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일곱 개의 하늘(天)… 열리다!
화천정의 객청. 이것은 어떤 실내가 아니라 화원 한가운데에 운치있게 자리한 통나무 의자였다. 그곳에 지금 삼인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개왕 종비후, 대천성승, 그리고 대천성승 옆에 또 한 승인이 앉아 있었다. 회색 가사를 걸친 중년 여스님이었다. 헌데…… 이제 겨우 사십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나이가 이미 백이 넘었다면 누가 믿을 수 있르랴! 그녀 역시 정사칠천 중의 일 인이었던 것이다.
해천신니(慧天神尼).
무림오대세가 중 남궁세가의 출신. 그녀는 원래 승인이 아니었다. 해천신니라는 법명(法名)보다는 무림일봉(武林一鳳) 남궁하(南宮夏)라는 이름으로 정사칠천에 끼인 것이었다. 여인의 몸으로 정사칠천에 끼일 정도이니 그 일신의 기량이 어떠함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키키키…… 하매! 머리를 깎으니 더욱 아름답구료." 개왕 종비후가 자꾸 해천신니의 방갓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려냈다. 그의 말로 미루어 그 역시 무림일봉 남궁하- 해천신니의 축가 후 모습을 처음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미타불…… 거지 오라버니! 백 년만에 뵈니 신수가 더욱 좋아지신 듯하군요." 해천신니가 합장하며 어색함을 감췄다. 이때, "크흐흐흐…… 하매가 머리를 깎았다고?" 돌연, 허공에서 한 인영이 유령과도 같이 내려섰다. 구 척(九尺)에 달하는 키. 강시(彊屍)처럼 깡마른 몸집. 희디흰 장포는 발끝까지 내려와 흡사 나무에 포대를 씌워놓은 듯한 괴인이었다. "전주(殿主)! 어서 오시게." 대천성승이 긴장된 빛을 띠었다. 백포괴인. 그의 눈빛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섬칫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거의 흰자만이 보이는 눈동자가 화원을 살피고 있었다. "크하하하…… 대형(大兄)은 아니 계시오?" 음산했다. 마치 까마귀가 울부짖는 듯 듣기 거북한 음성이었다. "그렇다네. 우선 자리에 앉게 곧 오실 것이네." "……!" 문득, 백포괴인의 눈에 맑은 빛이 돌았다. "거지의 말이 맞군! 머리를 깎은 하매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군……!" 그의 눈빛은 기이하게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으음… 북시주의 그녀에 대한 마음이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은 듯하니……' 대천성승이 그 괴인의 행동을 지켜보며 내심 까닭모를 탄식을 흘려냈다. 괴인. 그는 바로 정사칠천의 일인인 비천설영신(飛天雪靈神) 북천기(北天機)였다.
비천설영신 북천기.
