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목포문학상 동화부문 본상 당선작]
내 친구 떠돌이 / 강영인(대구시 달성구)
“우웩! 저 개 좀 봐!”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던 누가 소리쳤다. 그 소리에 다들 뒤를 돌아봤다. 지나가던 나도 덩달아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 그 개잖아.”
“아우 더러워! 맛 다 떨어졌다. 가자야.”
아이들은 침을 퉤퉤 뱉으며 포크를 팽개쳤다. 개는 슬금슬금 모두의 눈치를 보며 분식점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면서 연신 바닥에다 코를 킁킁거렸다. 과자 부스러기를 발견했는지 날름 주워 먹었다.
“이눔의 개, 저리 안 갓!”
분식점 아줌마가 튀김을 건져내는 집게를 마구 휘두르며 개를 내쫓았다. 개는 아줌마의 눈치를 살피며 뒤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러나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저눔의 개 땜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니깐!”
아줌마는 쌓인 게 많은지 분을 못 풀고 씩씩댔다.
나는 그 개를 여러 번 봐 왔다. 어느 날 난데없이 우리 동네에 나타나 돌아다녔다. 어느 누구도 주인이라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 하얀 털이었을 그 개는 숫제 검정개처럼 때로 얼룩져 있다. 거기다 여덟 개나 되는 젖꼭지를 축 늘어뜨린 채 뒷다리 한 쪽을 절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잡아당겼다. 아무리 봐도 버려진 개 같았다. 그 개는 신기하게도 우리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불쑥 나타나 분식점 근처를 기웃거렸다. 아이들이 던져주거나 흘린 과자 부스러기 따위를 주워 먹기 위해서다.
“어이, 백구상! 뭐해 인마, 네가 한번 혼내 봐. 또 알아? 자기랑 비슷한 종족인 줄 알고 말을 들을지?”
“쿠히히히…, 킥킥….”
언제 모여들었는지 우리 반 애들 몇이 내게 이죽거렸다. 날 따돌리고 괴롭히는 녀석들이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떼로 드잡이를 치려 들것이다.
“기다려봐. 내가 맛을 봬줄게.”
그 중 하나가 주머니에서 새총을 꺼냈다. 그리곤 돌멩이를 재어 개를 겨눠 쏘았다.
깨갱!
새총에 맞은 개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더니 골목 모퉁이로 꼬리를 감췄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의기양양하게 분식을 시켰다.
“인마 구상이! 빨랑 안 가고 뭐해? 너도 아까 그 개처럼 얼쩡거리다 뭐 주워 먹게?”
“우히히힛….”
누군가 비아냥댔고,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은 나도 군것질을 하려 했다. 할머니한테 뻥쳐서 간신히 타 낸 동전을 조물락거렸다. 그치만 저딴 녀석들과는 함께 먹을 순 없다. 그랬다간 속에 얹히고 말 것이다.
또 지겨운 하루를 보내야 한다. 학원도 안 가고 이렇다 할 친구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살고 있는 할머니 집으로 가긴 더 싫다. 보나마나 할머닌 폐지나 주우러 나갔을 것이고, 재수 없으면 또 땅 장사 아저씨들이 찾아와 닦달할지 모른다. 나는 놀이터로 향했다. 그나마 아이들이 좀 몰려 있고 나보다 낮은 학년 애들과 은근슬쩍 끼어 놀 수도 있다.
놀다보면 이상하게도 해거름이 빨리 찾아온다.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발길을 돌리더니 결국 휑뎅그렁하게 놀이터가 비었다. 이제부턴 나 혼자다. 그래도 집엔 들어가기 싫다. 갖고 있던 동전으로 근처 가게 앞 뽑기 기계에서 사탕 한 개를 뽑았다. 그걸 물고는 가로등 불빛 아래 벤치에서 숙제를 하려 가방을 폈다. 그때 저만치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어? 그 개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낮에 분식점 앞에서 본 개다. 개는 벌써부터 날 지켜본 듯했다. 몇 번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땅바닥에 코를 킁킁거렸다. 떨어진 과자 쪼가리들을 또 주워 먹었다. 그렇게 바닥을 코로 훑으며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그 개한테서 경계의 빛은 없었다. 갑자기 난 개의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참말로 애들 말처럼 날 자기랑 같은 종족쯤으로 여기는 걸까? 그래서 다른 사람은 경계해도 나는 피하지 않는 걸까? 사실은 몇 번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준 적은 있다. 다리를 저는 데다 홀쭉한 배가 어쩐지 좀 안돼 보였다. 그 일로 녀석은 날 경계하지 않는 걸까? 나는 빨고 있던 사탕을 와작 깼다. 조각 하나를 툭 뱉었다. 개는 거리낌없이 다가와 널름 주워 먹었다. 그리곤 더 없나 싶어 내 입을 빤히 쳐다봤다. 학교에선 누구 없이 날 따돌리는데, 이 개만은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때 난데없이 저만치서 트럭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와 섰다. 짐칸엔 쇠창살로 된 개집이 실려 있었다. 시동을 끄더니 아저씨가 내려 다가왔다. 개가 그 아저씨를 보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저만치 물러났다.
