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보라보라섬
면적 약 30㎢, 인구 약 7,000명 정도이다. 타히티섬에서 북서쪽으로 약 240km 떨어진 곳에 있다. 길이 10㎞, 너비 4㎞의 산호섬이며 32㎞에 이르는 섬 일주도로가 나 있다. 수온이 따뜻하고 수심이 얕아 휴양지로 개발되어 각종 해양스포츠가 활발하며 관광업이 발달하였다. 태평양의 진주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영화 《허리케인》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쓰던 대포가 남아 있다.
전형적인 환초 섬으로서 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투명한 라군과 모투들이 매우 인상적이고 공항은 본섬의 북쪽에 있는 모투 무테에 있고, 공항에서 주요 마을인 바이타페까지 에어 타히티의 고속 셔틀 보트가 운행되고 있다. 섬의 해안을 끼고 도는 도로의 길이는 약 29㎞이며 자동차로는 약 1시간 30분이면 일주할 수 있다. 도로는 투이바호라 곶을 넘는 부분 (자전거, 스쿠터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을 제외하면 평탄한 편이다. 이 밖에도 보라보라 섬에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남겨 놓고 간 7인치 포의 잔해 8 문이 남아 있다. 섬을 일주하다 보면 쉽게 눈에 띤다.
섬에서 가장 이름난 해안가이며 주요 숙박 시설이 몰려 있는 마티라 곶 부근은 청록색의 투명한 라군과 백사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라군의 아름다움을 [태평양의 진주]라고 일컬을 정도다. 또한 보라보라 섬은 영화「허리케인」의 무대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보라보라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화산섬을 둘러싼 바다는 연둣빛. 해저 산호가 가락지 모양의 띠를 이루고 있다. 띠 안에 섬이 솟아난 형국이다. 하늘에서 보라보라를 내려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보라보라의 바다는 한눈에 담을 수 없다. 호텔 앞 바다는 연푸른 빛을 띤 산호지대.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수많은 푸른 색으로 칠해진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래사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하거나 원시림 같은 녹색 바다가 이어지고, 다시 연두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색의 조화가 놀랍다. 이처럼 바다 빛깔이 다양한 것은 맑은 물 속의 산호 때문이다. 보라보라의 바깥쪽 바다는 해저 산맥처럼 이어진 산호띠인 리프(Reef)로 이뤄져 있다. 리프가 파도를 막아주는 까닭에 큰 파도가 없이 바다는 늘 잔잔하다. 그 안에 야자수만 가득한 새끼섬 모투(Motu)가 흩어져 있다. 산호가루가 부서져 섬이 된 모투의 앞바다는 연하디 연한 푸른 빛. 햇살이 해저 산호가루에 반사돼 물빛도 눈부시다. 산호에 닿은 햇살은 마치 물고기처럼 퍼덕댄다. 모투와 모투는 멀리서 보면 끊어질 듯 이어지며 다시 반지처럼 이어진 아톨(Atol)을 형성하고 있다. 모투와 아톨로 둘러싸인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한 라군(Lagoon·석호)을 이루고 있다. 모두 산호가 수백만년동안 만들어낸 신비다. 형형색색 다른 빛깔로 빛나는 바다 모습을 보려면 화산 봉우리인 오테마누(722m)의 옆쪽이나 전망대에 올라서야 한다.
보라보라는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랜 섬이다. 타히티의 섬들은 해저폭발로 이뤄졌다. 3백만년 전 보라보라가 생겼고 그 뒤 다른 섬들이 생겨났다. 보라보라는 원래 바우아바우에서 나온 말. 원주민 말로 ‘어둠 속에서 솟아났다’는 뜻이다. 또 ‘마이 테 포라’라고도 하는데 신께서 만들었다는 의미다. 보라보라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은 1767년 영국왕립함대 왈리스 함장에 의해서였다. 보라보라에 처음 상륙한 사람은 1768년 쿡 선장이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보라보라는 유명해졌다.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은 남태평양의 보라보라에 급유를 위한 기지와 활주로를 만들었다. 1942년부터 1946년까지 미군이 주둔했지만 전쟁은 없었다. 당시 미국 해군장교로 보라보라에 왔던 제임스 미케너는 ‘남태평양 이야기’란 책을 통해 상공에서 바라본 보라보라의 모습을 ‘남태평양의 진주’라고 표현했다. 보라보라의 모습이 마치 조개가 입을 열고 진주를 품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라보라의 흑진주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서 히트했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프렌치 폴리네시아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는 요즘이다. 4월부터 10월은 건기, 12월부터 3월까지가 우기다. 건기에는 적도상의 다른 섬과 달리 후텁지근하지 않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무역풍 때문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19시간 빠르다. 평균기온은 25.9도. 프랑스령인 까닭에 프랑스어가 주로 쓰이지만 호텔에서는 영어가 통용된다.
▶교통편
국내에서 직항편은 없다. 일본의 오사카나 도쿄에서 에어 타히티누이(서울지점 02-775-4697)로 갈아타야 한다. 오사카는 인천공항에서 1시간30분, 도쿄는 2시간 거리. 일본에서 타히티섬 파페테공항까지는 약 12시간 걸린다. 파페테에서 보라보라까지는 항공기로 45분. 파페테 페리터미널에서 모레아섬까지는 배로 30분.
49위 인도네시아 발리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동양 최대의 휴양지로 '지구상의 마지막 낙원', '세계의 아침' 등으로 불리며 이미 유럽과 구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로 손꼽히고 있는 지상 최후의 낙원 발리. 제주도의 2.7배 크기로 인구 3백만명이 모여 있으며, 남태평양 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인도네시아 군도를 구성하는 수천개의 섬 가운데 하나이다. 산스크리트어로 WARI, 즉 제물을 의미하는 발리 섬은 그 자체가 신들의 선물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섬에 관한 수식어는 끝이 없다. 계단식 벼농사 지대와 구름 위로 높게 솟아오른 불을 품은 3,000m급 화산들, 울창한 열대 숲들, 인도양의 따뜻한 바닷물이 일렁이는 해변들… 발리의 매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성스러운 아군 산 기슭에 펼처진 전원 풍경, 독특한 문화와 훌륭한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신을 사랑하는 발리인들의 따뜻한 마음이다. 쇼핑에서 서핑, 환상적인 경치에서 이국적인 요리에까지 발리는 전세계의 방문객들을 유혹하는 이국적인 관광지로 정평이 나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섬나라이다. 그 섬들의 한가운데 위치한 발리는 섬에 사는 사람 수보다 그들이 모시는 신이 더 많다는 곳.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교가 아닌 힌두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섬 발리는 약 300만명의 인구를 갖고 있으며, 매년 50만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다. 소위 '열대의낙원'이라할 만한 발리에서는 인도네시아-힌두 문화의 세련된 예술을 만날 수 있다.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우는 발리는 와리(Wari)라는 말이 변형되어 발리가 됐다고 한다. 발리의 크기는 제주도의 약 2.7배 정도이고,연평균 기온은 23℃~30℃로 계절은 우기(10월~3월)와 건기(4월~9월)로 나뉜다. 우기때는 하루에 한두차례 소나기가 내린 후 하늘이 청명하게 개여 더위를 식혀주며, 건기때는 새벽과 밤이 우리나라의 가을날씨와 비슷하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다도해의 중간에 놓여 있는 아름다운 열대섬이다.적도에서 바로 8도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언덕의 사면을 따라 늘어서 있는 계단식 논들, 화산, 빽빽한 열대정글, 넓은 모래 해변, 따뜻한 해수, 최고의 파도와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발리는 1년 내내 평균 온도 26~30도 정도의 열대성 기후가 계속되며 계절은 크게 4월에서 9월까지의 건기와 10월에서 3월까지의 우기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5월에서 8월까지가 더 시원하고 비도 덜 내리기 때문에 발리를 방문하기에 더 좋은 시기이다.
발리인들은 대부분 힌두교를 믿는다. 한때 힌두교는 인도네시아의 지배적 종교였지만 이슬람 세력의 성장과 함께 많이 사라졌고 발리만이 힌두교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15세기 자바의 마자빠핫 왕조가 몰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발리로 피난처를 찾아 탈출하였고 이때 온 힌두교는 발리인들이 원래 갖고 있던 물, 산, 나무에 존재하는 영혼들 같은 자연신들에 대한 고대의 믿음들과 함께 결합하여 오늘과 같은 강하고 활력넘치는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환율 & 환전
인도네시아의 공식화폐는 루피아이다. 루피아로의 환전은 어려워 달러로 환전을 한 후 발리에 도착해서 달러를 다시 루피아로 환전한다. 달러로 환전할때는 1997년 이후에 발행된 달러인지 확인한다. 1996년 이전에 발행된 달러는 환전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고 환전이 된다 해도 낮은 환율로 환전이 된다. 그리고 달러에 낙서나 구김이 있으면 이 역시 낮은 환율을 적용받는다. 달러는 고액 단위일 수록 높은 환율을 적용받는다. 10달러 보다는 100달러를 교환할 때 환율이 더 좋다.
▶주의할 점
- 상대방의 머리를 만지지 않는다.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머리를 매우 신성시하여 자신이 머리를 단장할 때도 꼭 오른 손 만을 사용한다. 지나가는 어린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선 용납되지 않는다.
- 오른 손 만 사용한다.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왼손과 오른손을 정확히 구분하여 사용한다.지저분한 것을 만질 때에는 왼손을 쓰고 깨끗하고 신성한 것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쓴다. 즉 식사할 때, 머리를 다듬을 때,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쓰고 용변 후, 세척할 때와 쓰레기 등을 만질 때는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다.
- 종교적인 특성으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많으므로 권하지 않는다.
- 대화 중에 허리에 손을 올리지 않는다. 화가 난 것으로 오해한다.
▶교통
택시를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길이 좁고 일방통행이 많아 초행자의 경우 거리계산을 할 수 없으므로 미터기가 있는지 확인하는게 좋다.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요금에 가까운 화폐를 지불하는게 유리하다.
▶쇼핑
관광객의 발길 닿는 모든 곳에서 쇼핑을 할 수 있을만큼 상점이 즐비하다.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흥정을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으며, 노점에서는 가격을 높게 부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정 가격이 될 때까지 흥정을 해보는게 이득이다. 쇼핑 아이템으로는 색색의 조각품과 목공예품, 핸드메이드 직물, 그림, 살롱, 석상등으로 다양하며 특히 세공품은 정교함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48위 이집트 아부심벨
람세스 2세가 세운 웅대한 신전 ‘장관’/69년 아스완댐 건설로 3,200년전 신전 이전/나일강변 돌산 깎아 4년여 대역사 끝 복원
1965년 5월 전세계 50여개국의 기술자들로 구성된 유네스코 작업반이 일강 서안의 작은 바위 절벽 아부 심벨에 도착했다.이들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대신전을 원래 자리에서 90m위쪽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착수했던 것이다.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이며 ‘태양의 아들’로 자처했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전이었다. 모든 역사에는 명암이라는 양면성이 깔려있는 모양이다.파라오 중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영광과 이집트의 번영을 기원하며 세운 이 대신전은 수몰위기를 맞았다.람세스 2세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빈곤에 시달려온 이집트는 신전을 무시하고 아스완 하이댐 건설을 서둘렀다.1960년 1월에 착공됐다.아스완 하이댐 건설은 관개와 수력발전을 통해 이집트의 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대역사였다.
▶유네스코서 이전 작업
그러나 이 댐은 길이 500여㎞에 달하는거대한 인공호수 낫세르호를 만들었다.그리고 이로 인해 주변에 있던 수십기의 고대 무덤과 신전,기념물들이 수몰의 위기에 내몰렸던 것이다.유네스코가 무엇보다 긴장했던 것은 가장 위대했던 파라오가 자신의 필생의 업적으로 만든 아부 심벨 신전이 존폐의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이었다.마침내 이들은 신전을 통째로 바위산 위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바위 절벽을 깍아 만든 신전에 모두 1만7천개의 구멍을 뚫고 그안에 33t에 달하는 송진덩이를 밀어넣어 먼저 신전의 바윗돌들을 단단하게 굳혔다.그리고는 거대한 쇠줄톱을 동원해 신전을 모두 1천36개의 돌블럭으로 잘랐다.돌블록 하나의 무게가 30t에 달했다. 신전을 옮길 절벽 위쪽의 바위에는 그안에 거대한 콘크리트 돔 2개를 만들어 덮어 단단한 인공 산을 만들었다.그 다음 신전의 재조립 작업이 시작됐다.1969년 2월,마침내 3천200년전에 탄생된 신전이 다시 완벽한 제모습을 갖고 안전지대로 옮겨졌다.4천2백만 달러의 공사비가 들었고 4년이 넘게 걸린 작업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이를 신전의 수호신인 태양신 아몬의 기적이라고 말했다.지금 우리가 아부 심벨을 다시 보게 된 것도 바로 유네스코의 이 이전작업이 성공한 덕분이다.신전을 장식한 신상과 조각들은 완전한 형태로 재생됐고 다만 원래는 없었던 돌 블록들을 이어붙인 이음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있다.
