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엠더불유(BMW)

[chung]

비엠더블유(BMW)

정종량

-어? 재 공덕이 아냐?

-어, 맞는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죽었다는 놈이.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야! 새끼들, 오랜만이다. 근데 귀신을 봤나, 짜식들 표정들이 왜 그래?

-어, 그래, 공덕아, 안 죽고 살아 있었구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반긴다.

-허, 짜식들, 오랜만에 만나는 놈한테 한다는 소리하고는. 이것들을 그냥 콱!

공덕이 짐짓 팔꿈치로 치는 시늉을 한다.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서소문 스타벅스 커피숍이 들석들석 했다. 크리스마스에다가 연말이 가까워서 그런지 커피숍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특히 유난히 커플들이 많았다. 특히 젊은 애들은 얼굴들을 맞대고 속삭이며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거친 막말들이 쏟아지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알바 생들도 달갑지 않은 손님들이 분위기를 해친다는 듯 조금은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여기는 삼십여 명이나 되는 어르신 단체다. 그래도 회장이 조금 미안한 듯 손가락을 입에 갔다 댄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동창회지만 공덕이 모임에 나타난 건 몇 년 만인지 모른다. 사실 대부분 애들은 공덕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 1년 선배인 사촌 형까지도 동생이 죽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살아서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대놓고 왜 너 죽지 않고 살아있느냐고 물어보기도 그랬다. 그저 멀거니 처다보면서 그놈이 먼저 자초지종 입을 열기만을 바랬다. 자세히 뜯어보니 눈에 광채가 난다고 할까. 오십 줄에 접어들었어도 삶에 대한 의지가 더욱 충만해 보였다.

-야, 공덕아, 얘기 좀 해봐라. 여기 있는 애들이 다 궁금해 하잖아. 어떻게 지낸 거야.

-사실은 말이야. 그간 너희들은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에게 조차도 연락을 못하고 살았지.

-뭔 소리야, 새끼, 너 뻥 까지말고 솔직히 얘기해 봐. 어디 염전에서 일했냐?

-허, 이 자식, 뻥이라니. 시작도 안 해서 김 빼네. 나 너희들하고 수준 안 맞아서 얘기 못하겠다.

공덕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하자 총무가 급히 만류한다. 그의 손을 끌며 다시 의자에 앉혔다. 회장이 주목하더니 나가자고 한다. 커피숍에 오래 앉아 있을 필요 없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이미 예약해놓은 오리구이집이 시청 바로 뒤에 있다고 했다. 여자들이 앞장서서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나섰다. 맨 뒤에서 회장과 총무 그리고 공덕이 나왔다. 한참을 걸었다. 벌써 퇴근시간이 되었는지 서소문이나 덕수궁 입구에 이르는 길이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향해 길을 건넜다. 바람이 불어 차갑기는 했지만 아직은 견딜 만 했다. 연말이라 스케이트장을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개장을 안해서 그런지 썰렁해보였다. 날씨마저 잔뜩 찌프려서 어깨를 더욱 움추릴 수 밖에 없었다. 찬 바람에 고개를 숙인 채, 앞에 가는 동창놈들 뒤꿈치만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5분이면 간다더니 왜 이리 머냐며 공덕이 투덜거린다. 서소문 큰 길만 건너면 먹자골목에 일식, 중식, 한식당이 수두룩한데 뭔 지랄한다고 시청 뒤에다 잡았느냐고 총무를 보고 눈을 흘긴다. 시청역 지하철 입구를 지나려니 길 옆에서 종을 치는 구세군 냄비가 맘에 걸린다. 옛날에는 동전을 넣는 것도 게의치 않았는데 이제는 돈 천원을 넣으려면 뭔가 손이 남부끄럽다. 공덕이 회장을 보고 한마디 한다.

-존경하는 회장님, 공덕 좀 쌓으시죠!

-너 공덕이잖아. 덕을 쌓아야 할 사람은 너야 인마. 빨리 만원 꺼내.

둘이 실랑이를 벌이자 구세군 사관이 종을 치다말고 웃으며 지켜본다. 이젠 안 넣을 수도 없다. 결국 공덕이 오천 원 짜리 한 장을 찾아 함에 넣는다. 구세군이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면서 다시 종을 들어 힘차게 치기 시작한다.

돌아서는 공덕을 바라보며, 총무가 다분히 장난끼 있는 얼굴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힘차게 외친다. 연말이 가까워서 그런지 식당은 입추의 여지없이 만원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고기 타는 냄새가 매캐하다. 진한 연기 속을 지나 예약한 반지하로 내려갔다. 친구들은 벌써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창가로 테이블을 하나 비워놓았다. 1층과 달리 지하는 의외로 조용했다. 불판이 들어오고 고기와 마늘이 동시에 올라왔다. 몇몇 녀석들은 소맥을 제조한다고 맥주 컵과 소주잔을 모두 일렬로 모았다. 독립문 근처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는 범식이가 대단한 기술인 양 시범을 보이고 있다. 안쪽의 연기가 잘 빠지지않아 여자들은 콜록콜록 난리가 났다. 연기를 빨아내는 연통을 너무 올리는 바람에 연기가 밑으로 퍼진 것이다. 한참 시끌벅적하게 지역 방송으로 돌아가자 회장이 좌중을 정리했다.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공덕을 추켜세웠다. 모두가 박수와 휘파람으로 환호했다. 총무가 공덕의 자리를 중간쯤에 다시 배치했다. 1층에서도 자리가 무르익었는지 우렁찬 건배 소리가 통로를 타고 울려왔다. 싫지않은 소리다. 일단 이곳에서도 회장의 인사말에 곁들여 건배 제의를 하자 반지하가 떠나가라고 ‘건배!’를 외쳤다. 남자들의 이상한 경쟁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드디어 회장이 공덕의 얘기를 꺼냈다. 솔직하게 얘기를 했다. 모두 죽은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 기쁘다는게 요지였다. 그간의 사연을 한번 들어나 보자라고 말했다. 모두가 우렁찬 박수로 동의를 표했다. 만면에 웃음을 띤 공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편히 앉아 얘기하겠다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사실 너희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아.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게 아니고, 사실은 UFO에 의해 납치되었었거든. 너희들이 믿거나 말거나 말이야.