“얘야, 너, 저 개주인이냐?”
“아, 아닌데요?”
“널 따르는 것 같던데?”
“잘 모르겠는데요…?”
느닷없이 아저씨가 물어와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너…, 이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할래? 물론 잘만 하면 그만한 대가는 쳐 주마.”
“무슨 일인데요?”
아저씨는 주변을 한 번 슥 훑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저 개를 좀 잡아다오.”
“예에? 싫어요. 전, 못해요. 우리 개도 아니고 또 개가 물면 어떡하라고요?”
“아니야, 너라면 할 수 있을 게다. 내 유심히 봤다만 저 개가 널 친구로 여기고 있어. 자, 이것 받아라.”
그러면서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종이돈 한 장을 꺼내 손에 덥석 쥐어주었다. 무려 만 원짜리나 되었다. 눈이 번쩍 떠졌다.
“이 돈…, 저 주시는 거예요?”
“암. 저 개만 잡아주면 한 장 더 주마.”
그제야 나는 개장수 아저씨란 걸 눈치챘다. 개를 잡을 자신도 없으면서 나도 모르게 지폐를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그치만…, 저렇게 큰 개를 무슨 수로 잡냐구요?”
“어려울 것 없어. 그 돈을 다 쓰지 말고 과자를 좀 사서 저 개한테 종종 던져 줘. 개가 순해 보이니깐 금방 친해지게 될 거다. 그렇게만 되면 기회를 봐서 이걸로 개 목에 두른 벨트에 꿰기만 하면 돼. 그 다음 나무 기둥에다 묶으면 성공이지.”
아저씨가 목줄 하나를 꺼내며 일렀다. 벨트에 목줄을 꿰는 요령까지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어쩐지 아저씨 말대로만 하면 쉬울 것 같았다. 나는 선뜻 목줄을 받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개장수 아저씨와 거래를 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문구점 앞 오락실과 피시방, 군것질거리들이 마구 떠올랐다. 일단은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과자를 사서 개한테 선심을 썼다. 개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가와 과자를 주워 먹었다. 저만치서 트럭 창문으로 얼굴만 내민 개장수 아저씨가 흡족한 얼굴을 했다. 작전대로 척척 이루어지는 것 같아 의기양양했다. 얼마 안 있으면 계획대로 개를 잡고 또 돈을 받을 생각에 쾌재를 부르며 나는 피시방으로 내달렸다.
“글쎄, 안 된대두! 후딱 돌아들 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엉?”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대뜸 할머니가 목청을 돋워 소리치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땅 장사 아저씨 두 사람이 또 찾아왔다.
“참 답답하시네요, 할머니. 뭣 하러 다 쓰러져가는 요런 집에서 고생하냔 말입니다. 이 집을 팔고 깔끔한 빌라를 사면 편안히 지낼 수 있을 텐데요.”
“그럼요, 할머니. 저희가 후하게 금을 쳐 줄 테니 제발 집을 파세요. 네?”
두 아저씨는 달래고 으르며 할머니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찾아오는 아저씨들이었다. 할머니네 집을 사서 상가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이 집을 넘보지 말라구. 우리 아들, 며느리 돌아오면 같이 살 집이란 말여!”