▶카이로서 비행기로 2시간
남부 이집트 누비아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아부 심벨까지는 카이로 공항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2시간 남짓 걸린다.아부 심벨 공항에서 신전까지의 20여분 거리는 왕복 버스가 운행하는데 이를 타고 23시간 신전을 돌아보고 나면 다시 이 버스가 공항으로 데려다준다. 버스에 내려 10분여를 걸어가면 오른편으로 미풍에 수면이 흔들리는 푸른 나일강을 끼고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돌산이 나타난다.강쪽으로 난 이 돌산 한쪽 면을 깍아 신전 전면을 다시 세웠고 큰 동굴처럼 돌산을 안쪽으로 깍아 신전 내부를 만들었다.신전 전면에는 높이 20m에 달하는 람세스 2세의 좌상 4개가 버티고 있다.얼굴의 좌우 길이가 1m는 족히 됨직하다.역학면에서는 거대한 람세스의 상 4개가 높이 30m가 넘는 신전전면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하도록 설계돼있다.왼쪽에서 두번째 상은 몸통과 머리부분이 모두 사라졌지만 나머지 3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신전 출입문 위에는 매의 머리를 한 여신 라 하크트의 상을 조각했다.출입문을 들어가면 길이 65m에 달하는 긴 인공 동굴이 나타났다.좌우로 8개의 오시리스 신상을 모신 복도를 지나면 신전의 가장 내밀한 방인 지성소에 도달한다.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신은 태양신 라와 나일강의 신 오시리스였다.파라오는 지상에서 태양신 라를 대신하는 존재였다.지성소에는 왼편부터 차례로 람세스 2세,아몬 라,그리고 하르마키스신,그리고 어둠의 신인 프타의 신상이 나란히 앉아있다.
▶공사비 4천2백만불 소요
이 지성소에서 태양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 안내인의 설명이다.매년 2차례씩,3월 21일과 9월 21일 상오 5시 58분이 되면 정확하게 태양빛이 신전 입구에서 지성소에 이르는 65m의 길을 밝혔다.그리고 나서 햐지나 아몬 라 신과 람세스 2세의 상에 햇빛이 닿았다.햇빛은 또 수분뒤 하르마키스신으로 옮겨가기까지 20여분을 지성소안에 머물었다.그런데 어둠의 신인 프타에는 햇빛이 비치는 법이 절대 없다는 것이다.수몰 위기를 피해 이 인공바위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이 태양의 기적은 여전히 계속됐다. 신전벽은 람세스 2세가 전장에서 거둔 혁혁한 승리의 장면들을 그린 상형문자와 그림들이 빽빽히 들어있다.가장 인상적인 것은 람세스 2세 재위 5년에 그가 북부 시리아족의 일파인 히타이트군과의 힘겨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장면이다.‘카데슈 전투’인데 그의 활약상이 잘 묘사됐다.이 승전기는 테베의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에도 새겼다.카데슈는 지금의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북서쪽에 위치한 요새였다.적의 매복 함정에 빠져 2천500대의 전차대에 포위됐다.그러나 태양신 아몬 라의 도움을 받아 단신으로 이들을 물리쳐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람세스 2세 신전의 옆에는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아름다운 신전 하나가 더 있다.평화의 신을 모신 하토르 신전이다.이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왕비인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었다.람세스 2세가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면 네페르타리는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운 왕비였다고 한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를 통해 람세스 2세의 위대한 힘은 왕비 네페르타리와의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상형문자를 통해 예찬했다. 하토르 신전 전면 벽에는 람세스 2세의 상 4개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상 2개가 나란히 새겼다.이집트 역사상 왕비에게 신전을 지어 바치고 그 신전 전면을 왕비의 상으로 장식한 파라오는 람세스 2세뿐이다.태양이 되고자 했던 사나이 람세스 2세와 그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 보다도 더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노래했던 네페르타리 왕비와의 사랑.그 힘은 바로 아부 심벨의 신전을 탄생시켰고 또한 이 신전을 3천년 이상 지탱해온 원천이었던 것이다.<아부 심벨(이집트)=이기동 특파원>
47위 베네주엘라 엔젤폭포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띠띠까까호수’도 남미에 있고, 80m 높이에 서로 다른 275개의 폭포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는 ‘이과수폭포’도 남미에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폭포, 높이가 약 1km인 엔젤폭포도 남미에 있다. 엔젤폭포. 기아나 고지에서 발원하는 오리노코강(江)의 지류 카로니강이 기아나 고지로부터 1,490m의 높이를 도중에서 막힘없이 낙하하여 형성된 폭포이다. 낙차 979m로 세계 최고이며 부수된 폭포를 포함하면 높이 1,000∼1,600m에 이른다. 하부 일대가 떨어지는 포말에 의하여 안개가 낌으로써 폭포의 흐름이 장엄하다 하여 ‘천사의 폭포’라고 명명하였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래에서 보면 꼭대기가 보이기는 할까? 건물 한 층의 높이를 대략 3m로 잡는다면 333 층의 고층빌딩 꼭대기에서 물을 뿜어낸다는 이야기다.
46위 스위스 마터호른봉
높이 4,478m. 프랑스어로는 몽세르뱅(Mont Cervin), 이탈리아어로는 몬테체르비노(Monte Cervino)라 한다.
몬테로사 산맥의 주봉으로, 스위스 쪽의 등산기지 체르마트의 남서쪽 10km 지점에 위치한다. 피라미드형의 특이한 산용을 가진 빙식첨봉(氷蝕尖峰)으로, 평균경사 45° 안팎의 급한 암벽이 1,500m 이상의 높이로 솟아 있다. 특히 스위스 쪽의 조망이 수려하다.
천하의 독수리봉인 마터호른 봉은 알프스 관광의 절정이다. 환경에 대한 배려로 휘발유 차량의 출입금지 리조트라서 조용하며 공기가 맑고 상쾌한 청정지역이다. 자동차는 중간역 테쉬의 대형 주차장에 세워두고, 그곳 부터는 등산산악열차로 들어간다. 마을 내의 교통은 전기 자동차 또는 마차가 이용되고 있어 이 또한 흥미로운 스위스 마을이다. 등산철도로 리페르알프와 고르너그라트, 공중 케이블을 타고 클라인 마터호른(3,820M)을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지는 산들과 빙하를 감상할 수 있다.
45위 중국 진시황 병마용갱
1974년 이래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총면적 25,380㎢에 달하는 4개의 갱이 발굴되었으나 그 중 4호 갱은 완성되기 전에 폐기된 빈 갱도였다. 아직 완전히 발굴되지 않은 1호갱은 길이 210m, 너비60m, 깊이 4.5~6.5m의 총면적 12,000㎢로서, 본래 이 갱 위에는 길이 210m, 넓이 9칸의 회랑식 건축이 있었으나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매장된 전체 도용은 약 6,000개로 추정되며, 도용의 크기는 1.75~1.86m, 도마용은 높이 1.5m, 길이 2m의 실물대이며, 갑옷을 입고 무장한 무사의 엄격한 표정이 모두 상이하다. 1호 갱의 동북에 위치한 약 6,000㎢의 2호갱 역시 부분적으로 발굴되어 다량의 목제 전차와 이를 끄는 마용 356건, 기병용 116건, 안마 116건, 보병용 562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완전 발굴된 520㎢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 입은 보병용 64건, 마용 4건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진시황릉 서북측에서 동마용과 동용이 딸린 대형 동전차가 1대 발견되었다. 세계의 8대 경이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이 병마용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이 병마용들은 진시황 친위군단의 강력한 위용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나라의 군사편제 ·갑옷 ·무기 등의 연구에도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와 아울러 일부 도용에서 확인되는 북방 민족의 두발형식은 친위군단의 민족적 구성을 짐작하게 한다.
서안에서 37km 떨어진 임동현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 낮은 야산 처럼 보이는 것이 진시황릉이다. 아직까지 전혀 발굴이 진행되지 않은 이 묘는 진시황이 즉위한 바로 그 해로 부터 37년 동안 건설되었으며 병마용 박물관팀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이 곳에 전체 면적이 약 60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지하도시가 있다고 한다. 거대한 지하도시는 진시황의 궁전으로 현재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진시황은 기원전 246년 즉위한 진나라의 왕으로 철권통치와 분서갱유 등의 사건으로 악명이 높지만 중국 대륙을 통일한 최초의 왕이며 중앙집권제로 성문법 제정, 도량법 통일, 화폐 통일과 만리장성 축조 등 치적이 눈부신 왕이기도 하다.
44위 아이슬란드
대서양 북부에 있는 섬나라로, 면적은 10만 2928㎢, 인구 29만 명(2003), 레이캬비크, 정식명칭은 아이슬란드 공화국이다. 아이슬란드의 섬은 북위 63°20'부터, 66°33'까지, 서경 13°30'부터 24°32'까지를 차지하며, 남북길이 340km, 동서길이 530km의 계란형을 이루고 있다. 가장 가까운 서쪽의 그린란드까지는 278km, 남동쪽의 스코틀랜드까지는 708km, 동쪽의 노르웨이까지는 970km 떨어져 있다. 동해안과 북해안에는 홍적세(洪積世)에 섬 전체를 뒤덮었던 빙하가 만든 피오르드가 많다. 서쪽 지방과 남쪽 지방, 피오르드 안쪽에는 평지가 있으나 해발고도 200m로 경작한계(耕作限界)에 이르고 있다. 국토의 70%는 400m 이상의 불모지이고, 12%는 빙하이다. 이들 빙하는 6개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바트나이외쿠틀(바트나 빙하)이며 넓이 8,400㎢나 되는 세계 굴지의 규모이다. 섬의 북부 중앙에서 남서부 일대에 걸쳐 제4기 현무암, 파라고나이트 지대이며, 나머지 반인 동부와 북서부는 제3기 현무암 지대이다. 동부에는 1,100년 동안 헤클라·카틀라·아스캬·쉬르트세이·베스트만 등 30여 개의 활화산이 있으며, 온천과 간헐천(間歇泉)도 260개 지역에 달하여 증기(蒸氣)를 합계한 총열량이 매초 11억 kcal나 된다.
대부분의 아이슬란드인은 영국 셀츠(Celts)지방과 노르웨이 정착민의 후손들이다. 아이슬란드의 주민은 놀랍도록 단일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슬란드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99%의 국민이 도시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의 60%가 레이자비크(Reykjavic)과 그 주변에 살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언어는 고대 노르웨이어에 가까우며 12세기이후 상대적으로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91%의 주민이 국가교회, 복음 루터파 교회, 혹은 다른 종류의 루터파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렇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완벽한 종교적 자유가 있고 프로테스탄트나 로마 가톨릭 집회도 현존한다. 대부분 아이슬란드인 이름의 성(Surname)은 조상의 이름을 따서 만들게 되어 있으며 이것은 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예를들면 성인 Pertursson은 아버지의 이름 Petur에서 딴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슬란드인들은 서로의 성을 부르지 않으며 전화번호부 조차 성이 아닌 이름 순으로 분류되어 있다. 여성은 결혼 후에도 원래 자신의 성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43위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
면적은 430㎢, 인구는 27만 2000명(2003)이다. 수도는 브리지타운이며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서인도제도의 남쪽, 윈드워드제도(諸島) 동쪽 끝에 있는 영연방(英聯邦)에 속하는 독립국. 국토는 바베이도섬[島]이다. 입헌군주국이므로 총리가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관광산업을 개발하여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변의 섬들이 대부분 화산섬이나,바베이도스는 석회암섬이다. 약 335m 높이의 힐러바이산(山:374m)이 솟아있고 계곡에는 많은 토종 식물상과 동물군이 서식한다. 섬 주위에는 산호초가 있다. 일년내내 햇볕이 비쳐 따뜻하여 '태양 속의 섬'이라고도 한다. 섬의 대부분은 경작 가능한 평지로 되어 있다. 기후는 열대해양성기후로, 저녁에는 약간 기온이 내려가지만 대체로 23~29℃ 정도 된다. 7~9월의 고온기에는 23~31℃, 2월의 저온기에는 21~28℃를 나타낸다. 우기와 건기로 나누어지는데 건기는 1월에서 5월, 우기는 6월에서 12월까지이다. 6월에서 10월까지 허리케인이 발생하지만 큰 피해를 준 적은 거의 없다. 1955년에 허리케인 자넷이 내습하였다.
