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엄마 하늘 나라 보내드리면서,,, ★
2005. 11. 17 일
우리 가족 모여 저녁을 먹으려는데
반갑게도
목사님이 심방을 와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예배까지 찬송까지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또한 놀라게 만드셨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조심 스럽게
말씀을 꺼내시는 아버지...
**참고**^^
(1 남 3녀 ) 제가 맏이 입니다 남동생은 셋째 입니다 ^^
............★
아버지 말씀:""""★★
"엄마 시신을 기증하고
기증과 함께 시신 떠나 보내는 것이 우리집 장례다"
(삼일장) 시신 없는 빈소는 치루지 않을 것이며
일가 친족들께는 간단하게 알리고 조의금은 받지 않기로 했다"
엄마랑 늘 이야기 했었다
엄마는
엄마의 시신을 연세의대로 보내달라고 했고..
살아서 봉사한번 이웃 사랑한번 베풀지 못했는데....
육신이라도 마지막으로 기증해 달라고 했다.
예수가 아닌 예수그리스도인으로서 향기로 가겠노라 했었다"
말씀을 끝까지 잇지 못하시며... 웃으셨다
"일가 친지들께는 잘 이해 시켜 드리고
오해의 여지가 남지 않게 말씀을 잘 드리도록 해라"
"나와 둘째, 세째는 이미 기증을 한 상태이니
우리 가정 납골땅은 당연한 하늘 나라이지만
연세대의대에 길이길이 남길 것이다.
엄마 유언따라 연세의대로 다 기증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하고 ,,
엄마는 나와 약속을 그전에 했다
시신도 먼저 가는 사람 뒤를 따를 것이라고...
그러니 아파하거나 슬퍼하거나 그리움을 너무
길게 가슴에 앉고 살지 말아라
더 기쁘고 더 감사하고 더 예수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주길 바란다
엄마는 기증서 서약을 하지 않은 상태이니 알아 보고 치루도록 하자"
..............★""""★★
아버지께서는 엄마 수술 하신후에 얼굴 보시고
마음의 준비를 담대히 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간단하고 명료한 아버지의 말씀
이미 신앙으로 살아오신 세월속에
우리 사남매는 질문도 없었고
반문 또한 있을 수도 없는 당연한 신앙의 뿌리였습니다
아버지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 입니다
아버지 엄마의 자녀 태어난 것을 감사로 생각하며
부모님 딸로 태어나게 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의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찌 이리도 기쁜지요
어찌 이리도 감사한지요
이 기쁨과 감사를 사랑은 어떻게 갚으라구요
2005 년 11 월 18 일 아침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의 모습을 보라고,,,,,
이 충만함의 기쁨 떨리는 가슴 또한
이 벅차오르는 환희 엄마를 보내며 주님을 찬양 합니다
속으로 기도 하며 가족들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달리는 차에 몸을 맡기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바다의 햇살은 창문을
쪼갤 것 처럼 강열 하고
단청의 바람은 가을의 풍요로움에 간간히 나무가지를
간지럼 태우며 시비를 겁니다
달리는 차창문밖은 어제랑 다를 것이 없지만
가을의 향기를 그윽하게 피어 내었던
국화도 이젠 갈색의 머리로 향기를 서서히
풀어 내버리려고 햇살을 바라 보며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가을 미소 입니다
어제 엄마가 보여 주신 마지막 병문안에서 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그래 남은 예수의 향기 더럽히지 말아라,,"
"예수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인으로 살아라"""""★★
생전에
하신 말씀 명심 하고 명심 합니다
유산이 이리도 아픈 줄 기쁨 줄 충만한 줄 몰랐습니다
유산이 이리도 넉넉하고 담대한 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차안에서 연대의대로 전화 상담을 급하게 드렸더니
신앙의 존중함을 아시고
시신기증이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끝마쳤어야 할
일반 양식의 서류가 있는데...