일순 소동이 일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지금 저 자식 헛소리 하는 거냐며 불평이 쏟아졌다. 애들이 웅성거리며 말이 많자 회장이 좌중을 진정시켰다. 일단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납치된 것은 약 3 년 전 뉴밀레니엄 첫날이었다. 당시엔 밀레니엄 버그 문제로 사회가 들썩들썩 하던 때였다. 새로운 세기의 첫날을 어떻게 보낼까 고심하다가 해돋이를 보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가까운 모악산에서 첫 해맞이를 하기로 했다. 당초 계획은 아이들과 마누라까지 데리고 올라가려 했지만 바람도 불고 추워서 포기하고 혼자 가기로 했다. 배낭을 메고 후렛쉬를 켠 채 집을 나섰다. 비록 6시에 나서긴 했지만 사위는 여전히 어두컴컴 했다. 길마저 전날 내린 눈으로 미끄러웠다.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 오르다가 아예 아이젠을 꺼내 신었다. 앞서가는 사람들도 엉금엉금 조심스러웠다. 길 전체가 미끄럽고 위험해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다가 이왕 나온 거 군인정신으로 가는 데까지 가보자 했다. 옛날 전방 비무장지대 안에서 근무할 때를 생각했다. 한참을 오르니, 앞서 올라간 이들의 야호 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쳐 들렸다. 등산용 스틱으로 조심조심 짚어가며 한발 한발 내딛었다. 이 속도라면 해돋이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내 익숙해져서 몸도 더워지고 발걸음도 빨라졌다. 일출은 대략 7시 반은 넘어야 했다. 이 속도대로라면 오히려 정상에서 10여 분은 기다려야 한다. 다시 속도를 늦추었다. 주변의 편백나무 숲에서 나오는 향긋한 푸른 내음이 기운을 솟게 했다. 심호흡을 하면서 움추린 가슴을 의식적으로 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폐까지 스며든다. 난 나무 계단을 따라 계곡을 오르며 멀리 동녘 능선을 따라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바라봤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제와 오늘이 특별히 다를 바가 없지만 유달리 새해 첫날이 되면 그래도 가슴이 설랬다. 아직도 난 십대일까? 달성사가 저기쯤이려니, 금곡사 위치가 어디쯤일까 눈대중을 해가면서 뒤에서 오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해주기도 했다. 하늘은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붉어진 동녘 너머에서 금방이라도 해가 솟아날 것만 같다. 빨리 올라가 평소 믿지않는 하나님께 기도라도 해야지.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정상의 헬기장 부근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때 아닌 눈부신 광채가 하늘에서 쏟아져내렸다. 얼핏 헬기가 착륙 중이려니 생각했다. 엄청 뜨거운 열기마저 느꼈다. 앞서 올라가던 사람들과 헬기장 부근에 있던 사람들은 혼비백산 아우성을 내지르며 주변의 숲 속으로 몸을 피하기 바빴다. 난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거대한 푸른색의 원반이 위에서 서서히, 소리도 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주변의 나뭇가지가 조금 흔들릴 정도였다. UFO?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보던 미확인 비행물체가 저것인가? 그는 겁도 없이 호기심이 발동했다. 헬기장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특전사 출신이라는 자부심, 아니 만용이 작동한 것이다. 거대한 비행물체의 동체를 만져보고 싶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동체에 손이 닿는 순간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눈을 떴을 땐 비행물체, 소위 UFO 안이었다. 누가 어떻게 나를 실었는지 기억이 없다. 몸이 묶인 흔적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몸이나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만 겨우 움직일 뿐이었다. 눈앞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작은 로봇, 아니 실내 자동청소기 보다 조금 크면서 타원형처럼 생긴 공같은 검은 물체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이따금 형체가 변하기도 했다. 얼핏보니 그 작은 몸체에서 파랗고 붉은 광채가 나오기도 했고, 가느다란 막대같은 손이 나와서 작동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가제트 로봇 같았다. 실내에는 각종 계기판이 작동하기는 했지만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저것들이 외계인이란 말인가. 난 다른 사람들처럼 피하지 않은 게 못내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닌가. 좀 더 침착하기로 했다.

비행물체는 한참을 머무르더니 이윽고 위로 치솟는 듯 했다. 밑을 보니 어느새 하얀 설원을 지나 빙판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속도를 도저히 가름할 수가 없었다. 순간이동이라고 해야 할까. 비행물체가 멈춰선 곳은 밤인지 컴컴했다. 잠깐 사이에 어떻게 낮과 밤이 바뀔 수가 있지? 도대체 여긴 어딜까? 지구를 벗어나진 않은 것 같았다. 시베리아? 북극? 그럴 수도 있지. 북극의 겨울은 항상 밤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남극? 남극이면 펭귄이라도 봤어야 하는데. 너무나 빠른 이동에 무슨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수 분, 아니 불과 수 초 만에 이루어진 사태에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었다. 멈춰있는 순간 말고는 비행물체가 날아가는 모습을 일반인이 발견하기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빙판 위에 머물자 비행물체에서 뭔가 소음이 일었다. 아마도 어딘가로 교신하는 듯 보였다. 갑자기 빙판 밑으로 거대한 문이 열렸다. 수직 통로를 따라 비행선이 빨려들어가듯 천천이 움직였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로봇의 뜻 모를 교신음이 들렸다. 공기가 있으니 분명 지구라는 곳일텐데. 우주선이 지나고 나면 녹색 레이져 광선이 붉은색으로 바뀌는 듯 했다. 도대체 지구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혹시 내가 러시아의 KGB 비밀 작전세력에 끌려온 것은 아닐까? 아니야, 알라스카 쯤에 있는 미국 펜타콘이나 CIA의 UFO 작전기지일지도 모르지. 추측은 추측을 낳았다. 한참 후 내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수십 대의 우주비행선이 줄지어선 계류장이었다. 어디에도 사람이나 외계인이 보이진 않았다. 다만 녹색 레이저 광선이 비행물체를 감싸고 있다가 잠시 후 걷히자 우측 벽체에서 소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이어 작은 연결 통로가 보이며 로봇형 외계인이 두 명이 나타났다. 그는 분명한 한국말로 환영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안심하고 내리라고 했다. 몸에 지어졌던 결박들이 언제 해체되었는지 몸과 손발이 움직였다. 비행선의 문이 열리고 슬라이더가 멀리 통로까지 뻗어내렸다. 난 로봇을 따라 걸었다. 복도 양측은 각각 방이었지만 표지판도 없었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회의실같은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난 비로소 우주인이 아닌 지구인을 보게 되었다. 모두 4명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투명 칸막이로 둘러싸여 있어서 대화는 차단되었다. 또 갈색과 흰머리 서양인들이라 대화가 통할 리도 없었다. 도대체 몇 시쯤 되었을까? 식사는 주는 걸까?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갑갑할 뿐이었다. 이윽고 녹색 타원형의 로봇이 굴러오듯 아니 날아오듯 회의실 정면의 화면 앞에 등장했다. 만화에서 보던 외계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만화에서는 손과 발, 눈이 있고, 형체가 유연했다. 그런데 이곳의 타원형 로봇은 아주 단순해 보였다. 머리와 몸통이 구분이 되지 않았고, 손발이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무엇으로 감지를 하는지 궁금했다. 먼저 자기들부터 소개했다. 지구인들은 모르지만 화성 내부 도시에 거주하는 화성인 과학자라고 했다. 그들은 광폭한 지구인들의 전쟁놀음을 사전에 파악해 종식시킴으로서 지구의 파멸을 방지하고 태양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는 지구인이나 화성인이 한데 어울려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있는 기지는 지구 내부에 건설한 화성인의 기지라고 했다. 이걸 믿어야 할까? 혹시 꿈을 꾸는 건 아닐까? 꿈은 분명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헤드폰을 끼지 않았는데도 바로 앞 투명 칸막이에 한글 자막이 뜨면서 소리도 본인만 들을 수 있도록 흘러나왔다. 아마 짐작키로는 앞서 끌려온 다른 지구인들도 각자의 언어와 문자로 내용을 들었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지구인이 협조해야 할 일들을 설명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국가 방위산업 현장에서 첩보원 노릇을 하라는 얘기였다. 간첩? 하지만 붙들려온 판국에 누구 하나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살펴봤지만 조용했다. 아니, 저 인간들은 사전에 오리엔테이션을 받기라도 했나? 왜 저리도 태평할 수 있지? 잘못하면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를 텐데. 누가 어떠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지는 앞으로 철저한 교육이 진행될 거라고 했다. 먼저 임무 수행을 위한 정밀 첩보 송수신 기기들을 몸 안에 장착해야 하는데 간단한 시술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럼 사람 몸 안에 기계를 밀어 넣는다는 건가? 신장보조기처럼 달고 다닌단 말이야? 어, 이 UFO 새끼들 웃기네. 난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 한편으론 겁도 났고 말이지.

그런데 말이야. 앞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 괴상망측한 푸른 로봇이 갑자기 끼르륵 끼르륵 소리를 내더니만 갑자기 내 화면에 문자를 띄우는 거 있지.

-걱정마라. 이 겁쟁아. 단 10초면 끝나는 아주 간단한 초정밀 시술이다.

-헉, 이거 안심을 해야 될지. 아니면 무시무시한 저 놈들 기술에 기겁을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더라고. 어떻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챘지?

