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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공락 스크랩 격외선格外禪, 의리선義理禪, 여래선如來禪, 조사선祖師禪
山白 추천 0 조회 69 13.08.29 18: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격외선<格外禪>

 

격외구(格外句), 격외소식(格外消息), 격외선(格外禪) 등 격외는 선승들의 법문 속에서 많이 듣는 말이다.

격외와 격내(格內)는 현격하지만 그 간극 역시 얼마 되지는 않는다.


격외선이란

어떤 규격(規格)이나 격식(格式), 또는 정해진 틀(格) 밖(外)에 있는 선이라는 뜻이다.


세간적 척도를 초월한 선, 혹은

세속적인 척도로부터 초월해 있는 경지를 가리킨다. 즉

말이나 문자로는 표현하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언어가 닿지 못하는 선의 경지, 상식이나 논리로는 접근 불가능한 경지를 격외선이라고 한다.


격외선이라고 할 때는 주로

털끝만치도 사량분별을 용납하지 않는 조사선이나 임제선을 뜻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고,

언어문자나 지식, 지해(知解, 지식적인 잔꾀)의 손끝이 닿지 못하는, 말하자면 사량분별의 저편에 있는 선을 말한다. 선의 경지 가운데서도 최고봉을 가리키는데, 격외선은 중국의 5가7종처럼 문파나 문하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가장 고준한 방외(方外)의 선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의 선승 청허 휴정선사는

<선가구감> 제불설궁 조사설현(諸佛說弓 祖師說絃) 대목의 주(注)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뭡니까?’ 여기에 대하여 조주 선사가

뜰 앞의 잣나무니라’ 고 대답했는데, 이런 것을 이른바 격외선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다.

(僧問趙州. 如何是祖師西來意. 州答云. 庭前柏樹子, 此所謂, 格外禪旨也).”


즉 청허 선사는 사량분별심이 접근할 수 없는, 이를테면 정전백수자 같은

‘틀 밖(格外)의 대답’이 격외선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매우 정확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또 ‘청허집’ 에서 그는 좀 더 사족(蛇足)을 단다.


“향상일로는 삼천석불도 언설이 미치지 못한다. 이것을 격외선이라고 한다. 만약 마음이 허공과 같은 자는 조금 합일한다(向上路, 三千石佛, 說不及者, 格外禪. 若心如虛空者, 於道, 有少分相應)”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마음이 허공과 같아야 한다’ 는 것은 유심으로도 무심으로도 뚫을 수 없다는 뜻이다.

(有心無心 俱透不得).


그렇다면 무슨 마음이라야만 가능할까?

심공급제(心空及第), 즉 마음이 공(空)에 급제(합격)한 마음만이 가능할 것이다.


격외선이란 이치적인 접근이 가능한 의리선(義理禪)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통상적인 논리와 지식, 견해 등을 초월한 선의 경지를 말한다.

일반적인 사고나 이치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경지, 그것이 격외선이다.


같은 말로는

격외구(格外句, 정해진 틀 밖의 말, 즉 개안(開眼)하게 하는 말),

격외담(格外談, 같음),

격외현지(格外玄旨, 사려 분별을 초월하는 묘지(妙旨),

격외현기(格外玄機, 사려분별을 뛰어넘은 기용(機用) 등이 있다.


격외

겁외(劫外, 영겁 밖), 겁외소식(劫外消息, 영겁 밖의 소식, 경지, 세계) 과도 같은 말이다.

보편적인 사고(思考)로는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경지인데, 그런 경지를

‘영겁 밖의 봄소식’ 이라는 뜻에서 ‘겁외춘(劫外春)’ 이라 하고, 그런 경지를 읊은

선시(禪詩)를 ‘겁외가(歌)’ 라고 한다.


꽃피는 봄인데 해마다 맞이하는 상례적인 봄이 아니다.

그 봄은 우주 영겁 밖의 봄이다.

불가사의한 봄이다.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소식),

고목생화(枯木生花, 마른 고목에서 꽃이 피다),

몰현금(沒弦琴, 줄이 없는 거문고) 등도

같은 의미이다.

