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에서 만난 선생님
조성순
지친 여름을 위로하듯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이면 원종린수필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 올해는 유난히 길고 무더운 여름이 주춤거렸기에 9월 9일임에도 낮 기온이 30도를 넘었다. 그렇지만 아침저녁 부는 선선한 바람으로 마음엔 이미 가을이 스며들고 있었다. 올해로 제19회를 맞는 원종린수필문학상은 이미 수필문단에 널리 알려져 있다. 감히 수필문학상에 대해 이야기할 주제는 못 되지만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과의 소중한 인연으로 몇 해 전부터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 뿌듯하다.
선생님을 처음 뵌 건 2005년도 아파트상가에서 문구점을 하던 때였다. 가게를 하면서 한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듣고 있었다. 지도교수는 한국문단에 널리 알려진 시인이며 그 대학의 명예교수로 오랫동안 그 강좌를 이끌어오고 있었다. 열정적인 교수님과 늦은 나이에 학구열에 불타던 학우들과 더불어 가열하고 즐겁게 글쓰기에 매달리던 시간이었다. 목표를 세우고 매진한 결과 2006년, 드디어 원하던 곳으로 등단을 했다.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았다.
작가가 되었다는 자만심에 빠져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어느날, 테니스 채를 멘 노신사 한 분이 원고지를 사러 오셨다. 지금도 원고지에다 글을 쓰시는 분이 계시는구나 싶어 여쭈었다. 무슨 글을 쓰시는지? 수필을 쓰신다기에 용기를 내어 저도 수필을 쓰며 이번에 등단도 했다고 자랑(?)을 하니 등단 지를 물으신다. 좋은 잡지라는 인정과 더불어 축하와 칭찬을 해 주셨다. 또 한 번 으쓱했다.
다음 주에 학교에 가서 지도교수께 문구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수필 쓴다는 인사가 선생님 함자를 듣고도 알지 못했다니 수필 쓸 자격이 의심스럽다며 호통을 치신다. 참 무지해서 용감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저명하신 수필문단의 선배님들도 알고 만나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저 그 잡지에 응모하기에만 매진했다. 지인들은 아는 이 하나도 없으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는 거 아니냐고도 했다. 그럼에도 그 좁은 문을 통과했으니 잘난 줄 알았다.
문구점은 집에서 차로 20여 분 움직여야 하는 아파트상가였는데 선생님이 사시는 곳이었다. 가끔 테니스 치러 오가시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달려가 인사드리지 못한 순간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해 학교에서 동인지를 창간하고 다음 해 선생님을 고문으로 모시고「전집의 뒤풀이」라는 옥고를 게재하고 가끔 모임에서 뵙기도 했지만 살갑지 못한 성격 탓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옆자리에 앉은 이를 챙겨주거나 가벼운 유머로 좌중을 웃게 하시던 모습을 테이블 먼 자리에서 함께했던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적자를 면치 못하던 문구점을 그만두면서 모든 게 시들해졌다. 새 직장을 구해야 했다. 낯선 일터에 적응하기까지 잠깐만 지나면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습 기간은 내내 이어졌다. 직장에 묶이다 보니 학교도 동인모임도 참석할 수 없었고 자부심 넘치던 수필가란 이름도 잊고 지냈다. 그렇게 십 년이 흘러 퇴직을 하면서 첫 수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첫 수필집이 용기가 되어 옛 동인들을 만나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동안 함께 공부하던 이들도 등단하여 책을 두세 권씩 냈는가 하면 원종린수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느 문학행사장에서 선생님 아드님인 원준연 교수에게 용기를 내어 인사를 했다. 문학상 시상식에 가면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을 만난다. 주변 작가들 중에는 선생님의 제자들도 많다. 그분들의 추억에 비하면 내 인연은 스쳐 지난 정도라 말을 보태기 민망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문구점에서의 시간은 초라하고 화려했다. 가난했지만 부자였다. 그 시기에 등단을 했고 경제적으로 바닥을 보았다.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 강의를 들으러 가지 못하면 동료들이 찾아와 보충수업을 해 주었던 내 생에 가장 치열했고 빛나던 시절이었다. 다시 못을 그 시간을 되돌려 본다. '아파트상가 앞 횡단보도에 테니스 라켓을 어깨에 멘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나는 아침 장사를 마치고 건물 모퉁이에 있는 빵집에서 꽈배기를 사 오는 길이다. 꽈배기 한 봉지를 건네 보지만(이 부분은 순전히 마음뿐 몸은 제자리에 붙박이) 한사코 마다하시고 총총히 뒷모습만보이신다.'
오늘 대전문학관에 다녀왔다. 대전문인탄생백주년기념전 「당신의 100년, 나의 100년」에 선생님이 선정되어 개최 중이며 내년 2월까지 계속된다. 작품 일부는 물론 선생님의 결혼사진과 빛바랜 성적표도 볼 수 있다. 문학관에서 마련한 「꽃 타령」 한 문장 "잡목이 우거진 고향 숲 같은 오솔길을 걷고 싶다."를 색칠하면서 잠시 어딘가 있을 오솔길에 들어본다. 공주문화원에서도 문화예술인 문학인편 발간으로 선생님을 재조명한다니 뜻깊은 일이다.
가끔 원준연 운영위원장을 만나는데 어떤 순간, 문득 선생님이 오버렵 된다. 겉모습만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테니스를 즐기고 수필을 쓰고 유머 감각까지 어쩌면 그리 닮아 가시는지…. 작은 체구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국을 제패한 테니스 실력도 닮았을지 궁금하다.
어느새 가을 이 깊어간다.
월간 『수필문학』 2023년 11월
기획연재 생각나는 사람들
첫댓글 지금 돌아보면 문구점에서의 시간은 초라하고 화려했다. 가난했지만 부자였다. 그 시기에 등단을 했고 경제적으로 바닥을 보았다.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 강의를 들으러 가지 못하면 동료들이 찾아와 보충수업을 해 주었던 내 생에 가장 치열했고 빛나던 시절이었다. 다시 못을 그 시간을 되돌려 본다....테니스 채를 멘 노신사 한 분이 원고지 사러 오셨다..... (본문 부분 발췌)
저마다의 기억 속, 어떤 시간은 기억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기억해야만 하는 시간이 있어요. 초라하지만 화려했고. 가난했지만 부자였던.. 경제적으로는 바닥을 치고 문학적으로는 비상을 하신 그해.. 조성순선생님의 소중한 시간. 게다가 원종린 선생님을 만나시기도 하셨으니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시간이실듯해요.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어느새 가을이 끝을 향해 가내요.. 아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