었다. 양쪽 유방을 완전히 점령당한 세외천미는 고운 아미를 잔뜩 찌푸리고 있었는데, 이는 그녀가 난생 처음 느끼는 너무도 황홀한 기분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아 그러는 것이었다. "거, 거긴……. 아잉! 난 몰라." 세외천미는 앙증맞은 배꼽에 이어 울창한 숲을 헤치는 느낌에 마치 작살 맞은 능어처럼 펄쩍 튀어올랐다. 무언가 축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뜨거우며, 꺼끌꺼끌한 것이 숲을 헤치고 그 안에 숨겨진 옥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녀의 정신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듯 거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과 교성을 내며 마구 발버둥쳤다. 그러나 집요한 공격은 끝날 줄 몰랐다. 결국 그녀는 정신을 놓고 잠시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옥문을 두드리던 그것은 옥문을 좌우로 열어제치고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깊이로 파고들었다.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남궁호 역시 전라의 몸이 되어 그녀의 옥주를 벌리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은 뒤였다. "어머! 에그머니낫!" 남궁호가 어디론가 사라진 줄 알고 신형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그만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무언가 시커멓고 굵은 몽둥이를 들고 있는 그를 보았던 것이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그녀는 얼른 섬섬옥수로 가린다고 가렸으나 벌려진 손가락 사이로 보일 것은 죄다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는 무언가 뜨겁고 딱딱한 것이 자신의 부끄러운 부위를 건드리는 느낌에 눈을 하얗게 뜨고 말았다. 평소에는 자신도 부끄러워 잘 건드리지 않는 너무도 예민한 부위를 스치는 느낌에 지금껏 느껴 왔던 그 어떤 느낌보다도 강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아아아아악!" 잠시 후, 세외천미는 자신의 하복부를 관통하듯 뚫고 들어오는 불칼이 어쩌면 목구멍을 뚫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엄청난 통증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경험이 풍부한 남궁호는 단숨에 옥문을 깨고 깊숙이 진입한 뒤 잠시 멈춘 상태였다. 세외천미의 옥문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한 줄기 앵혈이 비치고 있었고, 팔뚝에 있던 수궁사는 스르르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원대로 그녀는 완전히 남궁호의 여인이 된 것이다. 그는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본 뒤 부드럽게 속삭였다. "인매, 이제 된 거야. 인매는 이제부터 내 여인이 된 거야!" 남궁호의 부드러운 속삭임에 세외천미는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잠시 잊었는지 입을 열었다. "하악! 사, 상공! 소, 소녀는 너무 기뻐요. 흐읍!" 그러나 그녀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또다시 입술이 점령당하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부터 규방 안에는 열풍이 불어닥쳤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세외천미가 지르는 신음과 교성은 창을 뚫고 밖으로 나가 시비들의 귀를 간질였다. 이미 경험이 있는 유연은 하체를 비비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고, 채향과 기진은 두 볼을 능금빛으로 물들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만일 무릉소축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태극은하궁도 전원이 듣기에 민망한 소리를 들었으리라. 그러나 다행히도 무릉소축은 별도로 분리되어 있었기에 이곳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세 시비들과 남궁호를 만나러 왔던 옥기린, 그리고 무릉소축 정문을 지키는 두 장로였다. 그들의 귀는 너무도 예민하였기에 멀리 있었지만 이러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후후…… 소궁주, 아씨께서 드디어 원을 이루시는 모양이오." 빙그레 미소짓는 장로를 바라본 옥기린은 마치 자신이 죄라도 지은 양 뺨을 붉히면서 입을 열었다. "하하……, 그런 모양입니다. 오늘 밤 아우와 한 잔 술을 즐기려 하였는데, 오늘은 인아에게 양보해야 할 모양입니다." 옥기린은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그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것은 두 장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난 세월 동안 땅이 꺼지라고 한숨짓는 세외천미를 볼 때마다 안쓰러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킬킬…… 이보게, 아씨께서 극락 구경을 하는 모양일세." "클클클, 좋을 때야! 아암, 좋을 때고말고. 어휴, 오십 년만 젊었어도……." "킬킬킬! 예끼, 이 사람아! 