 

모두 다 보통 사람의 사유를 뛰어넘는 언어도단의 경지, 격외선의 경지를 뜻하는 말이다.

 

 

 

 

 

 

 

의리선<義理禪>

 

‘의리선(義理禪)’ 이란

공안이나 화두, 선(禪)을 실참을 통하여 온몸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니고,

이성적 사유에 의한 사량 분별심, 혹은 지식적으로 접근하여 깨달아보고자 하는 것을 가리킨다.

학문적, 언어 문자적으로 알려고 하는 것, 이치적, 논리적으로 탐구(참구)하려고 하는 것, 또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해석, 설명, 풀이하는 것 역시 의리선에 속한다.


의리선(義理禪)이라는 말은

의로(義/意路)이로(理路) 두 단어가 합해진 말이다.

의로(義/意路)는 ‘뜻풀이 방법’,

이로(理路)는 ‘뜻풀이 방법’ 혹은 ‘이치적인 방법’ 이라는 뜻인데,

모두 동의어로, 선을 사량 분별심과 언어 문자로 탐구하고자 하는 것, 깨닫고자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선에서는 ‘의로부도(意路不到)’ 라고 하여 의리선을 강하게 비판한다.

공안이나 화두, 선의 세계는 언어문자로는 원래 불가능하며(言語道斷),

깨달음의 세계는 말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 편에 있다는 것이다(言詮不及).

간화선의 거장 대혜선사(大慧禪師, 1089~1163)는 왕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로와 이로가 끊어져야만 비로소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만약 곧바로 쉬기를 원한다면 이전까지 공부가 좀 되었던 곳을 일체 놔두고 오리어 모색할 수도 재미도 없던 곳(어려워서 엄두도 못 냈던 곳)에서 다시 한번 생각을 붙여 보십시오. 만일 생각을 붙일 수도 없고, 모색할 수 없다면 그곳이 더욱더 중요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치의 길(理路)과 뜻의 길(義路)에 심의식(心意識)이 모두 통하지 않는 것이 마치 토목와석(土木瓦石, 무정물, 무심의 경지)과 같게 될 때, 그 때가 (대오에 가까운 것이니) 공(空)에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서장> 答王敎授)”


‘이치의 길(理路)과 뜻의 길(義/意路)에 심의식(心意識)이 모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안이나 화두는 아무리 이치적 또는 생각이나 뜻으로 알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토목와석(土木瓦石, 무정물)처럼 될 때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심의식 즉 사량 분별심이 완전히 정지되어 마치 무정물처럼 될 때,

그 때가 비로소 깨닫게 되는 때이므로,

혹시라도 공망(空亡), 공무(空無) 또는 ‘이게 헛고생만 하고 꽝’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대혜보설(大慧普說)’15권에서는 “남양혜충국사(?∼775)와 대주화상(大珠和尙)의 설법에 대하여,

제방에서는 모두 ‘진흙에 빠지고 물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것은 경절(徑截, 곧바로 깨닫는 것)의 가르침이 아닌 의리선을 말하고 있다’ 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화상께서는 그 진위를 명확히 판결하셔서 대중들의 의혹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자, 대혜는 “두 분의 설법은 매우 자상한 데, 그것은 납자들을 이끌고자 하는 노파심 때문이지 의리선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대혜는 또 무자화두 참구법(즉 無字話頭十種病)에서도

의리선에 대하여 매우 경계하고 있는데,

‘화두를 생각으로 헤아려서 알려고 하지 말라(不得向意根下思量卜度)’,

‘언어적으로 해석하려고 하지 말라(不得向語路上作活計)’,

‘경전 등 문자를 끌어다가 고증하려고 하지 말라(不得向文字中引證)’

라고 말하고 있다.

 

의리선의 문제점은

공안이나 화두를 정면으로 타파하려고 하기 보다는 지식과, 지능, 언어 문자적으로 분석하여 터득해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리선도 학문적인 공부를 좀 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여래선, 문자선도 의리선의 일종이다.