바베이도스 주민의 약 80%가 아프리카인, 4%는 유럽인, 16%는 혼혈이다. 바베이도스인의 약 70%가 영국성공회를 믿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 감리교, 침례교 등을 믿는다. 바베이도스인은 영어를 사용한다.
42위 태국 방콕
태국의 수도이자 관문이 되는 도시이다. 1782년 라마 1세 국왕 때 세워진 이 도시는,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태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시암 만(Gulf of Siam)에서 조금 떨어진 짜오 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 기슭에 위치한 방콕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다. 왕가가 거주하는 곳이며 행정의 중심이자 주요 항구도시로 태국 인구의 약 1/10이 살고 있다. 방콕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강과 철도 사이에 위치한 구 시가지에 대부분의 오래된 사원이 있다. 신시가지는 철도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주요 상가와 관광 지구, 광대한 주거 지역이 펼쳐져 있다. 시내에는 대소 300의 사원이 있을 만큼 일찍이 불교의 꽃을 피워 온 도시이다. 왕궁에 인접해 있는 왓 프라깨오에는 약 60cm 높이의 에메랄드 불상이 있어서 일명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부르는 가장 유명한 사원이다. 그 밖에 대리석으로 만든 대리석사원, 누운 석가상이 있는 왓 포, 방콕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왓 아룬 등이 있다. 한국 보다 2시간 늦다.
인기 여행지
▶태국 왕궁 & 왓 프라 깨우(Grand Palace & Wat Phra Kaew) (에메랄드 사원)
왓 프라 깨우(에메랄드 부처의 사원)는 가장 성스러운 불상을 모신 곳으로 태국 최고의 성지다. 에메랄드 부처는 높이가 66센티미터밖에 안 되지만 태국의 가장 중요한 불상으로 종교적인 의미가 크다. 왓 프라 깨우 사원은 1782년 라마 1세가 방콕으로 수도를 옮길 때 광활한 땅에 지었던 왕궁과 접해 있다. 라마 1세 이후의 왕들과 가족들이 이 궁에 살았다가 라마 5세가 두씻으로 왕실을 옮겼다. 오늘날 태국 왕궁은 주로 대관식 같은 예식이 있을 때만 사용된다.
94만 5,000평방미터의 땅에 펼쳐진 100여 개의 건물들(대부분이 랏따나꼬씬 건축 양식)을 돌아보는 것은 태국 관광의 백미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므로 복장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본관 사무소에서 적당한 옷을 빌려 입을 수 있다. 왓 프라 깨우의 본당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은 슬리퍼 스타일만 아니면 된다. 즉 스포츠 샌들도 가능하다. 신발도 대여 가능하며, 왕궁 밖 노점보다는 왕궁 내 대여소에서 보증금만 내고 빌리는 것이 좋다(보증금 100B은 돌려받을 수 있다). 단, 왕궁 내 대여소에서 신발을 빌리려면 양말을 구입해야 한다. 복장은 반바지는 불가능하나 칠부바지 정도, 즉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옷은 괜찮다.
▶왓 아룬 (Wat Arun) (새벽 사원)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따라가다 보면 톤부리 제방 위에 펼쳐지는 왓 아룬 사원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에 끊임없이 사로잡힌다. 가장 멋진 모습의 왓 아룬을 보는 것이므로 이 모습을 마음 속에 담아두자. 가까이 가서 실제로 사원을 보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19세기 초에 지어진 탑을 올라가면 도시의 전경이 보인다. 이 탑은 크메르와 태국 양식을 접목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
▶왓 포 (Wat Pho)
왓 포는 방콕의 사원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16세기에 탄생했으니 방콕보다 역사가 더 오래됐으며 가장 큰 규모의 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엄청난 와불상(臥佛像)을 비롯해 태국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와불상은 태국에서 가장 높은 불상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왓 포를 태국 전통 마사지의 중심지로 알고 있다. 다리가 피곤하면 사원의 동쪽 끝으로 가라. 그곳에 바로 그 유명한 태국 전통 마사지 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차이나타운 (China Town)
간단히 말해서 방콕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시끄러운 소리와 냄새에 재미도 있는 곳이다. 골목은 어둡고 큰 도로들은 교통이 막힌다. 활기차고 싼 값에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은 물론 발길을 멈추게 하는 먹거리 노점상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다. 차이나타운은 대략 활람퐁 스카이트레인 역 서쪽 지역과 클롱 옹 앙 동쪽 지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랏따나꼬씬에 새로 수도가 들어설 때 그곳에 살던 중국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19세기 말에는 암흑가로 악명이 높았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으리으리한 태국 아르 데코 빌딩들이 차이나타운의 주요 도로인 야와랏(지금은 금은보석상들로 유명)과 챠루엔 크룽을 따라 줄줄이 들어섰다. 오늘날 차이나타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방콕의 중국 문화 중심지로, 중국어 신문이 4개나 있으며 성대한 중국 신년 축제를 자랑하고 있다.
▶짐 톰슨 하우스 (Jim Thompson's House)
미국 출신인 짐 톰슨은 삶과 죽음에서 모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그가 남긴 것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게 된 태국 비단과 아름다운 동남아 미술품, 평화로운 모습의 태국 전통 주택이다. 여행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 1959년 짐 톰슨이 클롱 샌 샙 옆으로 기둥 위에 지은 목조 주택 6개 가운데 몇 채를 볼 수 있다. 이 집들에는 곳곳에 버마나 캄보디아, 태국 공예품들뿐 아니라 진귀한 중국 도자기를 비롯한 짐 톰슨의 예술품과 개인 소장품들이 전시돼 있다. 짐 톰슨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은 고사 위기에 있던 태국의 가내 공업을 되살리는 데 가장 큰 몫을 했다. 손으로 짠 실크를 유럽의 패션 회사들에 보내 오늘날까지도 전통 기술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41위 스리랑카 시기리야
인도 남부 인도양 해상에 위치하며, 면적은 6만 5,610㎢, 인구는 1906만 5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290.6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이다. 18세기 말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1948년 영국연방 내의 자치령으로 독립하였으며, 1972년에 국명을 실론(Ceylon)에서 스리랑카공화국으로 개칭하여 영국연방에서 완전 독립국이 되었다가 1978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바꾸었다. 1985년 수도가 이전되어 콜롬보 외에 정치적 역할을 하는 수도로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의 요지를 차지하며, 인구는 섬의 남서부에 집중해 있다. 최근까지 스리랑카의 수도로서, 콜롬보는 매력적인 도시일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그리고 현재와 과거가 융해되는 도시이다. 콜롬보는 인구 50만 정도에 15개의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볼거리로는 불교사원과 힌두사원, 이슬람사원, 기독교 교회당과 같은 사원부터 국회의사당 건물, 공원, 동물원, 박물관과 미술 갤러리 등이 있다. 보통 한나절 여행을 하면 40 km정도를 커버하고 불교사원과 힌두사원 그리고 동물관과 거주지역을 볼 수 있다.
▶Nuwara Eliya 누와라 엘리야
차 재배지인 이 섬의 고원지대의 중앙에 위치한 산악지로서 콜롬보로부터 169km, 캔디에서 77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누와라 엘리야는 해발 1,900미터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영국 식민지시대의 향수가 가장 잘 서려있는 해발 1989미터의 피서지로 유명하다. 이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 2,524미터인 피두루탈라갈라(Pidurutalagala)산이 있다. 모든 공공건물, 집, 거리, 길, 공원 등은 옛 영국식으로 되어 있어 이곳의 맑고 시원한 산 공기를 마시며 가끔씩 내리는 비를 맞다보면 마치 영국시골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라 한다. 이곳의 차는 고지대의 기후에서 경작되기 때문에 가장 좋은 맛을 낸다 하며 이 일대를 둘러보면 차 재배와 가공의 전 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곳의 18홀 골프코스도 유명한데 여행객에게도 오픈되어 있고, 근처의 학갈라(Botanical Garden)는 누왈라 엘리야의 명소이다.
▶Sigiriya 시기리야
폴론나루와로부터 6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시기리야는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370미터의 화강암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사자 바위(Lion's Rock)"가 사방으로 둘러싸인 밀림지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시기리야의 바위산에는 5세기에 신할리왕조 제65대 왕 카사파 1세가 건설한 성채도시 유적이 있고 산기슭에는 정원과 담장들로 둘러싸인 시가지 유적이 있다. 높이 약 200m, 넓이 약 2㏊인 평평한 산 정상에는 좁은 계단과 작은 길을 연결하여 궁전·저수지·정원 등을 세웠으나, 지금은 벽돌로 된 기단만 남아 있다. 산 북쪽 중턱에는 성문 유적이 남아 있는데, 문 양쪽 옆에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거대한 동물의 앞발 조각상이 있다. 문 중앙에는 왕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1982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40위 세이셸제도 라디게섬
세이셸은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약 1600㎞ 인도양에 떠있는 92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섬나라이다. 적도의 바로 남쪽에 있지만 인도양 위에 있기 때문에 시원하고 진귀한 동식물에 둘러싸인 「인도양 최후의 낙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제일 처음에는 16세기에 포르투갈이 상륙했다고 하지만 19세기 초에 모리어스 제도와 함께 영국령이 되어 1979년 6월 세이셸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동부아프리카, 케냐동방 약 1580km 인도양 상에 위치하며, 면적 455평방 Km, 인구는 79,000名 (2000년), 수도는 빅토리아(Victoria), 공용어로는 영어, 프랑스어, 크레올어이고, 종족구성은 세이셀인, 종교는 천주교 90%, 성공회 8%이다.
세이셜 제도는 마스카렌 해령(海嶺)의 북단에 위치하는 고기(古期) 화강암질의 군도이다. 섬은 곤드와나 대륙이 분리했을 때 아프리카 대륙과 남부아시아 대륙 사이에 고립되어 남은 부분으로 추정된다. 지질적으로는 거 의가 화산섬으로 구성된 마다가스카르 부근의 섬들과는 다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최대의 섬인 마에섬은 산이 많으며 최고점은 928`m에 달하여 전 제도 중에서 가장 높다. 그 밖에 프레슬린섬 라디게섬 실루엣섬 프로비덴스섬 등 이 있으며 큰 섬 외에는 거의 환초(環礁) 등의 산호초로 구성되어 있다. 적도 바로 아래에 위치하나 인도양에 있으므로 연평균기온은 26∼27`℃로 1년 을 통해서 큰 온도 변화는 없다. 12월부터 3월에 걸쳐 습기를 가진 북서몬순 이 불어오고 6월부터 10월에 걸쳐서는 남동무역 등의 영향을 받아 건계(乾 季)를 이룬다. 또한 진기한 동물과 식물이 풍부하여 ‘인도양 최후의 낙원’이라고도 일컫는다. 세이셀공화국의 알다브라 환초지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라디게 섬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허가해 주지 않는다. 우마차와 자전거만 허용된다.
