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아! 아! 풍운의 중원천하무림!
백무린의 입에서 죽음의 명령이 떨어지고,독안야타가 비명과 함께 쓰러진 것은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무슨…… 일……?" 벽월공주 아란의 얼굴에 경악과 의혹이 떠오르는 순간,털썩! 독안야타의 신형이 지면을 구르고 있었다. "으……!" 그의 눈은 불신과 경악으로 크게 떠져 있는 가운데 서서히 힘이 풀려가고 있었다. 아아……! 그의 발바닥을 보라! 그곳에 두 자루의 검이 각기 자루만을 남긴 채 깊숙이 꽂혀 있지 않은가. 두 자루의 검이 그의 발바닥을 파고들어 그의 다리를 꿰뚫은 채 깊숙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저 저것은! 인자(忍者)들이 사용하는 지행잠입술(地行潛入術)!" 대천성승의 눈이 커졌다. 순간, 독안야타가 서 있던 지면이 꿈틀거리며 그 밑으로부터 두 명의 흑의인이 솟아났다. 그들은 백무린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천명(天命)! 완수했습니다!" 일체의 감정이 깃들여 있지 않는 담담한 음성. 아아! 바로 살삼림의 제자들이었다. "훌륭했다! 물러가라!" 백무린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 누구도 이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후, "그, 그대는… 도대체… 안자까지 거느리고 있었단 말인가?" 벽월공주 아란이 비틀거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어서 돌아가시오! 비록 천왕마경의 무공을 익혔다 하나… 천하를 활보하기에는 너무도 미약하오!" 백무린이 그녀를 직시했다. "으……!" 그녀의 신형이 휘청했다. "대, 대정왕 백무린…… 바로 당신이었군!" 벽월공주 아란이 이를 악물었다. "백, 백무린…! 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언젠가… 내손에 죽… 으리라!" 그녀의 눈에서 악독한 광망이 뻗어나왔다. "……" 백무린의 눈은 담담할 뿐이었다. "그 때까지… 제발 죽지 말고… 살아 있어 주길 바랄 뿐이다." 벽월공주가 비틀거리며 몸을 돌렸다. "언젠가… 그대는… 내손에… 내손에… 죽을 것이다." 그녀의 처연한 음성이 점차 멀어져 가고 있었다. 헌데…… 돌아선 그녀의 눈, 그곳에서 희미한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일이 실패로 돌아가고 독안야타가 죽음을 당했다고 슬퍼할 그녀가 아니지 않는가! 모를 일……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어둡게 내려앉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 "쓸쓸해 보이는군……!" 백무린의 눈에 멀어져 가는 벽월공주의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대는 시기를 잘못 타고 태어난 비운의 여인일지도 모르겠군. 대원의 번성기에 태어났다면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을 사람이건만……" 백무린. 오늘따라 그의 가슴이 젖어 들고 있었다.
여명(黎明). 바다 저 쪽으로부터 태양이 움트고 있었다. 천하를 밝히는 태양. 오늘의 태양은 곧 새해의 첫 태양이었다.
정월 초하루! 천하는 무섭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당금의 무림정세가 무림사 초유(初有)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 많은 군소문파의 난립, 하루에도 수십여 개의 문파가 우후죽순처럼 건립되었으며, 명문대파인 구파일방(九派一幇)의 위세도 무림사상 최상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사도무림(邪道武林)의 기세 또한 욱일승천하는 기세가 아니던가! 대설산의 대설전(大雪殿). 대막의 대막사천부(大漠邪天府).
이들 양대 사파거두의 치열한 대혈전(大血戰)! 여기에 마종지주(魔宗之主)임을 자처하는 동해의 천마도(天魔島)까지 뒤엉켜 무림은 정(正)과 사(邪), 그리고 마도(魔道)가 뒤엉켜 서로 자파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아아……! 무림이여……! 헌데……! 강호를 놓고 각축하는 것은 비단 이들 문파만이 아니었다. 수없이 떠오른 신비문파의 수가 이미 수십에 달했던 것이다. 그 중 가장 무서운 세력으로 꼽히고 있는 것만 해도 십 개 문파에 달했으니…… 천외마동(天外魔洞), 청해성(靑海省) 대통산(大通山)에 위치한 신비문파. 구십팔 개의 동굴로 이루어졌다는 괴이하고도 신비한 문파였다. 동주는 물론이고, 그 구성 인물들은 일체 비밀 속에 가려 있었다. 허나, 언제부터인지 이 천외마동이 공포의 이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금각(金閣). 하북성(河北省) 연경(燕京)에 있다고만 알려져 있지 정작 금각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 문파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단 한 채의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어찌 신비삼대문파에 들 수 있으리오만은, 금각은 막대한 재력(財力)을 구사하며 급격히 부상하여 이미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들의 재력은 전 중원의 삼분지 일을 살 수 있다고 하는데……단지 의문…… 그리고 신비할 뿐이었다.
생사교(生死橋). 이것은 어느 문파의 이름이 아니었다. 강호최대의 신부문파가 있어, 그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아 단지 그들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나무다리(木橋) 의 이름이었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 수(水)나라의 수양제(水陽帝)가 건설한 대운하(大運河) 속에 있으리라는 추측뿐이었다. 누가 알리오! 이 이름도 없는 신비일문(神秘一門)이 포효할 때, 전 중원이 공포로 떨어야 함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들 삼대신비문파가 왜 수많은 신비세력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이름을 날리고 있는지……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또한 알 수 없었으며, 그 성격 또한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허나, 세인들은 공포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이 삼대신비문파의 활동이 개시되면 전중원이 혈해(血海)로 화하리라는 불안한 예감 때문이었다. 여기에 강호를 격동시키고 있는 또 하나의 촉매가 있었다.