-야, 이 새끼 우릴 아주 갖고 노네. 너 뻥이지?

강변역 부근에서 단란주점으로 돈깨나 긁어모았다는 정태가 쏘아붙였다.

-이 새끼들이 속고만 살아왔나. 내가 이렇게 창작력이 있으면 소설을 쓰지, 망치들고 공사판 찾아 돌아다녔겠냐, 인마!

-그 정도는 인마, 손님들이 아가씨들한테나 하는 농담 따먹기 수준이라고 짜식. 설령 네 말이 맞다 치자. 그러면 네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느냐 이 말이야.

다시 정태가 맞받았다.

-개새끼들,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나불대기는….

정말 안 들을 거야? 관두래?

-아냐, 아냐, 계속 해봐. 들어나보자고.

총무가 중재하며 어수선해진 자리를 정돈했다.

그런데 공덕의 우주인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공덕의 옆에 앉아 있던 형석은 얼굴에 아리송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H건설 건축사업본부에 근무하면서 현재 차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수 년 전 그가 현업에서 뛸 때 외주문제와 관련해서 김사장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익산에서 아파트 건설을 위한 현장 소장을 모집했을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응모했다. 우선 서류심사 대상자를 10여명으로 압축해서 살펴봤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김사장이었다. 보통은 건축산업기사와 토목산업기사를 가지고 있으면 신청 자격요건이 된다. 그런데 김사장은 여기에 전기기사와 소방설비 자격증까지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는 면접관으로 김사장을 만났다. 우선 동향 출신에다가 사람이 솔직하고 성실해 보였다. 결국 그를 현장 소장으로 채용했다. 1년 후 공사가 완료되자 그와는 헤어졌다. 헤어진 후에도 안부 전화 정도는 가끔 주고 받았다. 서로 인맥관리를 해두는게 상례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언젠가 갑작스런 연락이 왔다. 함께 소주할 의향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형석은 전주로 달려갔다. 덕진호반 뒤쪽으로 돌아가면, 국립국악원이 있다. 골목 한적한 곳에 유명한 보신탕집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엉? 때 아닌 웬 보신탕? 비싸기만 한데. 싫지는 않았다. 형석이 김사장을 만나고 보니 얼굴이 전보다 많이 수척해 보였다. 김사장이 잘 아는지 사장을 불러 우선 수육과 소주를 주문했다. 따끈한 국물과 함께 수육이 들어오자 서로 잔부터 채웠다. 김사장이 겪은 일을 어디에다 하소연 할 데가 없어서 평소 가깝게 생각하던 형석을 불렀다고 했다. 내심으로는 놀라면서도 불러줘서 고맙다고 했다. 형석이 물었다.

-소장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네, 이제 다 지나간 일입니다.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제가 누구한테 신세질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럼?

-차장님 하고 쏘주 한 잔 하면서 세상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사장이 전에 건축 공사장에서 벌어졌던 사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고는 인명사고였다. 건물은 이미 10층 끝까지 올라갔고 외벽에는 비게가 설치되어 인부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공기를 맞추기 위해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점심 무렵 비게가 무너졌다고 했다. 천만 다행이랄까, 죽은 사람은 없었단다. 다만 한 사람이 의식불명 중태에 빠졌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고 했다. 몇 달 뒤 의식불명인 사람의 의식이 돌아왔고 현재는 조금씩 활동도 하지만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물론 산재보험이 적용되어서 돈 문제야 해결이 되었지만 법적인 책임 문제로 수사를 받느라 한 달 이상을 경찰서와 검찰을 들락거렸다고 했다. 결국 본인도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거라고 했다. 의식이 돌아온 그 환자와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가 형석을 잘 알더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환자의 또 다른 증세였다.

다시 공덕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게 오리엔테이션이었다고. 끝나고 나니까 내 책상 위에 무슨 물과 액체 같은 음식이 놓여있더라고. 먹는 거라며 먹으래. 같이 끌려간 사람들도 각자 자리에서 똑 같은 것을 먹는 거라며 그러더라고. 물은 그냥 물이었고, 액체 음식은 맛이 무슨 고단백 농축액 같았는데, 성분은 나도 모르겠더라고. 그거 먹고 나니까, 배가 안 고프더라니까. 화장실이라는게 각자 전용실이 있는데 비행기 기내 화장실을 연상하면 돼. 용변을 보는 순간 어디론가 빨려 없어지더라고. 우선 각자 룸이 주어졌는데, 간단한 속옷 정도가 있었어. 하루가 끝났는지 익숙한 음악소리가 천장에서 흘러나오는데, 백화점 쇼핑하다보면 잔잔하게 클래식 나오는 거 있잖아, 비슷했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절에서 스님들이 참선할 때 쓰는 선음악 같기도 하네. 왜 유튜브에서도 많이 나오잖아. 웅장하면서도 조용하게 분위기를 잡아가는 음악 말이야. 그 음악을 듣다가 깜박 잠이 들었나봐. 조금은 밝고 경쾌한 소리가 나더라고. 콩 튀는 소리, 물방울 튀는 소리, 그래, 맞아, 우박 떨어지는 소리 비슷한 게 들리더라고. 그게 게네들 기상음악 소리였나봐. 해가 뜨고 지고 하는 게 없으니까 컨트롤 타워 지시대로 움직였지. 밥은 주스하고 이번엔 미음 같았는데, 무슨 생선 수프, 그래 맛있었어. 괜찮더라고.

이틀째 되는 날 4명 모두 만났지. 만나도 말이 통하질 않으니까 눈인사만 나눴지. 피부색을 보니까 아랍 계통하고 미국사람 아니면 유럽사람 같아 보였어. 정확히는 나도 모르지. 그날 시술을 한다고 그러더라고. 노란 로봇의 우주인이 나타나더니 안내를 했어. 앞서가는데 어디로 계속 교신을 하면서 복도를 몇 개를 돌고 돌더니 어느 문 앞에 멈춰 섰지. 위에서 붉은 레이저 광선이 아래를 향해 계속 내려 쏘아대드라고. 아마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무슨 광선 같았어. 느낌에 쪼이면 죽을 것 같더라고. 그러니까 우주인도 조심하지. 레이저 광선이 걷히고 문이 열리면서 대기실로 일단 들어갔어. 내가 맨 처음이었어. 첫 번째 방은 무슨 안과 병원 같더라고. 모르는 기계들이 꽉 차 있었으니까. 눈 검사를 하나 했는데, 들어와 기계 앞에 앉으라는 거야. 앉고 기계가 눈에 와 접촉하는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더라고. 그놈들이 마취를 했었나. 그리 오래 걸린 것 같지는 않았어. 그런데 시력이 갑자기 좋아진 느낌이 들었어. 눈을 들어 멀리 보는데 아주 미세한 것까지 다 보이더라고. 나머지 세 사람이 차례대로 시술을 받고 나오는데 채 10분도 안 걸린 것 같았어. 두 번째 나온 사람의 코끝이 멀리서 보이는데 코 앞에 흰 털이 있고 눈썹 안에 작은 점까지 보이더라니까. 다 끝내고 다시 어디론가로 끌려갔지. 불안하더라고. 여기는 도대체 뭘하는 곳일까. 정말 우주인 놈들이 우리의 영혼이라도 빼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 드디어 문이 열리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지. 이번엔 내가 마지막 차례였는데 앞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까 달라진게 전혀 없는거야. 도대체 저 안에서 뭐를 한거야. 뇌 조작이라도 했나? 겁이 나고 바짝 긴장이 되더라고. 결국 나도 들어갔지. 그런데 시술실이라는게 병원이 아니고 미용실 같았어. 거 미용실 가면 여자들 파마하고선 우주인 모자 같은 캡 쓰잖아. 그 속에 머리를 밀어넣고 말리던가. 바로 그런 게 있더라고. 난 괜히 겁 먹은 게 피식 웃음이 나더라니까. 들어오라는 녹색 불이 켜져서 들어가 앉으니까 그 캡이 자동으로 머리 위로 내려와선 가만히 감싸더라고. 순간 정신을 잃었지. 약간의 통증 같은 것도 느껴졌고.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땐 눈앞의 게기판에 무슨 글자인지 처음 보는 문자들이 막 떠오르고 도형들이 어지럽게 지나가더라고. 그게 다였어.