39위 싱가포르
적도 북쪽 137km 지점에 있으며, 면적은 685.4㎢, 인구는 423만 3000명(2003)이다. 60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조호르 해협을 가로지르는 둑길 위의 도로와 철도를 통해 서말레이시아와 이어지며, 남서쪽으로 말라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과 마주보고 있다. 수도는 싱가포르이며 언어는 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을 사용한다. 정식명칭은 싱가포르공화국(Repubic of Singapore)이다. 중국 표준어로는 신자포(新加坡), 타밀어로는 Singapore Kudiyarasu. 말레이 반도 남단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지형은 대체로 평탄하다. 낮게 굽이치는 경관 가운데 약 2/3가 해발 15m 미만의 평지이고 섬 중앙의 울퉁불퉁한 화강암 고지에 있는 최고봉 티마 산도 높이가 165m에 지나지 않는다. 섬의 동부는 언덕과 침식 계곡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낮은 대지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 고지의 남쪽과 서쪽에는 해안을 따라 일련의 낮은 벼랑과 얕은 계곡을 이루는 급경사면이 펼쳐진다. 짧은 하천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얽혀 있으며 싱가포르에서 가장 길다는 셀레타르 강도 길이가 16km에 채 못미친다. 연평균 강우량이 2,400㎜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 공급의 2/3 이상을 이웃 말레이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월평균기온은 높은 편으로 1월의 25℃에서 6월의 27℃ 사이에 연중 고르게 분포한다. 연강우량도 상당히 고르게 분포하지만 북동 계절풍이 부는 11∼3월 사이에는 월평균 250㎜, 남쪽 계절풍이 부는 5∼9월 사이에는 178㎜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육지면적 가운데 2% 정도가 경작이 가능하며 토양은 대체로 메마른 편이다. 가경지에서는 현대적 집약농경이 이루어지는데 세계에서 과일과 채소의 생산성이 가장 높은 지대로 손꼽힌다. 국토 면적 중 약 4.9%가 삼림지로 자연보존위원회에서 관리한다. 우림(雨林)이 가장 울창한 곳은 중앙 고지의 티마 산 자연보호구에 있다. 많은 하천 가운데 특히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에는 홍수림으로 둘러싸인 넓은 하구가 내륙까지 깊숙이 뻗어 있다. 원래 우림지대였던 대부분의 지역이 관목지대로 바뀌었다. 포유동물로는 꼬리가 긴 마카크(아시아산 원숭이)와 천산갑(穿山甲) 등이 있다. 여러 종류의 조류, 코브라와 도마뱀도 많이 서식한다.
중국인이 전체인구의 3/4을 차지한다. 이들은 주로 푸젠성(福建省)과 광둥 성(廣東省) 출신이 많으며, 서로 통하지 않는 방언을 쓴다. 말레이인과 타밀족·말라얄리족·시크교도를 포함한 인도인이 나머지 인구를 구성한다. 공용어는 영어·중국어·말레이어·타밀어이다. 중국인은 대부분 유교·불교·도교를 믿는다. 말레이인들과 일부 인도인들은 이슬람교도이고 나머지는 그리스도교도이거나 힌두교도이다.
싱가포르는 주로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가 중심을 이룬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인구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다. 싱가포르에는 100개 이상의 상업은행이 있는데, 대부분이 외국은행이다. 1968년에 아메리카은행의 도움으로 개설된 아시아 달러 시장이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주로 아시아계 기업에 대한 외국의 투자를 중개한다. 싱가포르는 영연방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ASEAN)의 회원국이다. 주요 교역대상국은 미국·말레이시아·일본이며, 원유·자본재·공업원료가 수입의 주종을 이루는 한편 석유제품, 전기기구와 섬유 완제품을 비롯한 공산품 등을 수출한다. 제조업 부문의 급성장으로 중계무역에 대한 의존도는 줄었지만, 싱가포르는 연간 출입 선박의 총 t수로 따져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 가운데 하나이다.
38위 두바이
인구는 91만정도이다. 아랍에미리트 연방을 구성하는 7개국 중의 한 나라로, 전에는 트루셜오만의 구성국 중 하나였다. 두바이는 아랍어(語)로 ‘메뚜기’를 뜻하며, 토후국 중 유일한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하여 중계무역지가 되었다. 1969년부터 석유를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1971년에는 650만 t의 원유를 수출하여 새로운 산유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엄청난 오일달러를 투입해 중동의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 매일 변하고 있다. 아랍 에미리트 연합에 약 1세기전 석유가 발견되어 생산되기 이전에 두바이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석유가 발견되고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두바이에는 고속도로가 뚫리고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들어서 사막위의 신기루처럼 도시가 생성된 것이다. 현재는 두바이 비치에 세워진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 호텔(Burj Al Arab Hotel)이 전 세계적으로 화보집이나 달력, 인터넷 매체를 타고 인기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두바이라는 도시도 유명해졌으며 2005년 5월 1일부로 매일 1회씩 아랍 에미리트 항공의 직항이 한국과 개설되면서 한국 관광객들도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아라비아 돛단배를 형상화해서 만들어진 버즈 알 아랍 호텔(Burj Al Arab Hotel)은 지금은 타계한 통치자 셰이크 라시드(Sheikh Rashid)가 정책적으로 건축하도록 한 두바이의 명물로 당시까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두바이를 세계에 알리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만든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허브 "두바이 도시 전체가 세계 8대 불가사의다."
야자수 모양의 매혹적인 인공섬 '팜 주메이라'는 지상과 낙원의 경계에 놓여있는 듯했다. 하얗다 못해 차라리 푸르러 보이는 모래 백사장과 끝없이 펼쳐진 쪽빛 바다, 해안가에 입을 맞추는 부드럽게 일렁이는 바닷물 위로 우뚝솟은 거대한 인공섬 팜 주메이라는 그 자체가 `위용`이었다.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팜 주메이라는 아직 미완성이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와 기획력에 인간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길이가 400m가 넘는 팜 주메이라의 각 줄기섬에는 형형색색의 최고급 빌라 수천가구가 한창 공사 중이었다. 바다의 한 지점을 돌과 흙으로 막아 달에서도 보이는 인공섬을 만들겠다는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분명 눈앞에 펼쳐져 있건만 인간의 힘으로 만든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사막으로 사방이 가로 막혀있지만 `공간의 한계`에 전혀 구속당하지 않는 두바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지금의 두바이와 미래의 두바이를 엿보게 하는 상상력의 힘이기도 하다.
▶두바이를 관통하는 발상의 전환= 흔히들 두바이의 천지개벽을 '오일달러의 힘'으로 잘못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두바이 곳곳을 다니다보면 이 천지개벽의 출발점은 '석유'가 아닌 '발상의 전환'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지난 1966년 처음 석유를 발견한 두바이는 2026년까지는 걱정없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두바이 지도자였던 세이크 라시드는 석유의 발견과 함께 석유자원의 고갈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겨우 60년치 밖에 안되는 석유자원의 고갈을 두바이 민족의 멸망이라는 객관적인 위기의식으로 전환시켰다. 두바이 민족의 존립을 위한 비전을 두바이 뿐 아니라 전세계에 공고히 한 것이다. 두바이 천지개벽 참관단의 삼성생명 금융연구소 주창돈 상무는 "이슬람 국가로서 두바이에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개방적인 허브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두바이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중동의 허브가 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단기, 중기, 장기의 로드맵도 정확하게 그려나갔다"고 평가했다. 라시드의 이같은 발상의 전환은 그의 아들 세이크 모하메드로 이어지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중동의 허브' 두바이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팜 주메이라는 물론 팜 데이라, 팜 제벨알리, 더 월드에 이르기까지 인공섬들을 가득 메운 것은 돌과 흙이 아닌 무한대로 치닫는 '역발상'이다. 발상의 전환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두바이의 현재와 미래를 만든 핵심코드다. 4개의 인공섬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인공해변 길이는 1100Km로 경부고속도로의 3배에 육박한다.
▶천지개벽의 총 지휘자, 세이크 모하메드= 두바이의 천지개벽은 세이크 라시드가 시작했지만 그 정점에는 현 왕세자 세이크 모하메드가 있다. 모하메드는 두바이의 정치, 경제, 산업, 관광을 아우르는 총 지휘자다. 그는 실질적으로 두바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영국의 군사학교를 졸업한 모하메드는 인공섬과 인터넷시티 등 두바이 개발사업의 각종 아이디어를 직접 내놓는가하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땅을 기증해 천지개벽을 일궈냈다. 두바이의 천지개벽은 존경받는 왕권정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바이는 모든 토지가 국왕 소유로 엄청난 개발에도 불구, 민원과 보상으로 골치를 썩는 일이 없다. 모하메드의 의지만 있다면 어떤 지역도, 어떤 규모로든 개발할 수 있다. 모하메드는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극대화시킨 위대한 지도자다. 세이크 모하메드는 각계 전문가 2000여명으로 구성된 씽크탱크를 직속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를 통해 두바이 개발과 관련된 각종 사안들을 빛의 속도에 비유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결정한다고 한다.
세이크 모하메드와 씽크탱크가 두바이 개발에 얼마나 치밀한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두바이는 대형 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민간 디벨로퍼에게 99년 임대조건으로 토지를 판다고 한다. 이때 땅값을 계산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표면적인 땅값은 250만원 안팎으로 불모지를 바꾼 땅값 치고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 그러나 실제 계약서상의 땅값은 여기에 해당 지역 용적률을 곱해 산출한다. 평당 250만원인 땅값에 용적률 600%만 적용해도 평당 땅값은 1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사업시행자가 얼마나 치밀하고, 철저하게 개발을 추진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바이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인 엠마와 낙힐의 실질적 소유주는 세이크 모하메드다.
▶두바이 전체가 세계 8대 불가사의=두바이의 기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두바이는 이미 20년전인 1985년 중동 최초로 제벨알리 항구의 배후지역에 제벨알리 경제자유구역(프리존)을 설치했다. 두바이 공항자유무역지대를 만든 것도 벌써 10년째다. 일찌감치 앞선 마인드로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두바이 개발은 최근들어 더욱 무서운 속도를 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두바이의 각종 개발사업에는 항상 '세계 최대',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 홍콩과 싱가포르를 앞서는 허브를 위해서는 '평범함'으로는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800m 높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두바이와 골프장과 주거시설을 포함, 미국 디즈니랜드의 8배가 넘는 두바이랜드, 인공섬 프로젝트로는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팜 아일랜드, 세계 최고급 7성호텔 버즈 알아랍(사진)에 이르기까지 두바이의 최고 정신이 녹아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두바이의 천지개벽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 최근 두바이 정부는 제벨알리 내륙지역에 40억달러 안팎의 대규모 크릭(인공수로) 건설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안 인근지역의 개발은 거의 마무리 단계로 이제 광활한 내륙 사막지역의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 크릭이 완공되면 현재 두바이 곳곳에서 진행중인 개발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또다시 넘쳐날 전망이다. 끝없는 발상의 전환과 피와 땀,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두바이는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우리가 두바이 전체를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이 도시가 도무지 한계를 느낄 수 없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원종태 기자)
37위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베리아반도 북동쪽과 지중해안의 우수한 위치에 자리잡은 바르셀로나는 크기나 인구면에서 스페인 제 2의 대도시이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자치구의 까딸루냐의 수도이기도 하다. 까딸루냐어와 스페인어 두 가지의 공식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현대 바르셀로나는 19세기 후반에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예로부터 예술활동이 번성하였고 그 지역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이 생겨 난곳으로 유명하다. 단일도시 이상인 바르셀로나는 다면적이고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구는 31만 1,475명(2000)이다. 카라카스에서 동쪽으로 333km 떨어진 곳에 있다. 카리브 해안에서 약 5km의 내륙, 네베리강(江) 연안에 위치한다. 연평균기온은 26.7℃. 1960년대에 관타·푸에르토라쿠르스 공업지대의 일부로서 발전하였다. 주변지역은 콩·카카오·커피·목화·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농업지대이며, 그 상업중심지를 이룬다. 주요 탄전도 부근에 있으며, 주의 석유산업발전과 함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교통정보
항공편 - 바른셀로나공항이 시 남동쪽 12km지점의 엘 프라트 데 요가레트 구역에 위치.
기차편 - 파리,제네바,쮜리히 ,밀라노행 국제 열차가 항구 인근에 위치한 산츠 역에서 출발
▶숙박정보- 바르셀로나에서 이용할수 있는 호텔객실은 5성급,4성급,3성급호텔을 포함하여 총25,000개에 이른다. 등급별로는 5성급 호텔이 6개,4성급 호텔이 48개,ㄴ3성급 호텔이 60개가 있다.
▶날씨정보- 바르셀로나의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기후다.평균 기온은 겨울이 11도이며 여름은 24도이다. 12월과 1월이 가장 추운 달이며 가을과 봄이 일반적으로 우기에 해당한다.
▶쇼핑- 까딸루냐광장에서 폴탈 데 란젤거리를 따라가면 portaferrissa거리에 다다르는데,이 곳에는 두개의 백화점과 의류 악세사리, 기타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선 쇼핑지역이다. 시의 고지대인 다아아고날지역은 또 다른 흥미있는 쇼핑지역이다. 이곳에는 두개의 백화점과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인 부띠끄가 있다. 그로리에스 카타라네스광장에는 모든종류의 고 물건과 신상품을 파는 Mercat de les Encants벼룩 시장이 선다.
