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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부산명지출생/함양군명예군민/연세대국문과졸업/동아대교육대학원수료/ROTC제1기군복무/동주여중·고교사/동주여중교감역임/부산JC특우회회원/한국HELP클럽회원/부산교도소교정위원/부산교도소교정독서대학학장역임/한글문학회창립회원/(사)한국문인협회회원/짚신문학회회원/<수필집>석양을바라보며/삶의길목에서/놀부기죽이기/선녀와나무꾼/영욕의뱃길/어느시인의이야기/노란리본<편저>회한의절규<상훈>홍조근정훈장/문교부장관표창/법무부장관표창
*수상소감
평생을 두고 선생이랍시고 교편을 들고 애들 앞에 섰었으나, 하릴없이 세월만 죽였는지 이렇다 하고 남 앞에 내놓을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 앞가림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옆을 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여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더불어 이웃을 위해 보탬이 되는 일을 해 보자고 HELP라는 이름으로 봉사단체를 만들어가지고, 이웃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한 분들을 찾아 상도 주고, 독거노인들을 위한 의료봉사며, 교도소 수용자들을 돌보는 일도 하고, 산간벽지 농촌마을과 자매결연을 하고 그분들을 도우는 일들을 해 온지도 어느덧 4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마는 이 또한 부끄럽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이에 더 하여 한 가지, 삶의 길목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엮는 일도 해 왔습니다만, 숫자만 늘어 일곱 권이나 되었지 이 또한 마음에 차지 않아 의기소침해 있던 저에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평소 존경하던 오동춘 선배께서 제 졸저들을 보시고는 과분한 칭찬에다 짚신문학회 회원으로까지 입회시켜주시고, 언감생심 짚신문학상까지 받도록 이끌어주시니 이게 무슨 문학적 가치나 있는 글들인지 부끄럽고, 과연 제게 회원 될 자격이나 있는지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짚신문학회 회원 여러분들의 해량(海諒) 있으시기를 바라면서,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짚신문학회 회원 여러분들과 짚신문학회의 발전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 해 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원고
혜파정(惠播亭)
최 성 길
정자(亭子)의 사전적 의미는, 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그래서 그런 진 몰라도 정자라 하면 으레 경치 좋은 곳, 노는 곳, 쉬는 곳으로 만 이해하는 편견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정자는 그 나름의 어떤 특별한 의미나 사연이 없는 게 없다.
분단국가였던 독일이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통일의 위업을 이룬, 바로 베르린 장벽이 있던 포츠담 광장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정자가 하나 들어섰다. 그게 바로 통일정(統一亭)이다. 이 정자는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이 되던 해인 지난 2015년에 창덕궁 상량정(上凉亭)을 본 따 만들었다. 이 정자를 통해 한국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세상에 알리고, 다양한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포츠담 광장은 해마다 2천만 명이 넘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인데, 같은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베르린 시가 무상으로 부지를 제공해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통일정처럼 역사적 의미를 지닌 정자도 아니고, 우리 민족의 전통 양식을 운운할 만한 작품은 더더구나 아닌, 남의 인목을 자극하거나, 주의를 끌만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러면서도 나름대로의 사연을 담고 있는, 그저 소박한 원두막 같은 정자도 있다. 그런 정자 중에 하나가 혜파정(惠播亭)이다. 지리산 백무동 계곡으로 가는 길목인 함양군 마천면 강청 마을 앞, 도로 양편으로 나뉘어 조성된 소공원, HELP동산에 있는 정자다.
HELP동산은, 이곳 주민들을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는 한국HELP클럽의 아름다운 봉사정신을 기리고, 이곳을 찾는 길손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함양군에서 조성한 소공원이다. 원래 지리산국립공원 백무동 매표소 건물이 있던 자리였으나, 매표소를 지금의 장소로 옮겨 가고 난 이후, 빈터로 남아 있던 곳이었는데, 이곳에 나무를 심고, 조경을 하고, 수도를 끌어다 음수대도 만들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만들고, 여기가 HELP동산임을 알리는 헬프동산 비(碑)를 세우고, 혜파정(惠播亭)을 만들었다.
여기엔 여느 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조금은 색다른 게 하나 있다. 기념식수가 그것이다. 회원이 고희가 되면, 저간의 HELP 활동을 기리는 기념식수를 하고, 표지석을 세운다. 수종은 모두가 다 똑 같다. 고산지대인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천년을 산다는 주목이다. 십 년 동안에 열 그루의 기념식수를 했다. 하나같이 잘 자라고 있다. 십 년 전에 심은 것은 이미 사람의 키를 훌쩍 넘었고, 덩치도 아주 실해졌다.