의논을 드리고 전화 주시겠다 하시며
다시연락 주마 하시더니
쾌히 승낙을 해 주시는 전화,,,
달리는 차안에는 또 한번의 감사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 200 년 11 월 18 일 오전 6 시 20 분
엄마의 새로운 하늘 나라 천국 시민권 받은날★★
중환자실의 엄숙함
엄마를 집도 하신 의사선생님
그동안 간호 해 주셨던 간호사님들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엄마의 따스한 몸
육신의 사랑 마지막 이라 생각 하니
가슴이 메어지고 가슴에 바위 덩어리 올려 놓은 것 처럼
뻐근 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아픔을....
엄마의 젖을 다시 만지고 물어 빨아 보고
엄마 입술에 뽀뽀하고 비벼 보고
엄마 다리 손 팔 머리카락 손톱 말톱
코 눈 귀 하나 하나 잊지 않으려고
기억해 두려고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보며
애써 가슴을 쓰러 내리면서 만지고 또 만졌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어찌 이렇게
어찌 이럴수가
엄마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금방 엄마 보고 나왔는데
금방 엄마 얼굴이 생각 나지 않았습니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엄마 젖을 다시 빨고 물어보고
엄마 팔다리 손, 손등 주사바늘 꽂혔던 곳
기억해 두려고 다시 기억해 두려고
이리보고 또 만지며 엄마의 감촉을 다시 한번
느끼고 느끼고 또 느끼고 기억 해 두었습니다
다른 중환자 보호자들을 위하여
크게 울수가 없었고
또한 울지 않으리라 깊은 호흡과 맹세를 했었기에
가슴에 올려 놓았던 바위를
중환자실에 털어 버리고
나왔습니다
은행잎이 참 이뻤던 곳
벗꽃 나무 잎이 바람에 파르르 떨면 더 예뻤던 병원밖의
가을은 이미 겨울로 가는 체비를 마치고 있었습니다
매일 이거리를 지나 병원 엄마를 만나러 올때마다
이 예쁜 가을을 엄마가 다시 보실수 있을거야,,,
했었습니다
연대 구급차가 온다는 삐뽀!~~ 소리,,,,
어찌 이리도 빨리 오시는지
영안실에서 마지막 얼굴
엄마의 진한 뽀뽀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호흡기로 인한 상체기 입술에 진한 뽀뽀로
엄마와 육신의 인사를 했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오신 구급차
조금만 더 늦게 오시지,,
엄마를 싣고 떠나는 그 순간
육신이 엄마라면 보내 드리지 못하면 어찌할까 두려웠습니다
엄마는 이미 하늘 나라 예수님과 함께 계신 것을
확신하게 보여 주셨기에
웃으면서 기쁘게 내 엄마의 육신을
구급차에 보내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구급차가 움직이는 것을 붙드시면서
""""★★"그래 잘가라 여보 내 곧 당신한테 갈께 잘가"
"그래 잘가라 자기야,,,""""★★
하시면서 손을 흔드셨습니다
우리도 엄마의 시신을 싣고 가는 구급차 뒤에 대고
손을 흔들어 드렸습니다
육신의 내 엄마가 병원에서 삐뽀 !~~삐뽀!~~ 아스라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우리 가족들은
지상에서 치뤄야 하는
장례식을 다 맞췄습니다
빈소도 삼일장도 없이 보내 드리는 이싯점이
우리들에게 엄마의 장례식이였습니다
대단하신 우리 부모님 존경 하고 사랑하고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부모님 자식으로 또 태어나리라 했습니다
병원으로
소식을 알고 오신 친지들
아버지 엄마의 신앙관을 평소에
잘 알고 계셨기에 이해 하시고
존중해 주셨습니다
엄마를 잃은 슬픔이 아닙니다
엄마를 보내드린 것이 아픔이 아닙니다
엄마가 없어 고독하고 외로움이 아닙니다
단지
엄마
엄마
엄마,,,,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이제 알고 있습니다
엄마의 젖을 빨면서
슬퍼서 울었던 것이 아닙니다
엄마의 딱정이 진 입술에 내 일을 대고
삼킬 듯 뽀뽀하였던 것도
슬픔이 아니였습니다
그 슬픔은 눈물은 엄마가 우리들에게 주고 가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향기 였습니다
그래서 감사하여 흘린 눈물 이였습니다
""담대하라 !!""