▶주요관광지
1.고딕지구 -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고닥 지구는 시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근처에는 바르셀로나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까딸루냐광장이 있다. 람브라스거리는 까딸루냐광장에서 항구의 콜롬부스 전망대까지 이어진다. 항구앞의 Avinguda del paral-lel이라는 도로는 피라 데 바르셀로나 경기장이 위치한 스페인광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빈구다 레이나 마리아 크리스티나에서 1992년 올림픽경기를 위핸 건설된 여러 스포츠 시설이 잇는 몬쥬익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파라우 나시오날이 보인다.
2.리베라 지구 - 고딕지구에서 비아 라이에타나로 분리되는 첫번재 성벽 바깥지역이 리베라 지구이다. 이 지구는 원래 중세시대의 상인들이 거주했던 산 페레지구와 뱃사람들이 거주했던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지구로 분리되어 있다.특히 15번지에는 정원과 장식 창문, 야외 계단이 특징적인 15세기 건축물인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 아길라 저택을 볼 수 있다.
3.레산프레지구와 현대 건축 - 레산프레 즉,"확장" 지구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교차로로 된 격자구조의 도로로 형성된 바르셀로나시의 중심지역이다.이곳은 19세기 후반에 도시 확장계획에 기초하여 도시가 확대된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라시아 대로 왼편으로 가면 Luis Demenechi Montaner의 작품인 레오 모레라 저택으로 꽃을 주제로한 현대적 양식의 현관이 특징적이다. 또한 다채색의 자기로 현관이 장식된 신고딕 양식의 아마트렐 저택과 용을 주제화한 모자이크 현관이 아름다운 가우디작품의 바트요 저택을 볼수있다.
4.람브라 지구 - 람브라라고 칭하는 거리는7개 의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구역을 되어 있으며 랍브라지구에서 가장특색있는 곳은 보케리아시장으로 신선한 야채와 육류, 생선으로 끝없이 연결된 가판대와 한잔의 술을 즐길수 있는 바가 늘어서 있다.
5.골동품 벼룩시장 - 대다수의 골동품상점도 역시 레산프레에 있다. 그라시아 대로에 있는 쇼핑센터의 1층에 73개의 골동품 상점이 있는 골동품 거리가 있다. 대 성당 광장에서는 매주 목요일골동품 벼룩시장이 열린다.
6.벨항구 -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오락단지이다. Juan de BorbOn거리와 Rambla de Mar거리는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서 항구의 장엄한 풍경을 감상할수 있다.
36위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도시. 태평양 연안에서는 로스앤젤레스에 이은 제2의 대도시이다. 샌프란시스코만(灣)에 면한 천연의 양항(良港)으로, 골든게이트에서 남쪽 서안(西岸)에 위치한다. 시가는 반도의 북쪽 끝을 차지하며, 북쪽은 골든게이트 브리지(金門橋)에 의해서 대안(對岸)의 마린 반도(半島)에 이어지며, 동쪽은 샌프란시스코만을 넘어 오클랜드와 마주 보고 있다. 이 사이에는 길이 13.5km에 이르는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베이 브리지가 걸려 있다. 신흥도시 로스앤젤레스가 최근에 샌프란시스코를 앞지를 때까지는 오랫동안 태평양 연안 제1의 항구이었으며, 지금도 세계 유수의 항만 도시 및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골든게이트 브리지(金門橋)는 San Francisco의 상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이 지역에 금이 많이 나와 이곳 항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드나들었기 때문에 골든-게이트 브리지라고 한다. 미국 서남부의 골든게이트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샌프란시스코와 북쪽의 마린반도를 연결하는 강철로 만든 현수교(懸垂橋), 금문교(金門橋)라고도 한다. 길이 2,825m. 1933년에 착공하여 37년에 완공되었다. 탑은 오렌지색으로 칠해져 있고, 2줄의 케이블을 지탱하고 있는 탑의 높이는 약 227m, 기둥 사이는 약 1280m로 뉴욕 베라자노내로우즈교(Verra-zanoNarrows Bridge)에 이어 세계 제 2 위의 다리이다. 이 6차선의 자동차 전용 다리 밑으로는 대형선박이 통과할 수 있다.
35위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는 지중해 중앙부, 북서에서 남동으로 약 1200km에 걸쳐 장화 모양을 한 반도와 시칠리아·사르데냐 두 섬으로 구성된다. 북쪽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와 접하며, 동쪽은 아드리아해(海), 서쪽은 티레니아해에 면한다. 이탈리아 반도는 발칸·이베리아 반도와 함께 남유럽의 3대 반도의 하나로서 동(東)지중해와 서(西)지중해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연·문화면에서 두 반도와는 달리 순수한 유럽형을 이루고 동시에 지중해 지역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낸다. 행정구역은 15개주(regione)와 5개 자치지역(regione autonoma)으로 되어 있다.
이탈리아는 산지와 구릉이 풍부하며, 평야는 전국토의 약 1/5로 협소하다. 가장 큰 평야는 포 평원(55,000㎢)이며, 그밖에 캄파니아 평야(1,900㎢) 등 소규모의 평야가 분산되어 있다. 지형상 알프스·포 평원·반도부·도서부(島嶼部)의 4개 부분으로 나뉜다. 이탈리아에 속하는 알프스는 서쪽으로 제노바만(灣)(Golfo di Genova)의 카디보나에서 아드리아해 북쪽의 트리에스테까지 뻗어 있으며, 서(西)알프스·중(中)알프스·동(東)알프스로 구분된다. 서알프스의 안쪽은 함몰(陷沒)되어 형성된 평원을 둘러싸고 있다.
로마는 중부의 아펜니노산맥에서 발원하는 테베레강(江) 하류에 면하며 주로 홍적대지로 이루어진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시의 중심부이며 또 로마가 기원한 티베리나섬 부근은 테베레강 하구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다. 로마의 발상지는 테베레강 좌안, 카피톨리노 구릉을 중심으로 한 지대로서 현재에도 남아 있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시벽(市壁)이 고대 로마시의 규모를 나타낸다. 중세의 로마는 테베레강 우안, 산피에트로가 순교한 바티칸 언덕에 건설된 산피에트로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종교지구로 고대 로마의 시가지는 석조건조물과 함께 폐허가 되었고 흙과 모래에 매몰된 채 방치되었다.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 ‘르네상스 교황들’ 밑에서 주로 고대 로마시의 북부에 새로운 시가지가 건설되었는데, 고대조각 오벨리스크 등의 몇 개는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 건설된 광장과 건물을 장식하기 위하여 이동되었고, 콜로세움 등에 사용되었던 대리석도 헐려서 새로운 건조물에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로마의 고대도시 부분은 대부분 폐허가 되었지만, 현재에도 유적으로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고대의 유적이나 카타콤 등은 고대 로마의 주요 가도(街道)였던 아피아 가도 연변에 많이 남아 있다. 로마의 구시가 부분은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 그 기본적인 계획이 세워졌던 곳으로 이곳에 고급 상점가와 정부기관이 많이 집중되어 있다. ‘종착역’에서 로마의 번화가 베네토 거리에 이르는 지구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발달하였다. 구 시가의 북쪽, 핀키아나문(門)과 포폴로문 사이에 있는 보르게세 공원이 현재에는 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었으나, 본래는 17세기 초에 건설되어 계속 보르게세가(家)의 소유였던 것을 1902년 이탈리아 왕가가 매수하여 로마시에 기증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 로마는 시의 중심부에 광대한 녹지대를 소유하게 되었다. 테베레강 우안에는 몬테마리오 및 자니콜로 언덕 등 높이 약 100m에 이르는 높은 구릉이 있고, 이 구릉지대는 1930년대부터 택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뒤 로마 중산계급의 주택지로 발전하였다. 시가지로서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에우르(EUR)인데 이는 무솔리니 정권시대에 만국박람회장으로 설계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만국박람회가 중지된 뒤에는 관청가·고급주택가를 이루는 부도심지로서 다시 구획되었다. 따라서 이곳에는 파시즘 양식의 의고적(擬古的) 건축과 현대건축이 병존하고, 정부의 몇 개 부(部)와 국영 콘체른 에니(ENI) 등 관청이 모여 있으며 근대적 건축물과 로마 구시가에서는 볼 수 없는 몇 개의 마천루도 솟아 있다.
로마는 현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지이며, 또 그 오랜 역사를 반영하여 고대로부터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베네치아광장·바티칸광장·포폴로광장·바르베리니광장으로 둘러싸인 지대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시대에 걸친 도시계획에 의하여 건설된 지역으로, 이곳에는 많은 역사적 건조물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 몇 개는 현재 총리부·상하 양원 등의 정부기관 건물로 사용된다. 또 나보나광장·트레비분수·에스파냐광장 등 관광할 곳도 많다. 근대미술관·보르게세미술관·로마국립박물관·카피톨리노박물관 등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으며, 바티칸시국에는 바티칸도서관 및 바티칸박물관이 있다. 이밖에 성당과 옛 건조물에는 많은 미술품이 보존되어 있다. 고대로마 유적은 카피톨리노·팔라티노·카일리오·아벤티노·에스퀼리노·비미날레·퀴리날레 등 7개 구릉지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곳에 포룸 로마눔도 있다. 로마의 출판·예술활동은 밀라노만큼 활발하지 못하나, 현대미술 등 밀라노와는 색다른 독자적 경향을 지닌 것이 많다.
또 바티칸의 존재와 결부하여 로마에는 가톨릭 관계의 국제적인 연구·교육·문화기관이 많다. 특색 있는 문화활동으로서 영화제작이 있으며, 이것은 무솔리니 정권시대에 로마의 동쪽 교외에 건설된 치네치타가 그 중심이다. 1960년 올림픽 경기가 개최되기도 하여 시내에는 스포츠 시설이 많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 있었던 포로이탈리코는 무솔리니 시대에 건설이 시작된 것으로 시의 북부, 테베레강 우안에 있으며 테베레강을 사이에 두고 대안에는 본래 올림픽촌이었던 공무원 아파트가 있다. 포로이탈리코에는 이탈리아 방송(RAI)의 공회당도 있다.
34위 이집트 룩소르
룩소르는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1시간, 열차로는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남부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고대 왕국의 수도 테베의 일부인 룩소르는 최전성기 1500 B.C.에는 인구가 1천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전해지며,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함이 묘사돼 있다. 이곳에 그 유명한 카르낙 신전과 룩소 신전이 거대하게 장엄함을 뽐내고 있으며 오벨리스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 둘 중 하나는 나폴레옹 침공시 프랑스로 옮겨져 현재는 파리의 뽕피두 광장에 있다. 그래서 인지 룩소르의 분위기는 무언가 빠진듯한 어설픈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룩소르는 나일강에 의해 동서로 대별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뜨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을 지었고,태양이 지는 서쪽은 주로 묘지나 제전 등을 지었다. 따라서 나일강 서쪽은 사자(死者)의 도시,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며 이곳에 그 유명한 왕들의 계곡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드 시대 다음인 1580-1085 B.C.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굴 방지를 위해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 지하에 미로(迷路)로 연결된 보물 창고, 분묘 등이 있고 바위 표면을 뚫어 신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64기가 발견되었고 그중 9기만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기후
나일계곡이라고 불리는 폭 1~20km의 초원지대로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다. 강변을 걸으면 그늘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여름이라도 약간 시원하다. 그러나 햇볕은 강력하다.
▶룩소 신전(룩소)
룩소르의 중심지이고 나일강변에서 돋보이는 장소에 거대한 신전이 있다. 이것이 신왕국시대의 황금기였던 약 200년 사이에 걸쳐 완성된 대 신전이며 비교적 모든 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조형성 넘치는 건축물이다. 제18대 왕조 아멘헤테프 3세가 창건, 후에 람세스 2세가 탑문과 제1중정을 부설했다. 원래,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됐기 때문에 카르낙 신전과 참배길이 연결돼 있어 왕조 시대에는 매년 신년이 되면 배의 출영식이 성대히 행해졌다.
동 신전은 나일강 동안에 나일강을 따라 남북으로 건축되었으며 폭 40 - 70m 길이 180 - 200m 정도의 규모이며 태양신 AMUN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다.
- 신전 탑문 앞에서 시작되는 스핑크스 대로는 2km 정도 떨어진 KARNAK 신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 정문 외벽에는 KADESH 전투(RAMESES 2세가 HITTITES 족을 격퇴) 장면이 벽화로 묘사되어 있으며,정문 좌우에 RAMESES 2세의 좌상 2개 및 입상 4개가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좌상 2개와 입상 1개만 남아 있다.(입상 2개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또한, 정문 좌우에 원래 2개의 OBELISK가 있었으나 하나는 19세기에 MUHAMMAN ALI 왕이 프랑스에 기증(콩코드 광장에 전시)함으로써 현재 하나만 남아 있다.
