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7일
제목 저주를 복으로 바꾼 헌신
본문 출32:25-29
저주를 복으로 바꾼 레위 지파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야곱은 창49:5-7에서 열두 아들들을 향해 유언을 할 때 레위와 시므온에게 저주를 선언을 합니다. 그 이유는 세겜 성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자신들과 통혼할 수 있다고 약속하므로 세겜 성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레위와 시므온은 그들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 때 모조리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레위 지파에게 내려진 저주가 어떻게 복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요? 출32:32절에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시라는 모세의 중보기도가 큰 역할을 합니다. 레위 지파가 저주를 복으로 바꾼 이유가 또 있는데 그것은 헌신입니다. 오늘은 저주를 복으로 바꾼 레위 지파의 헌신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자원하는 헌신
레위 지파는 자원하는 헌신을 하였습니다. 25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방자한 행동을 보고 의로운 분노를 발하였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든 자들을 징계하기 위해 여호와의 편에 설 자는 내게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때 레위 자손들이 나왔습니다.(26절) 레위 지파를 지목하여 나오라고 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헌신은 자원함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예수님도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겟세마네로 나아갔고, 자신을 붙잡으러 온 자들을 향해서 내가 바로 너희가 찾는 예수라며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이 아니라 자원함이었습니다. 자원함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의 저주 가운데 있던 온 인류에게 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의 헌신도 자원함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저주가 무서워서가 아니고, 복을 받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해 주셨고, 죄 사함과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하셨으니 감사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는 자원함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교회 역시도 자원하는 헌신자들로 구성된 기관입니다. 교회에 속한 성도의 헌신은 자원함이어야 합니다. 누가 부탁하거나 지목하지 않더라도 헌신함이 귀한 헌신이며 복 받을 헌신입니다.
서인석 집사님은 매주 토요일 나무 심고, 물 주고, 전지를 해왔는데, 어제는 전기를 고치려고 와서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한기승 집사님은 교회 수도, 전기, 보일러를 고치기 위해서 수시로 헌신합니다. 김수언 집사님은 운전 봉사를 하시는데, 나누어서 하시라고 해도 나중에 못하게 될 테니 당분간은 계속하겠다고 하십니다. 정준호 집사님은 오후예배 시에 구역식구들을 자신의 차로 모셔오고 모셔다 드립니다. 김 룡 장로님 역시도 구역 모임을 가질 때마다 노성도님들을 픽업을 합니다. 장로님께서 1구역을 맡아주길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연로하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은 예배에 참여함만으로도 귀한 헌신이 됩니다. 실버카를 끌고 온갖 힘을 다해 예배당에 나오는 발걸음도 소중한 헌신이 됩니다. 이와 같이 자원하여 헌신할 때 복이 됩니다.
시편81:15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 겉으로만 복종하는 체하는 자들은 그들의 시대는 그럭저럭 살다가 결국은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시81:16에 보면 하나님을 향하여 진정한 마음으로 헌신할 때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당시로는 최상의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자원하여 헌신할 때 레위 지파에게 복이 되었듯이 우리도 자원하여 헌신할 때 복이 될 것입니다.
인정에 매이지 않는 헌신
레위 지파는 인정에 매이지 않는 헌신을 하므로 저주를 복으로 바꾸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자들을 징계할 때 형제, 친구, 이웃까지 죽여야 했습니다.(27절) 레위 지파는 인정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 친구, 이웃을 죽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29절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인정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매이는 헌신을 하므로 저주를 복으로 바꾸었습니다.
레위의 헌신은 어려운 헌신입니다. 자신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들이 이것만 아니면 다른 것을 다 할 수 있겠다고 할 정도로 힘든 헌신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는 지시도 따르기 어렵지만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은 도무지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인정으로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셨습니다. 인정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음의 길을 기꺼이 걸으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절하므로 투옥이 되었습니다. 일본 순사는 주기철 목사님을 향해 한 번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 석방하겠다고 회유했습니다. 이것으로 안 통하니 아내를 면회 오게 했습니다. 초라하고 불쌍한 아내의 모습을 보게 하면서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인정에 매이지 않았고, 사모님 역시 죽을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인정에 매이지 않고 생명까지 내어주는 헌신을 하였습니다.
나의 친구 목사님께서 섬기는 교회 장로님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는 분이었는데, 2천만 원을 가지고 목사님께 가져 오셨더랍니다. 장로님은 시멘트 회사 말단 노무자로 일하다 은퇴하고 사원주택관리를 하면서 봉급 60만 원을 받았는데 20만 원으로 생활하고, 20만 원을 헌금하고, 20만 원은 적금하여 2천만 원을 헌금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장로님께 권사님과 의논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장로님은 ‘아내 사정까지 생각하면 어찌 드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답니다. 집안 사정, 자식들 사정까지 생각하면 헌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장로님의 헌신이 교회에 복이 되고, 자신에게 복이 되고 자녀들에게까지 복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변호사가 되고, 딸은 중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인정에 매이지 않는 헌신이 이미 받은 복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신자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은 맛보기일 뿐이고 더한 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복을 불러 오는 헌신
레위는 살인을 하므로 저주가 선언되었지만 헌신하므로 저주는 효력을 상실하고 복을 받았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의 지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저주를 멈추고 복을 불러 왔을까요? 29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여호와께 헌신함이 저주를 복으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는 저주를 물리치기 위하거나 복을 받기 위해서 헌신을 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죄 사함과 영생의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헌신함은 그 은혜에 감사함 때문입니다. 감사함으로 헌신할 때 이미 받은 복을 더욱 빛나게 해줍니다. 또 내가 받은 복이 내 자손, 내 이웃, 내 교회에까지 복이 되게 합니다.
한때 술주정뱅이였던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분은 대구에서 약방을 경영하면서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분이 바로 대구 서현교회 정규만 장로님입니다. 교회당 건축을 하게 되었는데, 담임목사께서 생활비를 받아 건축헌금을 했습니다. 장로님은 목사님 생활비를 받는 날이면 신문지에 생활비를 싸서 마당에 던져놓곤 하였습니다. 매달 그렇게 하다가 사모님께 들키고 말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답니다. 장로님은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회를 신앙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심방할 땐 담임목사님의 심방가방을 들어주었습니다. 주일학교 제자인 담임목사님의 가방을 들어준 것은 성직의 소중함을 몸으로 보여주고 싶어 그랬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자신은 물론 자녀와 후손들 그리고 온 교회에 복을 가져오는 헌신을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준 복된 헌신을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은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새벽 기도회에 더 잘 나오십니다. 나는 비 오는 날 전동차를 타고 오시면 위험하니 오시지 말라고 했더니 “이런 날에 새벽기도회에 나와야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목사의 권위를 세워주고, 목회를 돕던 장로님이셨습니다. 모세를 떠받들어 준 아론과 훌처럼, 바울을 사역을 돕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같은 부부였습니다. 자신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복을 불러오는 헌신을 했습니다. 비행기는 조종사가 먼저 뜨면 이어 승객도 뜹니다. 담임목사님을 세워주고 목회의 도움을 줄 때 자신과 그의 가족들에게 복이 됩니다. 장로님은 떠나셨어도 그의 자녀들에게서 선함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복을 불러들일만한 헌신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기 바랍니다. 내 영혼, 내 가정, 내 자손, 내 교회에까지 복을 불러오는 헌신을 하기 바랍니다. 자원하는 헌신, 인정에 매이지 않는 헌신, 복을 불러들이는 헌신을 드리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