머리의 통증은 하루 이틀 더 지속되었지만 심하진 않았다고. 교육은 주 5회 받았어. 앞에서 교관 로봇이 뭔가 메시지를 보내면 이번에는 화면 없이 머리 속으로 그냥 수신하는 거야. 우리가 길을 가다가 친구에 관해서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잖아. 바로 그런 거야. 갑자기 무슨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그게 바로 로봇이 보내는 메시지가 머리에 심어놓은 극 미세 수신기를 통해 인식이 되는 거였지. 이젠 반대로 내가 보내는 거야. 무슨 그림책 같은 것을 주드라고. 그래서 펼치고 집중해서 눈으로 스캔을 했지. 있는 것을 장을 넘겨 가며 다 했어. 그 다음에 눈을 감고 로봇이 알려준 ID 도형을 생각하는 거야. 다음엔 스캔했던 것을 전송이라는 마크를 길게 되세겼지. 그게 다야. 전송이 된 거지. 몇 번을 반복해서 했더니 중복해서 여러 번 갔다고 한 번만 해도 된다고 그러는 거야. 이거를 반복해서 교육했던 셈이지.

-야, 이 개새끼, 어디 말도 안 되는 작작하고 자빠졌네.

전부터 공덕이와 가장 친하게 지냈고, 만나기만 하면 욕설부터 시작하고 보는 버스터미널에서 일하는 명수가 걸고 넘어졌다.

-믿거나 말거나야. 씹새야. 내가 언제 믿으라고 했냐?

-하, 자식들 성질머리하고는. 끝까지 들어나 보자고.

또 다시 총무가 나섰다. 애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모두가 믿지 않는 투였지만 공덕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죽었다고 소문이 났었고 몇 년을 나타나지 않았으니 사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자 애들이나 남자 애들 모두 오랜만에 눈빛이 초롱초롱 열심히 듣고 있었다.

-자 일단 앞에 놓인 자기 술잔 잡아! 다 들었지? 꽁덕이의 건강을 위하여!

모두가 마지못해 한잔씩 건배를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제부터는 잡소리 넣지 말고 끝까지 듣자.

일주일간 진행된 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안정되니까, 우리끼리 말을 하게 하더라고. 근데 난 안 통했어. 나머지 세 사람은 뭐라고 하더라만. 교육이 끝나자마자 우린 비행선에 다시 탔다. ‘아 이 길로 집으로 갔으면’ 하고 소망을 했지. 물론 아니야. 교육받을 때, 끝나면 화성에 간다고 했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비행물체가 이륙을 하는가 했는데 갑자기 깜깜한 우주 공간으로 치솟아 오르더라고. 보이는 건 멀리 반짝거리는 별들이었어. 깨알처럼 많더라고. 지구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니까. 순간 속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과 수 초 만에 지구 궤도를 벗어 났으니까. 앞에 있던 리더 로봇이 뇌파를 이용해서 뒤쪽에 떠오르는 지구를 보라는 거야. 정말 가슴이 뛰더라고. 푸르고 하얀 구름으로 둘러싸인 지구를 우주 공간에서 보다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지구에서 태양과 달을 바라보던 느낌과는 전혀 달랐지. 생명, 즉 물, 숲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야. 백지 상태인 너희들한테 백번 설명한들 이해가 가겠냐만은. 광채가 나는 붉은 달을 바라보면서 비켜 지가는데 옥토끼의 방아 찧는 전설은 아예 생각도 안 나고 멍하니 바라만 봤지. 그냥 달이 재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순간적으로 멀거니 봐라본 거였지. 글쎄 한 대여섯 시간 쯤 걸렸나, 화성에 도착하기까지 말이야. 아마도 지구에서의 속도를 계산한다면 마하 500쯤 될까. 지구에서는 물론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얘기지. 미사일도 겨우 마하 6 정도면 최신으로 알고 있으니까. 왜 화성에 우주인 세계를 건설했을까? 더구나 지구에서는 관측되지도 않는 그들만의 세계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가면서 알았지. 뇌파로 전달되어 오는데 태양계를 관찰하는 총괄센터가 바로 화성에 있었던 거야. 화성도 극지방으로 착륙하는 것 같았어. 주변이 온통 얼음이었어. 캄캄해서 잘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너무 황량했어. 지상에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거야. 마치 밤에 사막에 내린 것처럼 말이야. 우리가 실내에 있었기 때문에 밖에 공기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 다 아는 바와 같이 그곳엔 공기도 없고, 중력도 지구의 0.75% 밖에 안되잖아. 속도 조절을 잘 못하면 화성과 부딫혀서 콩가루가 된다고 들은 적이 있었거든. 하여간 착륙할 때, 역추진 엔진을 분사하는 방식이었을거야. 그들 나름의 뭔가 기술이 있기는 하겠지만. 진동이 심했어. 워낙 공기가 희박하니까 소음도 별로 없이 조용하더라고. 일단 땅에 착륙하니까 회색 유니폼의 로봇 우주인들이 안내를 했어. 개들은 말이야, 지구에서 봤던 애들보다 훨씬 크더라고. 모양은 비슷했어. 타원형 동체 위로 짧은 선이 나와 있고, 양 옆에서 필요시에만 가제트 형사처럼 긴 팔이 나와서 작동을 했지. 역시 긴 지하터널로 안내되었어. 계속 안으로 들어가는데 무슨 형광등이나 가로등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엄청 밝더라고. 아마도 태양 에너지를 변형해서 쓰고 있는 모양이던데 알 수는 없었어.

지구에서처럼 환영식이 있었고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어. 교육이라기보다는 홍보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자기네들이 하는 우주 평화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지구에서 벌어지는 군비경쟁으로 은하계 내에서 둘도 없이 소중한 생명체 행성인 지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나봐. 거기서 특히 인상깊었던 교육은 지구 온난화에 관한 문제였는데 엄청 심각하더라고. 우리는 보통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면 무슨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어떻느니 해서 떠벌리는데, 그 보다 더 심각한 게 있다는 거야. 그린랜드 빙하있잖아. 그 거대한 빙산들이 파괴되고 있는데 점점 가속화되고 있대. 문제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의 핵실험이라는 거지. 지하에서 핵실험을 하면 그 진동으로 그린랜드의 빙산들에게까지 영향이 간다는 거야. 미세한 진동에도 균열이 가고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면 금새 가속화된다는 거래. 그린랜드 빙산이 녹아 없어지면 지금 베네치아는 물론이고 암스테르담까지도 물에 완전히 잠겨버린다는 거지. 두 번째로 언급한 게 우리하고 직결된 거였어. 바로 백두산이었으니까.

