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혹은 셋 : 정읍에서의 한나절/ 버려진 두 당간지주, 외로운 두 석불입상, 반가운 세 옥토끼
정읍과 김제의 일부 문화재를 돌아보았다. 이번 답사에서는 몇 차례의 답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만나지 못했던 문화재를 중심으로 삼았다. 먼저 정읍 시내 주택가에 있는 정읍 입석리당간지주를 찾아 나섰다. 이 당간지주는 정읍시 입석남길 45-75[상동 545-1]를 주소지로 한 집의 대문 바로 옆 골목길에 있다. 나는 포털지도의 길찾기 기능을 믿고 근처에 주차한 뒤 찾으려 했으나 현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바람에 동네를 두어 바퀴 돈 뒤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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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입구의 쌈지공원 주소인 ‘정읍시 장명동 153-6’을 입력하고 접근하여 이 인근에 주차하는 것이 좋다. 노인회 장명동분회가 근처에 있으며, 이 분회를 왼쪽에 두고 골목 안으로 진입한다. 이 분회 뒷마당에 큰 공적비가 있으니 표지로 삼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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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스테인레스로 만든 대문이 보이는데 얼핏 보면 당간지주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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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는 대문 향우측 벽면 앞에 마주보고 서 있다. 비록 치석은 거친 편이지만 이처럼 번듯한 한 쌍의 당간지주가 당치 않은 푸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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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짖어대는 강아지 때문에 대문을 열고 나온 주인분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이 분 생각에도 굳이 이곳에 처박아두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당간지주를 옮기기 위해서는 여러 논의와 예산의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일대의 주택들을 모두 구입하여 밀어낼 수 없다면 인근에 공터를 마련하여 옮겨주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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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 등록문화재 제213호인 정읍 진산동 영모재(辰山洞永慕齋 정읍시 진산동 311-1)를 다시 찾았다. 시 외곽, 다음 목적지와는 거의 반대방향에 있음에도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대문에 옥토끼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대문을 올려다보는데 옥토끼가 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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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에 안에 있던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나와 짖어대고, 수많은 그림 속에서 옥토끼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적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대문이 열리고 주인 분이 나오신다.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자 “잘 안보이시죠? 보머리를 자세히 보세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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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데 주인분이 알려준 ‘보머리’라는 용어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검색을 해봐도 쉬 찾을 수 없어 건축을 전공하는 우리 카페 최성호소장님께 여쭤봐 알게 되었다. 보머리는 보마구리, 또는 보뺄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최소장님은 ‘집주인은 보머리 잡고 울고, 목수는 보허리 잡고 운다’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알려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주인 분은 문화부 기자를 지냈고, 지금도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석사학위논문 등 여러 편의 논문도 발표했다고 한다. 이 분께 대문과 영모재, 문화재 지정경위와 정읍시청과의 갈등 등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모두 옮기지는 못한다. 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상대방의 반론을 들을 기회가 없으므로 일방적인 주장일 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검색을 해보니 이 분의 이름은 이용찬이다. 전북 공식블로그에 최근 올라온 소개글을 링크한다.(http://blog.jb.go.kr/221221966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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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몇 가지만 옮기면, 문화재청 등 대부분의 공식자료에 ‘영모재는 1915년에 광산김씨의 묘가 있는 곳에 지은 재실’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실은 이곳은 죽산안씨 세거지로 그들의 건물이었다는 것, 대문간의 그림 중 중단의 용 그림 등부터 그 이하는 70년대에 여주인이 시멘트 바르고 새로 그렸다는 것, 채용신의 그림을 보면 당시까지도 무성서원 안의 사당인 태산사는 서원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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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대문을 바라본다. 안쪽에도 많은 그림이 장식되어 있으며, 보머리의 안쪽에는 쌍학(雙鶴)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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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재를 바라보고 있는데 건물의 특징을 이야기해주신다. 다 기억에 남지는 않았고, 네 귀퉁이를 받치고 있는 활주의 하단에 8괘가 새겨져 있고, 상단에 연봉(蓮-)이 조식되어 있는데 국내 유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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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곧 나가야 한다.’