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산악회에서는 5월11일 경북 봉화에 있는 각화산(1,177m)과 왕두산(1,004m)을 등반하였습니다. 태백산사고가 있었던 봉화 춘양의 진산 각화산과 산의 모양이 왕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왕두산으로 불리는 이 두산은 같은 산줄기 상에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이 날 산행에 참가한 회원은 류해철회장을 비롯하여 강성구, 김우현, 김웅진, 서상호, 이정옥, 정규진, 조점분 등 8명 이었습니다.
▼ 오늘 산행코스는 각화사 → 능선무덤 → 각화산 정상 → 헬기장 → 왕두산 → 동암(금봉암) → 잣나무군락지 → 각화사입니다.
▼ 오늘의 산행 출발지인 각화사이다. 이 절은 신라 문무왕 16년 서기676년에 원효대사가 창건 했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지금의 춘양면 서동리에 있던 남화사(南華寺)를 폐하고 여기로 옮기면서 "남화사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각화사(覺華寺)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태백산 사고(史庫)의 수호사찰 이었다. 각화사는 여느 절집과는 달리 일주문도 찾아 볼 수 없지만, 범종각 추녀 끝에 "태백산 각화사(太白山 覺華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이 범종각 건물에 걸린 것도 보기 드문 일이지만 각화사와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史庫) 등에 태백산이 붙는다. 이는 이 지역이 태백산을 모태로 삼고 있다는 증거다. 높다란 석축 옹벽 가운데의 가파른 36개의 돌계단을 올라서면 각화사의 범종각이다. 각화사는 한창 번성하던 때에는 수도승이 800명에 이르는 조선 3대 사찰의 하나였다.
▼ 각화사 경내로 들어가 왼쪽(서쪽)으로 길을 잡으면 각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이 등산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송진채취로 고통받는 소나무를 만난다. 이 소나무들이 지난 70여년간 껍질이 벗겨진 채 고통 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일제 말기(1943~1945년)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 군수 물자인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으로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다. 다른 산에서도 껍질 벗겨진 소나무를 보았으나, 각화산은 더 심한것 같다.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반성은 커녕 평화헌법을 고쳐 또다시 전쟁을 일으켜도 괜찮을 명분을 찾고 있다.
▼ 산행을 시작한지 40여분만에 각화산 능선길에 닿았다. 골짜기의 답답함도 벗어난 능선길에 앉아 조점분이 가지고 온 파프리카며 튀밥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이곳 각화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춘양목이다. 금강송으로도 불리며 "소나무 중의 소나무" "백목의 왕(百木之王)"이라 불린다. 이 소나무의 주산지가 봉화군 춘양면이라 춘양의 지명을 따서 춘양목이라 부른다. 이 산 일대가 춘양목의 군락지였으나,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때 목재로 쓰기위해 이 일대 소나무를 대량 벌채하여 지금은 아름드리 춘양목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조점분과 이정옥이 춘양목 앞에 앉아 쉬고 있다.
▼ 한국의 시베리아! 경북 봉화의 춘양을 이르는 말이다. 3월까지 잔설이 있고 전국에서 얼음이 가장 먼저 얼고 추위가 가장 매서운 곳이다. 이 산의 7부 능선에는 참나무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상주에는 참나무 이파리가 벌써 나와 신록을 이루는데 이곳은 움도 트지 않았다. 정말로 추운 지역 인가 보다.
▼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여, 드디어 각화산 정상에 섰다. 각화산 정상에는 그 흔한 표지석 하나 없다. 다만 나무에 걸어 놓은 판자가 이곳이 정상임을 말해준다. 정상에는 옛날 헬기장이었을 것 같은 보도블록이 남아 있다. 사방이 나무로 가려져 조망이 썩 좋은 편은 아니나 나무가지 시이로 태백산 천제단이 뚜렷이 보인다. 원목을 잘라 각화산 정상이라 표시한 나무가지에 우리들이 다녀간 흔적을 남겼다.
▼ 정상에서 5분여를 내려오면 각화산 중봉이라고도 부르는 헬기장에 다다른다. 벌써 초여름 같은 날씨지만 이곳은 아직 서늘하다. 그래서 그늘이 아닌 양지바른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먹기전 헬기장에서 인증샷을 했고 식사후 강성구와 조점분을 얼른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 각화산에서 왕두산으로 가는 능선길에서 각화사 혜원스님을 만났다. 불심 깊은 강성구가 이 절 서암에서 수행 공부한 해암스님 이야기를 꺼내자 서로 잘아는 사이다. 태백산 사고지 가는 길을 물으니 조금만 내려가다 능선 오른쪽으로 길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어찌랴.. 이제 막 피어난 진달래에 정신이 팔렸는지 태백산 사고지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 99년 12월에 이곳을 찾았을때도 태백산 사고지를 못 봤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 각화산 막바지에는 왕두산과 각화사(동암)로 가는 갈림길이 있고 왕두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만 가면 평평한 분지가 나온다. 이곳에는 싱그러운 초록의 산 냄새가 있고 산나물이 천지에 널브러져 있다. 이정옥과 조점분은 이 깊은 산속에서 상큼한 봄나물 냄세에 취해 정신이 없다. 아무리 가자고 재촉해도 가지를 않는다. 앞선 일행에게 고함을 질러 멈추게하고 참나물인지 뭔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물을 한 움큼 따서 주었다.