 

 

 

 

 

 

 

여래선<如來禪>

 

‘여래선(如來禪)’ 이란 ‘여래의 말씀’ 즉

‘부처님께서 설한 경전에 의거, 수행하여 깨닫는 선’ 이라는 뜻이다. 또는

여래가 깨달은 경지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다른 말로는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

‘최상승선(最上乘禪, 최고의 선)’

이라고 한다.


규봉 종밀(780-841)은

‘도서(都序)’ 에서 당시까지의 모든 수행법을 분류하면서,

여래선을 최상승선이라고 하여 가장 위대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는

학술적인 명칭일 뿐 문파(門派)적인 명칭은 아니다.


여래선은

자신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가 없으며,

중생은 누구나 최고의 지혜인 무루지성(無漏智性)을 갖추고 있고, 또 이

마음이 본래 부처(진리)와 다름없다는 이치를 믿고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경지와 관점, 목표, 지향하는 바는 조사선, 간화선과 같다.


그러나

조사선과 그 후대에 성립한 간화선에서는

여래선을 일컬어 여래의 말씀 즉 경전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여

조사선보다 낮은 단계에 있는 선으로 폄칭했다. 또

여래선은 경전 탐구 즉 언어문자를 벗어나지 못했으며(불립문자), 학문적, 이치적으로 안 것에 불과하다고 하여 ‘의리선(義理禪)’ 이라고 폄칭했다.

실참(實) 없이 지식적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대적으로는

육조 혜능 이전까지를 여래선,

그 이후를 조사선이라고 한다.


여래선, 조사선에 대한 구분은 육조 혜능 때까지는 없었다.

혜능 계통의 마조 도일의 문하에서

종래의 선(禪) 특히

북종선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조사선을 내세우면서 시작한 것이다. 한편 이것은

혜능의 남종선에서 자파(自派, 조사선)가 월등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처음으로 종래의 선을

여래선, 의리선이라고 격하하고

자파(自派)의 선(禪)인 조사선을 우월한 위치에 놓고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은

위앙종을 개척한 앙산 혜적(仰山慧寂, 803∼887)이다.

 

그는 항상 열심히 교학(경전)을 탐구하고 있는 사제(師弟, 아우) 향엄 지한(香嚴智閑, ?~898)이 꼴사나웠는지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전등록> 11권 「앙산」장(章)에 나온다.


“향엄, 근래 그대의 깨달은 바가 어떠한가.”

향엄이 말했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네. 금년의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네. 지난해에는 송곳을 꽂을 땅이 없었는데 금년에는 송곳마저 없구나.”


이 말은

번뇌 망상 등 분별심이 완전히 사라져서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향엄의 대답에 앙산은

“사제(아우)는 다만 여래선을 얻었을 뿐, 아직 조사선은 얻지를 못했네

(師弟, 只得如來禪, 未得祖師禪).” 라고 했는데, 이것이

조사선과 여래선을 비교, 구분한 최초의 근거이다.


여래선이란

달마의 문하에 전해오는 선을 가리킨다. 그러나

중당(中唐) 이후 선종에서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 이라고 하여 언어문자보다는 방할(棒喝)로, 또

여래의 말씀(경전)보다는 조사의 말씀(조사어록)으로 납자들을 제접(提接, 이끌어 줌), 지도하게 되면서

경전에 의존하던 과거의 선은 여래선, 지금의 선은 조사선이라고 한 것이다.


한마디로

여래 즉 부처님 보다는 조사(祖師)를 더 중시한 것인데, 이는

당말까지 선종 사원에서 대웅전을 두지 않고 부처님도 모시지 않은 것과도 상통한다. 즉 그들은

부처님보다는 조사를 더 높이 받들었고, 경전보다는 조사의 말씀 즉 어록을 더 중시하여 수행했다.


여래선에 대하여

<능가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무엇을 여래선이라고 하는가?

