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헤어진 것은 천재지변이 아니었다 전쟁이나 홍수나 가뭄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가난이 유죄였다 지지리 못나고 못산 것이 그 이유였다 목구멍이 포도청(捕盜廳)이었다 호환(虎患)보다 더 무서운 ... ...
그렇게 뿔뿔이 헤어져 가슴아파 하며 살아오다가 이제 살만하고 여유가 나서 너도나도 찾아 나섰다 이고 지고 눈물의 항해를 했다
‘아침마당’은 마지막 희망의 불씨 나와서 주절이 주절이 읊고 미주알 고주알 되풀이하는 것은 잃어버린 혈육 非夢似夢간에도 잊지 못하던 가슴에 묻어 두었던 내 사랑하는 피붙이, 내 살들인 것을 ...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말문을 연다 벌써부터 흐느낀다 한편의 생생한 순정의 드라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찡한 장면들 그 위로 크로즈업 되는 온갖 해 아래 사연들
덩달아 가슴 아파 우는 사람들 인정은 저리도 세상에 풍부한 데 어째서 사람들은 찬거리 그 시린 거리를 오고 가는가?
매주 수요일 아침에 문을 여는 휴먼드라마 감동의 한 장면들 보시고 느끼시고 깨달으시라 우리 이웃 사람들의 사는 風俗圖를
간판(看板)
족집게 도사(道士)이다 풍기는 인상(印象)이요 퍼스트(first) 임프레이션(impression)이다 그것만 보면 ‘척 압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내용이 보입니다 색깔과 향내가 진동을 합니다 타이틀매치는 간판싸움입니다 간판이 좋을 때 눈이 쏠립니다 귀가 솔깃해집니다 세상 천지에 빼곡이 널려있는 도처에 휘날리고 나부끼는 아 ! 이생(以生)의 자랑들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헷갈리는 인간 세상 풍속사(風俗史)에서 사람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없는 편두통(偏頭痛)이 다 생길 지경이다 간판(看板) 그 알량한 것 때문에 ... ...
문전성시(門前成市)
그 반의어(反意語)는 아마도 문전철시(門前撤市)일게다 어제 TV를 보았었네 같이 식당을 개업했는데 한 쪽에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시끌벅적 그 옆집에는 파리만 날리고 있었네
장사가 안 되는 옆집 식당 아주머니 야(夜)밤에 슬그머니 혼자 나와서 이웃집에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서는 그 식당 국솥에 세제(洗劑)를 넣었다나 그것을 먹은 손님들이 배가 아팠고 냄새가 나서 주인에게 미주알 고주알 어떤 손님이 일러 주기를 CCTV를 설치하여 왜 그런가 원인을 캐어 보라 조언(助言)했네 그 말이 일리(一理)있어 설치하고 보니 옆집 아주머니 소행(所行)이 분명(分明)했네
그리하여 만천하에 까발리고 밝혀진 일은 흥부가 잘되는 게 배가 아파서 놀부처럼 남의 밭둑 호박에 말뚝 박아서 애고 애고 아픈 내배 진정시키려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말았다는 구려! 이리 저리 떠벌리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 세상 사람들 TV보다 말고 혀를 껄껄 찼다나 !
하, 그놈의 세상 인심 한번 참 고약타 ! 지나가는 봉이 김선달 대동강 팔아먹은 그 위인도 감탄사(感歎詞)를 연발하니 요즘 세상 분분(紛紛)히 날리는 바람 부는 세상 인간풍속사(人間風俗史)들 이래저래 얻어터지고 두들겨 맞는 죽는 이는 조조(曹操) 군사(軍士)들 별 볼일 없는 장삼(張三)과 이사(李四)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거라 재미있는 실전(實戰) 드라머 눈이 휘둥그레지는 소식들
모두 다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구먼 ! 이제 TV는 화상전성시(畵像前盛市) 가 되겠구먼 !