며 많이 망설이시다(나도 시간이 없으니 완곡하게 고사했었고) 결국 영모재 안의 거처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 이곳에서 추가 설명과 함께 영모재가 광산김씨 김평창(덕홍)의 사후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 사진, 내장사 대웅전에 꽃창살이 있었다는 사진 앞서 언급한 채용신의 그림을 찍어둔 사진 등을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무성서원과 태산사가 떨어져 있는 부분을 캡처하여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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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소성면 고교리에 있는 석불과 철비를 보려고 했지만 영모재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고,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쉬움 속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도유형문화재 제118호 망제동석불입상(望帝洞石佛立像)으로 가는데 한쪽 방향을 막고 번갈아 통행을 시키고 있는 길로 다시 가야 했다. 게다가 바로 앞차는 거북이걸음인데 추월할 방법도 없다. 시간은 모자라고, 마음은 급하고…
그래도 어쩌겠나! 하늘로 날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더니 여기에 내 실수까지 더해진다. 정읍시내에서 이평면 방향으로 향하는 705번 지방도로의 정읍천을 건너는 녹두다리 북단에서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을 했어야 했는데 잠깐의 망설임 때문에 직진을 했다. 두 내비게이션 모두 직진을 이야기했고, 좌회전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진을 하다 보니 두 내비 모두 목적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안내하고 있었기에 유턴을 해 결국 이 길로 접어들었다.(아래 캡처한 사진의 고동색 표지판을 보고 가면 된다. 반대쪽에도 글씨가 쓰여 있으니 북에서 내려온다면 이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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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동석불입상은 전에도 이 길까지 진입하였지만 더 이상 갈 길을 찾기 어려워 포기한 일이 있다. 아마도 2010년이었을 것이다. 이 길은 비좁은 데다 비포장이고, 공사트럭이 자주 오가기 때문에 주행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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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것은 삼거리에 석불입상표지판을 세워두었다는 점이다. 표지판은 이후 여산송씨세천(世阡)비 앞에도 세워져 있다. 두 마리 강아지들의 과도한 환영인사 속에 재실 입구에 겨우 차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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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상호의 마모가 심하고, 시무외여원인을 한 손의 표현은 무척 어색하다. 통견의 대의가 시작되는 가슴 어림의 옷 표현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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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대석과 함께 별도로 조성한 두 발과 불신의 위치가 어긋나 있는 것이 아쉽다. 복원하면서 그리 되었을 텐데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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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 옆에는 ‘망제동석등’이란 불리는 조선 초기 석등도 한 기 있다. 자료에는 옥개석만 원부재이며 나머지는 근래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되어 있지만 나머지 부분도 그런대로 세월의 때가 묻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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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의 석불과 석탑 중 지정문화재는 거의 다 보았는데 앞서 본 망제동석불과 문화재자료 제139호 백운암석불입상(白雲庵石佛立像: 정읍시 이평면 산매리 산54번지)은 보지 못했었다. 전에 본 은선리와 천국사지의 두 보물석탑을 찾아 다시 자세히 살필까, 아니면 가보지 못했던 석불을 보러 갈까? 갈등은 결국 후자의 승리였다. 마을 끝, 산자락에 있는 자그맣고 조용한 절집 백운사. 불상은 절집 입구의 사방이 트인 전각 안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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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38㎝의 자그마한 석불입상. ‘문화재자료’로나마 지정을 해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손이 심한 불상이다. 특히 상호는 이목구비를 제대로 분별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다. 정방형에 가까운 대좌도 파손이 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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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 복흥리에 있는 복흥리사지 당간지주는 아마도 우리 카페 쥔장이신 선과님의 글을 보고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마을 입구에 있는 북면 복흥리 342-1번지, 탑성마을회관을 찾아 앞에 주차한 뒤 마을회관을 등지고 좌측골목으로 들어간 뒤 첫 우측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안내해주셨다. 이 안내대로 가도 되고, 아니면 마을회관에서 오른쪽 개울을 따라 가다 첫 골목에서 왼쪽을 보면 된다. 당간지주가 있는 집의 주소는 복흥리 47-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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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잃고 외로이 남은 당간지주는 담장의 일부가 되어 있다. 높이를 재볼 수 없었지만 대략 4m 남짓 되는 것 같고 측면과 후면도 정교하게 치석된 것 같다. 안쪽에는 제일 위에 간구를 조성했으며, 상단 중간에 방형 간공이 있다. 담장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래 중간에도 간공이 있음은 알 수 있다. 준수하고 훌륭한 당간지주를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정말 잘못이다. 