강청 마을은 지리산의 정중앙에 위치한, 창암산 기슭에 있는 축복받은 땅이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등 3개 도에 걸쳐 있는 거대한 지리산의 핵이다. 백무동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 강청 마을 앞을 지나간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끝없이 펼쳐지는 기암괴석을 따라 흐르는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이 마을 이름까지 강청(江淸)이다.
혜파정은 도로 북쪽에 있다. 기암괴석 사이로 이리고불 저리고불 여기저기에서 흘러 내려온 계곡물이 합수하여 큰 강을 이루는 곳이다. 강수량이 많을 때는 곧잘 범람을 하기 때문에 강을 따라 높다랗게 축대를 쌓고, 그 축대를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다, 그게 강청교다. 그 강청교 옆 축대 위에 혜파정이 앉아 있다. 정자에서 강가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도 만들었다. 정자 앞에는 세로로 惠播亭이라 쓴 커다란 표지석을 세웠다. 내 키보다도 더 큰 바위다. 마천면발전협의회 초대회장을 지낸 허태오 회장과 임병열 이장 등 강청 마을 어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惠播(혜파)는 HELP의 音借(음차)이며, 惠播亭(혜파정)이란 한국HELP클럽의 정자라는 뜻이다. 내 대학 한 해 후배인, 시인이며 서예가인 현곡 동옥균 선생이 글씨를 썼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혜파정 준공을 보지 못 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에 두고 혼신의 힘을 다 해 한 획 한 획을 써 내려갔을 그분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 회원은 아니었으나 HELP 클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했던 분이었다. 그는 자기를 치료해준 부산대학병원 의학도들을 위해 자신을 기증하고 떠났다. HELP를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었다.
헬프동산 비(碑)는 도로 남쪽에 있다. 한국HELP클럽은, 올해로 창립 44주년을 맞는, 부산에서 창립된 순수민간봉사단체이다. HELP란 돕는다는 뜻으로, 건강(Health), 경제(Economy), 사랑(Love), 정열(Passion)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클럽의 명칭이자 목표이다. 건강한 사람, 경제적인 생활, 사랑과 정열이 넘치는 좋은 사회 건설을 위한 HELP를 목표로, 뜻을 같이 하는 회원들이 모여 함께 생각하고, 관찰하고, 행동하는 모임이다.
헬프동산비(碑)는 여기에 처음 세워진 게 아니다. 클럽 창립 초기부터 회원 및 가족을 위한 연수의 장(場)과 지역사회 봉사활동의 장(場)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로 HELP동산을 추진하여 오다가 밀양군 모처에 대지 500여 평을 매입, 헬프동산 비(碑)를 세우고 그곳 마을과 자매결연까지 하였으나 진행이 순조롭지 못 하여 땅을 처분하고, 박홍규 봉사위원장이 개인적인 인연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강청 마을로 헬프동산 비(碑)를 옮겨오게 되었다. 이후 강청 마을과 자매결연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마천면 전체를 아우르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함양군에까지 알려져 박홍규 당시회장을 제1호로 하고, 초대회장인 나를 제43호로 하여 클럽 회원 43명 전원이 함양군 명예군민증을 받게 되었다. 회원 모두가 함양군 최초의 명예군민이 된 것이다.
무릇 정자란, 아무리 특별한 의미나 사연이 있고, 놀거나 쉬기에 좋은 곳이라 해도 접근하기가 어려우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림의 떡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혜파정은 합격점이다. 우선 접근하기가 아주 좋다. 서울에서도 서너 시간이면 올 수 있다.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백무동 계곡까지 고속버스가 다닌다. 함양군을 일주하는 버스도 예서 내리고, 탈 수 있어 좋다. 손수 운전하여 오는 사람들은 주차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좋다. 바로 HELP동산 앞에다 얼마든지 차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십 년 세월의 무게가 힘에 겨웠던 것일까, 아니면 고대하던 손길을 기다리다 지쳤던 것일까, 정자 곳곳에 보이는 세월의 흔적이 안타깝다. 정자는 쇠락했으나, 그새 자란 조경수는 기품이 당당하고, 열 그루 기념식수도 물이 올라 아름답다.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새소리 물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고, 저 멀리 벽소령은 하늘을 우러르며 한가롭기만 한데, 백무동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켜켜이 쌓인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어준다.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