할머니는 마지막엔 늘 그 말로 못을 박았다. 그 마음은 나도 똑같다. 그러면서도 집을 팔고 깔끔한 아파트나 빌라로 이사 갔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같다. 그렇게라도 한다면 아이들의 따돌림도 없어질 거란 믿음까지 들었다. 번듯한 빌라와 상가로 둘러싸인 할머니의 낡고 오래된 집은 솔직히 창피했다. 그렇지만 할머니 말이 맞는 것 같다. 다른 데로 이사 가면 나중에 엄마 아빠가 못 찾아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나는 부러 쿵쾅쿵쾅 발걸음을 내딛으며 마당을 가로질렀다. 두 아저씨가 돌아봤다.
“우리 손주한티 험한 말 쓰는 거 봬주기 싫은 게 싸게들 돌아가시우.”
할머니는 닭 몰듯 두 아저씨를 몰아냈다. 아저씨들은 입맛을 다시며 등을 돌렸다.
“다시 올 테니 천천히 생각해 보쇼 할머니. 연세도 있고, 또 손자 키우려면 좀 편안한 데로 가서 살아야 하지 않겠소?”
대문 밖을 나서면서까지 아저씨들이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가 뒤에다 대고 왕소금을 막 뿌렸다. 할머니가 저녁상을 차렸지만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 개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했다. 개장수 아저씨가 쥐어주던 지폐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다음 날도 그 개는 학교 앞 분식점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아이들과 주인 아줌마가 넌더리를 치며 또 개를 쫓아냈다. 어떤 아이는 모형 총으로 비비탄 총알을 막 쏘기도 했다. 안되겠던지 개가 돌아섰다. 나는 얼른 그 개 뒤를 따랐다. 아이들 눈을 벗어나자 나는 대뜸 개를 불렀다.
“야, 떠돌아!”
미리 생각한 것도 아닌데 ‘떠돌이’란 이름 아닌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부르고 보니 꽤 그럴 듯했다. 가다말고 떠돌이가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마주쳤다. 나는 미리 사 둔 과자를 꺼내 떠돌이에게 던져주었다. 떠돌이는 천연덕스레 다가와 과자를 주워 먹었다.
‘좋아! 작전대로 되고 있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때 저만치서 빵빵하는 차 소리가 울렸다. 돌아보니 언제 따라왔는지 개장수 아저씨가 탄 트럭이 서 있었다. 검지와 중지를 세워 브이를 그렸다. 잘 돼가고 있다는 뜻 같았다. 내 뒤를 밟으며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은 별로였다. 그치만 거래를 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기로 했다.
“떠돌아, 많이 먹어.”
나는 부러 더 친해지기 위해 다정하게 말을 건네며 과자를 던져주었다. 스스럼없이 날 대하는 걸로 봐서 떠돌이는 이제 어느 정도 날 믿는 것 같아보였다. 피뜩 아저씨를 돌아보니 먹이를 더 던져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오늘은 이쯤하기로 하고 돌아섰다. 그랬는데 뜻밖에도 떠돌이가 쭐레쭐레 날 따라오는 게 아닌가? 남은 돈을 만지작거리며 피시방으로 향하는데 떠돌이는 계속 따라왔다.
‘아냐, 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넣는 게 더 중요해.’
나는 생각을 바꿔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들 틈에 섞여 놀면서도 한 눈으론 계속 떠돌이를 감시했다. 어슬렁어슬렁 놀이터를 맴돌면서도 내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떨어진 과자 따위를 또 주워 먹었다. 덩지가 커서 과자부스러기 정도로는 좀 채 양에 차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난 과자 한 움큼씩을 던져 주며 생색을 냈다. 나중엔 내가 “떠돌아!” 하고 부르면 살짝이지만 꼬리까지 흔들었다. 게다가 내미는 과자를 받아먹는 동안 슬쩍 머리를 쓰다듬어도 잠자코 응해주기까지 했다. 이제 작전을 펼칠 때가 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윽고 땅거미가 지면서 아이들이 죄 돌아갔고, 떠돌이와 나만 남았다. 나는 남은 과자를 봉지 째 바닥에 쏟아 부었다. 떠돌이가 게걸스레 주워 먹었다. 가방에서 목줄을 꺼내 벨트에 걸면 그만이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작전을 펼치고 싶었지만, 딱 하루만 더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어느 누구한테도 다가간 적 없는 떠돌이가 유독 나한테만 마음을 열어 보인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일었다. 과자를 다 먹은 떠돌이가 꼬리를 몇 번 흔들고는 뒤돌아섰다.