아버지 엄마의 말씀
""주안에서 담대하라 ""
하나님의 말씀 늘 살면서 상기시켜 주셨고
그로인하여
정말 담대함을 배웠고
믿음의 큰 유산을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 관계자분들도 놀라셨습니다
종교계의 장례문화에 대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빈소 없는 장례 시신을 기증하고 장례를 마치는
눈으로 직접 봤다는 사실에도 놀라셨습니다
바로 우리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물려주신
예수그리스도의 향기였습니다
주안에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강화로 돌아오는길
복잡한 거리 사정으로인하여
차가 흩어졌습니다
아버지가 전하를 하시더니
"""""★★그동안 수고 했다 맛있는 것 사먹고 돌아와라
우리도 목사님 모시고 맛있는 것 먹을테니.."""""★★
이런..
아버지는 하실 말씀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우린 그동안 마음정리를 해 주신 부모님의 깊으신
마음에 또한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외식을 하라고 하신말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 하라는 말씀이였던 것입니다
우린 각자 밥을 사먹고 강화로 돌아왔습니다
엄마시신 연대의대 도착 시간쯤
확인전화드렸더니 지금 잘 도착하셨다고 하여
서로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한번의 마음을 더 놓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긴 세상의 여정을 풀어 놓으신 엄마께 송구하고 죄송하고
다신 불러 볼수 없는 엄마께 시신 도착의 안부를 여쭈면서
가족들은 다시 안도의 마음을 놓았습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우리집 상황
펜션에 예약 손님을 수십명 왁자지껄
아무일도 없었던 우리집
노래방에서는 손님들 노래 부르고 춤추고,,
이게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려니 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슬픔은 우리들의 몫이지 저들의 몫은 아니기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각자 변해 가는 삶이려니
손님들이 노래 부르고 춤추는 모습은 어제 의 모습인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간단한 다과상 차려 놓고
그동안 간호 하느라 수고했던 위로를
서로에게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몇달전에 있었던
엄마와의 이별 여행연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평소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집
엄마의 구수한 웃음 소리 음식솜씨는
충청도에 살 때 부터 엄마 국수 한그릇
잡숴보지 않았던 이웃이 없을 정도로 아주 넉넉한
엄마였습니다
5일장날에 엄마 칼국수 안 잡숴 보신 분들이 거이 없었던
충청도 에서의 삶,,,,
지나가는 거지에게 속옷가지 벗어 주셨던
보석 보다 아름다웠던 삶
나의 엄마 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말씀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마음이 변한다는데...
엄마가 헤어질 연습을 했었다
삐지고, 서운하다 울고 드라이브 시켜 달라하고..
쌀 사놓으라고 하고, 살이 없니 왜? 참 내원,,,
그 쌀이 저 쌀이다 ,,,
대화하면서 톡 토라지면서 말도 안하고
쌀쌀 맞게 대하고 ...
목화이불(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이불)를
불에 태우라고 하고...그래서 무겁다는 이유로 태웠다,
밤에 달빛이 예뻐서.. 별들이 예뻐서
바람이 불어서 하면서 대청에 앉아 있었다.
자다가 보면 옆에 없어 마당으로 나가보면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 보며
그리도 울고 있었다,
세탁기 돌리는 것 배우라고 하여 화를 냈다
밥솥 스위치 누르는 것 배우라 하여 내가 화를 냈다.
머리 염색 해 준다고 하여 싫다고 싸웠다,.
