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녹번초등학교에 근무한 여교사 모임 18명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처음 개교한 학교라서 아담하고 작은 규모의 학교였다.
학교 옆으로는 나즈막한 솔숲 공원이 있다.
남향의 아담한 학교 운동장 옆으로는 등나무교실이 있다.
등나무교실 하나에는 탁구실이 있어 퇴근무렵
탁구를 좋아하는 선생님들과 탁구를 친다.
이겼다고 웃고, 졌다고 시무룩한 표정을 바꿔주기 위해
녹두빈대떡과 막걸리로 퇴근길이 즐겨웠지.
세월은 흘러 40대 후반이었던 시절
그 시절 연세가 가장 많았던 연희선생님의 산수연
80세의 생신을 기념하는 날이며 녹번여교사모임도 같이.
아마도 그 시절 연세가 제일 많으신 60대의 선생님이셨다.
성당에서 10시 미사 반주를 급히 마치고,
최선생님을 응암역에서 만나 힐튼호텔 에머럴드룸으로 달린다.
내부순환도로가 생기면서부터 정체가 극심한 유진상가 고가에서
아까운 기름을 태우면서 한참을 기다리며 연희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아이들을 손자처럼 사랑하셨지.
선생님의 산수연을 축하하는 꽃다발이 즐비하다.
빨간 치마에 흰저고리를 입은 딸과 며느리가 6명인가보다.
자손들이 치루어주는 산수연이 화려하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그당시 교무선생님이셨던 김선생님은 교장으로 퇴임해서
아직도 목소리는 쩌렁쩌렁 8순을 무색케한다.
사회를 보시는 모습이 아니 이게 운동장 조례시간인가 할 정도로
딱딱한 학교 분위기에 우리는 웃음이 나와 킥킥거린다.
82세의 동창선생님의 그리운 금강산의 축가는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분위기는 너무 숙연하고 놀라움으로 잠시 진공상태로 이어진다.
80의 나이로 허리도 굽지않고 높은 구두를 신고 표정이며
제스춰는 우아와 겸손의 극치였다.
고령시대의 연세높은 분들의 조용조용하고 이지적인 분위기에
우리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신기함을 느꼈다.
우리도 저렇게 우아한 모습으로 늙어야지 곱게 아름답게 건강한 모습으로...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기관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이를 들어보니 새삼 깨달아지는 시간이었다.
값비싼 도자기는 값이 나간다고 늘 닦고 가치를 부여하듯이
내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늘 책을 읽고 자기연찬의 시간이
필요함을 깨닫는 하루였다.
황사로 인해서 하늘과 온 주위는 회색빛으로 우울한 날이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의 한 고령선생님의 잔치는 화려하고 아름답고 멋졌다.
첫댓글 멋진 산수연에 다녀오신 감회를 수채화처럼 표현하셨네요. 뵙지는 않았지만 아주 우아하게 노년을 잘 맞으신 분 같네요. 잘 늙어간다는게 참 어려운 일인데.... 아무 부러운 분이네요.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어 주시려고 이리키 총총하게 올려 주신 분 참 우아하시고 고우십니다. 감사합니다.
황사 속에서 걸러내는 맑고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흙탕 물 세상살이에서 고고한 선비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산수연의 주인공과 함께 이를 스케치한 환한웃음님의 필치에도 찬사를 보냅니다. 건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