“떠돌아, 어디 가냐? 집에 가냐?”
무심코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떠돌이가 한 번 더 고개를 돌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불현듯 떠돌이가 가는 곳이 어딘지 궁금해졌다.
“너도 집이 있는 거니?”
나는 떠돌이 뒤를 따르며 그렇게 물었다. 그때마다 설렁설렁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이끌리듯 떠돌이를 따라갔다. 아무래도 오늘이 작전을 펼쳐야 하는 숙명의 날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한 쪽에서 꿈틀댔다. 그때까지도 나는 개장수 아저씨가 몰래 뒤따라오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떠돌이는 골목을 몇 번 돌더니 외진 길로 빠졌다. 저만치 낡고 허물어진 담장 하나가 나타났다. 떠돌이는 그 담장의 뚫어진 구멍으로 대뜸 들어갔다. 담을 넘겨다보니 철거를 하다만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허물어진 담장 틈새로 발을 들였다. 왠지 으스스했다. 저만치 한쪽 귀퉁이에 나무 둥치며 합판들을 모아둔 곳으로 떠돌이가 다가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그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떠돌이가 들어간 쪽으로 다가가 찬찬히 안쪽을 살폈다. 합판을 들춘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복슬복슬하고 새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 네 마리가 새까만 눈망울로 날 돌아봤다. 떠돌이의 새끼인 것 같았다. 떠돌이가 배를 드러내고 눕자 마구 달려들어 젖을 빨았다. 그 모습을 나는 한참동안 넋을 잃고 들여다봤다.
“그랬었구나, 떠돌아…….”
나는 그렇게 나직이 읊조렸다. 주인도, 집도 없이 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해 저런 몸으로 먹이를 구하러 다녔던 것이다. 불현듯 엄마 아빠가 생각났다. 원망만 했던 엄마 아빠도 나와 할머니를 위해 어디선가 고생을 하고 계신 건 아닐까? 그때 느닷없이 인기척이 났다. 언제 뒤따라 왔는지 개장수 아저씨가 담 너머로 소리를 죽여 날 부르고 있었다. 어서 시작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떠돌이를 쓰다듬는 척 하며 목줄을 꺼냈다. 이제 벨트에 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떠돌이는 아무런 의심도 않고 내 손을 핥았다. 따듯했다. 등 뒤에서 아저씨가 팔을 내저으며 재촉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들은 악착같이 매달려 젖을 빨아댔다. 떠돌이가 잡혀가면 저 새끼들은 과연 살 수 있을까? 애타게 엄마를 찾다가 결국엔 죽어가겠지. 만약 내가 저 새끼이고, 떠돌이가 우리 엄마였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나도 모르게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목줄을 쥔 손이 제풀에 후들거렸다. 스르르 손에 힘이 빠지며 목줄을 떨어트렸다.
‘그건 안 돼!’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어 떠돌이의 목을 두른 벨트를 되레 풀기 시작했다. 오래 되고 녹까지 슨 버클이 쉬 풀리지 않았다. 지켜보던 아저씨가 넌떡 담을 뛰어넘었다. 목줄을 꿰는 줄 알고 힘을 합치려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떠돌이가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 서슬에 벨트를 연결한 녹슨 버클이 툭 터졌다. 목을 조이던 벨트가 벗겨져 나갔다. 살갗이 헤지고 피가 비쳤다.
크르르~
이제 떠돌이는 도망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새끼를 지키려 아저씨와 맞섰다. 콧등에 주름을 세우며 이빨을 드러낸 떠돌이는 이제껏 보아왔던 겁쟁이 그 개가 아니었다. 나는 머리칼이 곤두서며 등골이 오싹했다.
컹컹컹! 컹컹컹컹컹-!
떠돌이가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로 아저씨를 향해 짖어댔다. 온몸의 털이 빳빳이 곤두서 있었다.
“어이쿠!”
혼겁을 먹은 아저씨가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앉은 채로 담장 쪽으로 게걸음을 쳤다. 그러고는 덜미라도 잡힐새라 벼락같이 도로 담을 타넘었다.
“저, 저 놈의 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틀림없는 진돗개야. 잘못 건드렸다간 된통 당하겠어.”
아저씨가 넌더리를 치며 주절거렸다. 그리고는 트럭에 오르며 내게 고함쳤다.
