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쿠스타 ob/yb 대회 후기]
한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가려 그늘을 만들어준 등나무, 주인을 알 수 없는 버려진 옷가지와 신발에서 쉰 냄새가 났던 낡은 탈의실, 그 탈의실에서 모기에 물린 자국이 벌겋게 부어오른 동기의 종아리, 비에 젖어 굳어버린 백회가루 포대, 플라스틱 시장바구니에 담겨진 낡은 연습구, 예고도 없이 기적을 울리며 코트장 옆을 지나가던 기차, 공대2호관 건물에 부딪쳐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공 치는 소리, 낙엽 떨어진 가을에는 코트장까지 들려오던 풍물패 동아리 징소리, 얼굴에 군데군데 검붉은 버짐이 핀 동원아줌마의 오징어 튀김을 만들던 날렵한 손놀림, 휴가나온 선배와 호기롭게 재떨이에 막걸리를 마시고 라켓가방을 메고 하숙집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갔던 1984년의 기억들.....
그로부터 40년....
애써 외면해온 지나간 추억들은 밤길에서 우연히 만난 다정한 친구처럼 뜻밖의 작은 위로를 건네고는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홍수처럼 밀려드는 새로운 지식과 뉴스 잡다한 가십거리, 그리고 현재 계약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낡은 앨범속에 박제되어 갇혀있는 빛바랜 이야기들로만 생경하게 다가 올 뿐이다.
8기 멤버가 1984년에 쿠스타에 첫발을 들여놓았으니 올해 2024년이 쿠스타 입회한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써-클 생활을 한창하던 80년대 중반 그때에는 40년이 지난 까마득한 미래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그때 ‘쿠스타’라는 존재가 존속이 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이나 했을까? 작년 팔동회’(8기 동기들의 친목 모임)총회에서 쿠스타 입회 40주년을 기념하여 올해 ob/yb대회 즈음 ‘자축연’을 하고 ob/yb 대회 한번 참석을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어느 조직이든 개개인의 구성원의 생각이라는 것이 어떤 대상에 대한 각자의 온도차는 천차만별이고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행위는 폭넓은 똘레랑스 정신을 발휘해서 각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되는 것이고 각 개인은 여러 가지 선택중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 졸업후 30년 동안 동기 모임인 ‘팔동회’가 유지되어온 것은 아마도 ‘함께하되 각각의 다름을 존중하자’는 무언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ob/yb 대회가 열린 당일 7~8명 동기가 지산유원지 모 식당에서 조촐하게 ‘자축연’ 점심을 함께하고 코트로 향했다. 학교 코트를 찾은 것은 2018년 이후 딱 6년 만의 방문이다. 항상 그렇듯이 ob선배들이 온다고 행사준비를 하는 재학생 후배들을 볼 때 마다 미안하고 안쓰런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재학생 20여명 정도가 밝은 표정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동아리가 코로나 위기 이후에서 이렇게 건재함에 감사한 마음과 가슴벅참(?)의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햇볕을 가리는 천막도 5~6개 정도 준비되어 있고 우승트로피 상장, 아이스박스에 얼음이 띄워진 시원한 맥주, 음료, 시합구 등 행사를 준비하는데 후배들의 수고가 더없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쿠스타’란 존재가 도대체 이들에게 무엇이길래 한번도 본적이 없는 ob 선배들이 온다고 이런 수고를 마다 하지 않을까? 선배로서 나는 이들에게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할까? 예전부터 참석할 때 마다 느끼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발현되는데 마땅히 해줄게 없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오래전부터 해온 나의 이러한 고민은 지극히 단순하고 결과로 귀결된다.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 쿠스타가 테니스를 하는 모임이지만 테니스라는 기술보다 사람과 관계를 통해서 결국 사람을 얻어가게 하는 것이 동아리 활동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쿠스타에서 ‘좋은사람’을 만나고 그 관계를 통해서 일생을 두고 함께할 소중한 사람을 얻는다면 그것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나 하는 지극히 일반론적인 생각이 들면서 한편 내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오랜만에 후배와 한조를 이뤄 몇게임을 했지만 오랫동안 라켓을 놨던 터라 그저 공 넘기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사진행 도중에 ob회장에게 우리와 같은 테니스 써-클인 ‘OO테니스회’ 근황에 대해서 물어봤다.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2019년이후 2~3년간 두 써클이 위기가 닥쳐왔는데 ‘쿠스타’는 그 위기를 슬기롭게 잘 넘겼으나 ‘OO테니스’회는 최근까지 그 여파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자 저마다의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어느 집단에 적용하는 것이 약간의 억지스러움? ‘견강부회’와 같은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집단에 비유를 전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잘 유지가 되는 집단이나 단체는 그 구성원들의 참여와 열망이 집약된 결과이고 그렇지 못한 집단이나 단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소멸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코로나 19와 같은 엄혹한 상황에서도 ‘쿠스타’의 연결고리를 이어가게 하려고 현 장사현 ob회장이 재학생과 꾸준히 관계를 끊이지 않게 가져온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이 되어 정말 그동안 수고에 감사한 생각이 든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은 매년 ob 선,후배님들이 수년동안 소액의 연회비 1~2만원 후원했던 것들이 모아져서 재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ob와 yb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었기에 그 위기를 넘기고 여전히 건재한 동아리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ob/yb대회 행사당일 재학생 후배들 테니스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과장을 하자면 옛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천하를 주름잡았던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이 활거 하던 모습을 보는 듯이 한마디로 다들 실력들이 정말 수준급이었다. 고교 선수출신 후배 3~4명. 인접대학 테니스 동아리 회장하고 편입한 후배, 일본국적의 후배 등등..^^ 섣부른 기대일 수 있으나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불고 있는 테니스 열풍과 맞물려 향후 10년동안 ‘쿠스타’의 미래는 걱정을 안해도 될 것 같았다.
이번 ob/yb대회 행사 뒷풀이 장소에서 40년 선배가 40년 아래 기수에게 뱃지를 달아주는 모습이 보면서 40년 과거로 돌아가 84년 하계수련회때 상주해수욕장 근처 어느 이름 모를 초등학교에서 나에게 뱃지를 달아주었던 선배분과 그때의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착각을 잠깐 동안 해봤다. 아직도 행사가 끝날때마다 후배들과 함께 박수치며 외치는 ‘쿠스타 응원박수’ ‘쿠스타 통과박수’를 내년에도 가능한 참석해서 같이 외쳐보고 싶은 하루였다.
행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해준 재학생 임원단과 장사현 ob회장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