- 탑문 안쪽의 RAMESES 2세 광장에는 TUTHMOSIS 3세(BC 1504 - 1450간 재위) 당시 건축된 성소가 남아 있으며, 또한 후대에 건축된 회교 모스크 건물이 광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동 광장 주위를 74개의 기둥이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 AMENHOTEP 3세의 열주 RAMESES 2세 광장을 지나면 AMENHOTEP 3세의 열주(16미터 높이의 파피루스 모양을 가진 기둥 14개) 있으며 RAMESES 2세의 석상들이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 AMENHOTP 3세의 광장 열주를 지나면 AMENHOTEP 3세의 광장(약 2,400평방미터)이 나오는 데 RAMESES 2세의 광장과 모양이 유사하며 파피루스 모양의 기둥이 광장 3면을 2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 신전 내부 AMENHOTEP 3세의 광장을 지나면 32개의 기둥이 배열된 다주식 광장(HYPOSTYLE HALL)이 나오며 다주식 광장을 지나면 8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 1 전실에 이른다. 제 1 전실(ANTE CHAMBER)은 서기 4세기에 기둥들이 제거된 후 콥틱교회 예배장소로 변경되었으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제 1 전실을 지나면 4개의 기둥이 있었던 제 2 전실이 있고 그 안쪽에 태양신 AMUN의 성스러운 배를 모셨던 지성소가 위치한다.
?가는방법 : 룩소르 역에 도착하면 역앞의 큰길을 똑바로 가면 나일강에 다다르는데 그 역 앞거리가 중심가이다. 이 거리를 500m 가량 가면 룩소르 신전이 나온다.
?개장시간 : 매일 07:00-21:00시
▶왕가의 계곡(룩소)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이 도굴을 피하기위해 암굴을 파서 만든 묘지로 모든 묘가 바위를 뚫고 만든 것이다. 그러나,현재까지 발견된 64개의 묘가운데 도굴을 면한 것은 겨우 투탄카멘의 묘 뿐이다. 중요한 묘는 동쪽 계곡에 있다. 그 중 최대는 세티1세의 묘로 투탄카멘 묘의 20배에 달한다.
? 신왕조 초기 무덤(예:TUTHMOSIS 3세)
통로가 직각으로 굽어진 형태이며 내부 벽화 바탕색이 엷은 황색(파피루스 색)이고 사자의 서 내용도 단순하다.
? 후기 무덤(예 : SETI 1세)
통로가 직선 형태로 오렌지색 벽화 바탕에 다양한 내용의 사자의 서를 기록하고 있다.
? 투탕카멘의 무덤
너무나도 유명한 무덤으로 20세기 초에 발굴되었으며 현재 황금마스크를 포함한 수많은 부장품이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왕의 미이라는 지금도 현실에 안치되어 있다. 현실 정면의 벽에는 오시리스 신의 모양을 한 투탕카멘 왕과 후계자인 아이 왕이 묘사되어 있다.
? 투트메스 3세
현실의 선묘화가 아름답지만 실내가 어두우므로 손전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아멘호테프 2세
현실의 6개의 기둥이 오시리스신·아누비스신·하토르신·호루스신과 함께 아멘호테프 2세가 그려져 있다.
?가는방법 : 룩소르 역에 도착하면 역앞의 큰길을 똑바로 가면 나일강에 다다르는데 그곳에서 배를 타면 왕가의 계곡에 도착한다. 배는 일반용과 관광용의 2종류가 있는데 일반용은 동쪽 강변의 여러 곳에서 떠나 약간 비스듬히 맞은편 강변에 도착하지만 관광용은 윈터 팰리스 호텔 앞에서 떠나 약간 하류의 선착장에 닿는다.
?개장시간 : 여름 06:00-17:00 시, 겨울 06:00-16:00 시
▶카르낙 신전(룩소)
태양신 AMUN 신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MUT 신전, MONTU 신전,KHONSU 신전 등 LUXOR의 수호신들을 모신 신전들이 기본 신전들로 배치되어 있으며,TUTHMOSIS 3세의 신전,AMENHOTEP 2세 및 3세의 신전,RAMESES 3세의 신전 등 다수의 소규모 신전들도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제 12왕조(BC 20세기)때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프톨레미 왕가(BC 1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에 걸쳐 계속 증축되어 왔으나,기본 구조는 제 1 탑문(PYLON)이 건설된 제 25왕조(BC 7세기)때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 신전 배치는 남북으로 되어 있으나,AMUN 신전은 동서로 배치 되어 있으며 전체 신전 규모는 남북으로 2km,동서로 500 - 600m 정도 크기이다.
AMUN 신전 제 1 탑문(정문) 앞 입구에는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들이 도열한 스핑크스 대로가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룩소르 신전 입구까지 연결된다. AMUN 신전의 제 1 탑문을 지나면 22왕조때 건축된 대광장(GREAT COURT)이 나온다. 넓이가 약 8,650평방미터에 달하는 대광장의 북쪽에는 AMUN신,MUT신,KHONSU신의 성스러운 배를 모셔두었던 SETI 2세의 신전이 있고,대광장의 남쪽에는 RAMESES 3세의 신전이 있다. 대광장을 지나면 제 2 탑문 앞에 붉은 화강암으로 조각된 RAMESES 2세의 석상을 볼 수 있다. 제 2 탑문은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호렘헵이 건축을 시작하여 19왕조 RAMESES 2세때 완성되었다.
제 2 탑문을 지나면 열주전(GREAT HYPOSTYLE HALL)이 나오는데 그 넓이는 5,356평방미터로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과 런던의 성바울성당의 크기를 합친 것과 같다고 한다. 이 열주전은 134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중앙 12개(좌우 6개씩) 기둥은 아멘호텝 3세가 건축하였으며 외곽의 파피루스 모양의 122개 기둥들은 세티 1세가 건축하기 시작하여 람세스 2세때 완공되었다. 가운데 12개 기둥과 외곽의 122개 기둥간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햇살을 받아들이는 창문을 천장에 건축하였다. 고대에 기둥을 채색한 흔적이 아직도 기둥 윗부분에 약간씩 남이 있다.
제 3 탑문은 아멘호텝 3세때 건축되었으며,제 4 탑문은 툿투모세 1세때 건축된 것을 세티 2세가 복원하였다. 제 3 탑문과 제 4 탑문 사이에는 작은 광장(SMALL COURT)이 위치하며,동 광장에는 툿투모스 1세의 OBELISK가 있다.(높이 23미터,무게 143톤) 제 4 탑문 안쪽에는 핫셉슈트 여왕의 OBELISK가 있다.(높이 27.5미터,무게 320톤) 툿투모세 1세와 3세가 건설한 제 5 탑문과 제 6 탑문을 지나면 태양신 AMUN의 지성소에 도달한다.
지성소는 동쪽과 서쪽으로 개방되어 일출과 일몰 때 햇살이 AMUN신의 지성소를 비출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지성소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외실은 툿투모세 3세가 건축한 것이며 내실은 기원전 3년경 프톨레미스 왕조가 건설하였다. 지성소 남쪽에는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 목욕 재개하던 성스러운 호수가 있고,성스러운 호수 입구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던 딱정벌레(SCARAB)의 석상이 있다. 호수 입구쪽에 핫셉슈트 여왕의 누워있는 OBELISK가 있다.
?가는방법
룩소르 역에 도착하면 역앞의 큰길을 똑바로 가면 나일강에 다다르는데, 그 역 앞거리가 중심가이다. 이 길을 북쪽으로 3km 정도 간 곳에 카르나크 신전이 있는데 자전거를 빌려서 가는 것이 좋다.
?개장시간 : 매일 09:00 ~ 16:00시
▶합세슈트장제전
이집트를 통치했던 유일한 여왕 합세슈트의 무덤
33위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제도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약 9백60km를 가면 동태평양 적도 아래에 갈라파고스 (Galapagos)제도가 있다. 13개의 큰 섬과 6개의 작은 섬,그리고 수많은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면적은 7천8백50km2. 가장 큰 이사벨라섬의 면적은 5천8백km2로,제주도 보다 3배 이상 크다. 그러나 최고봉은 1천4백32m로 한라산 보다 낮다. 다른 섬들은 면적이 작고 고도는 해발 4백m 내외로 비교적 평탄하다. 갈라파고스는 약 2백만에서 5백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됐다. 이사벨라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화산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갈라파고스의 환경은 매우 다양하다. 돌과 선인장 뿐인 황무지 같은 섬도 있지만, 산타크루즈 처럼 열대해역에 발달하는 홍수림(紅樹林,mangrove)이 있는 섬도 있다.
갈라파고스제도의 공식 명칭은 '콜론제도'이다. 이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 4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갈라파고스의 섬들은 공식적으로 불리는 이름 외에도 한 두개의 이름을 더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산살바도르섬은 산티아고섬 또는 제임스섬으로도 불린다. 영국식 이름은 영국 해적들이 은신처로 쓰면서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열대 지방인 만큼 후끈한 더위와 습기가 엄습해오는 곳이다. 적도 바로 밑의 땅이므로 햇살이 강력하고 무덥다. 적도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한낮에도 30 C 정도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에콰도르의 과야킬시에서 1시간30분 정도의 거리에 갈라파고스 제도가 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이섬을 찾은 것은 1835년이다. 그는 영국 해군의 관측선 비글호에 생물학자로서 승선하여 남반구를 향해해가면서 동식물과 지질관찰에 종사하던 중에 발견한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해저 화산으로 인해 생긴 섬으로 여기에 사는 동식물은 오랜 옛날 대륙에서 큰가지를 타고 떠내려 오거나 폭풍에 떠내려 온 표류자들이다. 먼섬에 도착한 표류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수 없는 독특하고 고유한 형태의 "종"을 만들어냈다. 해초를 섭식하는 바다도마뱀, 선인장을 먹는 육지 이구아나, 거대한 코끼리, 거북이,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 등이 이곳에서 사는것이다.
▶찰스 다윈 연구소
찰스 다윈이 생물 진화론을 발표해 큰 파문을 일으킨 갈라파고스 군도에는 그의 연구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 각 나라에서 다양한 분야의 권위자들이 모여 동식물의 보호와 관찰을 하고 있다. 특히,거북이의 사육 관찰이 왕성하며 새끼 거북이를 사육하고 있는 이외에 연구소 밖에서 거북이의 생태를 볼 수 있다. 이곳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유일하게 거북이를 만지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또한 박물관엔 갈라파고스의 역사와 동식물 상태가 알기 쉽게 전시되어있다. ?가는방법 : 시내에서 도보로 20분(약 1km) 거리에 있다.
?개장시간 : 개관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다.
?입장료 : 무료
32위 케냐 마사이마라
케냐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농업에는 노동력의 4/5정도가 고용되어 있는데 총생산의 절반 이상이 자급용의 생산이며, 주식인 옥수수·밀·우유 등이 부족하여 식량 수입을 해야할 때도 있다. 커피와 차가 케냐의 주요 수출품이다. 독립 이후 좋았던 경제성장은 1976년 이후 세계적인 경기침체 석유부족 가뭄과 인구 증가로 하락되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케냐의 출산율은 이례적으로 높아 인구가 급성장하고, 이로인해 경제기구의 일거리와 토지 및 사회복지사업 제공능력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케냐 주민의 평균연령은 낮아 전체의 3/4 이상이 29세 미만이며, 기대 수명은 남자 51세,여자 55세이다. 인구의 대다수가 촌락에 거주했지만 1970년대 도시인구의 급성장으로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체인구의 약 1/5이 도시민이다. 현재 KOTRA 및 주재상사, 선교사 등 약500여명의 교민이 케냐에 있다.