대설산(大雪山) 깊숙한 곳에 위채해 있다는 신비의 문파 대설전(大雪殿)의 전주(殿主). 그는 정사칠천 중 사파(邪派)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잔혹하고 괴퍅한 성품으로 전무림의 공포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허……! 이 늙은이는 술도 한 잔 주지 않으려나……?"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개왕 종비후가 나직이 헛기침을 터뜨렸다. "크흐흐흐흐……" 비천설영신 북천기가 문득 의미심장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흐흐흐…… 거지! 걱정되는가?" "……?" "밖에서 떨고 있는 여든 한 명의 어린거지를 말일세." "그, 그것을 어찌……!" 개왕 종비후가 경악의 표정을 보였다. "크흐흐흐…… 대천대머리도 구대천왕불(九大天王佛)인가 하는 어린 땡초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까지 알고 있지!" "으음……" "아미타불……" 대천성승과 개왕 종비후가 나직이 신음했다. 허나, 대천성승이 이내 의미심장히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불시주께서도 어린 시주 네 명을 동반하지 않았소?" "크흐흐흐… 역시 대천땡초의 눈은 백 년 전과 다름이 없군." 비천설영신이 시인하자 유독 해천신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으음… 이들은 백 년만에 강호에 출도하면서… 모두 자파의 정예들을 암암리에 데리고 왔단 말인가?'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것은 곧 백 년 전의 그 혼란의 시기가 재차… 아아……!' 해천신니의 눈이 망연히 천공을 응시했다. '이들이 수하들을 데리고 온 것은 아직 서로를 경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백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화합할 수 없다니……' 그녀의 뇌리에 백 년 전 정사칠천이 한 가지 목적 아래 뭉쳤던 일이 스쳐갔다. '대명(大明)을 건국한다는 거대한 명문 앞에서는 자신의 사욕을 과감히 버렸던 이들이 아닌가……!' '또 이렇게 뭉쳐 강호평화를 위해 여생(餘生)을 바칠 마음은 없단 말인가……' 이때, 문득 해천신니가 근심이 이슬처럼 맺힌 눈을 들어 한 곳을 응시했다. "아미타불…… 언니! 어서 오세요." "호호호……!"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삼 장 밖에서 여인의 교소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한 인영이 화천장의 담을 넘어 훨훨 날아왔다. 마치 백학(白鶴)이 허공을 활보한다고 할까……! "호호호…… 언니? 하매는 결국 출가했군." 벽안(碧眼)의 금발미부가 그들 앞에 내려섰다. 출렁이는 금발. 손에 한 줌에 잡힐 듯한 허리. 허나, 가슴의 융기는 실로 풍만하여 터질 듯 팽팽했다. "끼끼끼…… 빈누이! 어서 오시오. 헌데 빈누이도 수하들을 데리고 왔소?" 개왕 종비후가 예의 익살맞은 괴소를 터뜨렸다. "빈누이?" 벽안미부의 눈에 순간 차가운 한망이 스쳤다. "호호호…… 거지! 광오해졌구나. 누구한테 그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아!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녀가 누구이기에 정자칠천의 일인이며 개방의 최고배분을 지니고 있는 개왕 종비후를 이토록 핍박한단 말인가? 사천벽마희(邪天碧魔姬) 사도빈(司徒殯).
대막여신(大漠女神)으로 불리우는 회대의 마녀(魔女). 그녀는 대막의 패자(覇者) 대막사천부(大漠邪天府)의 부주이며 정사칠천의 일인이었다.
"허어…! 애닯도다. 백 년이 지나도 그 앙칼진 성품은 여전하니……" 개왕 종비후가 민망한 듯 입맛을 다셨다. 순간, 휙! 한 줄기 백선(白線)이 무서운 속도로 개왕 종비후의 목을 향해 쏘아져 왔다. "헉!" 그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쓰윽! 그의 몸이 의자에 앉은 그대로 의자와 함께 옆으로 물러났다. "호호호……" 사천벽마희 사도빈의 눈에 악독한 살기가 스쳤다. "호호호…… 늙은 거지! 재주가 좀 나아졌구나." 그녀는 앙칼진 음성과 함께 재차 손을 뻗어냈다. "어디 다시 한 번 혈연백사비(血軟白蛇匕)를 받아보시지……!" 쐐애액! 그녀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서 백선이 가공할 기세로 꿈틀거렸다.
혈연백사비-!
이것은 스치기만해도 즉사하는 무서운 기병(奇兵)이었다. 연검(軟劍)이랄 수도 있고 또 채찍이랄 수도 있는 기검(奇劍). 그 길이가 무려 육 척에 달해 한 번 검영(劍影)에 갇히면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녀는 이 혈연백사비 하나로 일백 년 전 이미 천하무적으로 불리워져 왔다.
