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가~ 내 가까이엔 오지마~"
아내가 발로 쿵~ 어름장을 놓으니 빤히 보던 월이가 제 방으로 쫄랑쫄랑 갑니다.
하얀 털이 뽀송뽀송한 엉덩이가 곰실곰실 거립니다.
"월아~ 엄마가 혼냈쪄?"
딸아이가 냉큼 월이를 안으며 달래줍니다.
혀를 날름거리며 딸아이를 빤히 쳐다보는 월이의 눈빛이 참 선해 보입니다.
그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까마득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으로부터 52년 전...
골목길을 들어설 때부터 찜찜하던 기분이 결국 메리의 빈자리를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던 날. 내 사랑 메리는 내가 학교간 틈에 자전거를 끌고 다니던 개장수에게 팔려 가버렸습니다. 그 당시 돈으로 육천원.
족보까지 있는 혈통 좋은 도사견 메리는 가장 아껴주던 어린 주인을 못보고 떠나는 마음이 아쉬웠던지...앞에만 가면 오줌을 지린다는 그 서슬 퍼른 개장수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더랍니다. 건빵으로 달래고 달래서 다시 개장수 손에 넘겨주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던 눈물.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두 주먹을 꼭 움켜쥐고 옥죄어 오는 가슴의 통증을 애써 참아내느라...끙~ 소리도 냈었던 것 같습니다. 끝내 어머니 이야기 다 못 듣고...
"에이 씨~, 정말로 안 팔마 안 되겠십디꺼...그래 돌아온 걸 또 넘기 주고...엉~~엉~~"
"족보 있는 개라고 말했어예? 보신탕 집에라도 안 팔리 가게..."
좀 적게 묵지...
입 하나 더는 게 아쉬운 집에, 세숫대야 가득 누룽지를 먹어대더니...
꽁치 대가리라도 하나 없으면 주제에 밥도 안 먹고 투정 부리더니...
왜 가난한 우리 집에 왔어~ 어디 부잣집으로나 가서 다른 도사견들처럼 고기나 실컷 먹지~
개장수가 많이 몰려있던 반월당을 향해, 숨이 목 끝에 차도록 달려보아도 가슴을 옥죄는 아픔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눈물로도 씻어낼 수 없는 아픔도 가끔은 있나봅니다.
만나더라도 찾아올 아무 방도도 없었지만, 한번 보지도 않고...특별한 위로나 달래줌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질 수가 없어 사흘을 찾아 헤매다가...
똥을 한번 싸면 삽으로 구덩이를 파서 덮을 만큼 많이 싸고,
골목 어귀 내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문을 긁으며 반겨주던,
비록 못 먹어 갈비뼈가 숭숭 드러나 보였지만 그래도 투견의 위용을 당당하게 뽐내던,
펌프 쇠 손잡이를 목 힘으로 부러뜨리고,
낯이 선 사람이 들어와도 힐끗 쳐다보고 짖지도 않던 점잖던,
쌀 한가마니 갖다주고 얻어와 새끼 때부터 내가 길렀던...
그 메리를 결국 아쉬운 작별 한번 없이 떠나보내고 말았습니다.
가슴속 깊은 아픔으로 남은 채...그 후로 삼십 년의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습니다.
딸아이가 강아지를 사자고 졸라댔습니다.
강아지를 아파트에서 키운다는 것이 혹 사람에게는 삭막한 도시 생활 속에서 마시는 샘물 같은 기쁨이 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강아지에게는 미끈거리는 바닥, 사람 품속에서의 삶이 어쩌면 잔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래도록 강아지 키우기를 거부해 왔었는데...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해 애를 먹고 있는 딸아이의 상담의사가 권고도 하고, 동물이라면 질색을 하던 아내도 자식의 일인지라 힘겹지만 한번 키워볼까...하는 마음도 먹는 것 같아 드디어 작심을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드디어 강아지 한 마리를 동물병원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이미 데리고 오기 전부터 지어진 이름.
용이라 불렀습니다.
시추 숫놈. 생후 삼 개월. 먼저 있던 집에서 그 어린 몸에 이미 중성수술을 받은 강아지였습니다. 할머니와 성격이 안 맞아 다음 주인을 기다리던 녀석은 시추 특유의 애처로운 눈으로 우리 부녀를 빤히 보고만 있었죠. 집으로 데려오는 동안 용이는 아주 얌전한 녀석이었습니다. 딸아이와 저는 용이를 사랑으로 감싸줄 여러 의견들을 주고받았죠.