'마사이 마라'란 아프리카 케냐의'세렝게티'(Serengeti)초원에 위치한 지역 이름을 말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사파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케냐의 나쿠루(남위 약 0°17')로 부터 탄자니아의 남위 6°까지를 가리킨다. 동쪽으로는 케냐의 차보 국립공원 및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산(山)과 접경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나트론호(湖) 주변을 포함하여 마냐라호(湖)와 접하고 있으며, 대체로 북동에서 남동으로 펼쳐져 있다. 마사이족의 보호구이며, 대부분은 풀이나 관목(灌木)밖에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이므로 소와 염소의 유목지로 이용된다. 리프트밸리(大地溝) 등의 비교적 낮은 저지대(低地帶)에서는 연간 강수량이 500 mm 전후에 불과하며, 12∼2월, 7∼9월이 건기(乾期)가 된다. 마사이족은 이 기간 중에는 고지(高地)로 이동한다. 모든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특히 약 4만마리의 얼룩말과 1,300만마리의 와일드비스트가 거대 종족을 이루고 살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탄자니아에 속해 있는 북부 세렝게티에서 매년 5-6월이면 동물들이 이곳의 세렝게티 초원으로 이주해와 다시 10월 중순에 돌아가게 된다. 물론, 무리를 쫓아 사자떼들도 같이 이곳에 이주해 와 사냥 솜씨를 겨루기도 한다. 특히,이곳에서는 각종 동물이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모습과 마사이족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마사이마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사이 족의 마을이다. 창끝이 나뭇잎 처럼 보이는 창과 방패, 그리고 곤봉 처럼 생긴 마시이 방망이로 맹수를 사냥하는 마사이족의 용맹성을 이 근처 동물들이 다 안다고 한다. 마사이 족의 복장은 빨간색으로 특이한데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사자들도 겁을 낸다고 전해진다.
사바나 기후로 마사이 마라의 기름진 8월이 되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날씨가 계속되어진다. 무엇보다도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오르면 아프리카의 평원은 더위의 위협을 받게 된다.
▶관광제안
?아프리카에 와서 사파리 투어를 하지 않으면 온 보람이 없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의 사파리 여행은 새벽 5시쯤 일어나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로 지르면서 길을 나서 동물 탐험에 나서는 이것은 대부분의 동물들이 아침해가 떠오를 즈음 활동을 시작하여, 오전 시간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뜨거운 한낮 보다는 아침의 사파리가 관광에 적합하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마사이족 마을을 한번 방문하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마을을 방문하여 그들 종족의 집 구경도 하고, 기념촬영도 하고 인사로 그들이 팔고 있는 기념품도 사올 수 있다. 마사이마라는 마사이족의 마을이라는 뜻인데 한마디로 소똥마을이다. 소떼를 키워 소똥으로 집을 짓고 소똥으로 담을 쌓고 마당도 소똥가루로 파리가 많아 이런데서 어떻게 사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작열하는 햇볕을 막아주는데 소똥이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요긴한가 보다.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추장인지, 족장인지 10여 가구 되는 곳의 우두머리는 영어도 할 줄 알고 소똥집도 서 너채나 된다고 한다. 이곳의 소똥집에서 능력에 따라 거느리는 첩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방문적기
성수기는 8월말에서 10월초이며, 따라서 마사이 마라지구는 6월 중순에서 10월 중순이 가장 방문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상식
공항에서 호텔로 차를 타고 가면서 마사이족이 창을 메고 걸어 가는 모습을 흔히들 볼 수 있다. 관광객들한테는 자동차에서 내리지 말고, 롯지에도 철조망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철조망 밖은 곧 맹수의 공격대상이 된다고 한다. 사파리 관광시 쌍안경 또는 망원경 휴대가 바람직하며, 대부분의 이 지역은 고지대이므로 밤에는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 따라서 그 점을 감안하여 두꺼운 복장을 휴대토록 하는 게 좋다. 사파리 여행시 야생 동물들이 어느 순간에 공격할지 모르므로 차량에서 내리는 것은 절대 금지라는 것도 필수이다.
?사파리 1
케냐 남서부의 빅토리아호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사이에 위치한 곳이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로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인접해 있으며 면적은 제주도와 비슷한 1,800Km2,로서 기구를 타고서 사파리를 즐길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약 4만 마리의 얼룩말과 1,300만 마리의 누우떼가 이를 찾아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를 이동하는 장관으로 유명하다.
?가는방법 : 나이로비 공항으로 부터 약 380km 거리에 위치하며 2,100m의 고지대에 속한다. 따라서,60-70Km 구간은 도로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자동차 여행의 경우 4륜 구동차의 이용이 권장되며, 자동차를 이용시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단체가 아닌 경우 전세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31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약칭으로 리우라고도 한다. 인구는 585만 544명(2000)이다. 대도시로 1763~1960년까지 브라질의 수도였으며, 자연미와 인공미의 조화로 세계 3대 미항(美港)의 하나이다. 동쪽은 대서양 연안의 과나바라만(灣)에 면하고, 서쪽은 해발고도 700m가 넘는 가파른 산지가 시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시가는 코파카바나·이파네마 등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좁고 길게 뻗어 있으며, 항구 입구에는 팡데아수카르라고 불리는 높이 약 400m의 종 모양 기암이 있어, 항구의 표지 구실을 한다. 또 시가지 바로 뒤에 있는 높이 약 700m의 코르코바도 암봉(岩峰) 꼭대기에는 리우의 상징인 그리스도상(像)이 세워져 있다. 카니발축제 또한 유명하다.
▶교통편
갈레온 국제 공항(Aeroporto Internacional Galeao)
리우데 자네이루의 갈레온 국제공항은 초승달 모양의 4층 건물로 1층은 로비가 있고 2층은 주차장, 3층은 출발로비, 4층은 호텔,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등의 상점이 나란히 있다. 서울과 브라질간은 대한항공과 바스피 브라질항공이 운행되고 있으며 서울 출발 상파울루 도착편은 대한항공이 일, 수, 금요일, 바스피 브라질 항공이 화, 목요일에 운항한다. 상파울루 출발 서울 도착 항공편은 대한항공이 일, 화, 금요일 바스피 브라질 항공이 일, 화요일에 운항된다. 모든 항공편은 LA를 경유하는 노선이며, 거의 24시간이 소요된다. 국내선으로는 바리그항공, 크루제이로 항공, 바스프 트랜스 브라질 항공, 리우술 항공 등이 운행되고 있으며,한반도의 40배에 달하는 면적으로 도시간 이동으로 항공편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특히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간에는 폰테아에레아라는 셔틀 항공편이 거의 30분 간격으로 운항되고 있다. 국내선은 어느 노선이든 예약할 필요는 없지만 공항이 노선에 따라 다르므로 공항을 미리 확인해 두어야 하며, 국내선 공항세는 US$ 2.30정도이다. 바리그 항공과 바스프 트랜스 브라질 항공의 경우 특별요금으로 국내 순회여행권을 판매하고 있으며 14일권과 21일권의 2종류로 브라질 국내의 여러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국내 순회 여행권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12km 정도 떨어져 있는 갈레온 국제 공항(Aeroporto Internacional Galeao)에 가려면 택시와 공항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공항버스는 시내에서 국내선 공항 터미널까지 30분, 코파카바 해변에서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각각 US$ 1와 US$ 1.25이다. 택시는 시내에서 공항 택시승강장까지 약 20분, 코파카바 해변에서는 약 40분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US$ 10,US$ 12이다.
?여행상식 1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환전상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강도로 돌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므로 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도록 하며,2-3일간의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환전해서 쓰도록 한다. 특히 복잡한 시내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소매치기의 위험이 높으므로 귀중품이나 여권등의 소지품은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한다. 시내 관광을 할 경우에는 복잡한 노선과 정비되어 있지 않은 정류장으로 이용이 어려우므로 가능하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여행상식 2
공중화장실은 많은 편이 아니며, 드물게 발견되는 화장실에는 휴지를 주는 사람이 꽤나 많은 팁을 요구하므로 주의하도록 한다. 화장실은 소규모의 식당(Lanches)이나 카페테리아, 주스 전문점등에서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깨끗하다.
?즐길거리/활동거리 1
리우데 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카니발 축제는 2월초 또는 3월초에 세계적인 삼바축제가 토,일,월,화등의 4일간 열린다. 카니발 축제를 즐기기 위한 세가지 방법은 첫째,거리에서 시민 퍼레이드를 즐기는 방법이다. 둘째,클럽 하우스에서 열리는 카니발에 참가하여 즐기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티켓(US$ 100이상)을 구입해서 관람석(관광객은 No.7)에서 퍼레이드를 즐기는 방법이 있다.
?즐길거리/활동거리 2
버스와 지하철을 연계하여 이용할 경우 할인 티켓을 굽입할수 있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바꿔 탈 예정이라면 역에서 '인테그라존 오니부스'라고 말하면 할인 티켓을 구입할수 있다. 또한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할때 버스에 승차할 때 '인테그라존 메트로'라고 말하면 지하철 티켓을 할인하여 구입할수 있다. ▶마라카낭 축구장
좌석수 155,000석의 최대 입장수 225,000명, 높이 32m, 지름 944m등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최대의 축구장이다. 제 4회 월드컵을 의해 세워진 경기장으로 지어진 이곳은 경기가 없는 날에는 스타디움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스탠드에 올라가 경기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브라질 국민의 축구 열정을 느낄수 있으며, 극성 팬을 위한 도랑도 설치되어 있다.
개장시간 :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09:00~17:00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 : 유료
▶예수상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정신적인 지주라 할 수 있는 상징물은, 코코바도(Corcovado)산에 위치하고 있는 무려 730m에 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념상일 것이다. 그 대단한 높이 때문에, 이 동상은 도시 위로 불쑥 솟아 있어 모습이 장엄하다. 도시 어디에서든 보이는 이 상은 36m 높이의 예수님 상으로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모두를 환영하는 듯 하며 일,기쁨, 꿈을 찾아 몰려드는 군중들을 모두 포용하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 동상은 밤에는 신비로운 빛깔로 바뀌는데 어두운 밤하늘에 기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묘한 감정을 주기도 한다. 여행객이 어디에서 왔던 간에, 이 전지전능한 예수님 상으로 인해 이 지역에 익숙해 지는데는 단 몇 일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가는방법 : 코르도바도 언덕위까지 운행되는 스위스제 케이블식 등산열차가 있는데 이 열차는 코즈메베료 역에서 출발한다. 운행시간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40까지로 요금은 왕복 US$ 3.50이다.
▶이빠네마 해안
보사노바의 명곡인 (이파네마의 처녀)로도 유명한 이빠네마 해안으로 코파카바나 해안 남단의 아르포아도르고를 돌아 이빠네마 해안,레블론 해안이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고급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근처 레블론 해안에는 레스토랑과 고급 부티크가 위치해 있어 리오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이외에도 플라멩고 해안, 보타포고 해안, 우르카 해안, 베르밀랴 해안, 레메 해안, 상콘라두 해안 등이 있다.
가는방법 : 리우브랑코 대로에서 버스를 승차하여 아타울포 데 파이바거리에 하차하면 리우데자네이루다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빠네마 해안에 도착하게 된다.
▶코파카바나 해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휴양지인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안은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1년 내내 몰려드는 곳이다. 5km에 달하는 흰 백사장과 대담한 수영복 차림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많다. 애틀랜티카 대로는 코파카바나 해안과 접해 있는 곳으로 레스토랑, 고급 호텔, 카페티라스 등이 있고 토산품점, 보석상등이 많아 리오의 관광 중심지이다. 그러나 최근 소매치기등이 많아 주의를 요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해안은 여전히 구경할 만한 곳이다.
▶팡데아수카르 산
해면에서 2/3정도가 불쑥 튀어나온 것 같은 모양을 한 이산의 정상으로 가려면 산기슭의 프라이아 베르메랴역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다. 돌기부의 정상은 해발390m이다. ▶H. Stern
1945년 브라질의 유색보석을 전문판매하는 조그마한 보석전문점으로 오픈한 H. Stern은 200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180여 개가 넘는 지점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보석상 중의 하나가 되었다. 토파즈, 아메지스트, 아쿠아마린, 에메랄드 등이 볼 만하며 본점은 리오에 있으며 보석이 가공되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다.
▶리우카니발
리오데자네이로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카니발이다. 브라질 전역에서 사순절 직전의 마지막 향연으로 거행되는 카니발은 춤과 음악의 휘황한 퍼레이드이다. 매년 2월쯤이면 전 세계인들은 리오데자네이로의 광란에 가까운 카니발을 보러 온다. 편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카니발을 보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이다.본래 카톨릭 국가들이 많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행해졌고 우리 나라에서는 사육제라고 번역되는 이 행사는 19세기 중반 포르투갈을 통해 브라질로 상륙해 오늘날과 같은 대단한 축제로 발전했다. 리오 축제는 삿포로의 유키 마쓰리(눈 축제)와 뮌휀의 파싱과 함께 세계 3대 축제의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그 규모나 열정,화려함과 광기는 다른 어느 축제에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하다.토요일에 시작되어 꼬박 4일간의 밤낮동안 펼쳐지는 춤과 음악의 광란은 전시가지를 뒤덮어 버린다.
