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 정현종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직장에서 회식할 때는 선배나 고참, 상급자가 회식비를 내 주었다. 참으로 좋았다. 이건 나중에 내가 선배가 되고 직급이 올라가면 당연히 내 후배와 밑의 부하 직원에게 상급자로서 또 다시 베풀어야 할 일이었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고 세월은 흐르는 것이다. 어제의 배우고 익히는 학생이 오늘은 가르치고 공감하는 선생이 되었고, 어제의 청년이 오늘은 부모가 되어 자식들을 기르고 있다. 분명히 가는 세월 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한다. 그리고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대학교 4학년 2학기부터 직장생활을 했다. 생명보험회사의 보험 모집인 및 보험 설계사였지만, 면접을 보아 취직했었고 보험모집인 시험을 보아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하지만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퇴직하였고, 당시에는 손에 꼽는 대형 의류회사에 합격하였다. 꿈도 있었고 미래에 대한 설계도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학교 은사이신 교수님께서 교사로 추천해 주셨다. 인천에서 고교 야구로 유명한 ○○고등학교 철학/논리학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쓰고 학교로 왔을 때의 일이다. 신입 동료교사를 환영해 준다고, 선배교사와 부장선생님이 신고식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오고가는 술잔 속에서 난 교사로서의 내 희망과 포부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배 교사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장단을 쳐 주셨다.
“교사는 그 무엇보다도 수업이 제일 중요하오.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사, 학생들과 소통하는 교사가 되시오.”
“수업이 제일이오. 학생들에게 실력으로 평가받으시오. 때로는 학생들이 이 선생님을 측정하고 시험할 때도 있소. 그 때 선생님의 실력을 표출하시오. 선생이 실력이 없다면 학생들은 선생 알기를……. 그리고 정직하시오. 모르는 건 모른다 하고 아는 것은 쉽고도 재미있게 가르치시오.”
“책 속의 죽어 있는 활자화된 지식을 교사의 입으로 살아있는 지식으로 설명하고 공감을 얻으시오. 설명을 많이 하기보다는 아이들로 하여금 질문하게 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하시오.”
“물음표와 느낌표가 있는 생활을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하시오. 그럼 이 선생님은 성공한 교사, 학생들과 교감하는 교사가 될 것이오. 그럼 이 선생님의 학교생활이 매일매일이 새롭고도 기쁨에 넘칠 것이오.”
“나는 좋은 교사, 훌륭한 교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이 선생님은 부디 나보다 더 나은 교사가 되길 바라오. 그리고 부탁하고 싶은 게 있소. 교사는 절대 학생을 인질로 잡고 있는 인질범이 아니오.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이란 ‘씨앗’이 자신의 본성대로 잘 자라도록 상담해주고 도와주는 자양분이고 도우미란 사실을 늘 염두에 두길 바라오. 학생들은 항상 교사와 부모에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소. 교사는 학생의 그 아픔을 보듬어 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 부모와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이오. 교사는 인질범이 아니오. 학부모에게도 배우고 익히는 교사가 되길 바라오.”
그리고 계속적으로 나에게는 술잔이 오고갔다. 난 술은 약하지만 술자리를 좋아한다. 술자리에서 듣고 느끼는 것이 더욱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친의 말씀은 언제나 늘 항상 기억한다. 술 속에 있는 양과 사자와 돼지와 원숭이는 먹지 마라. 무엇보다도 술 속의 개를 마셔서는 안 된다. 술 속에 있는 사람의 정과 의식과 살림만을 먹도록 해라.
선배 교사와 부장선생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좋았다. 한 동안은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정말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울의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를 몰랐다. 지하철은 어떻게 탔는지, 그리고 버스는 어떻게 타고 집으로 왔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회사에서나 그 어떤 단체에서 신입사원이나 신입회원 환영식을 하면, 관례상 선배나 직장 상사가 한 턱을 냈었다. 서로간의 상견례를 하면서 밥과 술 한 잔을 하면서 1차를 마쳤다. 인사치례의 술이 한 순배 돌았다. 그리고 2차는 맥주 집이었다. 꽤 많이 마셨고, 대학교 선배가 계산했다. 그리고 3차는 ……. 기억이 없다. 깨어보니 서울의 집이었다. 내가 혹시 술 속의 개를 마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술 냄새 풍기며 학교 교무실에 앉아있다.
