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성령의 열매 맺는 달☜
모든 생명의 양식(복음)을 등한히하면,사탄의 표적되어 영생의 기쁨을 빼앗기게 됩니다.
해방 동이
소명을 받아 말씀을 붙들고신학한 말씀
출2:2-3절) 결단의 순간
앞에 큰 장애물이 버티고 있어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우리 는 낙심합니다. 더욱이 뒤에서 무언가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우리를 밀어 붙이면, 정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앞에 놓인 장애물(障碍物)이 질병(疾病)일 수도 있고, 경제적(經濟的)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인종적(人種的)인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적(社會的)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自暴自棄)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이와 같은 자세로는 절대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습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 수 있는 길을 얼마든지 준비해 놓고 계시고, 백성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현실의 장벽(障壁)이 높고, 미래(未來)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꾸준히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눈앞이 환해지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틈새가 보입니다. 즉 바늘구멍 같은 기회도 생깁니다.
그 틈새와 기회를 붙잡아 하나님이 부어 주신 지혜(智惠)로 밀고 나가면, 살길이 보이고, 성공의 길이 열립니다. 요즘 우리나라 전체에 짙은 안개가 덮여 있어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하나같이 미래(未來)가 보이지 않는다며, 낙심하고 있습니다. 즉 취업의 벽이 너무나 높고, 결혼(結婚)의 벽이 너무나 높다고 합니다.
이때 우리는 모든 자존심(自尊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미래(未來)를 향해서 갈 수 있도록 틈새를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도저히 자신도 살 수 없고, 아이도 살릴 길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또 학생이라면,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도무지 공부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서“될 대로 되라”고 포기하면서 먹고 놀기만 하면, 정말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불가능(不可能)해 보이는 중에서 최선(最善)을 다하면, 바늘구멍 같은 가능성이 보이게 되고, 그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Ⅰ.우리 믿음의 한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지만, 현실의 큰 어려움에 부딪혀 우리의 믿음이 바닥나서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로 비참하게 살고 있을 때,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강제로 줄이고자, 남자 아기를 낳으면, 무조건 나일 강에 던져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들로 태어난다는 것은 태어나는 자체가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좋은 레위 지파 부부가 그만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죽여야 했습니다. 신고하지 않고, 몰래 키우다가 들키면, 식구들이 모두 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이 아기를 죽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엄마에게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남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즉 이 세상 왕이 하라고 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썩은 나무나 죽은 물고기는 강물을 따라 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악한 세상이 하라고 하는 대로 떠밀려 내려가지 않고,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나게 세상을 따라가서 성공했고, 겉으로는 믿음도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은 믿음일 때도 있습니다. 사탄(詐誕)의 사주(使嗾)를 받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세상을 거슬러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때로는 불가능(不可能)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고기가 거센 물살을 헤치고 거슬러 올라가다가 높은 폭포를 만나기도 합니다. 틀림없이 포기(抛棄)해야 맞는데, 물고기들은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온 몸을 날려 뛰어오릅니다.
2:2절)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달동안 그를 숨겼으나”
레위인 엄마가 자기 아기를 보니까 아무리 봐도 죽기 위해서 태어낸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기는 손을 움켜쥐는 것도 힘이 있었고, 웃을 때도 너무나도 귀여웠고, 눈도 또릿또릿했습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눈으로‘엄마, 나를 죽이면 안 되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가족들이 모두 다 죽는 한이 있어도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담요나 이불 속에서 몰래 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의 이 믿음은 3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아기가 울고 웃는 소리가 너무나 커져서 숨겨 키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혹‘저 집에서 어제 밤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혹시 남자 아기를 몰래 키우는 것 아닐까?" 하고 말하는 이웃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의 믿음은 3개월이 지나자 바닥이 났습니다. 이제 엄마가 결정해야 합니다. 우선은, 아기와 함께 먼 사막으로 도망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엇을 먹고 살아야할까? 혹 강도(强盜)라도 만나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해서 석 달 된 아기를 죽여 달라고 애굽 군인들에게 넘겨줄 수도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며칠 안에 무슨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기와 같이 죽어야 할까?
아니면 엄마는 아기를 버려야 할까? 엄마도 살고 아기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엄마는 밤마다 울면서 하나님께 아기를 살려 달라고 부르짖으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엄마의 마음속에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이 아기를 애굽인에게 주어서 아기가 살 수만 있다면,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내가 끼고 키우는 것만이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이 아기를 포기(抛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무 애굽인의 집 앞에 아기를 가져다 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이 아기를 입양 보낼 수만 있다면, 아기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아기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부분입니다.