우리는 시방 백두산을 휴화산이라고 대부분 알고 있잖아. 근데 사실상 활화산이라는 거야.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조그만 충격이 가해지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최근에 그 폭발 조짐이 보인다는 거야. 그 이유가 뭐냐? 바로 북한하고 중국의 핵실험 때문이라는 거지. 특히 북한이 함경도 부근에서 수 차례 핵실험을 벌려왔잖아. 이게 치명적이었다고 하더라고. 만약에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천지의 그 많은 물이 다 어디로 가겠어. 물폭탄이 되어서 절반 이상은 함경도 일대가 쑥대밭이 될 거고. 또 절반 가량은 저쪽 그러니까 중국 길림성쪽, 조선족자치주로 쏠릴 게 아니냐고. 그쪽도 알고 보면 다 같은 우리 민족이잖아. 우리만 엄청난 피해를 보는 거지. 미국 애들이 태평양에서 핵실험 해봤자 일본에 밀려오는 쓰나미는 그야말로 찻잔에 파도일 뿐이라는 거야. 김정은이를 좀 달래서 진정시켜야 되는데 말이야. 아 참 그리고 우리가 아는 백두산 천지에 괴물 산다고 그랬잖아. 실은 그게 괴물이 아니고 백두산에서 발생하는 지진 진동을 계측하는 UFO 탐사선이라는 거야. 게네들도 관측을 하는 거겠지. 수중 안개가 끼어서 그게 괴물처럼 보였는지는 몰라도 사실은 외계인의 우주탐사선이었다는 거지.

김사장과 형석의 자리도 벌써 빈 소주병이 4 병으로 늘었다. 김사장이 말을 계속했다. 그 환자 말입니다. 그가 처음 공사장에서 뇌손상이라는 중상을 입었을 때 상황적으로는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외상도 완치가 되고 물리치료로 신체장애도 어느 정도 극복되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환자의 증세였지요. 부인 말에 의하면 우울증이나 감정 기복이 심했다는 겁니다. 특히 어떤 때는 과대망상증 현상이 나타나서 횡설수설 하기도 하고 경험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남에게 거짓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도 그 사람은 그것을 거짓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거지요. 의사 말로는 그의 장애는 뇌좌상 적응장애라고 했답니다. 즉 뇌손상으로 인해 자아, 분석력, 판단력, 상황이해능력 등을 관장하는 좌뇌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가 봤을 때도 그 사람은 이상하게 너무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일상의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진 듯 보였던 것이지요. 저하고 이야기할 때에도 사촌 형이 미국 교수로 있다고 했다가 국회의원 출마할 거라고 했고요. 본인도 전주에서 시장 선거에 한 번 출마할려고 하는데 좀 도와달라는 말을 하질 않나 정말 횡설수설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인한테 문의를 해보니 그래도 남한테 해코지는 안 하니까 별 문제가 없지 않느냐면서 대수롭지 않게 본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전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본체만체 무시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공덕은 화성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갈 무렵이었어. 환영식에 앞서서 교육을 받았던 기존 지구인 멤버 다섯 명이 수료하고 나가더라고. 얼핏 봤는데 서양인뿐만 아니라 나 같은 동양인도 눈에 띄었어. 모르긴 몰라도 중국사람? 아니면 일본사람? 아니면 나 같은 한국 사람일지도 모르지. 반가우면서도 겁이 나더라니까.

-어 잠깐만, 뭔가 머릿속에 울림이 온다. 한 잔씩 들고 있어. 여기 송신탑이 어느 쪽이야?

-남산이 앞쪽인데 시청 건물이 들어서 있잖아.

-그렇지. 내 잠깐 나갔다 올게.

공덕이 음식점 문 밖으로 나오더니 입가에 의문의 미소를 띤다.

그의 핸드폰이 아까부터 계속 진동을 했다. 통화를 누르고선 급 겸손 모드로 바뀐다.

-예수병원 신경과 문 박삽니다.

-네, 박사님, 안녕하세요. 제갈 공덕입니다. 별고 없으셨죠?

-네, 뇌수술한 지 이 년이 다 되어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검진을 다음 주에 하면 어떨까 해서요. 아직은 조심하셔야 됩니다. 생활하시면서 다른 증세는 없습니까?

-아 네, 별로요.

-그럼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0시로 예약을 해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공덕은 일단 담배 한 대를 꼬나물었다. 의사가 주의하라는 말을 했지만 마이동풍이다. 뇌수술 후 2 년 동안 무사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디까지나 본인 생각일 뿐이다. 그래도 언제쯤 일하러 나갈 수 있을지 자못 궁금했다. 현재는 산재보험으로 생계유지에 문제는 없다. 지금 생각하면 추락사고가 날 당시에 건물에 붙어있던 비계가 좀 흔들거린다는 주변 동료들의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그래도 설마 무너지기야 하랴, 하는 심사로 외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5층에서 무너졌기 망정이지 아래층에서 무너졌다면 비게에 깔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좌뇌를 심하게 다쳐 거의 6개월을 뇌사 상태에 빠져있었다. 사실상 죽었다고 했다. 그 때 소문이 쫙 퍼진 것인지도 모른다. 공덕이 깨어나고 마비된 하반신의 재활치료에 일 년 여를 허비하고 나서 겨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다. 산재 처리가 된다고 해도 그를 간호해야 할 사람이 늘 옆에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덕의 부인은 일도 못 나가고 그의 곁을 지켜왔다. 그의 남은 생은 마누라 덕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생계는 여전히 마누라 몫이다. 고혈압, 당뇨 환자인 마누라가 아픈 몸을 이끌고 아파트 청소를 하고 끝나면 마트에서 알바로 근근이 생계를 돕고 있는데 이를 데 없이 미안하다. 어쩌면 다음 주 진찰에서 괜찮다고 판정이 나면 건설 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한참을 밖에서 머물다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애들 눈초리가 심상찮다. 상당히 상기되어 있는 듯 했다.

-야,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냐? 빨리 끝내자.

-화성에 내렸다면서, 환영식도 했고, 뻥인지 뭔지는 몰라도 하여간.

-관두래?

-짜식, 삐지기는, 계속해 봐.

그 화성에서 이주일 쯤 보낸 것 같았어. 그곳에서는 우리가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하고 송달하는 기법, 본부에서 어떻게 분석 처리하는지를 과정별로 보여주더라고. 그곳에서 보니까 우주인들이 유선형 형체인데 특별히 손이나 발이 나와 있지도 않았고, 눈이 보이질 않았어. 아메바라고 할까. 인간 구조와는 완전히 달랐으니까. 어떤 때는 크기가 커지기도 하고 대개 몸에서 레이저 같은 게 머리 부분에서 나오더라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기다란 도구가 몸에서 갑자기 뛰어나오기도 했고 말이야. 일단 끝내고 함께 갔던 4명이 UFO 비행선을 타고선 다시 지구로 돌아왔지. 근데 시간이 거짓말이 아니다. 불과 한 다섯 시간 쯤 걸렸을까? 이건 짐작이야, 아무튼. 일단 지구로 돌아서는 곧장 빙하 속의 우주인 기지로 들어갔지. 그곳에서 다시 일주 정도 보냈어. 한 달쯤 되니까 우릴 돌려보내더라고. 난 모악산, 끌려갔던 그 헬기장으로 다시 돌아왔지.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에 아주 미세한 전자파, 진동이 들어오는 거야. 나가서 모악산 송수신탑 쪽을 바라보고 정신을 집중하면 머리 속에 그날 활동할 임무가 활동사진처럼 지나가더라고. 뭔지 아냐? 내가 맨 처음 부여받은 임무가 말이야, 놀라지들 마라. 한국형 미사일 관련 시험 정보였다니까. 그렇다고 내가 전에 본 적이 있기라도 했으면 수월했지.

