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꽃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수록시집 ;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겨울밤에 시쓰기
연탄불 갈아 보았는가 겨울 밤 세 시나 네 시 무렵에 일어나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안 일어날 수도 없을 때 때를 놓쳤다가는 라면 하나도 끓여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육십촉 백열전구를 켜고 눈 부비며 드르륵, 부엌으로 난 미닫이문을 열어 보았는가 처마 밑으로 흰 눈이 계층상승욕구처럼 쌓이던 밤
나는 그 밤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 존재의 밑바닥을 안다, 이렇게 썼다가는 지우고 연탄집게 한번 잡아 보지 않고 삶을 안다고 하지 마라, 이렇게 썼다가는 다시 지우고 볼펜을 놓고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은 폭설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금방 멈춰 선 증기기관차 같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를 생각하는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 공단 마을 다닥다닥 붙은 어느 자취방 들창문에 문득 불이 켜진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 자기 자신을 힘겹게도 끙, 일으켜 세워 연탄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리수출자유지역 귀금속공장에 나가는 그는 근로기준법 한줄 읽지 않은 어린 노동자 밤새 철야작업 하고 왔거나 술 한 잔 하고는 좆도 씨발, 비틀거리며 와서 빨간 눈으로 연탄 불구멍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 타버린 연탄재 같은 몇 장의 삭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연탄냄새에게 자기 자신이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될수록 오래 숨을 참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것은 연탄을 갈아본 사람만이 아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도 같은 것 불현듯 나는 서러워진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발 때문이 아니라 시 몇 줄에 아둥바둥 매달려 지내온 날들이 무엇이었나 싶어서 나는 그 동안 세상 바깥에서 세상 속을 몰래 훔쳐보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볼펜을 잡아야겠다 낮은 곳으로 자꾸 제 몸을 들이미는 눈발이 오늘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나는 써야겠다,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지금 내가 쓰는 시가 밥이 되고 국물이 되도록 끝없이 쓰다 보면 겨울 밤 세 시나 네 시쯤 내 방의 꺼지지 않은 불빛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릴 것이다 살아야겠다고, 흰 종이 위에다 꼭꼭 눌러 이 세상을 사랑해야겠다고 쓰고 또 쓸 것이다
국방색 바지에 대하여
저 벽에 걸린 바지는 국방색이다 단단한 청춘의 허벅지가 쑥 빠져나갔다 나는 후줄그레한 저 바지를 볼 때마다 우리들의 조국의 뒷골목을 돌아가야 빠꼼하게 간판불을 달고 있는 여인숙을 생각한다 그리운 냄새가 킁킁, 날 것도 같다 휴전선 이남에서 국방색 바지 입고 좆뱅이친 사내들 중에 50년대 이후 거기 누워 옆방에서 힘쓰는 소리, 욕지거리 한번 들어보지 않은 놈 있으면 나와 봐라, 국방색 바지가 걸려 있는 모든 방은 그래서 붉은 유곽이며 우리는 유곽이 키운 자식들이다 빳빳하게 다린 바지 훌러덩 벗고 그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누구도 어른이 될 수 없는 나라에서 그 바지 속에다 팽팽한 두 다리를 밀어 넣고 헌 자전거 타고 연대본부에 출근하던 나는 방위병이었다, 그때 군용트럭 위에서 여자만 보면 주먹감자를 먹이던 현역들의 성욕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국방색 바지 속에 숨어 있는 욕망의 종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짬밥을 퍼먹을 때 나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마다 어이 물방위, 하고 불러서는 차렷, 열중쉬어 시키던 한참이나 어린 상병의 낯짝에 침 한번 뱉지 못했던 것도 계급 때문이 아니라 내가 국방색 바지를 그보다 먼저 벗게 되기 때문이었다 생전에 우리 아버지는 군에 가면 밥도 주고 옷도 주고 그래야 사람이 된다, 하셨지만 나는 내 아들에게는 다시는 입히지 않을 녹슨 못대가리에 달랑 매달려 있는 치욕의 빈 껍데기 같은 저 국방색 바지