▼ 산봉우리 모양이 왕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왕두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왕두산 정상의 표지석을 누군가 손으로 쑥 뽑으니 뽑혀 올라 온다. 얼른 다시 꼽아 놓고 기념촬영을 했다. 잡목이 많은 각화산에 비해 이곳의 조망이 훨씬 좋다. 서쪽으로문수산, 옥돌봉, 선달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태백산과 문수봉이 형제봉처럼 서있다. 동으로는 청옥산이 남으로는 청량산이 꿈틀거린다.
▼ 왕두산에서 각화사로 하산길을 잡아 20분정도 내려오면 금봉암에 닿는다. 각화사에는 두개의 암자가 있는데, 서쪽에 있는 암자를 서암, 동쪽에 있는 암자를 동암이라 부른다. 금봉암은 동암이다. 금봉암은 암자 치고는 크고 잘 지어져 있다. 이게 외려 암자다운 모습이 없어 보인다. 이곳은 불교계에서는 알아주는 참선수행 도량이다.
▼ 동암을 지나 조금 내려오니 금봉암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며 돌아가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그러나 어찌랴! 벌써 동암을 지나쳐 온 걸. 동암쪽으로 올라가는 등산길을 택하였다면 돌아 갈 수 도 있었으리라. 참선은 생사의 근원과 나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불교의 수행법이다. 참선수행에는 수식관(數息觀),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인연관(因緣觀), 불타관(佛陀觀)의 5가지가 있다.
▼ 동암을 뒤로하고 계속 하산하면 잣나무숲에 다다른다. 잣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코리아 파인(korean pine)이라 부른다. 이곳 잣나무 숲이 가평의 축령산 잣나무 숲만은 못하지만 수많은 잣나무들이 쭉쭉 뻗어 올라 하늘을 찌르며 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 각화사는 태백산 정상에서 100리 정도 남으로 내려와 좌청용 우백호를 거너린 천혜의 수행도량이다. 탄허스님이 와서 보고는 "오룡(五龍)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국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도 이렇게는 만들기 어려운 명당"이다고 극찬한 절이다. 각화사에서 왼쪽 산 언저리를 끼고 10분 가량 오르면 아늑한 곳에 자리한 서암이 있다. 남쪽으로 청량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자리한 서암은 20평 정도 되는 토굴 수준의 암자이다. 등산로와는 완전히 비껴 있어 지난번 각화산 등산때도 찾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등산을 끝내고 나서 따로 서암을 찾았다. 서암주지 고우(古愚)스님은 계시지 않았지만 고저녁한 산사의 저녁을 강성구의 서암 설명을 들어며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 봉화군 봉성면은 돼지숯불갈비로 유명하다. 봉성돼지숯불갈비는 고려 현종때부터 봉성 우시장 장터에서 이어져 온 전통 요리로 그 명성이 자자하며 매년 "봉성돼지숯불갈비축제"도 열리고 있다. 봉성돼지숯불갈비는 소나무 숯으로 굽는다고 한다. 다구운 고기는 잣나무 생솔가지에 얹어 준다. 그 향은 송이버섯 겉 껍질 같은 향이 난다. 한마디로 맛이 직인다. 김우현이 얼마전 며느리를 본 답례로 오늘 저녁을 쏘았다. 베푸는 자에게 복이 있게 마련이다. 우현이 아들네는 잘 살 것이다. 우현아, 고맙게 잘 먹었어!!!
첫댓글 보기가 너무너무 좋아보이는구만 난 썰설하네 다음에는 나도 ============
청아한 오월의
감미로운 바람과
호흡하는 들숨에 연두빛이 출렁이는 산숲...
맑은 연두빛 기운에 몸과 마음을
내 맡긴 하룻길...
몸도 마음도 자연에 동화되어
숲이되고 풀잎이 되고 한떨기 꽃이 되는...
오월의빛으로
속삭이듯 날마다 태어나는
신록의 다정한 몸짓들
더 많이 행복하고 충만하시길 바라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