다 늙어 가지고 웬 망발인가?" "클클……,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 노부도 예전에 저랬거든. 자네, 혹시 아는가? 노부가 소싯적엔 별명이 인간종마(人間種馬)였다는 걸?" 곁에 있던 장로는 배를 움켜쥐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클클클! 예끼, 이 사람아! 자네가 언제 인간종마라 불렸는가? 노부도 알 것은 다 아네. 자네가 인간토끼였다는 걸." "쉬, 쉬잇! 이, 이보게! 그 소문은 제발 내지 말게. 알았지? 내일 노부가 자네에게 한 잔 톡톡히 내겠네." 자랑하던 장로는 갑자기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대고 애원하듯 소리쳤다. 사실 그는 젊었을 적에 아내로부터 소박을 맞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럴 듯한 외모와 더불어 강한 무공을 지녔기에 많은 염문을 뿌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열렬한 구애 끝에 혼례식을 치른 지 사흘만에 부인에게서 소박을 당하였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곁에 있던 장로만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둘은 어렸을 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기에 서로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소박을 맞은 이유는, 그가 일만 치르려 하면 토끼처럼 불과 촌각도 되지 않아 끝나기 때문이었다. "클클클, 알았어. 내일 거하게 한 잔 사야 하네." "아, 알았네. 그나저나 남 공자 대단한걸! 벌써 반시진이 다 되어 가는데……." 장로들은 이제 거의 극에 달한 듯한 세외천미의 교성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엔 침상이 삐걱대는 소리가 섞여 있었기에 현재 그녀의 규방에서 얼마나 격렬한 방사가 치러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우와! 인간종마는 자네가 아니고 바로 남 공자인 모양일세. 내 평생 저렇게 격렬한 방사는 들어본 적도 없네." 장로들은 비록 늙었기는 하지만 같은 남자로서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탄하는 사람은 비단 그들 뿐만은 아니었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야릇한 신음소리에 섞여 침상이 부서질 듯 삐걱대는 소리를 들은 채향과 기진은 잠시 생각을 바꾸고 있었다. 할 때마다 저런다면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던 것이다. 자신들에게도 기회를 준다고 했던 세외천미의 말이 있었기에 그녀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유연만은 뜨거워진 몸을 식힐 길이 없어 여전히 교구를 비비꼬고 있었다. 그렇게 태극은하궁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남궁호는 유연이 차려 온 조반을 먹고 의사청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진 후 채향과 기진은 엉망이 된 세외천미를 보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봉두난발이 된 것은 물론 전신 어느 한 곳 멍들지 않은 곳이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침상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세외천미는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일어섰다가 후들거리는 하체를 감당치 못하여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아앗!" "어머! 아, 아씨!" 채향과 기진이 간신히 부축하여 그녀의 몸단장을 끝냈을 때에야 세외천미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보나마나 아씨의 옥용이 하룻밤 사이에 초췌하게 변했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세외천미의 옥용에서는 마치 밝은 빛이 빛나듯 그렇게 밝았을 뿐만 아니라 피부는 전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적어도 두세 살은 더 어려 보였다. 그녀들은 모르고 있었으나 간밤에 그녀는 기연을 만났다. 남궁호와 격렬한 방사를 치르는 동안 그녀의 체내는 완벽한 음양조화를 이루었으며, 반 갑자 정도의 내공이 늘었다. 또한 체내에 잠재되어 있던 모든 노폐물들이 체외로 배출되었으며, 전신 세맥과 잠맥은 물론 임독양맥과 생사현관까지 타통되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녀가 아홉 번이나 허물을 벗으면서 탈태환골하여 이제 영원히 늙지 않는 기연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여인들은 남궁호의 체내에 축년영지의 막강한 효능이 잠재되어 있는 한 그와 교접을 하면 어떤 여인이든 이런 기연을 얻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남궁호와의 방사 덕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어머! 어쩜……. 공자님과 하룻밤을 보내면 혹시 나도…….' 채향과 기진은 같은 생각을 하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고는 둘 다 볼을 붉혔다. 그녀들은 어제오늘 볼을 붉힐 일이 유난히 많았다. 그러는 그녀들의 내심엔 언젠가는 반드시 세외천미가 겪은 것과 같은 일을 자신들도 겪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태극은하궁 총단에서 모든 결정이 내려지자 남궁호와 세 여인은 다시 강호로 발길을 돌렸다. * * * "호호호, 수고들 하시었소." 