집에 들어온 용이는 근데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어린 몸에 중성수술이란 가혹한 수술을 받아서인지...지난 주인에게서 넘겨진 마음의 상처가 컸는지...짖고 물고...
간신히 동물을 키워보겠다며 결심했던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발을 여러 번 물린 딸아이도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문다고 혼을 내면 더욱 사납게 덤벼들고...
급기야 용이는 베란다로 쫓겨났다가 그 다음날 동물병원에 다시 데려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기대감이 컸던 딸과 아들은 그날 밤을 눈물로 지샜습니다.
단 하룻밤의 인연이었지만 어쩔 수없이 용이를 돌려보내야 함이 용이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더 깊게 하지나 않았을까...염려하는 아이들 마음이 기특해 보였습니다.
보내는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상처가 될 것 같아, 얼른 인터넷 강아지 직거래 장터를 찾았습니다. 분양을 받기 위해 사진과 함께 즐비하게 진열된 강아지들...
이틀간 딸아이와 열심히 검색을 한 끝에 드디어 한 마리를 찾았습니다.
페키니즈 암놈. 생후 2개월. 3남3녀 중 막내. 엄마 품에서 살다가 분양을 기다리는 하얀 털이 빛나는 코가 납작하고 눈이 선한 녀석. 녀석의 이름은 달빛처럼 하얗다고 해서 '월'이가 되었습니다.
데리고 온지 이틀만에 오줌을 가리고...잘먹고 잘자는 아주 총명하고 건강한 녀석입니다.
자기를 제일 아껴주는 딸아이 뒤를 쫄랑거리며 따라다니고, 가까이 다가가면 질색을 하는 아내 곁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피해 다닐 줄도 압니다.
마침 아내 곁으로 다가가다가 질색을 하는 아내의 태도에 놀란 채 딸아이의 품에 안긴 월이의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그 눈 속에서 삼십 년 전의 메리가 웃고 있었습니다.
그 웃는 눈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주인님. 저 돌아왔어요. 이젠 저 지켜줄 수 있죠?"
속다짐을 하면서 말없이 그저 월이의 머리를 자꾸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지켜주고 말고...이젠 지킬 수 있단다...이젠...'
***
그렇게 돌아온 인연도 회자정리 법칙 따라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져 또 근 십육년의 세월이 흘러 갔습니다.
돌아보는 인연, 그 추억에 함께 해준 친구님들께 감사하면서...
월이 지상에서든 하늘에서든 행복하기를 빕니다.
첫댓글 개장수한테 팔려간 메리가
넘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
.
얼마전 쇼츠영상에서
개장사 트럭이 지나가니
진돗개가 무서워서 개집에 들어가
벌벌 떠는 장면을 봤거든..
월이를 키우면서 메리 생각이 많이 났겠네
정말 메리 생각 많이 나더라.
덩치는 커도 참 순한 녀석인데...
날 어데로 보내냐며... 돌아왔다니.
돌아온 녀석을 달래서 보냈다니...
아고... 지금 생각해도 눈물 핑 돈다.
아우웅.......메리와의 이별이 그렇게 있었구나......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나도 알지.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이별의 경험이 있으니.......
그런 메리가 그렇게 월이로 규익친구한테 왔고
키울동안은 메리생각도 많이 나고 행복했었겠다.
이별은 그 누구도 피할수가 없는것이니
어디서든 규익친구 말처럼
행복하기만을 빌어야지 뭐,
잘 지내고 있을거야 월이는..........
월이 덕분에
따뜻하고 사랑스런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글 써두길 얼마나 다행인지...
가끔 생각날 때 더듬을 흔적이 있으니...
메리얘기에 가슴이 찡하다 월이하고에 이별도 마음 아프고 그래도 월이한담 읽으면서 재미있었네 월이도 행복했을거로 믿으며
그간 재미있게 읽어줘서 고마워~
조만간 월이글 차분히읽을께요
맘아프지만 행복한
사랑이 가득한글~ 입니다
어쩜글을 이리잘 쓰는지~
나의 어렸을적 이랑 비슷해서~
지금생각해도 맘 이 애려요
난 소를그렇게 보내구 엄청울었어요
눈이선하고 착한소~~
나도 시골 친구들 정 들었던 소와
이별하는 장면 들으며 많이 슬프던데...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