"헉!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중원사혈기병(中原死血奇兵)의 맛을 보겠군." 개왕 종비후가 짐짓 익살을 떨었다. 허나, 당황에 찬 음성이었다. 이때, "허허허…… 빈누이! 진노를 가라앉히십시오." 부드러운 음성이 장내를 울렸다. 바로 백운천의 음성이 아닌가. 사천벽마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 오라버니! 오랜만이군요……!" 그녀는 공격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헌데, 그녀의 음성에는 어떤 한(恨)이 담겨 있었다. "허허허…… 빈매는 여전히 아름답구료." 백운천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순간, 사천벽마희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흥! 당, 당신의 그 능글맞은 태도 역시 전과 다름 없군요."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했던가……? 그녀의 말투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다. '아미타불……' 해천신니가 내심 불호를 외웠다. '빈 언니는 아직도 천 오라버니를 잊지 못했단 말인가……? 하긴 나도 백 년의 수양을 쌓았건만 막상 오라버니를 대하게……' 절대무제 백운천과 사천벽마희. 그리고 해천신니 사이에 어떤 과거사가 얽혀 있단 말인가……? 백운천은 사천벽마희의 가시돋힌 말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음……' 그는 어색한 입장에서 벗어나려는 듯 짐짓 주위를 돌아보았다. "허허허…… 이제 형님만 오시면 우리 정사칠천이 모두 모이는 셈이로군." 헌데 이 때였다. "아우! 이미 나는 도착해 있네!" 아! 언제 나타났는가! 한 명의 흑의장포인이 어느새 백운천의 등 뒤에 우뚝 서 있지 않은가? 흑염(黑髥)이 길게 단전까지 늘어져 있고, 당당한 풍도가 흡사 촉(蜀)의 오기장군(五騎將軍) 중 관운장(關雲將)을 방불했다. 또한 흑염노인의 용모는 준수하기 이를 데 없어 젊은날의 그 용모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허허허…… 형님께서 어느새……" 백운천이 손을 모아 포권했다. 아수라천존상이 수놓여 있는 영웅건(英雄巾)을 쓰고 있는 흑염노인. 그는 바로 정사칠천중 가장 무서운 고수인 천마웅(天魔雄) 뇌후(雷候)였다.
천마웅 뇌후.
금년 세수 이백이십오 세(二百二十五歲). 무림사 이천 년을 통틀어 최강의 고수라는 무서운 인물. 그는 동해(東海) 천마도(天魔島)의 도주(島主)였다. 당금 무림에서 그의 십초 식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전해지는 인물이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절대무제 백운천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다. "아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가?" 천마웅 뇌후가 백운천을 유심히 훑어보았다. 이때, 정사칠천 중 나머지 인물들이 몸을 일으켜 천마웅 뇌후에게 허리를 숙였다. "뇌대협! 신위가 더욱 출중해지신 듯하군요!" 개왕 종비후가 점잖게 입을 열었다. 헌데, "거지 늙은이! 입 조심하거라! 너는 내게 말붙일 자격이 없다!" 천마웅 뇌후가 싸늘히 외치지 않는가? 그의 눈에 싸늘한 한기가 스쳤다. '제기랄…… 저 노마두의 성격도 여전하군……' 개왕 종비후가 내심 투덜거렸다. "허허허……" 백운천이 그들 사이를 무마시키려는 듯 짐짓 부드러운 미소를 흘려냈다. 백운천이 나서자 천마웅 뇌후의 눈에 살기가 걷혔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저 냉막한 노마두는 유독 천늙은이에게는 부드러우니……' 개왕 종비후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아아! 무림의 하늘(天)! 이로써 정사칠천이 한 자리에 다시 모인 것이다. 천마웅 뇌후. 절대무제 백운천. 대천성승. 사천벽마희 사도빈. 해천신니. 개왕 종비후. 비천설영신 북천기.
일백 년 전, 명(明)을 세우기 위해 원(元)의 고수 일만여 명을 죽였다는 이들 칠 인. 그들은 무슨 이유로 다시 모였단 말인가……? 아아! 만약 세인들이 이들의 회합을 지켜보았다면 알 수 없는 전율에 몸을 떨리라. 그들의 향방에 곧 무림의 사활(死活)이 달려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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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