“꼬마야, 너도 조심해라! 까딱 잘못하면 큰 봉변당해. 나는 모른다. 우리 거래는 없었던 걸로 하자. 그럼 난 간다.”
아저씨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쏜살같이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나는 그대로 떠돌이 옆에 앉아있었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저씨한테서 받은 남은 돈이 손에 잡혔다. 떠돌이를 위해 쓰고 싶었다.
“떠돌아, 너한테도 친구가 있다면 이런 고생까진 하지 않을 텐데…. 어때? 나랑 친구 하는 거?”
떠돌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내가 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떠돌이가 온순한 얼굴로 살랑 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강아지 네 마리를 품에 안았다. 그리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곁을 떠돌이가 졸랑졸랑 따랐다. 오는 내내 남은 돈으로 어떻게 근사한 개집을 지을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나는 불현듯 생각난 게 있어 떠돌이를 돌아봤다.
“떠돌아,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면 땅 장사 아저씨들도 쫓아내줘야 해. 알았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땅 장사 아저씨들이 아까 그 개장수처럼 줄행랑을 치는 모습을 떠올렸다.
[제5회 목포문학상 동화부문 신인상]
악동 음악회 / 이마리(부산시 해운대구)
자갈길에 덜컹거리던 봉고차가 초라한 집 앞에서 섰다. 미닫이 유리문으로 된 집이다. 유리문은 시커멓게 먼지가 껴 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 어릴 때 고향이라 다시 이곳 시골로 이사를 왔다.
“휴! 차가 분해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아빠가 이마의 땀을 닦는다. 겨울인데도 땀투성이다. 아빠는 살림도구를 다 비집고 엄마 휠체어부터 꺼낸다.
“자, 먼저 엄마를 밀고 집으로 들어가라.”
아빠는 짐을 옮기고 나는 엄마 휠체어를 민다. 하마터면 자갈밭에 엄마를 굴릴 뻔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집을 통 채로 날려 보낼 듯 으르렁거렸다. 집은 썰렁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자, 유빈아, 나를 싱크대 쪽으로 밀어줘. 밖에 가서 쌀부터 날라 올래?”
나는 밖으로 뛰어나간다. 요란한 수돗물소리가 문밖까지 따라 나온다.
시골로 이사한 첫날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밥을 먹고 우리는 이삿짐을 정리했다. 아빠는 대패랑 연장을 공방 차릴 곳에 놓았다. 엄마는 휠체어를 탄 채 작은 짐을 이쪽저쪽으로 날랐다.
나는 얼룩진 천장을 보며 잠을 청했다. 우리 가족은, 아니 나는 서울생활이 무서웠다. 서울 학교에서 나는 판자촌 아이로 유명했다.
‘시골 아이들은 좀 순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말했다.
“유빈아, 좀 추워도 참아라. 그래도 네 방이 따로 있잖아?”
비닐로 천막을 쳐놓은 서울 집보다 이곳이 훨씬 찬바람이 약했다. 새우처럼 몸을 옹크려보았다. 면적을 적게 해야 덜 춥다던 아빠 말이 떠올라서다.
새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숲은 춥고 학교 가는 길은 멀다. 그나마 첫날이라 아빠 봉고차로 함께 갔다.
담임이 드디어 나를 교실로 데리고 갔다.
“서울에서 전학 온 채유빈이다. 김해룡! 옆에 앉히고 잘 지내도록.”
첫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다.
“너 서울에서 온 거 맞아?”
해룡이가 나를 위아래로 살피며 묻는다.
“그런데 너, 우리보다 더 시골뜨기잖아?”
아이들이 우르르 나를 에워싼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하지 않는다.
“수업 끝나고 너희들 알지? 등나무 아래 모이는 거?”
해룡이 말에 모였던 남자애들이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꼬마병정들 같다.
“너도 초대한다. 채유빈!” 그때 급식당번이 소리쳤다.
“급식이요! 담임 샘은 옆 교실에서 식사!”
아이들이 와! 소리치며 줄을 섰다. 나는 제일 뒤로 식판을 들고 섰다. 내 차례가 되자 해룡이가 나타났다. 해룡이는 내 앞 아이에게 남은 닭도리탕을 몽땅 부어줬다.