이 동네에는 불두가 결실된 석불좌상 등이 더 있다고 하지만 찾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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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군 송연손[宋演孫, 1460(세조 6)~1508(중종 3)]의 신도비를 찾기 위해 약 2년 만에 칠보면 무성리를 다시 찾았다. 당시 인근 여러 묘역을 뒤져 보았지만 찾지 못했는데 다녀온 뒤 아무리 생각해도 한 재실 뒤에 있는 묘역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당시 재실에 있던 분이 이 뒤는 여산송씨묘역이 아니라고 하여 발길을 돌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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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 뒤로 돌아가면 대략 3군데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바로 뒤쪽에 10여기의 봉분이 있는 묘역으로 접근했다. 입구에 진입하자마자 보이는 묘비에서 여산송씨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수가 있는 묘표가 보여 뒤로 돌아가 보니 옥토끼는 없지만 달이 표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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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을 올려다보니 봉분의 향 좌측에 모로 선 신도비가 보인다. 저 비석이다! 마음이 급해도 걸음은 천천히. 과연 맞을까? 맞았다. 송연손신도비를 드디어 만난 것이다. 구름 속 두 마리 용이 용틀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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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돌아간다. 중앙에 둥근 달이 표현되었고, 좌우로 긴 띠를 펼쳐 상하를 구분하였는데, 아래쪽에는 아마도 파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무늬를 새겼다. 위쪽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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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달 안에는 보기에 왼쪽에서 자라난 계수나무는 오른쪽 하늘을 덮어 그늘을 만들어준다. 그 아래에는 옥토끼가 열심히 절구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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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옥토끼 묘비는 정읍시가 아니라 옆 지역인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 산자락에 있다. 짐작했던 주소지가 아니어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이 묘소의 주인공은 송여종이란 분으로, 묘소 향 좌측에 있는 신도비 이수 뒷면에 옥토끼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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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여종[宋汝悰 1553(명종 8)∼1609(광해군 1)] 신도비의 이수 뒷면은 앞서 본 송연손신도비의 그것과 대체로 유사하다. 두 분 모두 여산송씨이고 약 1세기의 차이가 나므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달 안에는 계수나무는 표현되지 않았고, 토끼는 절구질을 한다기보다는 절굿공이에 매달려 있는 듯한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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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묶기 어려운 문화재를 같은 날 답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하나의 글로 남겨 본다.
[2018년 3월]
첫댓글 입석리는 도로명 주소 입력하면 집앞 아니든가요?
교성리는 밭 가장자리에 있고
백운암은 진입로가 꽤 길었다는 기억.
10여년전에 망제동을 한 번에 찾아 간 분은 없었을 겁니다.
저도 돌아나와서 다시 들렸었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입석리는 골목 안에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로당 반대쪽 도로를 검색하여 접근했습니다. 여기서 바로 골목으로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포털지도가 현위치를 잡지 못하는 바람에 헤맸습니다. 백운암은 말씀대로이고, 이제 망제동은 많은 분들이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내비는 믿지 말고 사전에 진입로를 잘 연구한 뒤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성리는 다음을 기약해야지요. 쥔장님 덕분에 돌아볼 마음을 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당간지주가 서산동문동당간지주 인 줄 알았는데
입석리당간지주의 현재 모습에 마음이 참...
정읍답사를 하면서 입석리 그 부근을 몇번 돌다가 그냥 포기했었지요.
김제 귀신사 부도 찾는데 시나브로님의 안내가 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정읍의 당간지주를 찾기도 수월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ㅎ
새벽님의 당간지주 사랑이야 익히 잘 알지요.
여름이 오기 전에 한번 바람 쐬고 오시면 좋으실 텐데요.
두 당간지주는 모두 쥔장님의 자취를 따라 갔다온 길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ㅠㅠㅠ
정말 코앞까지 갔다 되돌아 오셨군요. 저는 사진으로 보인 삼거리에서 우회전까지 했는데 도저히 맞다는 자신이 없어서 되돌렸었습니다.
안쓰러운 당간지주, 옹색한 시무외인의 불상, 옥토끼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바쁘게 한나절을 돌아다녔습니다.
언젠가 같이 가고 싶기는 한데 시간을 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간지주들이 ... 민가 담장의 지주노릇을 .... 쯥
세월은 무심하고 무상할 뿐이겠지요.
복원에 대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요. 안타깝습니다...
인간의 배려가 없는 당간지주
당간지주의 의미는 무얼까?
항상 수고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서산의 당간지주도 그렇고, 이 당간지주들도 보다 나은 상황으로 보존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백년하청이 될런지 모르겠지만요...
송연손 신도비 간다고 했으면 알려드릴수있었는데요
처음 시도했던 것은 거의 2년 전이고요, 이번에는 그 자리가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헤매지는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