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마음부처
혜월선사의 경제 논리
너와 나의 분별이 없기에 소아적 이해타산이 없다
최인호씨는 가장 능력있는 작가군에 속한다고들 말한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그렇다.
특히 <길없는 길>의 경우 절집에서 그냥 객담처럼 알려져 있는 뻔한 이야기들을 모아 다섯 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조립하는 실력에 아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내용을 가지고 앞뒤로 잘 꿰맞추고 게다가 수식어를 잘도 갖다 붙인다. 그리하여 한 되짜리를 한 말로 튀겨내는 재주를 가졌다. 게다가 베스트셀러까지 되어 원고료는 말할 것도 없고 인지세도 적지않게 받았다고 하니 너무나 경제적인 글이라고 하겠다.
경전이나 어록들은 정제된 언어로 되어 있다. 그런 글들을 늘 접하는 승가사회의 구성원들은 감정이 절제된 압축언어를 좋아한다. 항상 엑기스로만 졸여내는 훈련을 받은 탓이다. 이게 간단하긴 하다. 문제는 한 말짜리를 가지고 한 되짜리로 만들어버리니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주 비경제적인 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길없는 길>의 주인공인 경허스님은 세 명의 수제자를 두었다.
흔히 ‘삼월’로 불리는 혜월․수월․월면(만공)선사가 그들이다.
그 중에서도 혜월스님은 가장 비경제적인 인물로 묘사해도 좋을 것 같다.
그 분은 늘 뙤약볕 아래에서 얼굴이 그을도록 논밭을 일구고 짚신을 삼고
빗자루를 매어 내다 팔면서 소박한 일상생활 가운데 참선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부산 선암사의 주지소임을 맡게 되었다.
주지는 ‘경제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 절 재산을 늘리든지 하다못해 현상유지라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산을 개간하기로 하였다.
개간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았다.
하지만 여러 달만에 겨우 세 마지기를 개간하는데 그쳤다.
다섯 마지기를 팔았으면 최하로 여섯 마지기 이상으로 늘여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일꾼들이 일을 하다가 그만 게으름이 나면 스님께 법문을 해달라고 졸랐고, 그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법문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절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하여 벌인 개간 사업이 결과적으로
사찰의 재산을 축낸 꼴이 되어 함께 살던 스님들의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자 혜월스님이 호통을 쳤다.
“이 소견머리 없는 놈들아! 논 다섯 마지기가 어디 갔느냐?
누가 농사를 짓던 간에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세 마지기가 더 늘어났지 않느냐?”
불교의 경제논리는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재산이 줄어든 것보다는 일꾼들에게 법문을 들려주어
그 사람들의 ‘마음의 밭’을 일구는데 일조를 했다면
설령 논이 두어 마지기 줄었더라도 별로 괘념치 않는 것이다.
너와 나의 분별이 없기 때문에 소아적 이해타산이 없고
온 인류가 한 가족을 이룬다는 세계관 위에서
모든 걸 전체적으로 계산하는 ‘신경제 이론’인 셈이다. 65쪽
첫댓글 _()()()_좋은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dalma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ㅎ
김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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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10수년전 혜월스님을 이상하게 닮은 스님이 땅을 팔아서 외국으로 갔다는 풍문이 이곳에는 자자했습니다.ㅎ.
혜월스님이 환생을 하셔서 선암사에 다시 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dalma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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