“어이고, 서울 친구님에게 줄 게 하나도 없네. 밥이라도 한 덩이 받으시지.”
나는 밥 한 숟갈만 얹힌 식판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목에 가래가 낀 양 목이 막혔다. 자꾸 헛기침을 했다.
“야, 밥 먹는데 재수 없게 왜 컥컥 대냐?”
해룡이 숟가락을 탁 놓고 일어섰다. 아이들이 모두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거 서울 급식하고 다르냐? 인마, 안 먹을 테면 받지를 말아야지.”
해룡이가 내 식판에 퇴! 침을 뱉었다. 나는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었다. 나도 모르게 식판을 들어 해룡이 얼굴에 처박았다.
“아악!”
밥알이 해룡이 얼굴에 납작 달라붙었다. 꼭 곰보 탈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했다.
“내가 없으면 꼭 이 모양! 음식으로 장난치는 녀석은 용서 못해. 벌로 너희 둘 오늘 수업금지. 해룡이, 유빈이 다 따라와!”
선생님은 귀신같았다. 언제 나타났을까?
나는 음악실에 해룡이는 교무실에 갇혔다. 오후 내내 담임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배속에서는 속도 없이 꼬르륵 소리가 났다. 눈물이 번져서 눈발로 희끗한 앞 학교 건물이 두 세 개로 겹쳐보였다. 꼭 괴물의 성 같았다.
‘첫날부터 재수 없네!’
주위를 둘러보니 잔뜩 쌓인 큰 북들이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북채를 잡고 북을 쳐보았다.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다시 한 번 쳐보았다. 더 큰 소리가 났다. 두둥. 두둥둥. 두둥둥둥. 점점 소리가 커져갔다. 나중에는 미친 듯 북을 두드렸다. 땀이 줄줄 쏟아졌다. 아니 눈물인지도 몰랐다. 이제 슬픔도 화도 모조리 사라져갔다.
바로 그때 담임이 들어왔다.
“좀 화가 풀렸니? 참는 게 이기는 거라는 걸 알 때가 올 거다. 그렇다고 너무 참지만 말고 힘들면 나에게 와. 그리고 힘차게 북을 쳐봐. 훨씬 나아질 거야.”
담임과 헤어져 집에 왔다. 얼음장 같은 숲길을 지났는데 추운 줄도 몰랐다.
이미 저녁밥이 챙겨져 있었다.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자꾸 목이 막혀 잠깐씩 쉬었다. 아빠가 뭔가를 눈치 챈 듯 내 앞으로 국을 밀었다.
“유빈아, 국이랑 먹어야 안 막힌다.”
이번에는 엄마가 말했다.
“아빠는 벌써 일감이 들어왔단다. 이곳으로 이사 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네, 잘됐네요.”
집에 들어올 때 공방에서 나가던 아줌마 뒷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얼굴도 안 봤는데 왠지 본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 설거지는 항상 내 몫이다. 아빠는 열심히 대패질을 하고 엄마는 휠체어에 앉아 부지런히 사포질을 한다. 아빠가 만든 목공품이 모두 엄마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나무 향이 집안에 진동한다. 아빠는 벌써 <나무향기>라고 쓴 간판을 달고 있다.
다음날도 학교에 간다. 날씨가 얼음장 같다. 학교 가는 숲길에 나무들이 죽은 듯 서 있다. 저 나무에 언제쯤 새순이 날까? 가만히 나무 끝을 만져보았다. 놀랍게도 작은 새순 같은 게 솜털 속에서 만져졌다. 가슴이 설렌다. 아빠가 한 말을 똑같이 해본다.
“추위를 견디며 봄에 틔울 새싹을 준비하는구나!”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 문을 열려다 겁이 났다. 가만히 문을 밀었다. 어느새 해룡이가 나타나 소리쳤다.
“야! 너 어제 노예놀이에 오랬지? 왜 그냥 갔냐?”
다른 아이가 이어 소리쳤다.
“채유빈, 처음 온 네가 노예 해야 했어. 네 덕분에 내가 노예 했잖아?”
“어쨌든 유빈이 너 이 시간부터 노예다.”
나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뭐해? 이 가방 들고 내 옆자리에 앉아!”
말없이 가방을 들고 앉았다.
“야, 제법 잘 하네.”
내가 앉자 애들 눈이 전부 나를 좇았다.