군산 앞바다
올 때마다 가라앉는 것 같다 군산 앞바다, 시커먼 물이 돌이킬 수 없도록 금강 하구 쪽에서 오면 꾸역꾸역, 수면에 배를 깔고 수만 마리 죽은 갈매기떼도 온다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다 그것을 아둥바둥, 지우려고 하지 않는 바다는 늘 자기반성하는 것 같다 이 엉망진창 속에 닻을 내리고 물결에 몸을 뜯어먹히는 게 즐거운 낡은 선박 몇 척, 입술이 부르튼 깃발을 달고 오래 시달린 자들이 지니는 견결한 슬픔을 놓지 못하여 기어이 놓지 못하여 검은 멍이 드는 서해
그리운 이리중학교
교문 앞 문방구에 1학년들 아침 새떼로 왁자그르르 내려 앉는 소리 뛰어가다가 인사하고 다시 내달리는 발자국소리 자전거 페달 밟는 소리 바퀴살이 바람을 감는 소리 복도에서 뒤엉키는 소리 찬란한 난장판 만드는 소리 교장 선생님 지시사항 줄줄이 지시하는 소리 접혀진 출석부같이 돌아서서 선생님들 불평하는 소리 숙직실 앞 산당화 화들짝 꽃잎 여는 소리 서무실 아가씨 타자 치는 소리 동전 거슬러주는 소리 수업시간을 절반으로 뚝 자르며 달리는 기차 소리 호통치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 책 읽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찰흙처럼 말랑한 종아리에 차륵차륵 매 맞는 소리 아이들 쑥쑥 키가 크는 소리 체육 선생님 목에 달린 호루라기 소리 담배 피우다 교무실에 잡혀와 귀싸대기 맞는 소리 몰래 담 넘어가다 붙들려와 손바닥 싹싹 비는 소리 좁은 직원변소에 쭈그려 앉아 힘쓰는 소리 한참 있다가 선생 똥 떨어지는 소리 흐린 날 분필 뚝뚝 부러지는 소리 하늘 속으로 축구공 차올리는 소리 운동부 학생들 칠면조같이 악쓰는 소리 유리창에 매달린 붉은 저녁놀이 보채는 소리 심야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 짜장면 후룩후룩 먹는 소리 형광등에 모기며 나방들이 날아와 붙는 소리 퇴근하고 전교조 사무실로 향하는 선생님들 발소리 적막 속으로 먼동 트는 소리
기관차를 위하여
기관차야, 스스로 너는 힘을 내 달린다고 생각하겠지 하찮은 일에서부터 세상을 움직이는 큰 일까지 혼자 힘으로 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모르고 기관사가 타고 서울역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어디든 닿을 수 있다고 너는 생각하겠지 그래서 떠나기도 전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구나 가령 객차에 한 사람의 손님도 타지 않았다면 화물칸에라면 상자 하나 싣지 않았다면 비록 떠난다고 해도 너는 우스운 쇳덩어리일 뿐 그 누구에게도 추억이 될 수 없을 거야
이 세상 끝에서 끝까지 얼마나 많은 철길들이 서로 어깨 끼고 있는 줄도 모르고 부산이나 목포까지 갔다 왔다고 기적을 울리며 플랫포옴으로 들어오는 기관차야, 자만심을 버려야 해 국경을 건너고 거친 대륙을 횡단하기 전에는 한반도는 슬픈 작은 섬일 뿐이야 내 어린 시절, 기차를 몇 번 타봤는지 얼마만큼 먼 곳까지 타고 갔다 돌아왔는지 내기 할 때마다 시골뜨기 나는 미리 주눅이 들곤 했었는데 나중에 커서야 알았지 세상을 많이 아는 것도 어렵지만 세상하고 더불어 사는 건 더욱 벅차다는 것을 이제 슬쩍 너에게만 말해 줄 게 있는데 기관차야, 요즈음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삶은 계란을 잘 사 먹지 않는 까닭을 말이야 그것은 삶으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란다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간이역의 이름처럼 앞으로 남은 많은 날들이 너를 녹슬게 하겠지만 기관차야, 철길 위에 버티고 서 있지 말고 새 길을 만들어 달릴 때 너는 기관차인 것이다 끝이다, 더는 못 간다 싶을 때 힘을 내 달릴 수 있어야 모두를 너를 힘센 기관차로 부를 것이다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은, 후광과 거산의 싸움에서 내가 지지했던 후광의 패배가 아니라 입시비리며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이 아니라 대형 참사의 근본 원인 규명이 아니라 전교조 탈퇴확인란에 내 손으로 찍은 도장 빛깔이 아니라 미국이나 통일문제가 아니라 일간신문과 뉴스데스크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들 나를 열받게 하는 것들은, 이를테면, 유경이가 색종이를 너무 헤프게 쓸 때, 옛날에는 종이가 얼마나 귀했던 줄 넌 모르지? 