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지 못한 들깨 / 변양섭
가을이다. 불타오르는 단풍, 빛을 받아 더욱 빛나는 샛노란 은행잎을 보며 막바지 가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여름 푸름 속에서 이맘때면 예쁜 색으로 탈바꿈하는 게 자연의 순리인데도 신기한 느낌이 든다.
가을을 재촉하듯 스산한 바람이 불고 가로등 불빛 아래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내 인생의 옷을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벗겨진 나를 본다. 나무 아래 무드럭지게 떨어져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밟힌 은행이 많다. 고급 음식의 고명으로 꽤 인기 있고 기침과 소변 조절에 민간요법으로 쓰이던 은행이다.
요즘은 그 가치를 떠나 괄시를 받고 있다. 고약한 냄새 때문인가 보다. 더는 매달고 있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떨어내고 나목만이 춥게 서 있다. 버려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 우리네 인생처럼 다음 해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빈 몸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거다. 이별은 또 다른 희망이요, 기다림이라 했다. 막연해지는 허탈감 속에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저렇게 모두 버리고 나면 새로운 가슴앓이를 채울 것이 생겨나겠지.
만추의 계절 속에서 옛 생각이 나 무심코 고향을 찾았다. 고향의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내 마음 안에 남겨진 향수 같은 것을 찾아내어 나름대로 가을걷이를 하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개울을 끼고 한참을 올라가면 동네에서 제일 끝자락 산 가장 가까운 곳 친정집에 도착했다. 붉은 맨드라미가 수탉 벼슬처럼 피어 있고 어쩌다 핀 장미가 나를 반긴다.
마당에서 들깨를 털고 있는 질부가 보인다. 어스름 땅거미가 지는 고향은 언제 가 보아도 정겨운 곳이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들깨를 털고 있는 질부가 한 폭 밀레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나는 힘든 일을 싫어하지만 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으며 각종 채소를 가꾸며 살고 싶다.
도시의 우리 집 차고 위에 작은 공간에도, 스티로폼 상자에도 흙을 담아 상추를 가꾸고 오이 넝쿨을 올리며 이것저것 식물을 가꾸기는 내 취미다. 이런 것이 시골 고향에서 몸에 밴 덕분이다. 집 옆 텃밭에 냉이라도 보일까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텃밭으로 향했다.
막새바람이 분다. 바람을 타고 따라갔나? 시골의 어둠은 도시와 달리 순식간에 찾아온다. 냉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내 앞에 의외의 광경이 펼쳐진다. 내 키보다 더 큰 들깨 대, 열매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잎만 무성하다. 이건 뭐야, 열매 맺을 생각도 하지 않고, 왜 이러지? 그 옆에 있는 콩도 열매는 없고 푸른 잎만 소복하다.
얘들은 왜 이렇지? 내 질문에 질부는 가로등 때문이란다. 낮이고 밤이고 빛을 받기 때문에 열매 맺을 겨를도 없이 키만 큰다는 것이다. 식물도 사람처럼 낮과 밤을 주어야 생체 리듬을 타는데 잠을 자고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사람처럼 생각할 능력이 있었더라면 그 나름대로 피해 쉴 수도 있었을 터이지만, 그들은 생각할 능력도 대처할 힘도 없다. 그냥 자꾸 키워야 하는 게 제 임무인 줄 알고 이렇게 키만 커 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웃한 콩도 마찬가지로 아직 한여름처럼 파란 잎만 무성하게 자라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서리를 맞으면 다 쓸 수 없다며 필요하면 잎이라도 따 가란다. 해마다 밑반찬으로 많이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던 깻잎 반찬이었다. 올해는 차일피일 미루다 때를 놓치고 만들지 못했다. 잘 되었다 싶어 날이 더 어둡기 전에 열심히 비닐봉지에 하나 가득 따면서 숱한 생각의 늪 속으로 빠져든다.
참 우리 인간은 순리를 저버리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문명의 발달로 이렇게 식물이 낮과 밤을 구별하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든다. 고의든 우연이든, 알을 많이 낳게 한다고 밤에도 양계장에 불을 밝힌다. 유전자 조작으로 옥수수며 콩, 호박 등 과일도 크게 많이 생산하는 데만 골몰한다.
멀쩡한 산을 깎아 건물을 세우고 골프장을 만들어 농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잘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꾸어 재앙을 자초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항상 재해를 입고 난 후면 인재냐 자연재해냐 놓고 입씨름을 하는 것을 보며 어쩌면 우리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느라 자연의 순리를 거슬렀기 때문이 아닌가. 자연은 자연 그대로 우리를 맞을 수 있을 때 그들도 행복하지 않을는지.
지나간 삶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나만의 행복을 위한 이기심은 자연에 얼마나 막심한 해코지를 하는지 인위적인 사람의 행위를 다시금 원망해 본다. 어둑어둑 어두워지는 고향 밭둑에서 그리움을 내려놓고 내일을 걱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