근데 문제가 생긴 거야. 포천에 있는 시험장까지 내가 어떻게 가느냐고. 다 썩어가는 소나타 중고차로 갈 수는 없잖아. 즉시 모악산 송신소를 향해서 메시지를 날렸지. 기동수단이 없어서 임무 수행이 어럽다. 그런데 이틀 후에 내 머리 속으로 뭔가 메시지가 들어오더라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가보라는 거야. 즉시 나가봤더니, 중형 BMW 승용차가 한 대 서 있더라고. 자동운전 시스템이기 때문에 말로 명령을 하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거였어. 난 하도 신기해서 1층 경비실로 갔지. 마침 경비 아저씨가 있기에 물었지. 방금 전에 BMW 들어오는 것 못봤냐. 그런데 전혀 못봤다는 거야. 어제 저녁에 가져다 놓았나 해서 다른 경비한테도 물어봤지만 모두 모른다는 거야.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니냐. 일단 차에 가까이 가니까 자동으로 문이 열리면서 시동이 걸리더라고. 물론 운전대도 있고, 일반차와 똑같이 생겼지. 차에 올라 타니까, 각종 계기판이 요란하게 움직이는데 속도계나 휘발유 게기판이 안 보이는 거야. 허, 이게 무슨 놈의 차가 이래. 난 이상한 문자와 도형이 움직이는 곳을 향해 ‘포천 총탄약 시험장’ 하고 명령을 하니까 움직이더라고. 일단 포천까지 가서 미사일 성능 시험장 참관 신청을 했지. 차는 주차장에 두고서 말이야. 안내원 지시에 따라서 단체로 움직였어. 한참을 가더라고. 실제 현장까지는 주최측 차량으로 움직였으니까. 가서 보니까 정말 먼 곳의 움직임까지 정확하게 다 보이더라고. 미사일 발사기기를 작동하는 민간인들의 모습부터 훤히 보이더라니까. 또 미사일이 떨어질 타켓의 위치도 명확하게 보였고. 일단 교육받은 대로 시야를 멀리두고서, 사진을 찍듯이 포탑에서부터 포탄이 날아, 멀리 타켙을 맞추기까지의 전 과정을 그대로 스캔을 했어. 한 시간 정도 했을 거야. 다 끝내고 돌아오는데 장난기가 발동하더라고. 내 차 호출명이 ‘공덕코리아’거든. 내가 뇌파를 통해서 ‘공덕코리아’를 외쳐봤지. 그런데 정말 조금 후에 까만 BMW 차량 한 대가 올라오는 거야. 경비초소에서는 난리가 났지. 정체불명의 차가 저지선을 넘어 무단으로 무기 성능시험 현장으로 달려갔으니까 말이야. 그것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가 경비하고 버스기사에게 설명을 하고서 내차에 올라탔지. 덕분에 편히 오기는 했지만 경비 녀석한테 엄청 항의를 받았어. 그 애들 말이야, 실탄이 장전된 무기로 경비를 서고 있더라고. 집에 와가지고 곧장 뇌파를 이용해서 모든 자료를 모악산 방향 송신소로 보냈어. 조금 있으니까 수신 완료했다는 답신이 오더라고.

-재밌냐?

-어, 근데 이거 정말 진짜냐?

-아직도 못 믿냐? 목 타는데 맥주나 한 컵 줘라.

단란주점을 하는 정태가 소맥으로 한 컵을 타서 건넸다. 한 컵 쭉 들이키더니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달쯤 있으니까 또 지령이 오더라고. 그러니까 머릿속에 미세한 진동이 감지되면 일단 모악산 방향 송신탑을 바라보면 돼. 야, 이번엔 말이야,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서산 해미읍으로 가라는 거야. 그게 뭐냐고 물으니까 중거리 유도키트 성공 실험을 하는 곳이래. 그때 가족들한테는 일단 어디 놀러간다고 하고선 서산 해미읍에 있는 공군부대로 차를 유도했지. 여기서도 어떻게 해서 부대 안으로 들어갔어. 차는 주차장에 세워놓고서 말이야. 마침 수리온 헬기 공격시범이 있더라고 중기관총 발사까지 이어지는데 타깃이 완전 초토화 되었어. 정말 무섭더라. 북한 애들이 방사포 날리고 난리치는데 실제 정확한 타격은 저런 공격용 헬기가 하는 거래. 난 임무도 잊어버리고 넋이 빠졌지. 물론 수리온 헬기가 뜨면서부터 공격까지 다 스캔했지. 그 다음으로 중거리 유도키트 실험이 진행되었어. 산 넘어 보이지 않는 적을 정확하게 추적해서 박살내는 무서운 무기라고 설명을 들었지. 정말 놀랬어. 나도 군생활을 특전사에서 했지만 저런거 본 적이 없었거든. 근데 우리 군의 과학 병기를 보고나니까 안심이 되더라고. 이번엔 무사히 넘어가려고 차도 부르지 않고 조심해서 주차장까지 와서 탔지. 근데 말이야, 집에 거의 다와 가지고 아파트에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집사람이 날 본거야. 집 사람도 차가 뭔지는 알잖냐. 문초를 하는데 말이 막히더라고. 내가 거짓말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거였지.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그런데 믿어야 말이지. 나보고 어디서 강도짓을 해서 샀느냐, 노름을 해서 번 돈으로 샀느냐, 별의 별 질문을 다 해대더라니까. 내가 마누라 의심을 잠 재우기 위해서 결국 시승을 하는 수밖에 없잖냐. 마누라를 태우고선 전주에서 소양, 진안, 무주 덕유산까지 달렸지. 내가 운전대를 잡지도 않고서 차가 달리니까 그때서야 마누라가 믿더라고. 거기다 구두로 명령어를 수시로 바꾸어서 어디 유명 사찰을 들렸다 가자고 하면 알아서 착착 찾아서 들어가니까 나도 그랬지만 마누라도 어안이 벙벙해졌지. 그 뒤로부터는 뭐라고 잔소리를 안 하더라고. 그런데 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늘 불안해 하는거야.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조금은 떳떳한 일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거지. 하여간 두 번째 임무도 수집한 정보를 무사히 송신을 했지. 자 그런데 세 번째에서 문제가 생긴 거야.

형석은 김사장 얘기가 두서가 없는 건지, 자기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사건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거지? 김사장은 한참을 술잔만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뗐다.

-차장님, 혹시 노동부에 아시는 분 없습니까?

-아니, 갑자기 노동부는 왜요?

김사장의 장황한 설명이 또 한번 이어졌다.

제가 볼 때 말입니다. 그 사람, 사실상 정신 장애잡니다. 물론 나중에 치유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현 상태에서는 신경계통 또는 정신장애 분류에 따라 제9급 제15호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심사청구에 의해서 장애등급을 조정받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겁니다. 노동부 관계자나 전문 노무사들의 도움없이는 장애등급 받기가 어렵습니다.

-차장님께서 건설회사에 계시니까 혹시 노동부에 아시는 분이 없나 해서요. 그 친구를 그대로 방치해두면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추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형석은 김사장의 옆면을 슬쩍 스치듯 처다보면서 김사장이 인간적으로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노동부에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동창이다. 왈칵 친한 것도 아니고 동창회 때나 보는 친구다. 그래도 친구는 친구니까 이번 연말 동창회 때 만나면 이야기나 한번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첩보활동 2 개월이 지나니까 세 번째 지령이 떨어졌어. 근데 난 움직이질 않았지. 사실 내가 무슨 보수를 받고 하는 게 아니잖아. 마누라가 그 험한 일 해가면서 겨우 밥 먹고 사는데 말이야. 난 뭐냐 말이야. 수입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잔아. 하여간 항의를 했지. 반응이 없더라고, 짜식들이 말이야. 별 수 있냐? 나도 벌였지. 그 뭐 사보타주라고 하냐, 스트라이크라고 해야하나. 암튼 모르겠다만 파업을 한거지. 차를 타고선 엉뚱한 데로 돌아다녔지. 그렇게 며칠을 돌아다니니까 연락이 오더라고. 내 계좌로 몇 천만원이 들어갔으니까 확인해 보라고 말이야. 즉시 확인해 봤더니 정말 3천만 원이 들어와 있더라고. 근데 보낸 사람이 해외로 되어있는데 누군지를 모르겠더라니까. 그 뒤로 한 번 더 들어왔는데 정말 풍족하게 써댔어. 그런데 지금도 그 돈이 어디서 들어왔는지 궁금하다니까.