이 한마디에 그만 샐쭉해져서 방문을 꽉 걸어 잠그고는 홀짝거리는데 그때 그만 기가 차서 나는 열을 받고 민석이란 놈이 후레쉬맨 비디오에 홀딱 빠져 있을 때, 이제 그만 자자 내일 유치원 가야지 달래도 보고 으름장도 놓아 보지만 아 글쎄, 이놈이 두 눈만 껌뻑이며 미동도 하지 않을 때 나는 아비로서 말못하게 열받는 것이다 밥 먹을 때, 아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시장을 못갔다고 아침에 먹었던 국이 저녁상에 다시 올라왔을 때도 열받지만 어떤 날은 반찬 가짓수는 많은데 젓가락 댈 곳이 별로 없을 때도 열받는다 어른이 아이들이 안하는 반찬 투정 하느냐고 아내가 나무랄 대도 열받고 그게 또 나의 경제력과 아내의 생활력과 어쩌고 저쩌고 생활비 문제로 옮겨오면 나는 아침부터 열받는다 나는 내가 무지무지하게 열받는 것을 겨우 이만큼 열거법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나 자신한테 또 열받는다 죽 한 그릇 얻어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열거는 궁핍의 증거이므로 헌데 열받을 일이 있어도 요즘 사람들은 잘 열받지 않는다 열받아도 열받은 표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요즘은 그것이 또한 나를 무진장 열받게 하는 것이다
나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나무가 버티는 것은 귀빰을 폭풍한테 얻어 맞으면서 이리저리 머리채를 잡힌 채 전전긍긍하면서도 기어이 버티는 것은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는 것을 이제 막 꼼지락꼼지락 잎을 내밀기 시작하는 어린 나무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훗날 이 세상을 나무의 퍼덕거림으로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버티는 게 나무의 교육관이다 낮은 곳을 내려다 볼 줄아는 것 가는 데까지 가보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온 몸으로 가르쳐 주며 나무는 버틴다
나무라고 왜 가지가지 신경통을 모르겠으며 잎사귀마다 서러움으로 울컥일 때가 왜 없었겠는가 죽어버릴 테야 하루에도 몇번씩 고개 휘저어 보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트럭을 탄 벌목꾼들이 당도하기 전에 그냥 푹,고꾸라져도 좋을 것을 죽은 듯이 쓰러져 이미 몸 한쪽이 썩어가고 있다는 듯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무라는 듯이 코를 쳐박고 엎드려 있어도 될 것을 나무는 한사코 서서 나무는 버틴다 체제에 맞서 제일 잘 버티는 놈이 제일 먼저 눈 밖에 나는 것 그리하여 나무는 결국은 전 생애를 톱날의 아구같은 이빨에 맡기고 마는데
여기서 나무의 생은 끝장났다네, 저도 별수 없지 하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끌려가면서도 나무는 버틴다 버텼기 때문에 나무는 저를 싣고 가는 트럭보다 길다 제재소에서 토막토막으로 잘리면서 나무는 텡구르르르 나 뒹굴며 이제 신의주까지 기차를 나르는 버팀목이 될거야, 한다 나무는 버틴다
나의 경제
구두를 신으면서 아내한테 차비 좀, 하면 만원을 준다 전주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 시내버스가 210원 곱하기 4에다 더하기 직행버스비 870원 곱하기 2에다 더하기 점심 짜장면 한 그릇값 1,800원 하면 좀 남는다 나는 남는 돈으로 무얼 할까 생각하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나의 경제야, 아주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또 어떤 날은 차비 좀, 하면 오만 원도 준다 일주일 동안 써야 된다고 아내는 콩콩거리며 일찍 들어와요 하지만 나는 병천이형한테 그동안 술 얻어먹은 것 염치도 없고 하니 그런 날 저녁에는 소주에다 감자탕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또 며칠 후에 구두를 신으면서 아내한테 차비 좀, 하면 월말이라 세금 내고 뭐 내고 해서 천 원짜리 몇 뿐이라는데 사천 원을 받아들고 바지주머니 속에 짤랑거리는 동전이 얼마나 되나 손을 슬쩍 넣어 본다 동전테가 까끌까끌한 게 많아야 하는데 손톱 끝이 미끌미끌하다 나는 갑자기 쓸쓸해져서 오늘 점심은 라면으로나 한 끼 때울까 생각한다 또 그 다음 날도 구두를 신으면서 아내한테 차비 좀, 하면 대뜸 한다는 말이 뭐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다고 유경이 피아노학원비도 오늘까지 내야 한다고 아내는 운다, 나는 슬퍼진다 나는 도대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제도 그랬다 길 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새끼들 데리고 요즘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근심스럽다는 듯이 나의 경제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이 물었을 때 나는 그랬다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 잘 먹고 잘 산다고 그게 지금은 후회된다 좀더 고통의 포즈를 취할 것을 이놈의 세상 팍 갈아엎어 버려야지, 하며 주먹이라고 좀 쥐어볼 것을 