옥화성녀 백리무영은 귀주성 귀양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궁도들에게 치하의 말을 건넸다. "이 모든 것이 성녀님의 염려 덕분이었습니다." 지난 수개월 간 옥성궁도들은 백리무영이 전수해 준 무공으로 일월교도들을 깨는 데 성공하였다. 그들은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며 무려 이만에 가까운 포로들을 잡아 왔다. 그들은 모두 팔선녀에 의하여 세뇌당하여 새로운 궁도가 되었다. 따라서 옥성궁은 나날이 그 수효가 불어나고 있었다. 백리무영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문제는 있었다. 바로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양민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기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곡식들이 들판마다 널려 있으나 이를 수확할 수는 없었다. 일월교도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수확을 하는 한편 철저히 경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수차례 그들을 급습하여 식량을 빼앗고 궁도로 받아들였으나 문제는 여전하였다. 나날이 궁도는 느는 반면 식량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팔선녀들은 어떤 계책을 세웠느냐?" 팔선녀 중 가장 맏이인 건일이 한 걸음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거둘 곡식이 없으니 총단을 이동하여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건일의 말이 끝나자마자 곁에 있던 태월이 입을 열었다. "물론 위험이 따르기는 하나 그렇다고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성녀님께서 결단을 내리셔야 할 때입니다." "호호호, 그래? 그럼 어디가 좋겠느냐?" "복건성 복주 부근에 너른 평야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정찰을 나갔던 궁도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곳의 너른 평야에는 익어 가는 곡식을 수확하는 자가 아무도 없어 그대로 썩어 가고 있다 합니다." 셋째인 이성의 말을 들은 백리무영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좋아! 그곳으로 이동하도록.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자, 그럼 이제 황도와 낙양 부근에서 일월교도들을 치는 세력이 누구인 줄 알아냈느냐?" "아, 아직! 그들이 일월교와 적대관계인 것만은 분명한데, 아직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좋아! 하루 속히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들과 협조 체제를 갖출 수 있다면 갖추는 것이 좋을 거야. 지금은 일단 일월교를 치는 것이 급선무이니……." "존명!" 백리무영은 태사의에서 일어나 내실 쪽으로 갔다. 지금은 그녀가 수욕을 하여야 하는 시각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수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호호……, 모든 것이 순조롭구나. 이제 일월교를 치고 나면 천하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다. 무주공산은 먼저 차지하는 것이 임자! 반드시 차지하고야 말겠어." 백리무영은 수욕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다른 것은 다 시비들의 시중을 들어도 수욕할 때만은 철저히 혼자 있었다. 현재 옥성궁은 은밀히 이동하여 호남성 남쪽에 위치한 계림(鷄林)에 있었다. 이곳은 천혜의 험지로 기암절벽도 많고 계곡도 많은 곳이었다.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 정도로 울창한 산림은 은신해 있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다. 일월교에 은밀히 입교시킨 궁도들의 수효만 해도 벌써 이십만에 달하고, 이곳에 남아 있는 인원도 십만 정도가 되는 엄청난 세력으로 성장한 옥성궁은 천하를 제패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인 일월교를 없애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옥성궁은 협력할 수 있는 모든 세력과 협력할 생각이었다. 일월교와 단독으로 부딪쳐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기도 하였지만 다른 세력과 제휴를 하게 되면 누가 되었든 전면에 나서지 않고는 곤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월교를 치는 동안 다른 세력도 타격을 입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일월교가 쓰러지고 난 뒤 가장 건재한 세력을 갖추고 있는 문파가 강호를 제패할 것은 자명한 이치! 백리무영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옥성궁에서도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천하를 제패한 뒤 수라제혼법으로 심령의 금제를 가하면 궁도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계산이었다. 그래서 옥성궁에서는 현재 일월교도들이 공격당하고 있는 황도와 낙양 부근에 많은 궁도들을 파견해 둔 상태였다. 