그 세 번째 지령이 말인데. 이번에는 뭘 참관하라는 게 아니더라고. 일단 지령 자체를 내가 이해를 못했으니까. 뭐라더라? 전파 교란 장치라는 거야. 나 보고 지방이 아니고 서울 본부로 가라고 지시가 떨어진 거지. 나도 첨 알았다. 용산에 방위산업기술지원센터가 있다는 것을 말이야. 이것은 적의 최첨단 전자장비에 있는 GPS 기술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전파교란장치인 셈이지. 이건 밖에서 시범도 없고 극비의 군사기밀이야. 야 정말 심장 떨리더라고. 고공 관측 레이더나 장거리 로켓 위치 탐색 안테나 기술, 또 해안 침투할 때 이용되는 수중탐지 장비 기술 등이 모두가 연결되어 있더라고. 이것을 건물 안까지 들어가서 캐 내라니까 말이 되는 거냐고. 일단 용산에 있는 건물, 즉 기술지원센터까지는 무사히 들어갔지. 거기까지는 민원인이나 가족들도 방문할 거니까. 거기서부터 내 시력을 최대한 발휘했지. 내가 시작할 때 말했잖아. 우주인한테 붙잡혀 가서 안과처럼 생긴데서 시술을 했다고. 내 시력이 최소 5.0 쯤 될 거야. 지금도 건물 밖 2km 전방에 누가 뭐를 들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다시 말하면 남대문에 내가 있고 총무인 민준이가 청와대 용마루에 있다고 치자 이 말이야. 근데 밥을 먹고 양치를 안 했어. 민준이 이빨에 고춧가루가 꼈어. 난 그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이말이지. 안 믿으면 시험해 보라구.

-헉, 이 섀끼, 무서운 놈이네.

-쫄기는, 짜식,

-그럼, 너 저 건너편에 서 있는 아가시 브래지어나 팬티의 색깔을 알아 맞칠 수 있어?

-그래, 한번 맞춰봐, 네 이야기가 진짜인지 어떤지 한번 보자. 엉?

무슨 검증이라도 하자는 것처럼 애들이 웅성거렸다.

-야 이런 미친 새끼들, 내가 언제 투시력이 있다고 했냐? 시력이 있고, 스캔해서 저장할 수 있다고 했지. 너희들이 말하는 건 인마, 범죄야, 새끼들아. 정신 차리라고. 짜식들, 수준치고는.

-그래서 뭐가 문제가 되었다는 거야?

회장이 점잖게 물었다.

-하, 자식들 내 분위기가 좀 올라갈라고 하면 꼭 찬물을 끼얹더라.

그렇지. 방위산업용산기술지원센터 갔다고 했지? 그게 말이야. 실은 국방과학연구소 산하의 기관이더라고. 내가 안으로 일단 들어갈 때 그곳 여직원 이름을 사전에 파악해서 가족이라면서 면회 왔다고 했지. 일단 방문 명패를 차고 들어갔어. 들어가선 이방 저방 열린 문을 열면서 보이는 대로 스캔을 한거야. 그렇게 복도를 가다 보니까 ‘GPS 레이더과’가 있는 거야. 문을 밀고 들어가려니까 잠금장치가 되어 있더라고. 안에 사람은 없는데 책상 위에 도면이나 서류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어. 난 창문을 통해 보이는 대로 최대한 스캔을 했어. 그런데 거기서 너무 오래 지체를 한거야. 그곳을 지나가던 직원이 날 수상하게 보고 신고를 했지. 확인 대조해 보니까 실제 가족이 아니잖아. 끌려갔지 용산경찰서로. 근데 증거가 없잖아. 기밀정보를 탐지하려면 뭔가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데 핸드폰에 아무것도 없고, 카메라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결국 공공건물 무단 침입죄로 과태료로 끝나는가 했는데, 웬걸 존나 재수 없게 걸려들고 말았지. 경찰서 형사들이 내 핸드폰을 다 검사했나봐. 무슨 포렌식이라나 뭐나. 최근 3개월 이내의 행적을 찾아보니까 군사기지만 돌아다녔다는 거지. 그것도 첨단기기 시험장만 말이야. 게들이 내 차를 수색했는데 이런 차종은 처음 본다면서 신기해 하더라고. 결국 기무사로 넘기려다가 안전기획부로 넘어갔지. 내가 고문은 안 받았어. 왜냐면 갔다는 것 외에는 내가 습득한 정보나 유출된 정황이 없었으니까 꼬투리 잡힐 게 없었던 게지. 나를 가두고 계속 자백을 유도하더라고. 나중엔 최면술사를 불렀어. 여기서 탄로가 난 거야. 내가 UFO에 납치되어서 북극 어딘가로 끌려갔고, 눈과 머리에 시술을 받았고, 교육도 받았다는 게 다 나온거지. 그런데 내가 화성까지 다녀왔다는 진술은 아예 신빙성이 없다고 안 적드라고. 그래도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긴 나왔지. 바로 BMW 차하고, 계좌에 돈 수천만 원이 입금된 거였여.

난 우선 전북대 종합병원에 강제 입원되었어. 병 때문이 아니고 UFO에서 시술했다는데 정말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그랬던거지. 먼저 두상에 대한 X레이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보고선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야. 눈 시력은 측정에서 현 기술로는 측정 불가하다는 판단이 나왔고. 2.5이상이 나오니까 측정할 수가 없다는 거였지. 실은 100m 전방에서도 다 보이는데 말이 되느냐고. 스캔이나 정보 송수신 능력 같은 것은 X레이를 백번 찍어봐도 안 나오잖아. 무슨 기계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것도 아니니까. 결국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MRI를 찍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서울대 병원하고 삼성병원에 의뢰를 하더군. 나도 그렇게 큰 병원은 첨 가봤다. 웅장한 기계가 돌아가는데 실은 우주인한테 시술 받을 때보다 더 무섭더라. 결국 서울대 병원 쪽에서 좌뇌의 중심부에서 아주 작고 가는 칩을 발견했다는 거야. 그 칩의 재질이 뭔지도 모르고, 현재 우리가 가진 최첨단 의료 기술로는 삽입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런데 각종 뇌파검사를 해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오더라고. 결국 넘어갔어. 현대 기술로는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어쩌겠어, 도리 없지. 내가 이런데도 안기부에서는 끝까지 물고늘어지더라고. 징글징글한 새끼들 같으니라구.

결국 명확한 정보 유출도 없는데 검찰로 넘어갔다니까. 재판에서 군사기밀 누설죄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복역을 했지. 이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우리 사촌형도 내가 죽은 줄로 알고 있었으니까. 너희들이야 당연히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다가 한 달 전에 출소를 했어. 근데 문제가 다 끝난 게 아니더라고. 그 뭐냐, 북한 간첩들 복역하고 나오면 끄나풀 따라 붙잖아. 나도 마찬가지더라고. 그래서 차는 안 타. 지하주차장에 묵혀놨지. 그냥 버스나 지하철만 타고 다녀. 근데 말이야. 이 똥파리 새끼들이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다 사진을 찍는거야. 야, 아까 나 들어올 때 혹시 못 봤냐? 바로 뒤에서 어떤 아가씨가 핸드백을 짧게 메고 뒤따라 들어왔잖아. 그 년이 너희들 다 찍었다. 아마 시방 녹음도 다 했는지 몰라. 좌중이 갑자기 웅성거렸다.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여자 동창들이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떴다. 연거푸 몇 놈이 움직였다. 일부는 찬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일어섰다. 전에 기무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동창 민규가 입을 열었다.

-야 공덕아, 너 정말 모든 게 사실이냐?

-하, 자식들, 여전히 못 믿네. 그럼 우리 집에 가서 지하 주차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BMW를 한번 봐야 믿을래?