이게 싸울일이니 삐질일이니...애들아 """"껄껄껄,,,,^^
그 때 이별이란 것을 알았더라면
""세탁기도 배우고 밥솥 스위치도 배우고
쌀도 더 큰 것으로 사 주고 드라이브도 많이 해주고
삐지지 않게 대화도 더 많이 했을껄,,,,,허허허허,""""★★
아버지는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추모예배를 목사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이모저모 살아오신 엄마의 인생길을 우리 사남매가
잘 이끌며 살고,, 엄마의 신앙에 누가 되지 않게
더 강한 기도 믿음으로 신앙 생활 하리라 마음 함께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강화도의 밤은
어제의 밤 처럼 지나가고 있습니다
새벽으로 가는 시간 엄마의 유품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정리정돈으로 깔끔 하셨던 엄마
이렇게 한결 같이 정리정돈을 해 놓으셨는지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내가 손 댈 곳이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옷가지 박스에 넣어두고
속옷장 옷장 간단하게 아버지것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엄마의 핸드백
수첩 화장품 서랍속은 먼지 하나 없었습니다
가방에 혹시 무엇인가 있을까
핸드백이 눈에 띄어 열어 보았더니
엄마 편찮으시기전의
화사한 증명 사진 한장만 있었습니다
아마도 엄마가 영정 사진으로 쓰라고
준비 해 놓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눈물이 어찌나 뒤늦게 쏟아지는지
엄마의 얼굴
엄마의 미소 가슴이 무너져 쓸지고 말았습니다
한창동안 잠자고 일어났습니다
영정 사진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보는 것의 슬픔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생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더 아파 할 것이 분명 하여 울음도 마음놓고
울지 않기로 했습니다
엄마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하고 슬퍼 할까봐서,...
동생들을 다 보내고
강화에 남았습니다
올케랑 마니산에 갔습니다
이젠 아버지를 올케에게 부탁을 해야 하기에
말 없는 대화로 마니산 정상까지 올라 갔습니다
이미 우린 무슨 말이 필요한지 서로가 알고 있었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산행
힘들게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내려다 보니 저 많고 많은 집엔 한가지씩
걱정 거리가 있을 거야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이리도 내려다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인것을
발 아래 세상 마음 먹기 나름인것을...
올케는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시누이 마음을 알기에...
나 역시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올케마음 내 마음이기에....
단한가지 마음이 통하게 된 것은
올케와 나와의 마음
진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뿐 이라는 것이였습니다
도리어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우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한사발씩 밥을 먹었습니다
군불을 지펴 놓으셔서
뜨거운 온돌에 몸을 맞기고 한숨 잤습니다
또 하루 갑니다
아마도 평생 가슴으로 그리움을 담고 가실
아버지를 생각 하면
가슴이 시립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이런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통함이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주신 담대한 믿음 안에서
울지 않겠습니다
뒤돌아 보지도 않겠습니다
강화의 밤은 이리도 캄캄 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엄마를 위하여 기도 해주신 분들과
헌혈증을 보내주신분들과
친구들과 친지들께 정말 사랑을 드립니다
옆집에 사시는 신충식 탤런트 할아버지도 내외분
정말 존경합니다 수수하신 모습..
가슴으로 엄마를 조용히 불러 봅니다
엄마 없는 사람들의 심정 이제
조금 알 것 같기에 그동안 기만 했던 마음 용서 드립니다
세상이 이처럼 아름답게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우린 다시 태어났음을 감사합니다
담대히 세상을 향하여 복음과 함께 달려 갈 것입니다
예수의 길은 험하고 고단하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힘들지만
엄마의 길은 분명 예수그리스도의 길임을
확신하기에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세상 가는 것에 두려움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사남매를 위하여 기도 많이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분들 같은 마음이길 또한 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사랑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나는 나의 길....
시댁으로 갑니다
세아이 엄마로 돌아 갑니다
나의 친정 엄마 가슴에 묻고 갑니다
이제 부터 우리 사남매 기도는
아버지 위안을 기도로 위탁하는 것이기에
사람으로써 받지 못하는 위로를
서로 기도하므로써 영혼의 양식 위로에 더 간절하길 바랄 뿐입니다
"기도는 나의 안식이기에 기도 뿐입니다"'
엄마
한번 불러 보고 갑니다
엄마,,,,
엄마,,,,
엄마,,,,
아직 믿어지지 않습니다
만질수 있는 엄마가 안계신다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앞으로 살다가 조그만 힘든일이 있으면
엄마 없다는 서러움이 클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놀리지 마세요 ,,,,)
-(가족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 입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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