아니면, 나는 한 달에 전교조에서 나오는 생계보조비를 31만원이나 받는다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이 봉급에서 쪼개 주신 거다 그래 자기 봉급에서 다달이 만원을 쪼개 남에게 준다는 것 그것 받을 때마다 받는 사람 가슴이 더 쓰린 것 이것이 우리들의 이데올로기다 우리들의 사상이다 이렇게 자랑이라도 좀 떠벌이면서 그래서 입으로만 걱정하는 친구놈 뒤통수나 좀 긁어줄 것을 나의 경제야, 나는 내가 자꾸 무서워지는구나 사내가 주머니에 돈 떨어지면 좁쌀처럼 자잘해진다고 어떻게든 돈 벌 궁리나 좀 해 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지만 그까짓 돈 몇 푼 때문에 친구한테도 증오를 들이대려는 나 자신이 사실은 더 걱정이구나 이러다가는 정말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한 마리 딱정벌레나 되지 않을지 나는 요즘 그게 제일 걱정이구나
낡은 자전거
너무 오랫동안 타고 다녀서 핸들이며 몸체며 페달이 온통 녹슨 내 자전거 혼자 힘으로는 땅에 버티고 설 수가 없어 담벽에 기대어 서 있구나 얼마나 많은 길을 바퀴에 감고 다녔느냐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많이 알수록 삶은 여위어가는 것인가, 나는 생각한다
자전거야 자전거야 왼쪽과 오른쪽으로 세상을 나누며 명쾌하게 달리던 시절을 원망만 해서 쓰겠느냐 왼쪽과 오른쪽 균형을 잘 잡았기에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이만큼이라도, 왔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땅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 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마늘밭 가에서
비가 뚝 그치자 마늘밭에 햇볕이 내려옵니다 마늘순이 한 뼘씩 쑥쑥 자랍니다 나는 밭 가에 쪼그리고 앉아 땅 속 깊은 곳에서 마늘이 얼마나 통통하게 여물었는지 생각합니다 때가 오면 혀 끝을 알알하게 쏘고 말 삼겹살에도 쌈 싸서 먹고 장아찌도 될 마늘들이 세상을 꽉 껴안고 굵어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모악산을 오르며
산을 오른다 몇 해만인가 참으로 홀가분하게 집 나오면 생활의 궁핍도 곤곤한 나의 투쟁도 나의 것이 아닌 듯 여겨져 좀더 깊이 안으로 들어가면 혹시 신선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오리나무숲을 헤치고 개암나무잎을 만져도 보며 산을 오른다 내가 위로 올라갈수록 발갛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들이 하나 둘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이고 나는 그래서 나, 탄식이라도 내뱉고 싶지만 이 큰 산에 비해 내가 너무 작은 것 같아 아뭇 소리 않고 오른다 산은 위로 오를수록 더 깊어지는데 나는 저 아래 도시에서 한 뼘이라도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얼마나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기만 했던가 세상을 휘감고 흐르는 강물이 되지 못하고 하릴없이 바짓가랑이만 적셔 왔던가 산에 오르는 일을 한낱 사치로 여기던 내 어리석음과 잘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애타던 조바심을 솔방울로 힘껏 멀리 내던지고는 한 발 두 발 오르다가 보면 턱끝까지 숨이 차오를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나는 이 세상에 결국은 고생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저기까지만 더 가 보자,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언뜻 결론 지어 보면서 칡넝쿨을 만나면 칡넝쿨로 누워 얼크러지다가 시누대숲을 만나면 시누대로 서서 흔들리면서 산을 오른다 내려갈 길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나는 나를 잊고 오르리라 깊은 밤에 여우가 다가와 내게 꼬리를 툭 치고 지나갈 일을 잠시, 상상해 보기도 하리라
모항으로 가는 길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지밥 먹다가 석삼 년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 먼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저 잘난 세상쯤이야 수평선 위에 하늘 한 폭으로 걸어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오겠지 아니, 몸에다 마음을 비벼 넣어 섞는 그런 것을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 줘야 아나? 걱정하지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 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새길