백리무영이 천천히 수욕을 즐기는 사이 전각의 처마 아래 은신해 있던 검은 그림자 하나가 허공으로 솟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옥성궁 내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것은 백리무영도 마찬가지였다. 십 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지닌 그녀가 제아무리 방심하였다고는 하나 그녀의 영민한 이목을 숨길 수 있는 고수라면 적어도 그에 필적할 만한 고수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하하하! 대주, 어서 오시오. 고생이 심하였던 모양이오." 호천성녀 일행은 호천대원들의 환대 속에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한데, 두 분 대주님은 어디에 계시오?" 상취신개 조금기는 같이 떠났던 정현대사와 규화진인이 보이자 않자 그들의 행방을 물었다. "흐흑! 그 분들은……." 가장 마음이 여린 흑요무후가 지난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자, 호천대원들의 만면에는 웃음이 사라지는 대신 진한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으으, 반드시 일월교를 박살내고야 말리라!" 잠시 분노의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엔 수뇌부의 뒤에 서 있는 남궁호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성녀! 이 분 소협은 뉘신지요?" 그들은 천하의 그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서생이 수뇌부의 뒤를 따라온 것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아참! 소개가 늦었네요. 이 분은 무무색황 남궁호 대협이세요. 가가! 구파일방의 공동전인들인 호천대원들이에요." "후후……,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무상의 영광이오이다. 소생은 남궁호라 하오." 남궁호는 정중히 포권을 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러나 호천성녀의 말을 들은 호천대원들은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남궁호가 과거 강호를 혈겁으로부터 구했던 대영웅 무무색황이라는 것에 한 번 놀랐고, 호천성녀가 그를 부르는 호칭이 가가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래서 답례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흔히 젊은 남자를 호칭할 때에는 소협이라든지, 공자님, 혹은 상공이라는 칭호를 쓰는 법이다. 가가라는 호칭은 혼례를 올린 지어미가 지아비를 칭할 때 쓰는 호칭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호천대원들은 혹시 그가 자신들의 우상인 호천성녀와 혼례를 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 사이 그들은 또 한 번 놀라야만 하였다. "가가! 천첩이 안내할 테니, 이제 안으로 드세요." 놀랍게도 호천대의 서열 이위인 요금추상마저 천첩이란 호칭을 쓰고 있었다. 그들의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 놀란 그들은 아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호호호…… 그래요, 가가! 이곳은 제법 아늑한 곳이에요." 평소에는 쌀쌀맞기로 유명하던 흑요무후가 마치 봄날에 피어오르는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스스럼없이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우고 안으로 끌고 가려 하였던 것이다. "서, 성녀!" 너무도 놀란 호천대원들이 바라보자, 진추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 어떻게 한꺼번에 셋씩이나……." 호천대원들은 완전히 넋이 나갔는지 움직일 줄도,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남궁호는 왠지 이런 분위기가 너무도 어색하여 흑요무후가 이끄는 대로 동굴 안으로 이동하였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 비로소 정신을 차린 호천대원 가운데 하나가 입을 열었다. "과, 과연 색황이다!" 그의 한 마디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었기에 대원들은 부러운 눈길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조금도 질투의 빛이 없었다. 그들 역시 남궁호가 강호와 천하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하였는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것이다. 한참 뒤 평온을 되찾은 호천대원들은 동굴 깊숙한 곳에 위치한 너른 광장에서 또다시 놀라고 있었다. 바로 남궁호의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 "여러분! 천하는 지금 일월교라는 악마의 발톱 아래 신음하고 있소이다. 소생은 황궁과 태극은하궁을 대표하여 여러분들과 힘을 합쳐 이곳 황산 지옥곡에 가둬 둔 금강수라마강시들을 풀어놓으려 왔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황궁에 들른 남궁호는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물론 모든 것은 허락되었다. 황궁에서는 아직 피신하고 있지 않은 양민들을 대피시키는 일을 하기로 하였다. 곧 천하각지에 파발이 띄워졌다. 남궁호는 희란공주와 해후를 하여 달콤한 시간을 보낸 뒤 다른 여인들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그러나 그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암담한 소식뿐이었다. 