“야 인마, 노예가 어디 주인이랑 함께 앉으려고? 넌 바닥에 앉아.”
둘러선 애들이 나를 한 방씩 먹였다. 비틀거리는 나를 해룡이가 잡아 세웠다.
“인마, 노예가 어디서 맘대로 쓰러져?”
해룡이가 다시 큰 소리로 명령했다.
“이제 쓰러져라!”
뒤에서 여자애 소리가 났다.
“김해룡! 너, 너무 심한 거 아냐?”
해룡이는 주먹을 들어 보인다.
“너, 까불면 가만 안 둔다. 선생님한테 이르기만 하면 알지?”
나는 맞은 뺨이 얼얼해 자꾸 볼을 만지작거렸다. 그때였다.
“모두 앉아라!”
귀신같은 담임이 나를 살렸다. 담임이 자꾸 내 볼을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방학 동안에 국악반에 가입할 사람은 방과 후 신청해라. 새내기 대환영이다. 세 달 후엔 군청에서 열리는 대회가 있거든. 더 많이 신청해서 잘 해보자.”
수업 내내 북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고 나도 모르게 음악실 앞에 서 있었다. 막 음악실 문손잡이를 돌리려 할 때였다.
“노예께서 북을 쳐보시려고?”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안 봐도 알만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참는 게 이기는 거다.’
“이 노예야. 말 좀 해봐. 너 혹시 벙어리는 아니지?”
“대답 안하겠다 이거지? 너 이리 따라와.”
내가 끌려간 곳은 급식 실 모퉁이였다. 남자애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번갈아 나를 때렸다. 맞을 때마다 이빨을 악물었다. 내 가방까지 막 밟았다.
“헐, 요 작은 고추가 되게 맵네?”
그때 어디선가 슬리퍼 끄는 소리가 다가왔다.
“쉿! 토껴!”
아이들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찬 시멘트 바닥에 코피가 뚝뚝 떨어졌다.
“유빈아! 얼굴을 들어라!”
담임이었다.
“나쁜 녀석들.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었는데. 가만 안 둘 거야.”
나는 선생님을 따라 음악실로 갔다. 담임은 물수건으로 벌써 마른 코피를 닦아냈다. 얼음처럼 굳은 내 손을 쥔 채로. 선생님 큰 손안에서 돌같이 차가운 내 손이 서서히 녹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 손에 북채를 꼭 쥐어주었다.
“자, 마음껏 쳐봐라. 죽이고 싶도록 미운 놈이 있거든 날려버려.”
선생님이 나간 후 나는 정신을 챙겼다. 해룡이랑 악동들 얼굴을 떠올리며 북을 두드렸다. 둥둥, 두둥둥, 두둥둥 북소리가 커졌다. 어느새 나도 몰래 눈물이 쏟아졌다. 북을 치며 맘껏 소리를 질러댔다.
“으윽, 이 나쁜 녀석들! 둥둥둥.”
한참 후 선생님이 들어왔다.
“유빈아, 북을 치면 정신 건강에 아주 좋단다.”
“국악반 악동들 훈련을 시켜서 행동이 많이 나아졌는데 아직 갈 길이 멀고나. 너도 신고식을 호되게 치렀으니 이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북소리는 힘이 있어. 아주 소질이 있어 보여.”
나는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담임이 책꽂이에서 악보를 들고 왔다.
“자, 여기 세모와 동그라미가 있지. 세모는 북 모서리를, 동그라미는 북 가운데를 울려 진동시키는 거야.”
“아, 네.”
“네가 처음 벌 선 날 네 북소리를 들었지. 네가 북하고 인연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잘 참아내는 사람이 북도 끝까지 잘 치거든. 언제 윗마을 절에 가봐. 북 치는 스님들 끈기가 대단하단다. 우리 악동들도 북, 장구, 징을 두드리며 마음이 많이 열려가고 있어. 혹독하게 연습하면서. 해룡이 녀석 부모님 문제로 잠깐 비뚤어지긴 했지만 알고 보면 맘이 여린 놈이지.”
“아, 네.”
“대회를 위해 한 마음이 되어 모진 연습을 하면서 아이들이 제법 친하게 되지.”
선생님 말에 어느새 내 마음이 슬슬 녹아가고 있었다.