한 발 두 발 내디디면 발 닿는 어느 곳이든 길이 되는 것을 친구야 처음에는 몰랐었지 잘난놈이든 못난년이든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만 하면 우리가 바로 새 길이 되고 파도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을 이제 비로소 알았구나 친구야 세상이 이렇게 어두운 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세상이 제 가슴 속에 숨겨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침내 우리는 알았다 산 첩첩 물 넘실 어려운 시절 헤쳐나갈 길 없다고 여겨질수록 친구야 가자 우리가 새 길이 되어 가자
서울사는 친구에게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드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구나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이리로 한 번 내려오게 기왕이면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찐계란 몇 개 소금 찍어 먹으면서 주간지라도 뒤적거리며 오게 금주의 운세에다 마음을 기대보는 것도 괜찮겠고, 광주까지 가는 이를 만나거든 망월동 가는 길을 물어봐도 좋겠지 밤 깊어 도착했으면 하네, 이리역 광장에서 맥주부터 한잔 하고 나는 자네가 취하도록 술을 사고 싶네 삶보다 앞서가는 논리도 같이 데리고 오게 꿈으로는 말고 현실로 와서 걸판지게 한 잔 먹세 어깨를 잠시 꽃게처럼 내리고, 순대국이 끓는 중앙시장 정순집으로 기어들 수도 있고, 레테라는 집도 좋지 밤 12시가 넘으면 포장마차 로진으로 가 꼼장어를 굽지 해직교사가 무슨 돈으로 술타령이냐 묻고 싶겠지만 없으면 외상이라도 하지, 외상술 마실 곳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날이 새면 우리 김제 만경 들녘 보러 가세 지평선이 이마를 치는 곳이라네, 자네는 알고 있겠지 들판이야말로 완성된 민주대연합이 아니던가 갑자기 자네는 부담스러워질지 모르겠네, 이름이야 까짓껏 개똥이면 어떻고 쇠똥이면 어떻겠는가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오기만 하게
아내의 꿈
끝까지 탈퇴각서를 쓰지 않는다면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교장의 협박전화를 받고는 아내는 토끼 새끼처럼 오돌오돌 떨었습니다 지아비가 밥줄 끊어지는 것을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느냐고 사내 마음은 여자가 어찌 하느냐에 달렸다고 시어머니의 뜨거운 질책에 아내는 소나기로 펑펑 울었습니다 학교 떠나 어디 가서 참교육 하느냐고 더 큰 전진을 위해 일보후퇴하고 다시 앞날을 기약해 보아야 한다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 안타까운 설득에 아내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해고된 뒤에는 남들 보기도 부끄럽다며 바깥 나들이 횟수가 줄고 툭하면 침울해지던 아내였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반찬거리가 떨어지면 짜증 먼저 부리던 아내였습니다 그 아내가 변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 장 한 장 유인물을 돌리고 가슴에 참교육 배지를 달고 다니고 길거리에서 지지 서명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집회에 참석하여 노래를 배워 부르고 그 가는 손목으로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약하기만 하던 한 여성이 그 아내가 무척 변했습니다 전보다 학교 환경이 부쩍 나아지고 평교사의 봉급이 대폭 오른다고 해도 가르치고 싶은 것을 뜻대로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라면 그런 학교로는 안 돌아가도 좋다고 피땀 흘려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닌 그저 주는 떡이라면 안 먹어도 괜찮다고 지금 비록 궁핍하지만 아내는 무척 넉넉해졌습니다 당신이 부여 안고 있는 깃발이 하늘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게 휘날릴 그날이 오면 당신을 쫓아낸 사람들의 허물도 그 깃발로 감싸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새 아내는 나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다시 분필을 드는 그날이 오면 죽어도 교단에서 내려오지 않고 언제까지나 사모님 소리 좀 듣게 해 달라고 아내는 상추같이 웃으며 아침 상을 차립니다 제발 서로 싸우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모두들...