황과수에 있는 모든 것이 불타 버렸다는 것과 다른 여인들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낙심하였지만 어딘가에 분명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한 그는 애써 상념을 떨치고 이곳 황산까지 왔던 것이다. 오는 동안 그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기에 여인들은 마치 지저귀는 종달새처럼 세상의 온갖 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물론 그녀들은 밤만 되면 희대의 요녀가 되었다. 그것은 그녀들이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참을 수 없는 쾌락에 겨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여인들에게는 작지만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 막중한 책임감으로 호천대를 이끌고 강호 정의를 실현하려 모든 일에 앞장서던 그녀들이 모든 것을 그에게 내맡기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난 여인들의 표정은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그 동안 여인의 몸으로 너무도 막중한 책무에 시달렸기에 더욱 그래 보였는지도 모른다. 남궁호는 찬찬히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일단 금강수라마강시들을 풀어놓으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일월교도들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양측에 피해가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금강수라마강시들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만일 일월교도들 전부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만큼 막대한 피해를 입힌 뒤일 것이니, 얼마 남지 않은 마물들을 충분히 격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제 일월교와 금강수라마강시 중 어느 쪽이 승리를 하느냐였다. 그에 따라 전략이 수정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금강수라마강시들을 풀어놓고 은신한 채 기다리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것에 토를 다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호천대원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소임이 얼마나 위험하며, 동시에 얼마나 막중한지를 깨닫고 전의에 불타는 얼굴이 되었다. 다음 날, 인적이 끊긴 황산 지옥곡의 계곡을 향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호천대였다. 한참 후 드디어 진세가 펼쳐진 곳에 도착한 일행은 남궁호로부터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다. 진세를 제거하는 순서가 틀리면 자칫 호천대원들이 진세에 갇히는 수가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것이었다. 아울러 단 한 번도 금강수라마강시들과 조우한 적이 없는 호천대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가공할 존재인지를 설명하였다. 자칫 호승심에 불타 함부로 덤벼들었다가는 본인은 물론 호천대원 전원이 몰살한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다. 금강수라마강시들의 수효는 불과 삼천팔백이나, 그들 하나하나가 가히 일당만이 넘는 위력을 지닌 괴물들이라는 소리를 들은 호천대원들은 등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세 해체에 걸린 시간은 거의 반나절이나 걸렸다. 호천성녀를 비롯하여 요금추상과 흑요무후에 이어 세외천미까지 거두느라 그의 내공은 이십 년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기에 신법이 다시 예전처럼 느려져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모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과거에 설치한 금사멸악진(禁邪滅惡陣)이 워낙 견고하게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에는 금강수라마강시들을 영원히 가둬 둘 생각이었기에 바윗덩어리도 보통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의 집채만한 바윗덩어리로 설치한 금사멸악진을 해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전체가 한꺼번에 바윗덩이를 굴려내면 완전히 진세가 해제되는 시점에 다다르자, 남궁호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가 깃발을 들고 있었다. 가장 높은 나무 위에 오른 남궁호는 진세 안쪽에 서 있는 삼천팔백여 금강수라마강시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 보아도 괴이한 그들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과연 이들을 풀어놓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고심하던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힘있게 깃발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호천대원들은 바위를 굴리고는 산지사방으로 마치 메뚜기 떼처럼 흩어졌다. 