리오 카니발의 중요한 요소는 그 유명한 삼바. 삼바 학교라고 불리는 카니발 단체들이 거액의 상금이 걸려있는 '거리의 챔피언'이 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의 행진열차를 제작하여 가장 멋진 무도행렬을 기획해 내기 위해 1년 내내 경쟁하는 것이다. 이 거리 축제 퍼레이드는 거의 9시간이나 계속된다. 눈 부신 의상,화려한 꽃차의 행진,새로 발표되는 삼바의 리듬 등 20만명 정도의 엄청난 인원이 참가하는 거대한 퍼레이드에서,가장 독창적이고 호화로운 팀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다. 각 단체에서는 대원의 의상비 등 자금 조달을 위해 평소에는 쇼를 공연하기도 하고 레코드나 잡지를 발행하는 등,수익사업을 벌이거나 스폰서를 구하는 등 연습과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카니발 기간에 대비한다.
브라질을 방문하는 2백만 가까운 관광객 중에서 3분의1이 리오의 카니발을 보러 온다. 그러나 관광객들로서는 그 시기에 맞추어 리오를 방문할 수 만은 없다. 웬만한 준비성이 아니고서는 호텔이나 관람석 예약도 힘들다. 이 시기에는 대중교통도 거의 마비 상태이기 때문에 걸어다니며 볼 각오가 아니라면 편한 여행은 포기하는 것이다 나을 정도이다. 결국 아무 때나 편한 시기에 여행을 와서 리오의 나이트 투어를 통해 쇼를 관람하면서 삼바의 리듬과 춤,그리고 무희들의 의상을 눈여겨 봐둘 수 밖에 없다. 야간의 시티 투어 코스에 가장 많이 소개되는 쇼무대는 스칼라,오바-오바,플라타포르마 I 둥의 세 곳이다. 관광객은 투어 중 이 세 곳 중 한 곳을 가게 되는데,필자가 가본 곳은 플라타포르마 I이다. 실내의 분위기는 대략 워커힐 가야금홀 비슷한 인상이다. 은 곳을 노출시킨 옷차림을 한 무희들의 현란한 춤과 신나는 음악이 거기에는 있다. 워낙 여러 곳에서 모인 관광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상업적인 솜씨도 꽤 부리는데,단체 관광객들이 모인 국가의 민요를 연주해 주기도 하고 엉덩이와 등에 각 나라의 국기를 꽂고 무대에 나오기도 하는 식이다.
▶삼바쇼
삼바쇼는 남미 특유의 정열을 느낄수 있다. 특히 스칼라(Scala)의 1,800석의 대규모 좌석을 갖춘 곳으로 뮤지컬식과 삼바식의 두가지 방식의 쇼가 열린다. 이외에도 레리키아스, 오바오바, 플라타포르마운 등의 삼바쇼도 즐길수 있다.
30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이 머무는 곳'('히마(hima)'는 '눈', '아라야(alaya)'는 '보금자리'라는 뜻)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남북으로는 인도대륙과 중국의 티벳고원 사이에 200~400km의 폭을 가지고 동서로는 낭가파르밧으로 부터, 동쪽으로는 남차바르와까지 2500km나 연속되면서 네팔, 인도, 중국, 파키스탄, 부탄 5개국의 영토에 걸쳐 있는 정말로 거대한 세계 최대의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측량국장 앤드루 워가 1846년부터 1855년까지 히말라야 산계의 3각측량을 계속하였는데, 특히 히말라야의 고봉 79개를 커다란 경위의(經緯儀)로 정밀 측정한 결과, 1852년까지 피크 15(인도 측량국 번호)라고만 부르던 에베레스트산이 높이 8,848m로 세계 최고임을 확인하였다.
29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사원
앙코르톰의 남쪽 약 1.5km에 있으며, 12세기 중반경에 건립되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하지만, 반영구적 사원은 아니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로 10월 중순∼5월 초의 건기와 5월 중순∼10월 초의 우기로 나누어진다. 건기는 비교적 서늘한 11∼2월과 더운 3∼5월로 나누어져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2∼1월에 많다. 강수량은 주변 산지에 많고 몬순의 영향이 미미한 중앙평원에서는 적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0∼1,500mm이나 남서부 산지의 바다쪽 경사면은 5,000mm 이상이다. 따라서 식생은 주변산지에 밀림이 우거져 있을 뿐 다른 지역은 관목과 초원이 혼합하는 사바나의 경관을 이룬다. 중앙평원은 제1의 농업지역으로 대부분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가 자연식생에 적합하며 동물로는 코끼리, 야생 물소, 호랑이, 퓨마, 표범, 곰 등과 수많은 작은 짐승들이 있으며 특히 코브라, 왕코브라, 줄무늬 크레이트(코브라의 일종), 러셀 등 위험한 독사가 많다.
28위 미국 알래스카
'위대한 땅'이라는 의미의 에스키모 말에서 유래한 알라스카는 면적 1,530,694㎢에 인구 626,932명(2000)로 가장 넓은 면적과 최소의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주도(州都)는 주노이며 1959년에 49번째의 주가 되었다. 미국 전체의 1/5에 달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는 알라스카는 북쪽으로 북극해, 남쪽으로 태평양에 면하고 있으며 동쪽은 캐나다의 유콘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알라스카는 덴마크의 탐험가 베링이 1741년에 발견하였다. 이후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바라노프를 지사로 파견하여 이곳을 통치하게 하였으나1867년 재정(財政)이 궁핍하여 720만 달러로 매각, 이후 미국령(領)이 되었다.
길이 약 760km. 반도 기부(基部)는 북위 59°이며 남서쪽으로 돌출해 나가다가 끝이 북위 55°에 이른다. 환태평양조산대의 일부로 알류샨산맥이 뻗어 있으며, 빙식지형이 도처에 있다. 화산도 많은데, 특히 반도 기부의 카트마이 활화산이 유명하며, 부근 일대는 카트마이 국립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서쪽의 브리스틀만(灣)은 게·핼리벗(넙치의 일종)·바다표범 등의 산지로서 유명하다.
27위 프랑스 파리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이며, 유럽 최대의 대도시권 가운데 하나인 도시로서 2,000여년 전 세느강(Seine River)의 시테섬에 세워졌다. 세느강(Seine River)은 파리시의 한가운데를 흐르며 시를 강의 북쪽(Rive Droite, 하류를 바라볼 때 우안)과 강의 남쪽(Rive Gauche, 좌안),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북쪽은 상업이 성하고, 남쪽에는 소르본 대학교 등 교육 기관이 많아 문화 활동이 활발하다.
파리시는 영국 해협에 면한 세느강 어귀로부터 내륙쪽으로 약 375㎞ 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일드프랑스(Il de France) 지방에 속한 8개주 가운데 하나로서 파리분지로 알려진 비옥한 농업지역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파리의 지형을 살펴보면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졌는데, 북쪽에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고, 남쪽에 생트 쥰비에브 언덕 및 까이유 언덕, 서쪽에 샤이오 언덕, 그리고 동쪽에는 벨빌, 메닐몽땅, 샤론과 같은 언덕이 있다. 파리의 외곽은 고도로 공업화된 지역의 공기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여 '파리의 허파'라고 불리는 너도밤나무와 참나무의 거대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난 몇 백년간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현재도 세계의 예술, 패션, 유행 등을 선도하는 주요한 도시이다.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은 파리를 일컬어 '예술의 도시', '패션의 도시', '빛의 도시', '낭만과 고독이 함께 숨쉬는 도시', '꿈과 사랑의 도시' 등으로 부르고 있다. 파리는 연간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파리시는 2,000년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도시로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중요한 교통망의 교차점에 있어 성장을 계속해왔다. 파리시는 크게 중심부의 시테섬과 세느강을 중심으로한 좌안과 우안으로 구분된다. 또한 파리는 각 구마다 고유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총 20개의 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구들은 파리의 심장부에서부터 달팽이의 소용돌이꼴로 번호를 매겨, 제1구, 제2구 등으로 부른다.
파리시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파리는 특히 밤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연인들이 밤새워 얘기를 나누는 세느강변, 샹젤리제 거리의 화려한 불빛 등은 파리의 꿈과 낭만을 보여준다. 또한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숲이 우거져 있는 도시 중 하나로서 역사적인 건축물들과 현대식 빌딩 사이로 수많은 정원과 공원 등 녹지대가 조성되어 있다. 무수히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 및 기념물, 박물관, 초현대적인 패션 및 예술 등이 어우러져 있는 파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봐야만 하는 도시이다.
파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괴테의 말대로 ‘거리의 모퉁이 하나를 돌고, 다리 하나를 건널 때마다 바로 그곳에 역사가 전개’된다. 또한 파리는 역사적 유적의 무한한 보고일 뿐만 아니라 현대에 살고 현대에서 활동하는 도시이다. 짧은 시간으로 파리를 모두 돌아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몽마르트르 언덕 위나 에펠탑·개선문 등에 올라가 지형·건물의 배열 상황을 살펴보고 나서, 여러 코스로 나누어진 관광 버스를 이용하고 센강의 관광선을 타보면 전체적인 윤곽은 파악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목표한 대로 거닐어 보고, 베르사유·생드니·퐁텐블로 등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파리의 기후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서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도 꽤 온화한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약 10℃정도로서 가장 추울 때인 1월의 평균기온은 약 3℃, 가장 더울 때인 7-8월의 평균기온은 약 18℃이다. 파리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619mm로서 여름과 가을에 다소 많은 편이지만 상당히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연중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약 35일 정도이며, 평균 15일간 눈이 내린다.
26위 이과수 폭포
녹색의 정글지대를 가르며 지나온 거대한 물길이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300여 개의 물기둥과 높이는 100m를 넘는다. 이과수폭포가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897년 이후 브라질군의 장교인 에드문두 데 비루스가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주변을 정비하면서 부터이다. 이곳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가 만나는 접경지대이며 폭포의 80%는 아르헨티나에 속해 있다. 그러나 폭포의 전경은 브라질 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과수 폭포를 관광할 수 있는 포스두 이과수시는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접해있는 도시이다. 이과수라는 이름은 원주민인 인디오의 '이구'는 물이라는 뜻이며,'이수'는 장대한 것에 대한 경탄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항공편으로 리우데 자네이루에서 2시간, 상파울루에서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에 가면 지프를 타고 이과수 폭포 근처의 정글을 트래킹한 후 배를 타고 이과수 폭포를 여행하는 코스가 있는데 이곳에서 폭포 웅덩이까지 다가가 세계적인 폭포의 진면목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가 폭포 쪽으로 다가갈수록 고막을 찢을 듯이 울부짖는 이과수의 괴성에 제압을 당하게 되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이과수를 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장대함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어서인지, 스릴있는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서인지 점점 관광자가 늘고 있다.
이과수 국제 공항은 포스두 이과수시의 동남쪽으로 10km 떨어져 있으며, 건물 안에는 관광안내소, 여행사, 레스토랑, 토산품점 등이 있다. 이과수 국제공항은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쿠이아바, 캄푸그란데, 쿠리티바, 벨로리존테, 벨렘, 아순시온, 부에노스 아리레스로 가는 항공편이 있다. 이과수 국제 공항을 이용하려면 시내에서 공항버스 및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공항버스는 시내의 근거리 버스 터미널에서 공항 터미널의 버스 정류장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되며 앞 유리창 아랫부분에 Cidade 표시가 되어 있다. 택시는 시내에 많이 있다. 그러나 특별한 표시가 없어 구별이 쉽지 않다. 공항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발로걷는 이과수 폭포를 즐긴 후 더욱 더 이과수 폭포를 만끽하기 위하여 지프자동차를 타고 정글을 탐험한다. 지프에서 내려 사람의 손이 거의 닫지 않은 정글을 만끽하며 걷다보면 이과수 강에 다다르게 된다. 오렌지색의 구명조끼를 입고 쌍발엔진이 달린 배를 타고 이과수 강을 거슬러 폭포로 향하게된다. 폭포가 가까울수록 배는 더욱 더 출렁거리며, 어느듯 폭포의 아래 부분에 다다랐을 때엔 폭포에서 나는 굉음에 귀가 멍멍거릴 정도이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이과수 폭포의 장관은 정말 장관 그 자체이다.
첫댓글 일년에 한곳씩.... 50년은 더 살아야 하네요.. 감사합니다. 유익한 정보입니다. 잘 활용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