이 엄마는 민족의 해방이니, 자유니, 하면서 거창하게 떠들지 않고, 그저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내서라도 살리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설적(逆說的)이게도 이 아기를 포기(抛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전체적으로 환란(患亂)과 심판(審判)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죽어라고 기도해야합니다. 그 기도내용은 내가 지금 버려야할 것이 무엇인지 여쭙는 것입니다. 만약 큰 환란(患亂)이 닥치고 난 후에 기도한다면, 결국은 수습이 되겠지만, 그 피해가 엄청날 것입니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하면서 할 것 다 하고, 누릴 것 다 누리다가 나중에 일이 생기면, 기도하겠다는 것은 자포자기(自暴自棄)와 같습니다. 마치 시험을 준비 중인 학생이 맨날 엎드려 자면서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시간이 있을 때, 내가 버려야 할 고집(固執)이 무엇이며, 내가 포기 해야 할 욕심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가치(價値) 있게 보시고, 우리에게 관심(觀心)을 가지시며,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抛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여쭙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소통(疏通)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Ⅱ.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엄마는 아기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기를 애굽인에게 주어서 애굽인의 자녀로 키우게 하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아기가 아까워서 망설이다가는 아기는 곧 죽게 됩니다. 요즘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자기 것을 젊은 사람들에게 넘겨주기 아까워하다가 기회를 놓치는지 모릅니다.
아기를 애굽인에게 넘겨주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아기를 입양(入養)해 줄 애굽인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게다가 입양(入養)의 비밀을 지켜줄 신실한 애굽인을 만나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쉽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엄마에게 다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책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 엄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습니다. 엄마는 애굽의 공주나, 귀족 부인들이 자주 와서 목욕하는 강가를 떠올렸습니다. 아기를 그곳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만일 애굽 여인들이 아기를 발견해서 집으로 데려가 키우면, 아기가 사는 것이고, 군인을 불러서 죽이라고 하면, 아이의 생명은 끝장입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우선 아기를 넣을 수 있는 갈대 상자를 구했습니다. 그 상자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역청과 송진을 발랐습니다. 그리고 땡볕에 노출되지 않도록 뚜껑을 닫아 시원한 그늘 가에 두었습니다.
엄마는 아기의 누나 미리암에게 망을 보게 했습니다. 혹시라도 악어가 가까이 온다거나, 뱀이 바구니에 다가간다거나, 혹은 바구니가 저절로 강물에 떠내려가면, 아기는 애굽인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게 됩니다. 누나의 역할도 참으로 큽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영역(靈域)입니다 엄마는 아기를 바구니에 넣어서 떠나보내고 무엇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아마 죽어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즉 제발 우리 아기가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때 놀랍게도, 바로 왕의 무남독녀(無男獨女)가 시녀들과 그 강가로 목욕을 하러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원수의 딸과 만난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치면, 히틀러의 딸이 목욕하러 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미리암이나 아기 엄마는 이 여자가 누군지? 처음에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 당시 애굽의 바로는 투트모세 l세로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무남독녀(無男獨女)는 하트셉수트인데, 아주 미인(美人)이었던 그녀의 얼굴이 금 모형(模型)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남편이 투트모세 2세이고, 또 이 부부가 입양(入養)해서 나중에 왕이 된 투트모세 3세가 후에 모세와 대결한 왕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애굽의 노예 감독(監督)을 죽이고, 도망칠 때, 이 하트셉수트가 모세를 죽이지 못하게 보호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바로의 딸은 결혼은 했지만,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얼마나 오묘(五妙)하고, 신비(神祕)한지 모릅니다. 하트셉수트 공주는 갈대밭에 갈대 바구니가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시녀들이 가져온 상자를 여니까 남자 아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기는 배가 고팠는지 뚜껑을 여니까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공주가 아기 입에다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면, 아기가 그 손가락을 마구 빨았을 것입니다.