물려 놓을 때
왈왈 시끄럽게 짖는 견공에게 살점 붙은 실한 뼈다귀 하나 물려봐 그것 하나 가지고 핥고 빨고 물고 흔든다고 족히 서너 시간 조용하게 보내는 건 일도 아니지 왜 시끄럽게 할까? 재미가 없으니까 심심하니까 배가 고프니까? 할 일 없으면 숫돌에 배를 문댄다고 가만 놔두면 일을 친다 애나 어른이나 할 거리 놀 거리를 맡길 때 시간이 잘 간다 소일(消日)이 잘 된다 인생은 해 아래서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 물린다는 말은 일거리를 할 거리를 제공하여 심심하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껌(GUM)
씹고 또 쪽쪽 빤다 양 쪽 볼따구니 안 쪽 윗 치아와 아래 치아를 쉴 새도 없이 이간질시킨다 잘근잘근 깨물어 본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나니 입안이 천근 만근이다 양 볼이 얼얼할 정도로 열나게 용두질을 하고 나면 쫀 득 쫀 득 감로수(甘露水)가 속속 들이 배어 있던 영양 만점의 요깃거리(?)는 제 몫의 일을 끝내고 *1)토사구팽(免死狗烹)처럼 팽(烹)당할 그 순간만 기다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전혀 예기치도 않았던 뜻밖의 순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를 드나들며 보무도 당당히 진군해 들어왔던 허연 이물질(異物質)은 거세게 내뱉는 강풍(?) 에 휩쓸려 먼지 나는 맨 땅으로 장렬히 산화한다
태양이 작열하는 신작로(新作路)에서 입안의 혀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하던 따뜻한 그 시절을 떠 올려 본다
순간! 뻔쩍 꽝 우르르 사방에서 몰려드는 무수한 신발들의 난타(亂打)와 바퀴에 짓이겨져 떡이 되는 가여운 신세 세정(世情)을 탓해 봐야 이미 소용없는 일
화려 찬란 광내고 폼 잡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옛 동화가 되어 버렸다
*1)토사구팽(免死狗烹) [명사][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뜻으로] 요긴한 때는 소중히 여기다가도 쓸모가 없게 되면 천대하고 쉽게 버림 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사기(史記)의 회음후전(淮陰侯傳)에 나오는 말임 ...
등대를 찾아서
버어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며 ... 그 낯 설은 여자는 이제 가고 없어 모두의 기억 저 너머에서 허연 포말로 일렁이다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
누군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자꾸 잊혀져 간다면 그도 마찬가지로 울프가 되리 전설처럼 그 시대를 풍미했던 한 시대의 걸출(傑出)한 여장부는 누가 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 한 앨범 속의 사진으로 남으리
바삐 오고 가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외줄 타기하며 살아왔던 버거운 날들은 어릿광대의 재주처럼 열광하는 날들과 함께 무대 뒤의 허허(虛虛)로운 빈 장막이 되리
누가 추억의 뒤 켠 에서 건져 올리랴? 전설 속의 주인공 강태공(姜太公)도 없는 지금 참으로 난해하고 어설픈 작업이 되리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가야만 할 아직 해거름의 약속이 있어 아직은 지나가지 않은 우리가 건져야 할 ... ...
춘신(春信)
벌써 내 마음에 당신은 왔소 온 산천에 흐드러진 그대의 숨소리 가쁘게 내 쉬는 당신의 거친 호흡 속으로 자지러드는 내 아련한 추억 귓불은 벌겋게 타오르는 데 당신의 화사한 옷 벗는 소리 내 시린 창가로 어느 새 달려왔나요 눈이 부셔요, 파란 하늘이 어지러워요 분홍빛 커튼을 달아 주세요 당신과 마주 앉은 식탁에 촛불을 켜 줘요 잔잔히 흐르는 ‘푸른 도나우’의 선율(旋律)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의 가녀린 허리를 껴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춤을 추어요 밤이 새도록 당신과 함께 새 봄을 꿈꾸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