기라성 같은 선배, 작은 아버님과 아버님 같은 교감 교장선생님! 그리고 옆과 앞의 큰 형님과 누님 같은 선임 선생님들. 교무실 문을 열며 큰 소리로 ‘좋은 아침입니다.’를 외치며 밝게 웃으며 인사드렸다. 하지만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공연히 불안하고 두려웠다. 마침내 어제 초대하고 총무해 주셨던 K 선생님을 찾아가 물었다.
“저 어제 실수한 거 없나요?”
“실수? …… 술 마시면 다 그렇지요. 큰 실수는 없었어요.”
“…… 어제 비용이 많이 나왔을 거 같던데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신입 교사가 오면, 교사들 간에 있는 우리학교 전통이에요. ……선생님 후배 교사에게 베푸세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잘하세요. 어제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가 그거잖아요. 좋은 선생님, 멋진 선배 교사, 그리고 두려워 할 줄 알게 하는 후배교사가 되세요. …정말 어제 이야기 나누었던 거 전혀 기억이 안나요?”
“아니요. ……문제는 3차가서 집에 어떻게 왔는지를 몰라서요.”
“걱정 마세요. 이 선생님은 3차에서 잠만 잤어요. 워낙 선배 선생님들이 이 선생님에게 술잔을 권하다 보니…. 그 점이라면 걱정 마세요. 그냥 잠만 잤었고, 3차에서 나와 지하철 타고 집으로 올라갔어요. 어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도 기분 좋은 술자리였어요.”
첫 만남의 그 자리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이후로 신입교사가 새로 오면 그와 밥을 같이 먹고 그와 술 한 잔 나누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와 나는 서로간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는다. 하여 보다 더 좋고도 바람직한 교사상을 찾는다. 심지어 교생이 와도 그와 같은 자리를 갖는다. 모쪼록 그의 출발이 나보다 낫고, 그의 결과가 언제나 진행형이며 반성하는 삶을 살기 바라면서.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나는 새로 오는 신입교사와 교사, 그리고 학교의 사환 아가씨와 수위 아저씨 등과 밥을 같이 먹었고 술 한 잔도 나누었다. 행정실 직원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한 솥밥을 먹는 사람이란 동조의식이 나에겐 있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환경이 바뀌었다. 1990년도에는 교사들 중에 10%정도만 갖고 다녔던 자동차를, 이젠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자동차를 운전한다. 이젠 차가 사람의 생활을 지배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엔 자동차가 있다. 그 자동차에 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동차에 모이질 않는다.
노란 봉투에 월급명사세서와 함께 나왔던 월급과 수당이 이젠 온라인으로 송금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터넷이 있다. 그 인터넷에 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사람을 볼 수 없다. 핸드폰에 ‘월급이 입금되었습니다.’란 메시지만 있지, 동료 교사가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란 여유의 공간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게 너무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으로 오지 않는다.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섬만을 고수한다.