만일 조금만 늦는다면 굶주린 금강수라마강시들에 의하여 꼼짝없이 황천으로 향한다는 것을 누누이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호는 세 여인과 함께 바람처럼 날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 지금껏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던 금강수라마강시들이 오랜만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빛마저 감출 수 있던 금사멸악진이 사라지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에 실려 있던 인간의 체취가 그들을 오랜 잠에서 깨운 것이었다. 이제 천하는 도 아니면 모가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편 황궁에서는 양민들을 대피시키는 한편 남궁호가 남기고 간 진세를 설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워낙 넓은 지역에 설치하여야 하였기에 이백만 명친건흥군이 땀을 흘리며 돌아다녔지만 그것들이 모두 설치되는 데는 무려 닷새나 걸렸다. 드디어 진세가 발동되자 황도 전체는 자욱한 운무에 가려지게 되었다. 이제 그 어느 누구도 황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절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운무 속을 헤치고 밖으로 향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만뇌서시 기연빙을 비롯한 남궁호의 처들과 경천문집장의 학사들, 만화옥녀보의 여인들, 하오밀문의 고수들, 상황호천대의 고수들이었다. 물론 황도에 있던 일월교도들은 팔십만 금군에 의하여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주살되었다. 이것은 그 동안 면밀히 살폈던 돈추, 아니 만뇌서시 기연빙의 혁혁한 공로였다. * * * "크크크……, 이제 더 이상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 모든 교도들을 집합시켜라!" "존명!" 악양루 최상에 앉은 혈황마군은 잠시 후 모여든 교도들이 오체투지하고 있는 것을 굽어보며 소리쳤다. 내공이 실린 그의 음성은 밑에 있는 수하들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교도들은 들어라! 그 동안 본교를 괴롭혔던 흉수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들은 옥성궁이라는 문파로 옥화성녀라는 계집이 이끄는 집단이다. 또한 낙양 부근에 있는 것은 한녀회라는……." 혈황마군은 조금 전 장로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그대로 교도들에게 전달하였다. 옥성궁이 현재 모든 궁도들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복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판단하여 노화가 치솟아 있던 그는 이번 출정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낙양에 근거지가 있는 것이 확실한 한녀회라는 곳도 일월교에 대항하는 곳이라 보고되었고, 황도 부근에도 한 무리가 있다는 것을 보고받았다. 이에 일월교에서는 동원 가능한 전 인원을 동시에 투입해 그들을 급습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태극은하궁과 일월교, 한녀회와 옥성궁, 그리고 황도 부근 또 하나의 세력을 공격하기 위하여 각기 사십만씩 출정하라 명을 내렸다. 그 가운데 특히 태극은하궁을 치러 가는 출정대에게는 특별히 장창과 활을 잘 다루는 교도들을 집중적으로 투입시켰다. 얼마 전 어처구니없게도 거의 일천에 달하는 교도들이 대흥안령산맥에서 백호와 혈랑들에게 먹혔다는 보고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혈황마군은 자신들에게 대항하려는 모든 무림의 세력을 무력화시킴은 물론 미물인 백호과 혈랑마저 몰살시키라는 명을 내렸던 것이다. 이 기회에 아예 무림을 말살하고 이것이 끝나면 곧바로 황궁으로 쳐들어갈 계획이었다. 성공한다면 무림과 황궁을 동시에 석권하는 절대자가 될 것이다. 그 동안 사갈요희를 목 빠지게 기다렸지만 그녀는 웬일인지 소식조차 없었다. 이에 혹시 그녀에게 어떤 사고가 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였다. 강호에 누가 있어 감히 사갈요희와 같은 초절정 고수를 해친단 말인가! 혈황마군은 사갈요희가 배반하였다 판단하고 언제든 눈에 뜨이기만 하면 일 장에 격살해 버리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또 하나 지금까지 정체를 알 수 없어 마냥 기다리기만 하였던 천괴성을 타고난 자를 찾는 데 주력하기로 하였다. 하루 속히 그를 찾아 격살하여야만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얼마 전까지 저녁나절이면 찬란하게 빛나는 천괴성을 쉽게 살필 수 있던 그는 요즘 성광(星光)이 부쩍 줄어들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천괴성을 타고난 자에게 어떤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는 징조였다. 