공주는 이 아기가 히브리인들이 버린 아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공주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모성애(母性愛)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공주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이 아기를 키우는 것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기가 너무나도 귀엽고, 예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 아기는 죽여야 한다는 아버지의 명령(命令)과 아기를 키우고 싶은 모성애(母性愛)가 공주 안에서 싸웠을 것입니다. 그때 아기의 누나 미리암이 지나가듯이 나타나서“혹시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유모를 구해 드릴까요"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이윽고 공주는 아기를 키우기로 결심합니다.‘히브리인이건 애굽인이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내 아이로 키우면 되지’그래서 유모(乳母)를 구해 오라고 명령(命令)합니다. 이때 미리암은 아기의 친 엄마를 데리고 옵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것에 대해 누가 미리암에게 먼저 말해 주었을까? 곧 아기의 친 엄마입니다. 즉 공주가 이렇게 말할 때는 어찌어찌 대답하라고 다 일러 주었던 것입니다.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엄마의 의지가 얼마나 집요하고,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공주는 시녀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발설(發說)하는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죽이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주는 아기 이름을 모세라고 짓고,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엄마가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아기가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곧 믿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을 결코 실망(失望)시키지 않습니다.
Ⅲ.다시 돌아온 아들
공주는 모세의 친 엄마에게 아들을 도로 주면서“이 아이는 내 아이인데 아기가 젖을 뗄 때까지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명령(命令)을 내렸습니다. 게다가 아기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費用)까지 주었습니다.
2:9절)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모세의 엄마는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아기가 살아서 자기 품에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한 치도 오차가 없었습니다. 그날 틀림없이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왔고, 그녀는 아기를 보았으며, 아기를 군인에게 주지 않고,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이제 아기는 가장 안전해졌습니다.
아무리 애굽의 군인일지라도 공주의 아기를 죽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모세 엄마는 자기 아들을 키우면서 바로의 딸로부터 월급(月給)까지 받았습니다.
우리가 처음 믿음으로 나아갈 때는 믿음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어서 이 세상에서 곧바로 꺾이고, 실패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믿음은 위대합니다. 하나님은 이 아기를 가장 안전한 집에 맡겨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이 아기는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엄마의 역할은 여기서 끝일까? 아닙니다. 엄마는 이 아기를 신앙인으로 키울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엄마가 자기 아기를 데리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기가 젖을 뗄 때까지였습니다.
그 시기는 대개 서너 살로 봅니다. 모세의 엄마는 자기가 애굽인의 아들을 맡아서 키우는 중이라고, 소문을 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아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을 것입니다. 아기들이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사실 유아기 때, 배운 것들이 잠재의식에 계속 남아 있다고 합니다.
모세는 후에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오경을 기록하는데, 그중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전(舊典)으로 내려오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옛날 히브리인들은 창세기 내용을 모두 다 외웠습니다.
모세는 아기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아브라함 이야기나, 천지창조 이야기,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중에 이것을 성경으로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창세기나, 시편 같은 것은 웬만하면, 다 외워 버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중에 천재가 많고,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것입니다. 모세의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모세가 젖 뗄 때까지 구전(舊典)으로 내려오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젖을 뗀 후, 바로의 왕궁에 들어가서 세상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까지 엄마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마음속에는 애굽의 그 모든 부귀 영화로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갈망이 언제나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마치 연어가 아무리 먼 바다로 가서 살더라도 때가 되면, 처음 자신이 부화(孵化)되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賞)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이 말씀은 해방 동이인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40살 사업을 포기하고 이 말씀을 붙들고 소명을 받아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이 전부라면, 지금 고생하면서 예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교회에 나갈 필요도 없고, 헌금(獻金)할 필요도 없고, 세상의 썩을 것 모두 움켜 쥐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모두 내려놓고 죽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축복이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학교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노예들을 애굽에서 건져 냈습니다. 즉 열 가지 재앙이 오게 하고, 홍해를 갈라서 이 백성들을 인도하여 마침내 위대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했습니다.
사랑히는 성도여러분!
미래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기도할 때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 이때 우리는 고집과 탐심을 깨닫고,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합니다. 즉 쓸데없는 자존심과 욕심을 모두 다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줄기차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실하신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375장 *나는 갈 길 모르니*
오늘의 묵상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37:5-7)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오늘의 기도제목 ▣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주님! 셀(cell)공동체, 예배공동체, 선교공동체로 부흥.성장케 하옵소서.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주님! 내게 맡겨주신 재물과 나의 생명 주님께 드려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교갱원의 엄격한 규칙을 지켜 낙오자 없이 모두 성숙한 복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癸卯年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 세워 성장하는 해*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셀(cell)로 새출발 할 수 있습니다. 교갱원카페. 카톡.천국백성이 은혜받고 감사하며, 기도로 화답하는 것은 필수.기본상식. 후원계좌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내용)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
|