아이들은 모두 자율학습으로 남아있고, 많은 선생님들은 그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감독으로 남아있다. 감독하는 교사와 감독받는 학생만이 있을 뿐, 교사와 학생간의 몸으로 이야기하는 바디 랭귀지와 비언어적의 소통이 없다. 학원수강 가는 학생, 격일로 10시까지 하는 자율학습 감독. 교사와 학생은 서로간의 생활에 지쳐있다. 그들에게도 섬이 있는데, 그들은 섬으로 오지 않는다. 자신의 섬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교단에 선지 벌써 20년 넘게 흘렀고, 학교 현장은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노란 월급봉투 받던 날, 교문 앞에서 마주치는 교사와 교사간의 은밀(?)한 눈빛과 가슴 설레던 퇴근길의 모습이 사라졌다. 학교를 마치고 ‘잘 가라!’와 ‘안녕히 계세요!’라는 아쉽고도 행복한 헤어짐이 없다. 5시 퇴근하면서 어깨를 마주하며 걸었던 아이들이 ‘선생님! 오늘 술 약간만 드세요. 물론 선생님의 해장수업은 일품이지만요.’라며 키득키득 거리던 아이들의 농담도 사라졌다. ‘퇴근길! 삼겹살에 소주 한잔. 아, 그것마저 없다면.’이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서로서로 어울려 선술집을 찾던 교사들의 모습도 뜸해졌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와 몇몇 선생님들은 아직도 90년대의 그 사고 그 방식으로 산다. 그래서 우리 정보과 선생님들에게 붙여졌던 별명이 ‘평양기생’이었다. 누구든 그 어떤 사람이든 ○○고등학교에 오면, 정보과 교사들인 우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우리 정보과 선생님들이 예전의 기생처럼 몸을 팔지는 않는다. 다만 기생들처럼 술과 음악, 유머와 이야기가 탁월하다. 그래서 우리 정보과 교사들과 술을 마신 교사와 손님?)들은 언제나 자신의 주량을 넘겨 술을 마신다.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으며 의미 있는 술자리였다고 누구나 칭찬한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선생님과 손님들에게 식사와 술을 대접할 수 있는 것은 각자가 갖고 있는 섬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섬에 다가가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에서 만나면 또 그 섬을 우리 모두의 섬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함께 자리했던 용역직원은 핸드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고, 시조를 지었던 시집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섬에 모여 한 식구가 되었다.
술자리에서 만난 정보과의 교사들 4명은 매난국죽이었다. 우리와 자리한 손님(?)에게 우리는 월매가 되었고, 춘향이 되었고, 이 도령과 향단이도 되었다.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4명의 교사들은 재미있게 키득키득 거리며 새로 오신 선생님에게, 새로온 기간제 교사에게 술잔을 권한다. 매난국죽의 우리에게, 진보와 보수의 구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 땅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 학생들에게 먼저 태어나 살고 있는 ‘선생’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정보과 선생님들은 기간제로 온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식사와 술을 함께 했고, 해마다 찾아오는 교생들을 식사 대접했고, 술도 사 드렸다. 이젠 졸업한 제자가 같은 동료인 교사가 되어 술 한 잔을 함께 할 때도, 정보과 선생님들은 스승과 제자가 아닌 이 세상을 함께 배우고 공부하는 도반으로서, 동료로서 대접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평양기생이란 애칭을 얻고 있는 정보과 교사들이 자신의 섬을 분명히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섬을 알기에, 상대방의 섬도 인정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섬에서 화합할 수도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일을 하는 사람과 그 일에 드는 비용이라 할 수 있다. 평양기생으로 지출한 금액은 1/4로 나누어 지출의 부담을 줄인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에 누구나 자신이 먹고 싶을 때 ‘콜’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한다.
매난국죽의 4명의 명의 정보과 평양기생들은 오늘도 외로운 사람, 의로운 사람, 방황하는 교사,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 교문을 나선다. 그리고 선생님들을 유혹한다.
퇴근길 - 안도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2013년 1월 15~17일까지 원광대학교 참실대회에서 전교연선생님들과 연수샘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분들이 잊혀져 가는, 사라져 가는 평양기생임을, 그리고 그 평양기생과 놀았던 분들이었음을 알았다. 이제 난 이분들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고 싶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공자께서도 말씀하셨잖은가? 전교연 선생님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즐기는 분들이었다. 이 분들을 만나는 학생들이 행복할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삶을-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즐길때도 되지 않았는가. 때로는 평양기생이 되고, 때로는 그 기생을 데리고 노는 건달이 되어 볼 생각이다. 그리하여 삶에서 풍류가 있는 향기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