“집에서 북채만 가지고 와. 아버지께 한 개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리지?”
선생님은 놀랍게도 벌써 아버지가 공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 내일부터 열심히 연습하자.”
선생님과 헤어져 숲길을 걸었다. 쓸쓸한 숲에서도 새들이 꾸르륵 울어대는 게 신기했다. 아이들한테 맞은 것도 다 잊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아빠를 보았다.
“아빠, 저도 북채 하나 만들어주세요.”
아빠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와, 우리 유빈이도? 북 채 주문을 30개 받았는데. 이제 31개네?” “유빈아, 엄마 어릴 때 친한 친구가 여태 이곳에 살고 있어. 그 아줌마가 북 채를 주문한 거야. 그 집 아들도 국악반이라던데.”
‘누굴까? 그 때 봤던 엄마 친구 아들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아빠가 긴 나무 조각을 내밀었다.
“우리 유빈이 북채는 제일 단단한 박달나무가 어떨까?”
“아빠, 이런 얼룩무늬는 싫어요. 깨끗한 걸로요!”
“이 얼룩무늬는 착한 옹이야.”
“옹이가 뭐예요?”
아빠는 내일 뒷산에서 옹이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시골에 와 처음 맞는 주말이다. 일을 잠시 쉬고 아빠는 나와 엄마를 절에 데리고 갔다.
아빠가 귀퉁이가 꼬인 나무를 가리켰다.
“유빈아, 이 혹 같은 거 보이지? 이걸 톱으로 켜면 얼룩처럼 보이는 거야. 이걸 옹이라고 한단다.”
“아빠, 옹이는 왜 생기죠?”
“나뭇가지가 바람에 꺾이거나 사람들이 자르면 그 자리에 상처가 생겨. 우리 몸처럼 나무도 눈물을 흘리거든. 그 눈물을 삼키며 참고 노력하면 착한 옹이가 돼. 나무와 한 살이 되지. 견디어내지 못하면 나무 살에서 떨어져 나와 죽은옹이가 되는 거야.”
엄마가 유빈이를 보고 웃는다.
“유빈아. 나무에 옹이가 있듯 사람들도 각자 가슴에 옹이가 있단다. 착한 옹이가 생기면 그만큼 넉넉한 마음을 베풀 수 있어. 나쁜 옹이는....”
엄마의 착한 옹이를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저렸다.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해룡이나 내 가슴 속 옹이는 어떤 모습일까?
점점 북치는 일이 공부보다 더 재미있었다. 아빠가 만들어준 옹이 북채로 연습하니 착한 옹이의 기가 전해져왔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따뜻해져가는 듯했다. 악동들도 해룡이도 매일 북 치는 일에 열중했다. 나를 괴롭히는 일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우리는 음악실에서 하나가 되었다. 천방지축 악동들이 야물고 단단한 국악악동들이 되어갔다.
드디어 공연 날이 다가왔다.
무대에서 우리 악동들은 하나가 되었다. 징과 북이 미친 듯 울어댔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사람들은 계속 앙코르를 외쳤다.
어머니 대표와 담임이 무대 위로 나왔다. 담임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님 어머님들, 우리 귀여운 악동들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해냈습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이번엔 어머니가 마이크를 받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었다.
“선생님, 우리 말썽꾸러기들을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훌륭한 연주를 하도록 북채를 31개나 손수 만들어준 어머니를 소개하겠습니다.”
떠나갈 듯 박수소리가 들렸다.
무대 옆에서 엄마의 휠체어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 가슴이 쿵쿵 덜컹거렸다.
“그분은 악동 여러분들의 대선배이며 제 배꼽친구 채유빈 엄마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환호했다.
해룡이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소리쳤다.
“유빈아, 너희 엄마하고 우리 엄마다!”
“와, 그랬었구나!”
엄마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 악동들이 북채를 높이 두드리며 우우 소리쳤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옹이들이 무대 위로 나와 덩더쿵 탈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내 가슴속에서 악동들의 가슴속에서.
첫댓글 짧은 단편에 이중 플롯을 깔아 전개하여 이야기의 입체감을 높였다.
1)따돌림 당하는 주인공과 떠도는 개/ 따돌림하는 악동들, 개장사
2)땅과 집을 지키려는 할머니/ 싼값에 땅을 매입하려는 땅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