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작년이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나는 두 편이나 찾아 읽었다.
부커상이니 콩쿠르니 노벨상이니 나는 원래 유명세나 명성에 혹하지 않는 타입이지만,
신문에서 우연히 작가 소개를 읽고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게 된 것이다.
주로 자신의 자전적 경험 세계를 다룬 '칼 같은 글쓰기'로 유명하다는 그녀가
작품 목록에서 보건대,
소위 말하는 '불륜' 경험을 어떻게 다루었을까가 궁금해진 것이었다.
항간에 그녀의 문제작 '단순한 열정Simple Passion'이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이미 원작을 읽었으니
영화를 보기 전에라도 할말이 있는 셈이다.
영화를 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소설 '단순한 열정'은
그와 같은 모티브를 다룬 작품 중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여겨진다.
'단순한 열정'은 작가가 한 유부남과의 만남ㅡ그녀는 이혼녀이다 ㅡ을
실시간으로 글쓰기로 치환하는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전에 내가 읽은 '사진의 용도'라는 건조한 제목을 가진 그녀의 소설 또한
동일한 남자와의 정사를 다루었다고 보였다.
<사진의 용도> 라는 작품은 마치 사진집처럼
사이사이에 두 남녀가 자신들이 나눈 사랑의 흔적을 찍은 사진을 놓고
둘의 소감을 교차편집하는 서술방식을 보여준다.
사진들은
그들이 정사를 나누기 위해 빠져나간 허물,
예를 들면 다급하게 벗어던진 옷가지들 속옷과 양말 구두, 흐트러진 침대와
가구집기들
호텔방 등을 찍은 사진이다.
두 남녀는 그 사진을 글쓰기로 공유한다.
그러니까 요즘 연인들 사이에 유행할 법한 침실 셀카와 유사하면서도
변별적인 성격을 뚜렷이 보여주는 사진이다.
사진의 용도는 그들이 자신들의 정사를 잡아두기 위한 수단이다.
"성은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삶이다"
조르쥬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이 발현된 예증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은 영원히 정지된 정사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단순한 열정'에서
작가가 1인칭 작가 시점으로,
거의 현재 시제로 서술하는 정사 또한
글쓰기의 욕망이
육체적 사랑의 욕망과 동일한 욕망임을 보여준다.
사랑은 즉자적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기억 속에
흔적 속에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경험된다.
글쓰기의 욕망은 사랑의 욕망에 다름 아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ㅡ육체적 ㅡ사랑의 환유에 다름 아니다.
아니 그 역으로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작가에게 그 환유는 사진이 될 수도 있고 글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글쓰기의 주체가 바로 작가라는 주체이다.
그래서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다.
여성 작가라기 보다는 카사노바나 스탕달 같은 남성 주체에 가깝다.
여성은 흔히 기억이나 흔적, 과거를 은폐하고 지우는 것으로 사랑을 청산하지만 이 작가가 사랑을 다루는 방식은 남성 ㅡ작가 ㅡ주체에 가깝다.
개봉 예정인 영화의 포스트에 노트북을 앞에 놓고
글을 쓰는 여자의 스틸 사진이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작가에게 사랑은 지우고 은폐해야 할 외설이나 스캔들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되고 재현되어야 할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 장소 그 시간 그 배경들과 함께 ...
그녀의 육체를 파고든 유방암 치료 또한 사랑의 일부로 존재한다.
죽음도 불사하는 삶.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사랑의 기억...
사랑이 머물다 빠져나간 허물...
2023.
첫댓글
사랑을 위한 사랑ᆢ
그 기억들
저는 진실한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보았습니다.
글은
더 적나라한 인증샷이 되고
이 작가의 작품은 애초부터 일종의 사회적 인증샷으로 기능한 걸로 유명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