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가 가장 많이 남은 군산 근대문화유산 답사
군산 구불길 고군산길 답사를 마치고 나니 오전 10시가 못되었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던 결과이며 사전에 치밀한
준비도 한 목 했다. 이제부터 제주 오르미들 군산발 제주행 비행기 출발 시각에 맞추어 군산 가서 점심을 먹고 남는 시
간에 '군산 구불 6-1길 탁류길' 일제강점기에 군산 원도심을 중심으로 남겨진 일제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월영동을 중심으로 적산가옥 답사를 진행한다.
▶한주옥 (군산시 영화동 15-11)
나는 단골이라고 생각하는데 한주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만 하는 앓음이나 다름없다. 군산은 타지방
보다 비교적 자주 들른 셈이다. 새만금 방조제, 부안 국립공원 변산반도, 내소사, 채석강, 등의 명승지를 혼자, 가족, 친
구들과 등산, 여행, 답사의 명분으로 다닐 때 점심은 꼭 군산 한주옥에서 먹었다. 오늘도 제주 오르미들 모시고 꽃게장
정식(@22,000원)으로 점심을 먹었다. 제주도에는 없는 맛이라고 감탄했다.
▶이성당 본점(군산시 중앙로 1가 12-2)
한주옥에서 5분 거리 군산에서 유명한 빵집으로 가히 전국구이다. 나는 빵 보다 밥을 더 좋아한다. 한 끼 칼로리를 빵에
서 보다 밥에서 구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빵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동기들과 부부 합동으로 버스를 대절해 내소
사 답사를 가는 길에 한주옥에서 점심을 하고 잠시 대기하는 시간에 부인네들이 '이성당'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봤
다. 그때 이성당이 유명한 빵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군산시 월명동 적산(敵山)가옥들은 해방 후 일본이 철수하면서 일본인의 소유 주택을 정부가 귀속하였다가 일반인에게
불화된 주택을 말한다. 월명동 적산 가옥 밀집지역이다. 이것들은 현재 성당, 카페, 식당, 스튜디오, 게스트 하우스 등
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방으로 가옥이 자리 잡고 중앙에 정원이 있다. 정원이 아니라면 동네 공터가 마땅할 터인데 그 후 근대역사 거리를 만
들며 조성한 모양이다. 수목은 어리고 석물은 뺀질뺀질하고 통로는 현대판 보도블록으로 깔았다, 가옥들도 겉모양만 일
본식이지 내부는 온돌을 깔고 우리식으로 다 고쳤다고 한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끌고 갈지 모르겠지만 역사적 가치
유무를 떠나서 개인의 사유재산이라면 그들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군산 원도심인 월명동 장미동 일대에는 아직 170여 채의 적산가옥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1876년 개항 이후
건립되고 50년 이상 지난 근현대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대상에서 빠진 건물들은
서서히 사라지겠지 그때 가야 명실공히 일제의 청산이 종결된 것으로 볼것이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群山 新興洞 日本式 家屋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 (一名 히로쓰 가옥)
일제강점기 군산 신흥동 일대는 군산 유지와 부유층 거주지역으로 당시 일본인 히로스 게이샤브르가 지은 2층 목조 가
옥이다. 히로쓰 氏는 당시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하며 당시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해방 후 敵産家屋으로
분류되어 호남제분으로 소유가 이전되었다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되면서 군산시가 관리한다.
관람동선
본채
가운데 정원인데 자연석을 아무렇게나 같다 놓고 키큰 소나무와 향나무를 담장 안에 심은 것과 사철나무 영산홍과의 중
앙 공간이 탕 빈 것이 허전했다. 한국식과 일본식의 절충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부속채
가옥 전경
뒷마당에 향나무가 이색적이다. 향나무 樹齡이 건물을 세운 시기를 증명할 날이 올 것이다.
뒷마당 창고, 화장실 건물과 우물, 꿀뚝,
뒷문에 솟을 문과 키 큰 나무가 있다. 잎이 칠엽인걸 보니 일본목련나무인가? 이어 가가운 동국사를 찾아간다.
