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자전거 - 안도현 너무 오랫동안 타고 다녀서
*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 안도현 나 자전거가 되리 한편생 왼쪽과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거리지 않고 말랑말랑한 맨발로 땅을 만져보리 구부러진 길은 반듯하게 펴고, 반듯한 길은 구부리기도 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모퉁이, 움푹 파인 구덩이, 모난 돌멩이들 내 두 바퀴에 감아 기억하리 가위가 광목천 가르듯이 바람을 가르겠지만 바람을 찢어발기진 않으리 나 어느날은 구름이 머문 곳의 주소를 물으러 가고 또 어느날은 잃어버린 달의 반지를 찾으러 가기도 하리 페달을 밟는 발바닥은 촉촉해지고 발목은 굵어지고 종아리는 딴딴해지리 게을러지고 싶으면 체인을 몰래 스르르 풀고 페달을 헛돌게도 하리 굴러가는 시간보다 담벼락에 어깨를 기대고 바퀴살로 햇살이나 하릴없이 돌리는 날이 많을수록 좋으리 그러다가 천천히 언덕 위 옛 애인의 집도 찾아가리 언덕이 가팔라 삼십년이 더 걸렸다고 농을 쳐도 그녀는 웃으리 돌아가는 내리막길에서는 뒷짐 지고 휘파람을 휘휘 불리 죽어도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리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
* 고전적인 자전거 타기 - 복효근 넘어져보라 수도 없이
* 노란 자전거 - 최마루 자전거 바퀴의 타이어는 질긴 생명 같은 뱃가죽이다 체인은 어떠한 고난에도 이길 쇠심줄이고 손잡이는 황소대가리이다
페달은 비 오는 날의 우산 같은 희망을 밟아가고
* 아버지의 자전거 - 박운초 마음 한쪽 아픔의 지도를 그렸던 기억이 있네
밤보다 더 어두웠던 슬픈 융단 같은 새벽 세상을 등진 내 아버지
어느 해부터 주인을 잃고 우는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
“어디로 가야 하니?” 내게 물어 와도 대답 할 수 없네
겨울이 오기 전 아버지의 사랑 너에게 넘겨주리라 *
* 자전거 도둑 - 신현정 봄밤이 무르익다
* 잠자는 자전거 - 박정원 그가 지나온 길들이 나무에 기대어 있다 왼쪽은 위로 오른쪽은 아래로 향한 페달 밟으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그 힘을 받쳐주던 체인도 털털거리며 달리던 바퀴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혼자 힘으론 결코 나아갈 수 없는 페달처럼 낭떠러지 직전에 멈춰버린 브레이크처럼 위태로운 발자국들 그림자들 수많은 정차, 왼발 오른발 무릎을 꺾었던 경계선 끝에 룰룰랄라 달리던 시간들도 얼기설기 비친다 그가 부린 짐들도 비켜서있다 어깨를 내어준 나무가 고요히 토닥이고 있다
* 자전거 타는 사람 - 김기택 -김훈의 자전거를 위하여- 당신의 다리는 둥글게 굴러간다 허리에서 엉덩이로 무릎으로 발로 페달로 바퀴로 길게 이어진 다리가 굴러간다 당신이 힘껏 페달을 밟을 때마다 넓적다리와 장딴지에 바퀴 무늬 같은 근육이 돋는다 장단지의 굵은 핏줄이 바퀴 속으로 들어간다 근육은 바퀴 표면에도 울퉁불퉁 돋아 있다 자전거가 지나간 길 위에 근육무늬가 찍힌다 둥근 바퀴의 발바닥이 흙과 돌을 밟을 때마다 당신은 온몸이 심하게 흔들린다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한 바람이 당신의 머리칼을 마구 흔들어 헝클어뜨린다 무수한 땀구멍들이 벌어졌다 오므라들며 숨쉬는 연료 뜨거워지는 연료 땀 솟구치는 연료 그래서 진한 땀 냄새가 확 풍기는 연료 당신의 2기통 콧구멍으로 내뿜는 무공해 배기가스는 금방 맑은 바람이 되어 흩어진다 달달달달 굴러가는 둥근 다리 둥근 발 둥근 속도 위에서 피스톤처럼 힘차게 들썩거리는 둥근 두 엉덩이와 둥근 대가리 그 사이에서 더 가파르게 휘러지는 당신의 등뼈 * *김기택시집 [소]-문학과지성사 |
출처: 숲속의 작은 옹달샘 원문보기 글쓴이: 효림
첫댓글 감히 저도 언젠간 사유에 사유를 더하여 써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초등학교6학년때 시골에서 아버지가 가르쳐준 자전거를 지금도 즐겨 타게 됩니다. 내가 손을 내밀어야만 다소곳이 날 따라 나서는 지극히 착한 녀석이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른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더욱 오른쪽으로 핸들을 꺽어야 하는 자전거 타는 일처럼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지요.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