부처님과 같은 경지(佛地)에 들어가서 스스로 성스러운 지혜를 깨달아서 삼종락(三種樂: 천상락, 선락(禪樂), 열반락)에 머물러 모든 중생을 위해 불가사의(不思議)한 많은 일을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여래선이라고 한다.”

 

 

 

 

 

 

 

조사선<祖師禪>

 

조사선이란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의 상대적인 말로,

붓다가 설한 경전이나 언어문자에 의존하지 아니하고(不立文字)

곧바로 그 마음을 직시(直指人心)하여 깨닫게 하는 선법이다.


선문답에서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이냐(如何是 祖師西來意)’ 고 묻는 상투적인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사선은 보리달마와 그가 전한 선을 가리킨다. 시대적으로는

육조혜능(639~713)에서 대혜종고(1089∼1163) 이전 까지, 즉

간화선이 성립하는 1100년대 이전까지가 조사선 시대로,

북종선 외의 중국 5가7종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조사선을 확립시킨 사람은

혜능의 손제자인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이다. 그는

“네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是佛)” 라고 하여 도(道)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님을 직시하게 했으며, 또

“평상심이 곧 진리(平常心是道)” 라고 하여, 선은 항상 일상 속에서 구현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마조도일에 이어

백장회해(720~814) - 황벽희운(?~850) - 임제의현(?~867), 그리고

조주와 위산영우 등 기라성 같은 선승들이 연달아 출현하면서 조사선은 크게 확장, 발전했는데,

이 시대가 이른바 조사선의 황금기, 전성기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임제할’ 로 납자들을 제접, 지도하던 임제의현 시대가 조사선의 절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사선의 사상과 정신을 대표하는 말이

‘이심전심’,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다.

 

선(禪)의 이치는 오로지

조사와 조사 사이에서만 전해질 수 있는(祖祖相傳) 격외의 도리로 그 방법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이며,

경전이나 언어문자 외에 별도로 전하는 것으로 곧바로 그 마음을 직시하게 하여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조사선에서는

여래 즉 부처님 보다는 조사(祖師)를 더 높이 존숭한다.

여래의 말씀보다는 조사의 말씀을 더 중시했고,

경전보다는 조사어록에 의거하여 수행했는데,

이는 당말 북송 초까지 선종사원(총림)에서 대웅전을 두지 않았으며, 불상을 모시지 않은 것과도 상통한다.

한마디로 선종의 조사는 현신불(現身佛)로 그의 말씀은 곧 불언(佛言)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으며, 수행과 깨달음의 지남(指南)이었다.


조사선이니 여래선이니 하는 말은

‘조사선의 완성자’라고 일컬어지는 마조도일 때까지는 없었다.

마조 - 백장 - 위산,

위산의 제자 앙산혜적(807∼883. 위앙종)이 만든 말로, 경전탐구에 치중해 있는

향엄지엄을 가리켜

“여래선은 알았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 조사선을 깨닫지 못했다” 고 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남종선 즉

조사선의 선승들은 항상 조사선을 우위에 두고 종래의 선과 북종선을 평가했는데, 종래의 선은

여래선, 의리선(義理禪)으로 경전과 교리에 의존하고 있으며, 언어문자(義理, 義解)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이라고 폄하했다. 이후

의리선이라는 말은 문자 선승들을 비판, 폄하하는 말로 정착 되었는데 사실

조사선과 여래선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조사선과

간화선은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몇 가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당대(唐代) 조사선에서는 좌선을 중시하지 않았다. 좌선의 다소(多少)는 개인의 능력과 시간 여하에 맡겼고, 청규에서는 일체 규정하지 않았다. 하루 4번 6∼7시간 이상씩 좌선하기 시작한 것은 남송 시대 간화선 이후이다.

 

대신 방장의 법문과 독참(개인지도 및 점검), 청익(請益, 보충 질문)은 규정화했는데, 이로 본다면

조사선 시대에는 좌선보다는 설법과 법문을 통하여 지혜를 구비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지혜가 곧 부처였기 때문이다. 또

조사선은 대화, 선문답을 통하여 깨달았다.

 

 

 

법보신문, 윤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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