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행성을 탈출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공화주의자들은 여전히 온전한 기쁨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탈출한 것은 곧 발각될 것이었고 제국군이 추격할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한 줌의 군사력도 없는 자신들은 꼼짝없이 잡혀서 사회질서유지국에 넘겨질 신세가 된다.
사회질서유지국에 끌려간다는 점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다. 심지어 그 곳에 진짜로 갔다 온 이들도 있으니만큼 더더욱 그랬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지 이온 파제카스 호는 멀리서 보면 그냥 드라이아이스 덩어리, 더 쉽게 말하면 얼음덩어리였기에 멀리서 얼른 보기만 하면 별로 의심스러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보거나 가까이서 본다면 충분히 의심을 살 구석은 있었기에 그건 분명히 위험요소였다.
또다른 문제점도 있었다. 제국군은 이들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왜냐면 광활한 우주에서는 일단 한번 놓치면 잡기 어려운 만큼 한번 도망치면 반드시 찾아야 했다. 하지만 광활하기 떄문에 한번 마주치기도 어려운게 현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탈출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잡는 것이었다.
비록 공화주의자들이 알타이르 성계를 벗어났다고는 하나 제국군은 알타이르 성계는 물론 그 근방의 주요 길목 등에 자리잡은 채 잡아내려 할 것이고 때문에 공화주의자들의 첫 고비는 탈출 직후였다. 물론 공화주의자들은 걸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걸린다면 그들의 운명은 끝.
그래도 공화주의자들은 운이 좋았다. 탈출한 후로부터 1주일이나 제국의 초계함에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공화주의자들도 이제는 좀 안심해도 되겠다 싶던 찰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일은 탈출하고 9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 날도 유리 민츠는 이온 파제카스 호에 부착한 전자파, 레이더 감지기 등으로 제국의 초계함이 있을만한 곳을 찾고 있었는데 그 때였다.
"아니, 설마... 갑자기 신호가 잡히다니 설마...?"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우연히 제국의 함선 10척이 탈출한 공화주의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이온 파제카스 호와 아슬아슬하게 가까운 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초광속항행의 기술원리상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는 멀리서 온 것이 아니라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에 이것은 공화주의자들이 미리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다.
제국의 초계함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공화주의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떤 이들은 이제는 끝장이라며 오열하기도 했고 비명을 지르거나 절망에 빠진 나머지 환락에 빠지고 폭력과 음주에 빠지는 등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하이네센에게 향했다. 그가 모든 것을 계획했으니 그가 이번 일도 해결해주리라 믿은 것이었다. 하지만 머리에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장석에 앉아서 우주를 향해 발을 뻗고 두 다리를 꼰 채로 있는, 어찌 보면 낮잠이나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하이네센을 본 사람들은 반수는 이제는 글렀다고 여겼다..
사실 하이네센도 행동만 그렇게 했지 속으로는 이미 다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그도 그럴게 불과 5분 전에 유리 민츠는 이제 제국의 레이더망에 걸리려면 고작 30분만 남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고 놓지 않은 사람들도 반수는 사실상 포기하고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고민하던 찰나 유리 민츠로부터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유리 민츠는 근처에서 우주해적으로 보이는 신호가 잡혔다고 말했다. 그것도 이온 파제카스 호와 같은 1척이었다. 그러니 레이더 투과장치를 사용하면 제국군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게 되어 50%의 확률로나마 탈출 확률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이네센은 잠시 생각한 끝에 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았다. 제국군은 이미 우리가 드라이아이스로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르 제압하는데는 1척의 함선으로도 가능하며 1척의 우주해적도 함선 몇 척이면 가능하기에 제국군은 둘로 쪼개어 둘 다 잡으려고 할 지언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았다.
이렇게 그나마 있을 법한 50%의 확률에 잠시간 공화주의자들은 기대했지만 하이네센은 그것을 박살났다. 이제는 정말 희망이 없다고 여긴 찰나 하이네센이 입을 열었다.
"실은 제게 방법이 있긴 한데 여러분들이 따라 주실지..."
이에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하이네센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역으로 레이더 투과장치고 뭐고 다 사용하지 않고 엔진도 일시적으로 멈춰 이동을 중지하자는, 말 그대로 제국의 레이더에 노출된 채로 움직이자도 말자는 얼른 듣기에는 굉장히 미친 발상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그래봐야 결국은 잡힌다고 생각하는게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네센은 우주해적들은 어떻게든 제국군에게 안 들키기 위해 온갖 장치를 해놓았을 것이기에 제국군에게 의심을 사기 쉬을 것이라고 설득했고 그를 믿던 응웬 킴 호아나 유리 민츠 등이 적극 지지했고 다른 이들도 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지하여 결국은 하이네센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선 시간이 얼마 없었다. 7분만에 레이더 장치도 엔진도 모두 멈추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화주의자들은 발빠르게 움직였고 다행히 제국의 레이더망에 들기 30초 전에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한편 제국군은 예상대로 우주해적과 이온 파제카스 호를 모두 포착했다. 하지만 둘 다 레이더망으로만 포착했을 뿐인지라 둘을 구별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1척의 우주선이었기에 더 구분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이렇게 오퍼레이터로부터 수상한 2개의 물체가 발견되었다는 얘기에 지휘관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만일 둘 다 분산시킨다면 공화주의자들은 끝장나게 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우주해적들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역시 공화주의자들은 끝장나게 된다.
이 때 공화주의자들은 망원경으로 제국군 전함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된 만큼 모두들 침묵을 지킨 채 숨죽이며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관은 생각 끝에 우주해적들을 향했다. 지휘관은 공화주의자 일당 중에는 제국군에서 배신한 자들도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제7행성에 남은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그래야 가족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 테니까) 공화주의자들과 사전에 합의하고 모든 죄를 유리 민츠를 포함한 탈영한 제국군들에게 떠넘긴 상태였고 한편으로는 일부러 그들의 탈출이 방해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의심받지는 않을 선에서 적절하게 상부에 그들에 대한 정보를 넘긴 상태였다.
그랬기에 지휘관은 틀림없이 이들이 레이더 투과장치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거라 보았고 또 어쩄거나 탈출을 꾀하는 자들이 아무것도 없이 탈출하려는 만용을 넘어 어리석음을 보일 리 없다고 여겼다 더욱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 역시도 그의 판단을 흐리는데 기여했다.
반면에 우주해적들은 하이네센의 예측대로 제국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온갖 수작을 해놓았던 까닭에 이것을 알아차린 지휘관은 더더욱 우주해적쪽 방향이 의심스러워 우주해적들을 향해 간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발견한 것은 우주해적 뿐이었다. 덕분에 불경한 공화주의자 무리 40만을 검거할 공훈 대산 한 줌의 우주해적 검거라는 초라한 공을 세우게 된 지휘관은 분노하여 이들이 항복하였음에도 다들 산 채로 우주에 내던져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시체들을 회수하여 공훈을 인정받았다.
반면 공화주의자들은 제국군 전함들이 자신들에게 오지 않음을 보며 안도하였고 또한 하이네센의 혜안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하이네센은 자신이 딱히 원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졸기에 수많은 공화주의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공화주의자 무리의 지도자가 되어버렸다.
첫댓글 엘 파실 전투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