연애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사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 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우물
고여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가끔씩 두레박이 내려온다고 해서 다투어 계층상승을 꿈꾸는 졸부들은 절대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 누군가 목이 말라서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 철철 피 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은 고여 있어도 어느 틈엔다 새 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내가 술로 헝클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어둔 길가에 개나리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 있었지요 한 가지 꺾어 들고는 내 딸년 입술 같은 꽃잎마다 쪽, 쪽 뽀뽀를 해댔더랬지요 웬걸 아침에 허겁지겁 나오는데 간밤에 저질러버린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내 잘못이 길바닥에 노랗게 점점이 피를 뿌려 놓은 것을 그만 보고 말았지요 개나리야 개나리야 나는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인간이다 인간도 아니다
저 물푸레나무 어린 새순도
저 어린 것이 이 험한 곳에 겁도 없이 뾰족, 뾰족 연초록 새순을 내밀고 나오는 것 애쓴다, 참 애쓴다는 생각이 든다 저 쬐그만 것이 이빨도 나지 않은 것이 눈에 파랗게 불 한 번 켜 보려고 기어이 하늘을 한 번 물어뜯어 보려고 세상 속으로 여기가 어디라고, 조금씩, 조금씩 손가락을 내밀어 보는 것 저 물푸레나무 어린 새순도 이 봄에 연애 한 번 하러 나오는가 싶다 물푸레나무 바라보는 동안 온몸이 아흐 가려워지는 나도, 살맛 나는 물푸레나무 되고 싶다 저 습진 땅에서 이내 몸 구석구석까지 봄이 오는구나
제비꽃
제비꽃 한 포기 오순도순 돋아난 걸 보고 들길 가던 유경이가 무슨 꽃이냐고 묻는다 나는 제비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또 오랑캐꽃으로도 부른다고 한참 동안 그 오롯한 것을 들여다보면서 유경이와 나는 들녘에서 둘이서 이 세상을 반반씩 다 알았다 햇볕도 관심 있다는 듯 우리를 오래 비추었다
집
삶이 참 팍팍하다 여겨질 때, 손님 두어 사람만 와도 신발 벗어두는 곳이 좁아 신발들끼리 엎치락뒤치락 난장판일 때 어린 아들은 떼쓰며 울고 돈은 떨어져 술상 차리기도 곤란해지면 아내는 좀더 넓은 평수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고 쌀을 안치다가도 파를 다듬다가도 좀더 넓은 평수, 평수 하는데 팍팍하다 못해 삶이 더는 앞으로 나아갈 것 같지 않을 때 나는 전에 살던 집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단칸 셋방에서 딸아이 하나 낳아 기저귀 갈아주던 때 먼데서 친구가 오면 아이 들쳐업고 아내는 친정 가서 자고 내 친구하고 밤늦도록 술 마시고 깬 다음날 아침에는 부엌에서 술국 끓이는 냄새가 꿈결인 듯 스며들던 집 식구가 단촐한지라 변소 푸고 나서도 