그러나 별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어딘가에 분명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일단 강호를 혈겁으로 몰아넣고 나면 필시 천괴성을 타고난 자가 영웅심리 때문에라도 나타나리라 생각하였기에 이번 출정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가 누구이든 나타나기만 하면 단숨에 격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혈황마군은 그가 어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 * * 개봉을 지나 곡부로 향하는 관도 위에는 허름한 의복을 걸친 두 서생이 마치 유람하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둘 다 봉두난발이었고, 의복이 여기저기 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어디에선가 심한 고초를 겪은 모양이었다. 하나는 육 척 장신인데 비하여 하나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다. 생긴 것은 너무도 평범하여 누구든 그들을 한 번 본 뒤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려면 한참 애를 먹어야 할 정도였다. 다시 말해, 너무도 평범하여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라는 말이다. "이러지 말고 황궁이 있는 황도로 갑시다." "거긴 왜?" 키가 큰 청년이 작은 청년에게 존대를 하는 것으로 보아 둘 중 작은 쪽이 손윗사람인 모양이었다. "아버님과 형님들이 그들에게 당한 이상 복수를 해야지요." "그런데 왜 복수를 황도에 가서 한다는 것이냐?" "우리의 힘만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키 큰 청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작은 청년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그를 힐끔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일단 황도로 가면 남궁 형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남궁 형? 무무색황 남궁호 대협을 말하려는 것이냐?" "맞아요!" 키가 작은 청년은 그제서야 관심이 간다는 듯 심드렁하던 태도를 버리고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본보와 유대를 가졌던 유일한 사람이잖아요? 그에게 부탁하면 어쩌면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흐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과연 그가 우릴 도와주려 할까?" "소제도 말할 테니 누님도 그에게 부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소제가 알기론 남궁 형은 성격이 다정다감해서 타인의 청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둘은 남매지간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색은 영락없는 낙척서생이 아니던가! 아마도 작은 쪽은 남장여인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얼굴도 역용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누가 보아도 사내의 얼굴이지, 결코 여인이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바로 이제는 멸문당한 철기보의 일룡일봉인 북리성린과 북리운혜였다. 이들은 위도를 탈출한 뒤 철기보가 일월교에 의하여 완전히 괴멸당하였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과 분노 때문에 즉시 일월교를 급습하려 하였다. 그러나 단둘이 거대한 일월교를 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성질 급한 북리성린이 혈루를 흘리며 나가려 할 때, 이를 제지한 것은 침착하기로 소문난 도화요정 북리운혜였다. 그녀는 장부의 복수는 십 년 안에만 하면 된다며 만류하였다. 그녀 역시 부친을 잃은 슬픔에 잠겨 한동안 꼼짝도 않았지만 곧 용기를 내어 정처 없는 강호행을 시작하였다. 당연히 역용을 하여 본색을 감추었다. 낮에는 낙척서생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일월교도들이 저지르는 만행을 살폈다가 밤만 되면 복면을 하고 그들을 추살하였다. 그러나 단둘이 하는 살행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들이 지금까지 추살한 일월교의 조무래기들의 수효는 불과 오십을 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는 평생이 걸려도 복수를 할 수 없다 생각한 그들은 현재 정처 없는 발길을 옮기며 장차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건 그래! 하지만 전에 보았을 때 그는 무공은 별로였던 것 같던데……." "맞아요! 하지만 형님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묘한 구석이 있어요. 누님도 아시다시피 소제는 지금까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준 적이 없어요. 하지만 남궁 형은 달랐어요. 이상하게도 그 형과 함께 있을 땐 마음도 편했어요. 그래서 그 형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에요." "……!" 북리운혜는 아우의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호가 철기보를 떠난 뒤 그녀는 한동안 이상한 상실감에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을 느끼곤 하였었다. 처음엔 대체 왜 그러는지 그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언제가 우연히 남궁호의 영상을 떠올린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그가 마치 화인(火印)처럼 낙인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는 자신의 방심(芳心)을 앗아갔던 것이다. 