혈천막(血天幕)
지옥의 손이라 일컬어지는 죽음의 사자(死者)집단 혈천막. 그들이 출현한 것이었다. 아아! 혈천막! 공포의 대명사. 그들의 손에 소리 없이 죽어간 인물이 벌써 부지기수였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의 사주를 받아 누구를 죽이고 있는 것일까……? 이 또한 신비였다. 격동하는 강호! 허나…… 허나…… 진정 엄청난 사실 두 가지를 천하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팔백 년이란 긴 잠에서 깨어난 살삼림의 중원진출! 소리없이 천하를 잠식해 들고 있는 살삼림의 존재를 아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저 밖에서 태동하고 있는 죽음의 폭풍이, 대원을 재건하기 위한 원의 잔재세력들의 끝없는 움직임이 서서히 전중원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풍운천하(風雲天下)여……!
대명(大明) 영락(永樂) 삼 년(三年), 정월 초하루. …… 백설(白雪)이내리고 있었다. 백설은 천하를 덮고…… 황도(皇都) 금릉에도 그 하얀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금릉교외. 자금성으로 이르는 관도(官道) 위로 한 구의 말이 한가롭게 눈발속을 걷고 있었다. "……!" 마상(馬上)의 인물은 때때로 천공을 을려다 보며 신비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백발 속에 휘날리는 긴 흑발. 허리에 차고 있는 두 자루 검. 마상의 인물은 바로 백무린이었다. "새해 첫날에 눈(雲)이라……" 백무린은 천공에서 나부끼는 눈을 망연히 응시하며 감회에 젖고 있었다. 그로서는 난생 처음 맞아보는 눈이었다. 문득, 백무린의 눈에 어두운 빛이 스쳐갔다. "대천성승… 그분께서는 할아버님의 행방을 모르고 계신다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할아버님께서는 어디에 계신 것일까?" 백무린, 쓸쓸한 감정에 사로잡혀 말이 가는대로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문득,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의 눈에 관도 옆의 한 채 거각(巨閣)이 들어왔다. 전체가 은은한 검은 빛으로 빛나는 웅장한 거각. 그 입구에 한 명의 금포장년인이 시립해 서 있지 않은가! '이곳은… 관부최고의 기관이라는 금의위(錦衣衛)이군……!' 그의 눈이 새삼 거각을 살폈다. 그렇다!
금의위(錦衣衛), 태조 흥무제의 명에 의해 설치된 관부(官府)! 황제의 직속기관으로써 황실의 안전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최고의 고수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관부 최고의 고수 이천여 명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헌데, 이곳을 세운 사람이 바로 백무린의 조부 절대무제 백운천이었으나 백무린이 어찌 감회가 없겠는가? 백무린을 발견한 금포장년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는 공손히 백무린에게 다가왔다. "저…… 흑시 대정왕 전하가 아니오이까?" "그렇소만……?" 백무린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금포장년인이 황급히 부복했다. "금의위통령(錦衣衛統領), 주함경, 전하를 배알하나이다!" 금의위통령 주함경.
일만금의위 수반(首班). 초절정의 고수들로만 모인 금의위에서 통령을 맡고 있음이니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그가 백무린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하하하…… 그대의 위명은 내 이미 익히 들었소이다." 백무린이 부드러운 미소를 흘려냈다. "한 자루 태극선 (太極扇)으로 대내제일고수(隊內第一高手)로 군림하고 있다는 그 구통령이란 말이오?" "황, 황공하나이다! 말씀을 낮춰 주십시오!"
주함경, 그는 황무태극선(皇武太極扇)으로 불리우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황족(皇族)이었으며 지닌 바 무공이 이미 신인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주함경이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접은 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자 어서 마차에 오르십시오! 황상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랬군…… 내가 올 것을 알고 계셨단 말인가!" 백무린이 말에서 내렸다. "예! 저는 천명을 받들고 전하를 명금전(明金殿)으로 모시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명이라…… 그렇지! 들은 적이 있다! 삼황자이던 주석빈…… 그분께서 등극(登極)하셨다 했지!' 백무린이 서서히 대기하고 있던 호하로운 팔기마차로 올라갔다. 이때, 그의 뇌리에는 당금의 황제의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덕천왕자 주석빈, 당금의 황제는 삼황자였던 주석빈이었다. 어찌 대통(代統)이 태자(太子)가 아닌 삼황자에게 이어졌단 말인가……? 백무린은 황실의 사정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명천존회는 언제 개최되는가?" 백무린이 문득 나직이 질문을 던졌다. "오시(午時)에 개최되옵니다. 네 분 전하께서는 이미 입궐하셨으니 서두르심이……" "알았소! 자, 갑시다" 두두두 팔기마차가 요란한 굉음을 발하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할아버님께서는 왜 나에게 대명청존회에 참석하라고 하셨을까?' 백무린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상념에 잠겨가고…… 두두두 마차는 눈발을 헤치며 힘차게 전진하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ㄳ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