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매화가 상징하는 것은 다양하다. 임금, 신선, 선각 정신, 절사, 임, 달, 백설, 평화, 화해,
매화는 다른 꽃나무보다 일찍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나무들의 어머니 나무’. 고결하고 기품 있는 매화로 사랑받는 경남 산청
탐매 여행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매화는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말기 당나라
매화가 처음 피기 시작하는 모습을 찾아 산길로 떠나는 탐매 여행을 시작한 원조는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698~740)이라고
우리나라에서는 탐매 여행의 시초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1764~1845)
2~3월에 꽃이 피는 매화는 꽃 색깔이 흰 백매, 붉은색인 홍매로 나뉜다. 또한 꽃잎의 경우 낱장으로 된 꽃과 겹쳐 있는 꽃
으로 나눠진다. 춘삼월이면 매화 사진을 찍기 위한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통도사. 영각 앞의 백매화는
꽃송이가 예쁘고 맵시가 빼어나 어느 각도에서 누가 찍어도 결과물이 훌륭하다. 사진은 통도사 불이문의 백매.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도 매화 감상을 즐겼다. 그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죽란시사竹欄詩社’는 화분에
심은 매화가 망울을 터뜨리면 시회詩會를 열었다. 모두 열다섯 명으로 구성되었던 ‘죽란시사’는 서로 가까운 지방에 살면서
정례적으로 모여 시회를 열고 친목을 도모했다고 한다. 이 모임은 살구꽃이 필 때, 복숭아꽃이 필 때, 한여름에 참외가 익
을 때, 초가을 서지西池에서 연꽃이 필 때, 국화가 필 때, 겨울철 큰 눈이 내릴 때 각각 한 번씩 모이고, 세모에 분매의 매화
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더 모였다. 모일 때마다 술, 안주, 붓, 벼루 등을 지참하는 것은 필수. 그리고 회원들이 모이면 술을
마시며 시를 읊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규정으로 정해두어 풍류를 즐겼다.
현대인으로 매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 LG그룹 구자경 회장, 학고재 우찬규 대표,
고 박종화 작가 등이 유명하다. 특히 박종화 작가는 안방 문갑 위에 올려놓은 화분의 매화가 꽃을 피우면, 이불 위로 떨어진
꽃잎 때문에 이불을 걷지 못할 정도로 매화 사랑이 극진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더 나아가 친구를 불러 매화 향이 밴 이불을
보여주고는 했다.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무리지어 피어 있는 매화를 보려면 농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의 청매실농원, 보해
양조에서 20여만 평 부지에 꾸며놓은 전남 해남군의 보해매실농원 등이 대표적이다. 벚꽃 도시로 유명한 김해에도 매화 군락
지가 있다. 아름드리 매화나무가 길 양쪽으로 사열해 있는 경남 김해시 김해공고 교정도 아름답다. 사진은 전남 광양시 다압
면에 핀 매화.
대표적인 전국의 매화 명소 7
전남 순천 선암사 백제 성왕 7년, 아도화상이 세운 절로, 이곳에는 해우소 옆에 있는 매화를 포함해 수십 그루의 매화가 있
다. 우리나라 매정梅庭(정원의 매화)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수령이 2백~6백 년인 묵은 매화가
무리 지어 있는 뒤쪽, 무우전無憂殿 돌담길이 으뜸. 백매화와 홍매화가 어울려 핀 모습이 환상적이다. 팔상전 오른쪽 뒤편에
있는 6백20년 된 백매白梅는 높이가 11m, 수관(줄기와 잎이 많이 달려 있는 줄기의 윗부분) 폭이 15.5m, 나무 밑둥치의 지름
이 78cm에 이르는 노매다. 때 맞추어 찾아가면 그윽한 매화 향기의 진수를 접할 수 있다.
강원 강릉 오죽헌 현존하는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진 오죽헌의 왼쪽 뒤편에 수령 6백 년으로 추정되는 홍매紅
梅 한 그루가 있다. 일명 ‘율곡매’라고도 하는 이 매화는 높이가 약 9m, 수관 폭이 6m, 나무 밑둥치의 지름이 약 68cm인 고매.
한 줄기로 시작되었으나 밑둥 약 90cm 지점에서 두 줄기로 갈라진다.
경남 산청 단속사지 조선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문신인 인재 강희안(1419~1464)의 조부 통정공 강회백이 소년 시절 공
부하러 와 심었다는 백매. 이름은 ‘정당매庭堂梅’로 불리는데 강회백이 정당문학 대사헌이라는 벼슬까지 올랐던 데서 연유
한다. 애초에 강회백이 심은 매화는 고사했고, 지금 생존하는 나무는 손자 강희맹이 심은 ‘손자 정당매’로 알려져 있다. 실
제 수령은 5백50년 정도로 추정되고, 높이는 약 3.5m, 수관 폭은 약 5.3m인 노매다. 줄기는 본래 세 개였으나 두 개가 고사
했고, 다시 세 개의 곁가지가 자라나 현재 줄기는 모두 네 개. 인근 마을인 남사리에 가면 조선 중기의 대표적 도학자인 남
명 조식의 은거지 산천재의 4백40년 된 ‘남명매’를 비롯해 최씨 고택의 약 1백 년 된 백매, 이씨 고택의 약 1백 년 홍매 등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전남 광주 전남대 교정 명나라 희종황제가 증정한 홍매로, 수령은 약 4백 년이다. 조선시대 학자인 고부천이 1621년 진문
사서상관으로 명에 가 하사받은 홍매분紅梅盆을 심은 것으로 ‘대명매’라 불린다. 분매 형태로 ‘귀화’했던 이 매화는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의 고부천 자택의 정원에 심어져 정매가 되었다. 독특한 이력이 있는 이 홍매를 전남대 교정으로 옮긴 사람
은 고부천의 11대 후손인 고재천 박사. 고 박사가 전남대 농과대 학장으로 재직하던 1961년 이곳으로 옮겨 온 것. 높이 약
5.3m, 수관 폭 6.5m로 건강하다.
전남 장성 백양사 “매년 집사람과 함께 한·중·일 탐매 여행을 다니는데, 저희 부부가 최고로 꼽은 매화는 백양사의 고불매입
니다. 나무의 수령도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눈 내린 달밤의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다면 눈 내리는 날 저녁, 절
집 기와지붕 위로 가지를 걸친 멋진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매화연구원 안형재 원장의 이야기에 끌려 달밤 매화
풍경을 찍으려던 어느 사진가는 한 달을 기다린 끝에 겨우 그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 있는 ‘우화루雨
花樓’ 오른쪽에서 홀로 고고하게 자라고 있는 홍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3백60년 수령인 이 매화는 높이 6m로 자태가 아주
고혹적이다.
‘매화초옥-설중방우’(2004)
서울 창덕궁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내의원의 자시문資
1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의 홍매화
2 경기도 용인 민속촌의 백매
광양매화문화축제 경상도 출신의 홍쌍리 할머니가 운영하는 12만 평 규모의 ‘청매실농원’으로 유명해진 광양시 다압면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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