오물세를 조금만 내고 주인집 인터폰 옆에 딩동딩동 소리 나는 벨 하나 대문에 달고 내가 늦게 귀가할 때마다 미안해하며 누르던 집 송학동 굴다리 지나 붕어빵 굽던 구멍가게 지나 목욕탕 지나 월부로 냉장고 한 대 살 수 없을까 자주 힐끔 들여다보던 금성대리점 지나면 일년에 삼십만원 사글셋집 십만원짜리 마라톤 4벌식 타자기 한 대 있으면 참 좋겠는데 다음 달 보충수업비 받아서 사버릴까 생각하던 주인집으로 전화가 걸려오면 마루를 살짝살짝 밟고 가서 통화를 끝내고는 우리도 전화 한 대 있으면 참 좋겠는데 다음다음 달 보너스 받으면 사버릴까 도란도란거리던 형광등 불빛이 비추던 밤이 깊던 그 집에서 나는 신규발령장 인주가 마르지 않은 중학교 국어 선생 자전거 타고 퇴근해 그 집에서 고추전 부쳐먹고 싶어진다
나는 또 대학 다닐 때 자취하던 집을 잊을 수가 없다 거기에 내 청춘의 입맞춤 자국이 묻어 있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우체국 소액환으로 열심히 하거라, 보내준 생활비를 술값으로 다 날리고 반찬거리 떨어져 슈퍼아줌마한테 자주 외상 달아놓던 라면 끓이다가 심심찮게 폭삭 엎어버리고 말던 지금 생각해 보면 늘 배고프고 하루종일 쓸쓸한 집 일 년에 한 번 꼴로 이불보따리에 책 몇 권, 전기밥솥 싣고 옮겨 다니던 지금은 주소도 알 수 없는 그 자취집, 그 하숙집들 그 시원찮은 빨래들이며 하이타이 냄새 나는 세월들 일찍도 아기 지운 친구의 애인들에게 미역국 끓여주던 기억 십이월마다 찾아오던 통지 없는 신춘문예 낙선의 기억 계엄군한테 직싸게 얻어맞고 빨간약 발라대던 기억 아픔도 없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아프던 기억 나는 저 혼자 돌아가는 레코오드판처럼 거기서 잘도 살았다
지금 호적에 등재된 내 본적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대당리 주소만 봐도 나는 가슴이 아프다 우리 아버지 평생 사실 줄 알고 경상도에서 이주해 가서 지은 집 울타리가 없어 집 안 가득 바람이 많던, 팀스피리트 훈련 때는 근동에 전투기가 총알을 쏟아 붓고 갔다는 소문이 들리던 집 추운 날 마당에서 세수하고 문고리 잡으면 손이 쩍쩍 달라붙고 변소간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정말 쪼개질 것 같던 겨울방학 때 가면 일년 동안 동생들이 키운 염소를 잡아 창고에 매달아 놓고 구워 먹고 볶아 먹고 고아도 먹던 집 어머니는 그 노랑내 나는 국물이 보약 된다고 훌훌 마시라고 나는 안 마신다고 내빼서는 밤새 들판에 내린 삐라를 줍던 개학하고 학교에 내면 표창장도 주고 공책도 준다는 교과서 두께의 책삐라를 주워 똥도 닦고 코도 풀면 아버지는 종이가 그렇게 없느냐고, 말없이 군불을 지피시던 집 나는 그곳을 한번도 내 고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면소재지 차부에서 버스를 내리면 뭉클한 게 있고 방학 끝나 차 타러 마을 빠져 나오면 또 가슴이 미어지던 집 아버지 배추 농사로 번 돈으로 시집을 사 읽으면서 그 어둠침침한 공부방 메주 뜨는 냄새가 되고 싶어진다