-아냐, 아냐, 이렇게 상세한 이야기를 새 대가리, 아니 돼지 대가리 같은 네 머리로 만들어냈을 리가 만무하지.

중간에 있던 창식이 거들었다.

-야, 그래도 그렇지. 여기 있는 멀쩡한 사람까지 찍어 가면 초상권 침해 아니냐? 저 새끼 만났다고 경찰서 정보과에 내 사진이 올라간다고? 이건 아닌 것 같다.

-겁나면 가라. 누가 말리냐? 대신 술값은 내고 가라.

여자들이 먼저 한둘 일어섰다. 남자 동창들도 이리 저리 눈치를 보면서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하면서 일어섰다. 또 약속시간이 있어서 먼저 일어난다며 떠나는 애들도 몇 명 되었다. 대부분 술기운이 확 깬다는 듯 자리를 털며 일어섰다. 반지하 창문 밖으로 눈발이 비쳤다. 오늘 눈이 온다더니 이제야 한두 송이 창문에 와 달라붙기 시작했다.

-야, 공덕아, 너 땜에 애들 다 갔다. 오늘 동창회는 종쳤다.

-아, 미안하다. 새끼들. 내가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사진 찍힌다고 하니까 다들 쫄아버렸그만.

-암튼 고생 많았다. 너 감방에 있었던 것도 모르고 우리가 희희낙락 했으니 미안하다. 그럼 지금도 그 뭐냐, UFO에서 연락이 오냐?

-아니.

-왜?

-끊어졌지. 근대 연락은 가능해.

공덕이 감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딴 놈을 붙잡아다가 또 부려 먹었을 거라고 했다. 아마 신문에도 났을 거라고도 했다. 레이더 기지가 있는 높은 산에 등산갈 때 누가 실종되거나 해서 시신을 못 찾았다는 신문기사가 뜨는지 잘 보라구 했다. 십중팔구 UFO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둘만 남았으니까 중요한 정보를 말해주겠단다. 혼자서 새벽녘이나 석양 무렵에 등산을 가면 안 되는 곳이 있다고 했다.

-하,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야 새끼, 말을 꺼내놓고 중단하면 되냐 인마, 해봐. 어딘데?

산인데 말이야. 인왕산, 청계산, 관악산, 아차산, 용마산, 그리고 평택 미군부대 주변이야. 물론 도심도 안전하진 않지. 요새는 말이야, 용산하고 광화문, 강남, 분당에도 UFO가 출몰하는 지역이거든. 나는 대개 전주 모악산 쪽에서 지금도 짧은 호출신호가 잡혀. 화성인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엄청난 속력, 레이저 기술, 근데 무엇보다도 납치당할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해.

-야, 그건 그렇고. UFO 우주인년하고는 사귀어 봤냐?

총무가 여유가 생겼는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야 이 자식이 무슨 재주로 사귀겠냐?

회장이 대신 대꾸했다.

-아니지. 너 우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은 되던?

총무가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흠, 있지. 암수인지는 몰라도 색깔이 있어. 크기도 다르고. 진한 색깔에 큰 놈이 좀 성질도 과격하더라고. 그게 우리로 치면 남자일는지 몰라. 노란색이나 파란색 우주인은 작으면서 성질도 온순했으니까. 회장과 총무가 공덕의 말에 심취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이 핸드폰의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일어서자고 한다. 공덕은 둘을 먼저 보내고 잠시 자리에 다시 앉았다. 뭔가 만족한 듯 혼자서 빙그레 웃음기가 돈다.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잠시 생각한다. 마침내 덮개를 열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네, 매형, 별일 없죠, 근데 웬일이십니까?

-잘 있었는가?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네.

공덕은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묻는다. 그는 차 중고매매를 하는 처남에게 물었다. 혹시 BMW 중고, 아주 싸게 나오는거 있는가?

-아니 매형, 소나타 바꿔준 지가 언젠데 벌써 또 바꾸려고요? 그리고 웬 BMW입니까?

-암튼, 중고차 나오느냐고.

-있기야 있지요. 한 십 년 이상 된 차는 천만 원이면 구입 가능하지요.

-그보다 더 싼 것 없냐고. 내 고물 소나타하고 맞바꿀 정도의 BMW 말일세.

처남이 말을 하려다 말고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다. 그런 BMW는 이십여 년은 지난 거야 되는데 글쎄요 하며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처남이 물었다.

-매형, 뭐 대형 범죄라도 꾸밉니까?

-예끼, 이 사람. 사람을 어떻게 보고. 나 환자인 것 모르는가?

-알지만 왜 갑자기 BMW 타령이시냐고요?

공덕이 말을 이었다. 그럴만한 일이 있어서 필요하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공덕이 표정을 바꾸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선 뭔가 중얼거린다. 흠, 다음 동창회까진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가능하면 다음번에는 BMW를 꼭 몰고 나타나서 이 녀석들을 또 한 차레 골탕을 먹일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짜식들 쫄아가지고는, 나이 오십이면 뭐냐고. 이놈들아. 뭐 형사가 달라 붙어서 사진 찍는다니까 다 도망가버려, 이런 졸장부들 같으니라구. 그거 떼버려 자식들아. 그는 지하철을 향해 걸어가면서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했다.

-아 김 사장님, 다음 주 중반부터 일 하려고 하는데 자리 있죠?

-아, 네, 머리는 다 나았습니까?

-네 거의 다 나았습니다. 그때 산재보험 잘 처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때 공사장 비게 무너져서 공덕씨가 심하게 다쳤지만 그로 인해서 여러 사람이 감옥에 갔습니다. 아마 모르실겁니다. 아무튼 공덕씨가 다시 재기하게 되어서 천만 다행이지만요.

-그럼 다음 주 중반부터 다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가 시청역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대문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긴 했지만 이따금 흩날리는 눈발이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었다. 광화문 쪽에는 여전히 수많은 데모대의 천막들이 보였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보이진 않았다. 대충하면 안 되나? 양보도 하면서. 저렇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대치를 하고 있으니 쯔쯔쯔. 지하철 개폐기를 밀고 들어가는 순간 핸드폰에서 카톡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내온 모양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형석이었다.

-엉, 얘가 웬 일이야. 아까 조금 일찍 나갔는데.

메시지는 짧았다. “공덕아, 고생 많았다. 너 김사장 알지? 다 들었다. 재활 치료 열심히 해서 꼭 재기해라. 응원할께. 그리고 걱정마. 나만 알고 있을테니까.”

-아니, 이게 뭐야? 얘가 어떻게 알았지 김사장을? 황 됐잖아. 에이 씨팔, 좃됐네.

총무와 회장은 동창회가 조금 일찍 끝나서 허전하다며 일단 청계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저녁이면 청계천변의 루미나리에도 볼만 했다. 거리엔 젊은 청춘들로 어깨가 맞다을 정도였다. 회장이 총무 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가만히 묻는다.

-너, 정말 믿는 건 아니지?

-뭘?

-아까 그 공덕이 말이야.

-야, 내가 바보냐?

둘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한바탕 웃어댔다. 회장이 작은 소리로 총무의 귀에 가까이 대고 한마디 했다.

-두고 봐라. 그 자식말야. 다음 번엔 틀림없이 BMW 몰고 나타난다. 비록 썩어빠진 거라도 말이야.

둘이 또 한 번 함박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회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형석이었다. 지금 청계천의 소라광장에 있는데 급히 보자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데?

-응 좀 상의할 게 있어서.

-급한 일이야?

-네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야, 우리 동창한테.

-그럼 아래 쪽으로 내려와. 어디서 생맥주나 한잔 더 하지 뭐.

어느덧 반짝거리는 청계천의 루미나리에 위로 눈발이 점점 거세게 흩날리고 있다. 끝 (원고지 142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