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우리나라 대개의 시골 마을 한 어귀에는 적어도 2백 살이 넘은 느티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누이 집에는 한 자리에서 250여 년을 자라온 탱자나무도 있습니다. 작년에 조경목을 사러 다니는 사람이 3천만 원을 호가하며 사겠다고 했지만 팔지 않았습니다. 속리산의 정이품 소나무는 수령이 약 600년이랍니다. 20년 전에 중국의 칭다오에 가서 1,200년 된 나무를 보고 놀랐는데 우리나라 강원도 정선 사북에는 무려 1400년 된 주목이 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유배되었던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 섬에는 190살로 추정하는 거북이가 아직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몇 해 전 어선 그물에 걸려든 그린란드 상어들을 탄소측정법으로 측정해보니 가장 나이 많은 놈은 512살이나 되었답니다. 그런가 하면 502년이 된 대합도 있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신 서왕모(西王母)가 지니고 있던 영생불사의 선도(仙桃)를 한 개도 안 남기고 전부 먹어버리면서 죽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는 동방삭의 별명은 삼천갑자입니다. 1갑이 60년이니 3천 갑이면 18만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살아있다는 이갸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지은 사람 아담은 몇 살까지 살았을까요. 창세기 5장에는 아담의 계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에 죽지 않고 하나님께 붙들려간 에녹의 아버지 야렛은 962세까지 살았습니다. 에녹의 아들 무드셀라는 969세를 살아 최장수자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1일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생명표가 있습니다. 현재 연령별로 남아있는 평균 수명을 보기 쉽게 표로 만든 것입니다. 이 표에 따르면 제 나이의 사람들은 앞으로 평균적으로 19년 정도를 더 살게 됩니다. 그러면 만 84세까지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마태복음 6:27)"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하 누구도 빗겨갈 수 없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의 수명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모든 날이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우리의 일생이 얼마나 짧은지 헤아릴 수 있게 하셔서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0-12).” 이 말씀에 의지해 저는 80까지 건강하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사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날이 5365일 남았습니다.)
오늘 제가 묵상한 말씀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주님 알려 주십시오. 내 인생의 끝이 언제입니까?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인생의 전성기조차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걸어 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한평생이 실로 한 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입니다.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내 희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시편 39:4-7.)“
주님 앞(코람 데오)에서 우리의 수명은 아무 것도 아니라(nothing)는 말입니다. 제아무리 잘나가도 한낱 ‘입김’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입김’은 어제 살펴보았던 잠언(21:6)에서 ‘안개’라고 번역된 같은 히브리어 ‘헤벨’입니다. (이 시편에서도 안개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코람 데오.
전병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