경기도로 피난 가듯 가기 전에 내 밑에 동생과 나는 가겟집 아이였다, 한겨울에 칠성사이다 달라고 조르다가 매맞고 내복 바람으로 쫓겨나서는 언 유리창에 대고 싹싹 빌던 한참 까불 때는 숟가락 잡고 둘이서 콩쿨대회도 열었지마는 토닥토닥 다투다 손톱자국이라도 생기면 어머니는 화가나 옆집 누구네처럼 엄마 없는 자식 되고 싶냐고, 우리는 별수 없이 또 싹싹 비고는 라면땅 한 봉지씩 나눠 먹던 집 연탄불 꺼진 날 솜이불 덮어쓰고 개구리같이 쪼그리고 있으면 동생과 내 입김으로 서로 훈훈해져서 금세 잠들고 말던 집 셋째와 넷째가 태어나도록 우리 여섯 식구는 이사도 안가고 그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예천농고 농구선수였다는 아버지 주무실 때 두 다리 쭉 뻗는 걸 한번도 못 보았으며 그래서 이불이 천막 같아서 잠잘 때마다 무릎이 서늘하던 집 그 무렵 찍은 흑백사진은 빛 바래거나 파리똥 앉았지만 나는 좋았다 나 시험지 백 점 받아오면 짜장면집에도 갔었다
그 이전에는 어디서 살았나, 이것은 내가 잘 모르는 일 나중에 자라서 알았지만 봉창 달린 예천 큰댁 작은방에서 나는 태어났다는데 솜털이 원숭이 새끼같이 보송보송한 것이 어른 손바닥 크기만한 것이 방 하나를 다 차지했었다는데 퉤퉤 쓴 침 뱉듯 육군 병장 제대하고 돌아온 집 조카들이 바글바글 울 때 마음놓고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 그때부터 젊은 우리 아버지도 지금의 나처럼 물을 긷다가도 배추를 씻다가도 좀더 넓은 집, 넓은 집 하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의 나처럼 삶이 참 팍팍하다, 앞으로 나아갈 것 같지 않다 여겨질 때 옛날 살던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흙벽에 시래기 몇 두름 마르는 서러운 겨울 한낮 호박죽 끓던 가마솥 앞에서 군침 꿀꺽 삼키며 그 뜨끈하고 걸쭉한 호박죽을 기다리던 수숫대같이 키 큰 한 소년을 오래 오래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튀밥에 대하여
변두리 공터 부근 적막이며 개똥무더기를 동무 삼아 지나가다 보면 난데 없이 옆구리를 치는 뜨거운 튀밥 냄새 만날 때 있지 그 짓 하다 들킨 똥개처럼 놀라 돌아보면 망할 놈의 튀밥 장수, 망하기는커녕 한 이십 년 전부터 그래 왔다는 듯이 뭉개뭉개 단내 나는 김을 피워올리고 생각나지, 햇볕처럼 하얀 튀밥을 하나라도 더 주워 먹으려고 우르르 몰리던 그때, 우리는 영락없는 송사리떼였지 흑백사진 속으로 60년대며 70년대 다 들여보내고 세상을 뛰쳐나온 우리들 풍문으로 듣고 있지, 지금 누구는 나무를 타고 오른다는 가물치가 되었다 하고 누구는 팔뚝만한 메기가 되어 진흙탕에서 놀고 또 누구는 모래무지가 되고 붕어도 잉어도 되었다는데 삶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제대로 나는 가고 있는지, 가령 쌀 한됫박에 감미료 조금 넣고 한없이 돌리다가 어느 순간 뻥, 튀밥을 한 자루나 만들어 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뒤집히는 삶을 기다려오지는 않았는지 튀밥으로 배 채우려는 욕심이 크면 클수록 입 안에는 혓바늘이 각성처럼 돋지 안 먹겠다고, 저녁밥 안 먹겠다고 떼쓰다 어머니한테 혼나고 매만 맞는거지
해와 달
이 고개 넘다가 호랑이가 턱 버티고 서서 팔뚝 하나 달라 하면 팔뚝 하나 떼어 주어야지요 저 고개 넘다가 호랑이가 턱 버티고 서서 발목 하나 달라 하면 발목 하나 떼어 주어야지요 하지만 두 눈만은 똑바로 뜨고 오래 오래 바라보아야겠어요 이 고개 넘으면 또 저 고개 해가 지고 나면 어느새 달이 떠올라 이 풍진 세상을 골고루 비추는 것을 내 두 눈 짓물러지도록 바라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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