▶대한불교 조계종 월명산 동국사(東國寺)
1909년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찌다(內田佛觀)가 금강선사로 창건하여 일제 강점기동안 일본 승려가 운영하다
가 해방 후 조계종 사찰로 등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과 요사체
범종각
군산 동국사 대웅전(大雄殿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
일본 전통 曹洞宗 사찰로 일본 사찰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법당내부가 일부 변형되었지만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보물 제1718호)
조선시대(1650년)의 불상으로 소조석가여래삼존상(아난존자, 석가모니불, 가섭존자)과 그의 복장유물이다. 복장 발원
문 기록을 통해 제작연도와 제작자(應梅)가 밝혀졌고 본래 김제 금산사에 봉안되어 있는 것을 1950년에 동국사 주지
김남곡 스님이 전북 종무원장으로 계실 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소조불이란 나무를 깎아 심을 만들고 흙을 발라 만
든다.
동국사(군산시 금강동 135-1) 관람을 마치고 진포 해양공원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코로나 창궐로 공공장소
는 어디 가나 한산했다. 정해진 코스로 입장하여 얼렁뚱땅 관람하고 나왔다. 요즘 새로 지은 기념관이란 것들은 건물 규
모에 비해 전시물이 빈약하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 빛 좋은 개살구 같아 관심이 떨어지니 전시 공간을 줄이더라도 감동
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오르미들을 군산공항으로 태워다 주고 서울로 돌아왔다.
2022년 4월 21일
첫댓글 군산에는 저도 친분이 좀 있는 사람인데
막상 군산은 살펴보지 못한....... 워낙 관심밖이었을까요?
유물. 유산
일제가 남긴것들도 보존하여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것이 저의 생각
허기사
뭐
일제에 충성한 사람들은
그 자손도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을 5선인가...씩 해먹는 세상이니......
아직도
일본의 속국에서 벗어 나지 못했다고 보는것이........ O?.X?
ㅎㅎ
기시다 찾아 가서
통사정 하는 꼴이라니.......
왜
나는 일본이 이렇게도 싫지?.... 아베 이후로 특히
카메라는
캐논. 소니... 다 일본제품 사용하문서......... 면도기도 일제 같은데......???
군산은 만경평야, 새만금 간척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앞으로 그곳에 무엇이 들어설지 좋은 세상 오면 군산은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군산이 기대됩니다
@염정의 일본은 저 하고는 사돈 나라입니다. 둘째 놈이 나고야로 장가갔지요
현재 서울 상암동에서 딸 둘 놓고 잘 살고 있습니다.
며느리도 착합니다.
사돈은 친한파입니다. 안사돈은 선생입니다. 코로나 전에는 일 년에 방학 때마다 방한하곤 했답니다. 그때마다 만나서 식사도 같이하며 우린 친하게 지냈답니다.
덕분에 앉아서 군산 여행 잘한듯합니다.
저는 사진에있는 일본식숙소 고우당 바깥채 에 고은시인이 자주왓다던 사케집에서 정종마시고
다음날 아침은 한일관 소고기무국으로 속을 달랩니다.
갠적으론 해망동 어시장의
바닷가 비릿한 냄새가 정겹습니다.
일본은
가서보면 사람들도 친절하고 배울것도 참 많은 나라인데
그놈의 극우 위정자들의 망동으로 너무나 싫은 나라가 되어갑니다.
백화양조의 고장 군산
오늘저녁 정종한잔이 생각듭니다..
군산 시내는 일제 식민 시대 잔존 건물을 중심으로 다녀봤는데 그것도 시간이 부족해 수박 겉 활기 식이었습니다.
군산은 땅이 많으니 구 도심은 잘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래의 국제도시 군산 하이팅! 감사합니다.
군산에 일제시대 적산가옥이 꽤 많이 남아 있네요. 서울의 회현동과 명동, 그리고 충무로등 과거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동네도 이제는 그 잔재를 찾기 어렵습니다. 회현동에나 가서 봐야 몇집 발견할수 있지요.
그런데 군산에 저 많은 적산가옥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으니 역사의 유물로 관리를 잘 했나 봅니다.
반일, 일제 청산을 가장 많이 외치는 곳에서 우리나리에서 적산 가옥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는 게 아이러니 합니다.
역사는 이유불문 보존해야지요
그리고 삼청공원 북악산 북한산 형제봉 정릉탐방지원센터 무사히 종주했습니다.
북악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 지 똑똑히 봤습니다.
@안태수 그럼 삼청공원 부터 시작 하셨는지요? 북악산 오르신후 북한산 형제봉으로 직행 하셨군요.. 대단 하십니다.
형제봉 오르면 북악산이 똑똑히 보이지요. 저는 이제 한봉우리 오르기에도 벅찹니다. 건강하실때 많이 다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