대체 그 연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던 그녀는 최근 들어서야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는 남들에겐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로 인해 많은 여인들이 상사(相思)의 열병을 앓았을 것이며, 현재 그와 함께 있는 여인들은 이 세상 그 어떤 여인들보다도 행복해할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과연 그 분이 우릴 도와줄까?" 북리운혜가 홀로 중얼거리자, 북리성린이 얼른 말을 받았다. "누님! 소제가 보건대 형님은 결코 본보의 불행을 좌시하지 않을 성품이에요. 그러니 일단 황도로 가 봅시다. 황궁으로 가면 어쩌면 형님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 북리운혜는 무언가 생각하는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말없는 사이 무언의 묵계가 이루어진 듯 갈림길이 나오자 곡부로 향하던 길을 버리고 황도로 향하는 관도로 접어들었다. 관도에는 양민들이 사라진 관계로 행인들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그들 둘은 외로운 북상을 하고 있었다. * * * ― 이보게! 자네, 혹시 들었나? ― 뭘? ― 금강수라마강시라는 마물들이 다시 강호로 쏟아져 나왔다는 말 말일세. ― 뭐어? 자네, 방금 그, 금강수라마강시라 하였는가? 저, 정말 그 마물들이 다시 강호에 나타났다는 말이야? ― 그래! ― 그렇다면 정말 큰일일세! 빨리 숨을 곳을 찾아야겠네. ― 뭐? 숨을 곳을 찾는다고? 그럼 자넨 교를 버리고 도망치겠다는 말인가? 처벌이 무섭지 않다는 말이야? ― 그, 그건 아니지만……. 하지만……. 한데, 자넨 그 소식을 어디에서 들었는가? ― 으응? 아, 그 소식? 이건 절대 비밀이네. 사실은 우리 집에 내 친구 하나가 와 있네. 그 친구 말로는 며칠 전 황산 지옥곡에 괴변이 있었다고 하네. 사냥하려고 산에 올랐다가 너무 더워서 잠시 수욕을 하려는데, 무언가 이상한 것이 지나가더래……. ― 아, 이 사람아! 뜸들이지 말고 얼른 말하게. 답답해 미치겠네. ― 근데 그들이 지나가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수목들이 말라죽더래. 그래서 이상하다 싶어 살펴보았더니 글쎄, 지나갔던 것들이 금강수라마강시가 분명하더라는 거네. ― 그게 무슨 소린가? 나무가 말라죽은 것만 가지고 그들이 그 마물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다는 거지? ― 그 친구는 몇 년 전, 금강수라마강시들을 가두고 난 뒤 하도 궁금해서 그 근처를 가 본 적이 있다네. 그때 그들이 지난 자리에 있던 수목들은 하나같이 말라죽어 있더래. ― 그, 그럼 정말 그 마물들이 또 나타났다는 건가? 예전에 무무색황이 그들을 잘 가두었다고 했지 않았던가? ― 그때야 진세로 가두었다고 하질 않던가? 진세라는 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파훼되는 수가 있다고 들었네. ― 여보게, 우리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얼른 보고를 하세. 그래야 본교에서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황산에서 머지않은 한가한 촌락의 허름한 객잔 한 구석에서 친구로 보이는 둘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대화 내용으로 보아 일월교도들이 분명하였다. 나직이 말하는 그들은 금강수라마강시라는 마물의 출현에 놀라면서도 장차 어떻게 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일월교에서 법규를 어기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를 뻔히 알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현재 중원의 그 어떤 객잔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일월교도들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양민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객잔도 직접 운영하여야 하였던 것이다. 간혹 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드나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백 중 하나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강호에서 가장 먼저 금강수라마강시라는 마물들이 재출현하였다는 것을 안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려 할 때, 시커먼 그림자 몇이 객잔의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너무도 거친 그들의 태도에 기분이 상한 장방이 소리치려는 순간, 무언가가 그의 목젖을 꿰뚫고 지났다. "누구…… 악!" 그것이 시작이었다. 방금 전 대화를 나누던 장한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제자리에서 벌벌 떨며 소변을 지리고 있었다. 남루한 의복을 걸친 상대는 두 눈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강시였던 것이다. "그, 금강수라마강시다! 아아악!" 소리치던 장한은 그 즉시 한 줌 혈수로 녹아들고 있었다. 금강수라마강시의 손톱이 그의 얼굴을 할퀸 직후였다. 잠시 뒤 객잔은 물론 자그마한 촌락에 생명체는 전혀 없었다. 이것은 살육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