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우리'가 될 때
제국은 수많은 작은 문화를 융합해 몇 개의 큰 문화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제국 내에서는 아이디어와 사람, 재화와 기술이 정치적으로 분열된지역에서보다 더욱 쉽게 퍼져나갔다.
제국 자체가 의도적으로 아이디어와 제도, 관습과 규범을 퍼뜨린 일도 빈번했다.
하나의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편하기 위해서였다.
하나의 제국 내에 있는 작은 관할 구역들이 저마다 별개의 법과 서식과 언어와 화폐를 지니고 있으면 지배하기가 힘들다.
표준화는 황제에게 대단히 유용했다.
제국이 공통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전파한 이유로
첫 번째 못지 않게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정통성을 얻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키루스와 진시황의 시대 이래 제국은 스스로의 행동이 ㅡ 도로 건설이 되었든 유혈사태가 되었든 ㅡ
우월한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정당화했다.
자기네 문화는 정복자보다 피정복자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가끔은그 이득이 현저했다. 법의 집행, 도시 계획, 도량형의 표준화가 그랬다.
그러나 가끔은 의문스러웠다. 세금, 징집, 황제 숭배가 그랬다.
제국의 엘리트 대부분은 자신이 제국 모든 주민의 일반적 복지를 위해 일한다고 진지하게 믿었다.
중국의 지배층은 이웃 나라와 그 신민들을 제국이 문화의 혜택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비참한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황제에게 천명이 부여된 것은 세상을 착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가르치라는 의도에서였다.
로마인들도 유사한 주장을 폈다.
자신들이 야만인들에게 평화와 정의와 교양을 전해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개한 게르만족과 얼굴에 물감을 칠한 갈리아족은 천하고 무지하게 살다가 로마인 덕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로마인들이 그들을 법으로 길들이고 공공 욕장에서 깨끗이 씻게 하고 철학을 통해 나아지게 해주었다고 했다.
기원전 3세기의 마우리아 제국은 몽매한 세계에 부처의 가르침을 퍼뜨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무슬림 칼리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계시를 퍼뜨리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
가능하면 평화롭게, 필요하면 무력을 써서라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제국은 자신들이 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부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을 진정한 싱앙으로 개종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쌍둥이 복음을 퍼뜨리겠다는 영국의 사명에는 해가 지는 일이 없었다.
소련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프롤레타리아의 유토피아적 독제로 향하는
불굴의 역사적 행진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무에 스스로 매여 있었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부에게는
제3세계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혜택을 자져다줄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좋은 것들을 순항 미사일과 F16 전투기로 배달해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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